Cusco 2000
쿠스코 (Cusco) 연주 / 지구 / 1992년 1월
평점 :
품절


운전할 때 보통은 KBS 1FM을 듣지만, 곡이 별로 마음에 안 들거나 뭔가 생각해서 아이디어를 얻어야 할 경우는 꼭 이 음악을 듣는다.

내가 안데스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생 때,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LP로 듣게 된 폴 모리 교향악단의 음반에서였다. 첫 곡이 영화 <대부> 주제가였던 레이블이었는데, 서너번째쯤에 El Condor Pasa가 있었다. 한귀에 반해버린(이런 표현 있나...?) 뒤 이런 음악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시는 팝과 가요, 클래식만이 존재하던 시절, 소원이 이뤄진 것은 2000년대도 한참 들어서였다.

요즘은 KBS 1FM에 아예 <세상의 모든 음악>이란 고정 프로그램이 있고, 이런 음악들을 가리켜 따로 '월드뮤직'이라 한다.(물론 내용을 뜯어보면 정확한 표현으로는 제삼세계 음악이라고 하는 게 맞다) 참 격세지감을 느끼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에 행복해하곤 한다.

그런데 쿠스코 음악들은 단순히 월드뮤직, 민속음악의 재발굴이 아니라는 데 또 매력이 있다. 외국인들이 우리 전통문화 가운데 어떠어떤 게 어떠어떤 점에서 아름답다는 지적을 할 때 가끔 우리를 놀래키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그 문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국외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볼 때 새로운 매력이 부각되는 경우가 있다. 쿠스코는 안데스 현지인들이 아닌 안데스음악에 미친 독일인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유럽에서도 가장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민족의 젊은이들이, 가장 정열적이고 정서적인 스페인 식민지로 수백년간 라틴문화의 세례를 받아왔던 안데스에 찾아가 그들의 음악에 빠져든다... 이건 굉장한 장점이다.

그래서 쿠스코의 음악들은, 내가 느끼기엔 실제 정서보다 더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색채를 띤다. 서양인들이 중국 공예품이나 일본 선에 대해 무지하게 환상적으로 묘사한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다른 레이블과 달리 제목이 아프리카적 정서를 암시하는 곡들이 많은데,  나는 여전히 안데스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개인적으로는 1번, 4번, 5번이 특히 매혹적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