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 (생략) 그리고 나는 심층과 표층, 죽음과 삶을 갈라서 얘기한 게 아니에요. 죽음과 삶, 현실과 비현실, 이게 다같이 공유되어 있는 거예요. 박민규(朴玟奎)란 작가가 최근에 젊은 작가들끼리 좌담하면서 근사한 말을 했더라고. 소설은 물질이다…… 이게 근사한 말이지요. 내가 최근에 리옹에 가서 얘기를 하는데 어떤 프랑스 여성작가가…… 인기 절정의 여성작가래요. 몇 십만부가 팔리고 하는데 맨날 자기 사생활을 작품으로 쓰고 그런데요. 누가 "글은 어떻게 씁니까?" 물었더니 작가가 하는 말이 내면이 피투성이가 되고 어쩌고, 아주 난리가 났어요. 나는 뭐라고 했냐면 "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 그리고 궁둥이로 쓴다." 그건 뭐냐면 소설창작은 8, 90퍼센트가 노동이 결정하는 거예요. 우선 오래 앉아 있어야 되거든, 프로 작가는 글이 안 나와도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해요. 안 나오면 어떡합니까? 그래서 난 글쓰는 행위를 물질적 행위로 보고, 세상에 표출된 것도 그 물질의 부분으로 봅니다. 요새는 작가들이 왜 그렇게 엄살이 심한지 모르겠어요. 하늘에서 천형, 천벌을 받은 것처럼 말하더군.

― 『창작과 비평 2007 가을호』, 「도전인터뷰|한국문학은 살아 있다」, 심진경, 251~252면

 

심진경 : 이제 서서히 마지막 주제로 넘어가볼까요? 요즘 젊은 작가의 작품 중에서 재미있게 읽은 작품에 대해서 얘기 좀 해주세요.
황석영 : 외국에 있는 바람에 다 자세히는 읽지 못했는데, 작년에 박민규의 『핑퐁』하고 이혜경의 『틈새』, 김애란의 단편을 봤는데 기분이 좋았어요. 내가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한국어판에 "이 소설들을 읽으니 나에게도 돌아갈 정처가 아직 있다는 걸 알고 반가웠다"고 썼죠.

― 『창작과 비평 2007 가을호』, 「도전인터뷰|한국문학은 살아 있다」, 심진경, 272면

 

문학은 자폐의 길에서 벗어나야

황석영 : (생략) 내가 얼마전 기자간담회에서 "올해가 한국문학의 중흥기야" 어쩌고 했는데 한국문학 격려하느라고 그런 거예요. 사실이 그렇기도 하고…… 아니, 기자라는 사람들이 겨우 이삼년을 못 참아서 지난 몇년간 한국문학은 끝났다 어쩐다 하면서 난리를 쳐요? 한국문학이 잘 안 팔리고 번역소설들이나 팔리고 그러니까 그런 기미가 아주 없지는 않았어요. 그러면 편집자 평론가 기자 들이 좋은 작품이 나올 거다 하면서 옛날 것도 다시 한번 얘기하고 그러면서 기다리고 북돋아주어야지. 올해를 봐요. 그동안 한국작가들이 제각기 쓰고 있었던 거야. 나도 쓰고 있었다고……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다들 쓰고 있던 거예요. 올해 나올 책들이 앞으로도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는데. 쏟아져나올 거요. 김애란도 가을에 나온다며? 천운영도 나온다고 하고, 또 김영하 나올 거고, 김연수도 준비중이고. 지금 원로에서 젊은 신인들에 이르기까지 연이어 역작들을 내놓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물론 한국문학이 위기가 아니었던 때가 없지만 지금이 결코 나쁘지 않다고 봐요. 그리고 우리는 아직 사회변혁이 진행중이고 분단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얘기할 거리가 너무 많아요. 문학을 하는 사람들마저 문학이 현재 '문하의 최하위'라고까지 말하는데…… 자학하지 말고 자기를 존중해야 남들도 존중한다고.
  근데 나는 요새 기분나쁜게 어디 가서 호통을 쳤으면 좋겠어요. 아니, 이 싸가지없는 국회의원들이 저희들끼리 싸우다가 상대가 거짓말하는 것 같으면 '소설' 쓰지 말래. 그러더니 어린 네티즌들도 누가 허튼소리하면 '소설 쓰고 있네' 그래요 외국에서는 당대의 소설, 문학책, 이런 게 그 사회 교양의 척도예요. 아니, 이렇게 허섭스레기 같은 취급을 받다니 말이야. 그래서 좀 자부심을 갖고…… 왜냐하면 사회에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없어졌기 때문에 근대문학의 종언이 아니고, 그런 역할을 잊을수록 허섭스레기가 되고 종언되는 거예요.

― 『창작과 비평 2007 가을호』, 「도전인터뷰|한국문학은 살아 있다」, 심진경, 275~276면

  예전에 수업시간 발표 때문에 『오래된 정원』을 읽었을 때는 시간은 없는데 책은 두 권이나 되고 촉박한 마음에 지루하게 읽은 기억이 나네요. 만약, 이런 인터뷰를 먼저 읽었다면 황석영 작가 발표를 훨씬 더 열심히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황석영 작가도 저번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린 좌담회를 읽었었군요. 그때, 저 말 말고도 박민규 작가가 좋은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근대문학 종언 파트의 글들은 전체적으로 시원했습니다. 여기에 일부만 옮겨놓아 봤지만요. 아무래도 요즘 작가들의 언급이 있는 부분들이 눈이가서 옮겨적어 봤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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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6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밖에서는 출간되지 않아서 모르지만 작가들은 안에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었답니다.
진득하니 기다리기 이전에 너무 많은 책들이 나오는게 문제일까요?
잘 읽었어요.

twinpix 2007-09-16 20:5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정말 묵묵히 열심히 쓰고 있는 작가들이 있고, 또 앞으로 날개를 펼치고 싶어하는 예비 작가들도 많은데 매번 문학은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야속해 보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쏟아질 많은 책들이 기대가 됩니다. 언제 다 읽을 지는 모르겠지만요. :D

얼음장수 2007-09-16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래된 정원"을 느긋하게 읽었는데도 지루하더군요. 그래서 읽다 말았습니다. 책 자체가 좀 지루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가을에 많은 작품들이 나올 거라고 하니 기대되네요^^

twinpix 2007-09-16 20:52   좋아요 0 | URL
음, 원래 좀 지루한 면이 있는 소설인가 봐요. 아무튼 읽을 때 큰 감흥이 없어서 나중에 영화로 나온 것도 안 봤어요. 하지만 다른 황석영 작가의 글들은 읽어보고 싶어요. 다 같은 스타일의 글들은 아닐 테니까요.^^ 이번 『바리데기』 같은 경우도 시적 서사라고 짧은 장편 스타일이라고 하니까 말이죠. 김애란의 다음 작품집이 특히 기대 중이에요.

얼음장수 2007-09-16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개인적으로 괜찮았습니다. 저도 김애란과 김연수가 기대됩니다.

twinpix 2007-09-30 20:25   좋아요 0 | URL
언제 영화를 찾아봐야겠네요. 김연수 작가의 장편은 아직 나온 것 같지 않은데, 김애란의 단편집 『침이 고인다』가 나왔네요. 얼른 구입할 예정이에요.

은비뫼 2007-09-23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비 가을호군요.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작가의 고뇌는 책이 출판되는 여부와 상관없이 늘 진행형이라 생각합니다.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

twinpix 2007-09-30 20:25   좋아요 0 | URL
두 번째 문장이 인상깊네요. 그런 것이겠지요. :D
 
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달의 바다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인 『달의 바다』는 내가 두 번째로 읽는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이다. 첫 번째는 박민규의 등단작인 『지구영웅전설』이었다. 『달의 바다』를 읽게 된 것은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했던 82년생의 젊은 작가가 쓴 소설이라는 점과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린 수상 소감이나 사진 등에서 궁금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또한, 소재 역시 매력적이었다. 최근 우주인에 대한 관심이 높은 가운데 ‘달의 바다’라는 제목을 갖고 우주인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이 소설은 우선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구성이 돋보인다. 편지와 실제 상황이 교차되는 간결한 구조로 두 이야기가 따로 놀지 않고 잘 연결되어 있다. 고모가 보낸 편지 부분은 여러 사람들이 칭찬했듯이 문장의 밀도가 높고 흥미롭기까지 하다. 작가가 조사한 과학 지식을 잘 결합해서 우주비행사의 일면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따스한 소설이다. 인물들은 각각 살아있고 매력적이다. 착한 소설이라고 할까?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 할아버지의 캐릭터는 중심에서 벗어나 있고 오히려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런 점들 때문에 부자연스러운 부분들도 있다. 첫 편지가 끝나고 시작되는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자살을 결심하고 약을 사 모은다. 극단적인 자살이라는 설정이 제대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서 억지로 설정을 일단 제공한다는 느낌이었다. 실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도 그런 부분들은 이야기에 잘 결합되어 있지 않고 따로 노는 느낌을 받았다.

  분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하지 못한 면도 있을 것이다. 박민규의 『지구영웅전설』도 원래 쓴 분량보다 응모하기 위해 500매 정도를 덜어냈다고 하니까. 이야기를 충분히 할 공간은 적었지만 그 대신 『달의 바다』는 애초부터 제한된 분량 안에서 완벽한 구조를 짰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구조가 이 소설의 백미였다. 손정수 문학평론가가 말했듯이 편지는 처음에는 진짜 이야기였다고 나중에는 거짓말이 되고 결국은 진실로 귀착되는 아이러니가 멋진 감동을 준다. 이 감동 때문에 이 소설이 갖는 무미건조한 부분들도 마지막에는 감동에 의해 잊을 수 있었다.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했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충분히 주는 소설이었다. 물론, 이러니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할 수 있었겠지만. 
  이 작가를 평한다면 긍정의 힘을 잘 그리는 작가라고 할까? 아직 작가의 등단작인 「나를 위해 웃다」를 읽지 않았지만 당시 심사평을 보니 역시 긍정이라는 키워드가 나온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그 키워드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삶을 긍정하는 힘을 작가는 잘 그리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생각된다.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 작가인지, 어떤지는 아직 모르겠다. 책의 분량이 얇은 만큼, 가볍고 재미있게 읽었지만 다음 소설이 기대되냐고 묻는다면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원고가 잘 되면 방을 나와 디스코를 추고 조용히 들어갔다는 작가의 수상소감을 쉽사리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삶을 긍정하는 이 작가의 진짜 이야기를 엿보길 원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야.”

  고모는 부드럽게 웃었다.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은데 늘 우리의 밑그림을 넘어서니까 당황하고 불신하게 되는 거야. 이렇게 네가 나를 보러 와준 것처럼 기대 밖의 좋은 일도 있는 거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거고. 고모는 그걸 알기 때문에 세상에 빚진 것이 없어.”

  “그래서?”

  “자유지.”

- 『달의 바다』, 문학동네, 정한아, 14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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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6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스~ ^^/ 별 셋이 딱 공정한 느낌(전 별 넷주고는 좀 후했다는 맘이었어요)

twinpix 2007-09-16 20:53   좋아요 0 | URL
후한 것도 좋지요.^^ 처녀작이고 반짝반짝 빛나는 면모가 있잖아요. 'ㅁ' 전 요즘 대부분의 별들을 후하게 매긴다는 생각을 하곤 적당하게 맞추려고 노력해봤어요.^^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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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팔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처음 이기호라는 작가를 접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최순덕 성령 충만기』는 소설이 이토록 다양한 형식을 소화해낼 수 있구나, 하고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랩 형식으로 쓴 「버니」, 성경의 형식을 패러디한 「최순덕 성령 충만기」등. 첫 작품집으로 ‘이기호’란 작가는 내게 쉽게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기호 작가의 두 번째 작품집이 나왔다.

  첫 작품집에서 받았던 강렬한 느낌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금세 집어 들지는 않았다. 뭐랄까, 왠지 제목이 책을 집는 것을 더 미뤄두게 만드는 것이었다. 끌리지 않았다고 할까? 그러다 이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책은 전작보다는 별로라고 느꼈다. 파격적인 실험 요소가 줄었기 때문일까,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무미건조한 느낌이었다. 일단, 첫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나쁜 소설 - 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는 신선했다. 독자에게 말을 거는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이기호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가웠다. 그러나 이야기가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이야기는 거는 형식을 넘어 최면술에 빠트리는 듯한 이야기 방식은 물론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 있는 줄거리는 빈약해 보였다. 마지막 끝맺음은 교묘하게 깔끔해서 좋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이디어에 비해 이야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은 『예전에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05』에서 읽었던 단편이다. 당시에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은 기억이 있다. 흙을 먹는다는 설정으로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환상적인 설정과 주제의식이 잘 결합된 작품이라는 느낌이었다. 「원주통신」은 박경리 작가와 같은 원주에 살았던 작가의 체험이 녹아 있는 작품.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소설적 재미는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당신이 잠든 밤에」는 꽤 몰입하면서 읽었던 단편이었다. 작가의 첫 작품집에서 매번 등장했던 시봉이 등장한 터라 반가웠고, 자동차에 치이려고 하는 자해공갈단인 두 사람의 모습도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묘한 애정 어린 눈초리로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비를 맞으면서 아무도 없는 새벽에 오로지 여고생이 모는 차에 치이려고 필사적인 그들의 모습은 애틋하기까지 했다. 과연 부딪힐 수 있을 것인가, 또 어떻게 좌절할 것인가.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이 소설집의 제목처럼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라는 느낌의 단편이었달까. 꽤 마음에 드는 단편이었다. 그 다음은 「국기게양대 로망스 - 당신이 잠든 밤에 2」이다. 역시 시봉이 등장하는 단편이었다. 국기게양대를 사랑하는 남자와 다른 두 사람의 남자. 어떤 분의 리뷰에서 보니 연극으로 올리면 좋은 글이라는 것을 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딱 그렇다. 무대는 한정되어 있고 세 사람의 이야기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즉, 그만큼 소설 본연의 재미는 떨어지지 않나 싶지만, 이미지가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세 남자가 어슴프레한 새벽에 국기게양대에 각각 매달려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한 번 상상되고 나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니까.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그만큼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수인(囚人)」은 역시 환상적인 배경 설정을 가지고 들어가는 작품이다. 원자력발전소의 폭발로 인해 대한민국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모두 다른 나라로 흩어진 상황. 주인공은 소설을 쓰느라 그 사실을 모르고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데, 입국 심사를 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소설가라고 증명해야 하는 상황. 시멘트로 덮인 교보문고를 곡괭이로 매일 파면서 자신의 책을 찾고자 한다. 이기호 작가의 작가론이랄까, 소설론을 들을 수 있는 단편이었다. 상황 설정도 재미있었고 내용 진행도 잘 읽혔다.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기도 한 작품이었다. 「할머니, 이젠 걱정 마세요」는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배운 주인공이 소설가가 되어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들려드린다. 할머니에게 하는 말을 그대로 옮긴 듯한 형식 때문에 정겹고 따스한 정서가 흐르는 글이면서 한 편으로는 귀신이 있는 것 같은 무서운 느낌도 들게 하는 글이었다. 잘 읽었지만 제목이 모든 것을 대변해주는 소설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마지막 작품은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였다. 폭력의 역사랄까. 집단 구타를 당한 십대 소년의 이야기다. 경찰에서 조서를 꾸미다가 글쓰기 교정을 배우는 장면도 재미있다. 작가가 자전적인 소설을 써보자고 결심하고 쓴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나 역시 암울한 이야기들이라 그런지 큰 감흥은 없었다. 인상에 잘 안 남는 단편이었다고 할까? 이 단편이 이 소설집의 표제인 것처럼 이 단편이 이 소설집의 아쉬움을 대변하는 소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많다는 점. 가령, 「원주통신」도 작가가 살았던 원주를 배경으로 쓰인 소설이고 「할머니, 이젠 걱정 마세요」도 할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다. 이렇듯 작가가 스스로 이야기를 쓴 부분이 많은데 그것이 전작에서 ‘시봉’의 이야기만 늘어놓던 것과 차별화된 것이리라. 아무래도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고 읽히면서 재미가 반감된 게 아닌가 싶었다. 소설에 잘 몰입되지도 않고 말이다. 그리고 소설가 소설인 단편도 많았는데 이 점 역시 재미를 떨어트린 요소가 아닐까. 「수인」의 설정은 재미있었지만, 소설가 소설로써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다른 글쓰기와 관련된 단편들도 마찬가지로 재미가 부족했다. 통찰이 깊은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이렇듯 전작에 비해 나는 개인적으로 재미있게만 읽지는 못한 책이었다. 그러나 이기호의 다음 책이 나온다면 반드시 찾아 볼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마 보다 빠르게 읽고 싶어질 것이다. 작가 후기에서 작가는 이번에는 미안하지만 자기 얘기를 했다고, 다음부터는 그렇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작가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기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장편 연재를 시작했다고 들었으니, 장편이 먼저 나올까? 이기호의 장편이라, 기대감 100%다.

  마지막으로 이기호의 인터뷰 글 중 한 부분을 발췌하겠다.

  이기호는 발음이 어려운 외국 영화감독의 이름이나 아방가르드 미술 사조 앞에서는 그의 주인공 ‘시봉’처럼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이지만, 귄터 그라스와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을 책장이 나달나달해질 정도로 반복해 읽었으며 한나 아렌트와 다치바나 다카시의 글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소설가다. “내가 쓰고 싶은 얘기는 메타 픽션(소설가가 주인공인 소설)이 아니다.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며 장편소설에 대한 은밀한 결의를 밝히는 그의 나직한 목소리는 더없이 진지했다. 갈팡질팡하다가 세련되어질 줄 알았다. - 주간한국 : [이신조의 '작가와 차 한 잔'] <2> 소설가 이기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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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6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분 서재에서 이 책에 대해 극찬하는 리뷰를 본 적 있기에 살까 하다가 님의 리뷰를 읽게 되었어요.
책읽기는 개인적이라는 느낌을 실감합니다.
좋은 정보가 되었어요.

twinpix 2007-09-16 20:55   좋아요 0 | URL
기대가 커서 실망이 컸던 것 같아요. 그만큼 첫작품은 저도 극찬을 했거든요. 평을 따로 쓰진 않았지만요. 하지만 이기호 작가는 아무튼 참 좋아해요. 그가 가진 독특한 상상력이나 입담, 재치 등이 말이죠. 그래서 다음 작품도 무조건 기대가 되고요.^^ 부족한 리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그동안 통 알라딘 서재에 들리지조차 못했네요. 오랜만에 페이퍼에 글을 남겨 봅니다. 그동안 정신없이 바빴죠. 8월에는 특근을 두번이나 연속으로 했고, 일거리가 워낙 많아서 야근도 통 못 빠졌고요. 게다가 환상문학웹진 거울(http//mirror.pe.kr ) 이번 호에 웹진 거울 두번째 소재별 앤솔러지인 외계인 앤솔러지『제15종 근접조우』 리뷰를 쓰느라 정신이 없었죠. 여유를 부리다가 마감을 앞두고서야 급하게 읽고 쓰느라 겨우 마감날에 넘겼어요. 'ㅁ';;;;

2.
  책은 라이트 노벨만 집중적으로 읽었네요. 타임 루프물인 『all you need is kill』은 시간이 소재라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읽은 1권 짜리 라이트 노벨이기도 했고요. 『은반 컬러이더스코프』는 소재가 독특합니다.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소재를 라이트 노벨에 접목시킨 점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렇다고 재미나 완성도가 뛰어난 편은 아니라서 동생이 샀으니 읽었지, 만약 제가 사봐야 했다면 구입하지 않았을 책이긴 합니다. 그래도 김연아 선수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 피겨 스케이팅을 소설로 즐겨서 좋은 시간이었어요. 유령 빙의라는 고리타분한 소재를 새로운 요소로 사용하기도 했고요. 
  현재는 『달의 바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등의 책을 옆에 두고 있습니다. 일단 읽고 있는 건 장르문학월간지 『판타스틱』8, 9월호이고요. 8월호를 밀려서 읽는 속도가 느리네요. 9월호에 실린 전민희님의 단편은 소품격이지만 재미있군요. 인터뷰를 읽으니 단편집도 생각중이신데 꼭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전민희님 글은 『태양의 탑』, 『룬의 아이들』3부 등 밀린 작품이 많아 언제가 될지 모르겠네요.

3.
  저번주 수요일에 목을 삐끗했는데, 쉽게 안 낫네요. 이번주까지 고생했어요. 목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문짝을 나르는 일을 하다보니, 어깨까지 심하게 아프기 시작하더라고요. 결국 어제 정형외과를 갔는데 목과 어깨라고 말을 했지만 목만 물리치료를 받아서 어젯밤에 어깨통증이 가시지 않아 쉽게 잠들지 못했죠. 결국 오늘 다른 병원을 찾았어요. 의사선생님도 어제 병원보다 훨씬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하셨어요. 주의사항도 많이 알려주시고요. 하루에 컴퓨터를 20분 이상 하지 말고, 베개도 낮은 것을 쓰고, 또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2주간 통원치료를 받으라고 하더군요. 어제 의사선생님은 별 말씀 없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물리치료도 어깨를 집중적으로 받아서 통증이 사라졌어요.(양 병원의 또 다른 차이점은 어제는 물리치료할 때 남자만 보이더니만 - 어차피 기계만 하는거더군요. 물리치료 어제 처음 받아봤어요. - 오늘 병원은 여자 간호사들만 있더라고요.^^) 아무튼 여러모로 좋았는데 그대신 가격은 웬일인지 세 배가 넘더군요. 어제 병원은 똑같이 엑스레이 찍고 다 했지만 오천원 정도 나오던데 오늘 병원은 만 팔천원이더라고요. 아무튼 조심하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4.
  요즘 빠진 드라마는 《개와 늑대의 시간》입니다. 친구가 보는 것을 옆에서 보다가 빠져서 나중에 못본 1화부터 6화까지 전부 시청했어요. 정말 영화같은 드라마더군요. 오늘도 보고 자려고요. 오랜만에 열광하면서 보는 국내 드라마 같습니다. 다음 스토리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커다란 매력 중 하나. 이번 주가 끝인지 결말이 어떻게 날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제발 많이 안 죽기만을 바라고 있어요.
  《아이엠샘》도 재미있더라고요. 원작 만화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요. 양동근은 정말 자연스러운 연기를 잘하는 멋진배우인 것 같습니다. 《닥터갱》 때도 느꼈지만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연기 같지 않은 연기가 멋진 것 같아요.

5.
  부모님이 친척분들과 4박 5일로 오늘 중국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아무 일 없이 재미있게 놀다 오셔야 할 텐데요. 예전에 백두산을 갔을 때 제 기억 속의 중국은 차가 굉장히 무서웠다는 거였어요. 도로를 건너는데 차도 사람도 아무도 신호를 지키지 않아서 저랑 같이 가던 사람은 정말 눈앞에서 버스가 스쳐지나가는 경험까지! 도로를 건널 때는 무서워서 다른 중국 사람 뒤를 따라 재빨리 건너곤 했었죠. 아무튼 뭐 여행사에서 가는 거니까 큰 위험은 없겠죠. 이번 주에 집에 올라가면 동생과 저만 있겠네요. 동생은 또 밖에 잘 돌아다니니 집에 혼자 있을 시간이 많을 듯. 이번 추석 때 동생은 또 친구랑 일본을 갑니다. 이래저래 가족들이 전부 해외에 가는군요. 저도 내년 초에는 친구들과 일본을 가볼까 생각중이기도 해요. 구체적 계획은 아직 없고, 무산될지도 모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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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7-09-05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구,,,고생하셨네요,,,,그러니 더욱 컴퓨터를 가까이 하기 힘드셨겠다...
제 남편도 어제부터 님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데 그게 굉장히 괴로운거에요,,,
한의원에 가보시지,,,,
그나저나 여자 간호사만 있어서 호전되신거 아녜요???ㅋㅋ

twinpix 2007-09-05 23:14   좋아요 0 | URL
아프니까 한의원도 생각났어요.^^ 컴퓨터도 줄여야죠.^^;; 지금도 리플만 달고 얼른 끌 생각이에요.^^~ 글쎄요~~ 예쁜 분도 확실히 있었던 게 도움이~

보석 2007-09-05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바쁘셨군요.^^ 건강 관리 잘하세요~

twinpix 2007-09-06 12:40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Mephistopheles 2007-09-06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쪽은 관리 잘하셔야 합니다.. 특히나 격무에 시달리는 직장인들 목쪽에 문제는 심각해질수 있으니까 치료 잘 받으세요.^^

twinpix 2007-09-06 12:40   좋아요 0 | URL
그동안은 함부로 목을 움직였는데, 이제 조심스럽게 됐어요.^^ 관리 잘해야죠.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07-09-06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했어요 트윈픽스님~
왼쪽에 독서 리스트 보니 반갑네요 ^^ 저도 얼마전에 감기랑, 강산무진 읽었답니다

twinpix 2007-09-06 12:41   좋아요 0 | URL
앗, 전 언제 다 읽을지 모르겠어요. '감기' 읽기 전에 '거기? 당신'도 읽어야 하는데 진도가 잘 안 나가네요.^^~~~

프레이야 2007-09-06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다 목을 삐끗? 언능 잘 나으시기 바래요^^

twinpix 2007-09-06 21:40   좋아요 0 | URL
그냥 별 일 없이 삐끗했어요. 잠버릇이 나쁜 것도 있을 테고 그동안 목을 함부로 한 게 쌓인듯도 싶어요. 'ㅁ' 감사합니다~~

마태우스 2007-09-0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 컴퓨터20분이라...알라딘 페이퍼 하나 쓰면 땡이네요? 댓글은 언제 달아야 할까요... 어여 나으시고 다시 돌아오시길!!

twinpix 2007-09-06 21:40   좋아요 0 | URL
이제 거의 통증이 사라졌어요. 아직은 조심해야 할 것 같지만요^^~~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07-09-06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간 바쁘셨군요.
제가 안 들어오는 생각은 안하고 님께서 안 들어오는것만 아쉬워했어요.
이제 자주 뵈어요.

twinpix 2007-09-06 21:41   좋아요 0 | URL
제가 포스팅을 통 안하니 들리실 수도 없으셨을 듯한^^;;;
네, 자주 뵈어요.~~

mira95 2007-09-06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 빨리 나으시길 바라요. 저는 요즘 다리가 아파 걱정이긴 하지만 뭐 괜찮겠죠..나이 들었나봐요 ㅋㅋ

twinpix 2007-09-12 15:58   좋아요 0 | URL
앗, 감사합니다.^^~~ 덕분에 다 나은 것 같아요.

가넷 2007-09-09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허리 쪽은 정말 조심을 해야되는데... 그래도 그렇게 큰일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저도 목에 통증이 있는 건 아닌데 목을 숙이고 있다 보면 등쪽이 결릴때가;;;

양동근... 정말 좋아요~~~

요번에 출연한 아이엠샘은 그렇게 완성도가 높은 수작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긴 해도, 오랜만에 밝은 내용의 드라마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니 좋네요.^^ (네멋이나 닥터깽같은 경우는 좀 슬픈 내용들이였으니까요.)

twinpix 2007-09-12 15:58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에 등쪽이 많이 결렸어요. 아이엠샘은 그래도 정말 밝고 코믹한 드라마라 좋은 것 같아요.^^~~

은비뫼 2007-09-10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이 어서 나으시길 빌겠습니다. 저도 예전에 그런적이 있는데 참 불편했어요.
괜찮아지셔도 신경을 좀 쓰셔야겠네요. ^^ 건강이 최고입니다.

twinpix 2007-09-12 15:59   좋아요 0 | URL
네, 이제부터 함부로 하지 않고 자세를 조심히 하려고요. 감사합니다^^~~~
 
카르데니오 납치사건
재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재스퍼 포드의 『제인에어 납치사건』의 후속작 『카르데니오 납치사건』은 후속작임에도 불구하고 전작보다 뛰어난 재미를 가졌다.(이건 전작보다 나은 후작 없다는 속설을 깬 것인데 영화 터미네이터1을 능가한 터미네이터2를 생각나게 한다.) 전작은 낯선 세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적응의 시간을 가져야 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이미 익숙한 세계관에서 주인공의 활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장르를 한 가지로 말할 수 없을 만큼 무수한 장르적 요소들이 녹아 있다.(책 속으로 갈 수 있다는 판타지적 설정, 다양한 추리를 벌이게 되는 미스테리 구성,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코믹 요소들, 사랑하는 이를 되찾겠다는 로맨스, 그리고 여러 패러디 메타픽션까지.) 세계관은 우리 세계와 비슷한 면도 있지만 전혀 다른 역사도 많고 80년대 배경임에도 복제가 자유로운 높은 과학기술을 가진 세계이다.(네안데르탈인을 되살려 내고, 도도새를 살려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소설을 빛나게 해주는 요소는 모든 사람들이 문학에 빠져 있다는 점일 것이다. 작가의 이름을 따거나 셰익스피어를 낭송하는 자판기나 문학범죄가 일어나는 세계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환상적으로 보이는 멋진 세계관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우리 주인공의 매력은 어떠한가. 서즈데이 넥스트.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사랑스런 여자 주인공은 마치 미국 드라마 <앨리어스>의 주인공 시드니 브리스토를 연상시킨다. 뛰어난 능력과 어떤 상황에서 침착한 대응 능력,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기도 하고 아버지와 함께 얽혀드는 일.(또, 아버지가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항상 딸을 최우선으로 보호한다는 점 등) 물론 서즈데이 넥스트는 FBI가 아니라, 리테라텍(특수작전망 27과 문학 관련 범죄 부서) 소속이지만 말이다.(때론 부업으로 17과의 좀비, 흡혈귀 사냥도 뛰지만.:D)
『제인에어 납치사건』 매력적인 설정과 캐릭터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구성이 전통적 서사 방식을 따랐기 때문에 진부한 느낌을 주는 게 단점이었다. 즉, 대체로 이야기 진행을 미리 예상할 수 있었고, 예정된 결말로 치달을 것이다. 이에 반해 『카르데니오 납치사건』의 이야기 방식은 전통적인 서사 방식을 탈피한다. 다양한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주인공을 미궁으로 몰아놓는다. 이에 독자는 진행 방향을 전혀 예측하기 힘들고, 재미를 느끼게 된다. 한 가지 사건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의 재미보다 몇 배로 더 재미있다고 할까? 우연의 일치에 의해 목숨을 위협받기도 하고, 느닷없이 셰익스피어의 유실되었다고 알려진 희귀본 '카르데니오'가 나타나고, 시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아버지는 세계가 다음 주면 종말이 일어난다고 말하고, 골리앗 주식회사는 포의 시 '갈가마귀'에 갇힌 잭 시트를 꺼내오라고 압박한다. 그리고 넥스트에게 머릿속에 이상한 목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하는데. 모든 게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이 모든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맺는지 궁금하여 책을 조금이라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전작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강한 흡인력을 이 책에서 느낄 수 있었다.
  전작보다 더 멋지고 감동스럽게 결말을 맺은 『카르데니오 납치사건』은 충분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었다. 1권을 읽을 때는 이 시리즈가 이토록 재미있고 환상적이고 멋질 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1권이 프롤로그에 불과하다면 2권은 이 세계관이 갖고 있는 재미를 최대한 펼치기 시작한 책인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시간이동이라는 소재라면 환장하는 편이라서 시간경비대가 존재하고 시간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면서 벌어지는 사건들도 무척 인상적이고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1권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상을 받았던 장면은 첫 장면에 서즈데이에게 아버지가 주위의 시간을 멈춰놓고 갑자기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중요한 요소로 이 소설 전체를 이끌어가는 힘이라 더욱 몰두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과 세계에 속박받지 않는 제3의 요소가 결합되면서 이 책의 재미는 훨씬 다양해진다. 바로 책 속으로 들어가는 모험이다. 허구 속 세계에서 허구의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까지 현실 세계에 나타나 모험을 벌이는 장면에서는 큰 재미를 느꼈다. 작가가 의도한 것이겠지만, 이 소설에서 서즈데이 넥스트는 책 속 인물들에게 자신은 책 속 인물이 아니고 바깥 세상에서 왔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는 우리 독자들은 서즈데이 넥스트 역시 책 속의 허구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묘한 재미를 주는 부분이었다. 가상현실 속에 또 다른 가상현실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위대한 유산』이나 카프카의 작품이나 『잃어버린 세계』 등 여러 아는 작품들이 나올 땐 괜히 반가웠고, 또 이름만 듣고 아직 못 읽은 작품들은 어서 다 읽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래야 앞으로 또 소설 속 다양한 인물들이 모험에 참여할 때 웃으면서 그 인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카르데니오 납치사건』은 전작이 나온 후 꽤 오랜 시간이 걸려 나왔다. 그리고 다음 편은 아직 출판사에서 계획이 현재 없다고 한다. 갑자기 영어를 배워 원작을 읽고 싶어질 정도로 서즈데이 넥스트 시리즈에 반해버렸다. 시간을 넘나들고 문학 책 속을 넘나드는 서즈데이 넥스트 요원의 멋진 모험을 아직 더 지켜보고 싶다. 오랜 시간이 지나 후편이 번역된다고 해도 참고 기다려서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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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2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도 재미있으셨나요?

twinpix 2007-08-22 22:40   좋아요 0 | URL
전작에 비해 두 배는 재미있더라고요. 능청스런 농담으로 이뤄진 요술 같은 세계에서 다양한 말장난들과 재치들이 인상적인 책이었어요. 이 책의 묘미는 또 시리즈라는 점일 텐데, 다음 권들을 언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좀 안타까웠고요.^^ 아무튼 오랜만에 재미있는 장르소설을 읽은 듯해요.

유스케 2007-08-23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도, 작가 이름도 낯설기만 하군요..ㅡ.ㅜ 요즘 들어 내가 본 책들은 빙산의 일각이구나..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뭐.. 아직까지 읽을거리가 많다는 건 그만큼 기쁨이기도 하지만요.. 제인에어 납치사건과 함께 이 책도 제 목록에 슬쩍 올려봅니다..

twinpix 2007-08-23 22:26   좋아요 0 | URL
정말 많은 책들이 있죠. 'ㅁ' 저도 읽을 책이 너무 많아서 뭐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은비뫼 2007-08-23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족스런 책읽기셨음이 느껴지네요. 서평만으로도 꽤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 ^^

twinpix 2007-08-23 22:26   좋아요 0 | URL
예상보다 더 재미었어요. 제목이 '카르데니오 납치사건'으로 나와서 왠지 기대가 되지 않았는데, 읽어보니 전작보다 훨씬 재미있더라고요.^^

프레이야 2007-08-23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만 읽어봐도 꽤 흥미진진한 책인가 싶으네요. 저에겐 낯선 작가에요^^
님도 오늘숫자가 대단하네요! 뭔일인지..

twinpix 2007-08-23 23:15   좋아요 0 | URL
2001년도에 첫 책을 출간한 작가고 국내에도 두 편 밖에 소개되지 않은 작가고요. 또, 장르 쪽이라 많이 알려지진 않았죠.^^ 소설 전체가 재미있는 농담들이 난무하는 책이에요.^^

책향기 2007-08-24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려면 제인에어 납치사건을 먼저 읽어보는게 좋은가요? 아님 따로 읽어도 되나요? 님 리뷰 읽으니 재밌을거 같네요^^

twinpix 2007-08-24 12:31   좋아요 0 | URL
시리즈물이기 때문에 『제인에어 납치사건』을 먼저 읽어보셔야 해요. 인물 소개나 세계관 등도 미리 나와 있고, 또 바로 연결되는 내용이 많거든요. 'ㅁ'/~

비로그인 2007-08-24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인에어 납치사건은 단숨에 읽었는데..잠깐 잊고있었는데 이걸 읽어봐야 겠네요 ^^

twinpix 2007-08-24 12:32   좋아요 0 | URL
전작보다 훨씬 재미있어요. 전작은 오래전에 읽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그래도 무리없이 잘 읽었고요.^^

뽀송이 2007-08-27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인에어 납치사건>을 먼저 읽어봐야 하는군요.^^
이 책 꽤 흥미로울 것 같아서 관심이 갑니다.^^

twinpix 2007-08-28 22:17   좋아요 0 | URL
네, 독특하고 재미있어요. 온갖 황당무계한 설정들을 능청스런 구라로 납득가게 이야기하는 소설이죠.^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