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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드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민음사에서 출간된 현대 라틴 아메리카 문단의 거장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소설 『블라드』는 단편이다. 민음사에서는 그 동안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작품을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했다. 『아우라』는 세계문학전집 229번으로 나왔고, 『의지와 운명』은 전 2권으로 251, 252번으로 출간된 것이다. 단편 『블라드』는 원래 단편집 『불안 사회』에 수록되었던 것을 따로 떼어내 작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출간된 단행본이라고 한다. 사실 단편 하나를 양장본으로 제작한 것은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다. 붉은 색의 책 표지 디자인부터 전체적으로 예쁘게 잘 만들어진 책이었지만, 132쪽 밖에 되지 않은 책이라는 점은 분량 대비 가격이 비싸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물론, 반드시 책의 분량이 가격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매우 두꺼운 전화번호부 책자의 가격이 몇 십만원으로 책정되지 않듯이, 몇 십 쪽에 불과한 책이 만원의 책으로 나오듯이 말이다.(인문서 『사라짐에 대하여』나 『피로사회』 같이 백쪽 안팎의 책들처럼)
그렇지만 굳이 단편 하나로 나온 단행본을 출판사에서 계약해서 냈을 필요가 있었을까. 단편집으로 계약 했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작품을 읽고 다시 원래 수록되었단 단편집 제목을 상기하면 단편집 형태가 더 완성된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계약금의 문제이거나, 계약상 문제였을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았다. 여러 출판 판형 시도 중에 하나라는 생각을 해본 것이다. 이렇게 단편 하나를 파는 방식도 바쁜 현대 사회에 새로운 출판 트렌드를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2007년도에도 황석영 작가는 경장편이 세계적인 트렌드라고 말하면서 경장편을 발표하고 시작했다. 민음사에서는 계간 문예지인 『세계의 문학』에 작가들의 경장편을 수록하고 단행본으로 내며, 이번에 오늘의 젊은 작가라는 경장편 시리즈를 출범했다.
황석영은 다른 인터뷰에서 경장편을 "1천 매 안쪽의 경장편을 저는 ‘시적 서사’라고 표현하는데, 삶 자체가 변하면서 시(詩)가 현대사회에서 사라지고 있어요. 서구에서는 서점에서 시집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또, 네이버 블로그에 연재한 『개밥바라기 별』 출간 후 인터뷰에서는 "그러니까 옛날식으로 자연묘사나 사물묘사를 늘어놓는다든가, 세부묘사를 한다든가 하는 것보다는 이미지 중심으로 글을 쓰게 되죠. 아니면 영화의 씬처럼 장면이 넘어가게 끔 구성한다든가. 이런 식으로 이미지로 그려내면서, 스피디하게 속도를 붙였어요. 이런 형식은 <손님>, <바리데기>에도 사용하긴 했죠. 아무래도 경장편을 쓰게 되니까. 예전처럼 열 권짜리 장편 누가 읽어요. 세계적 문화 분위기가 달라지고, 독자들 읽는 취향도 달라졌잖아요. 점점 압축되고 짧아지겠죠."라고 하면서 세계적 문화 분위기가 달라지고 영상 세대에 맞는 글쓰기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영화 감독들과 얘기를 해 보니까, 몇천 장짜리 서사를 다루면 영화가 원작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디테일과 내용에 치이고, 단편을 다루면 예술영화의 맛은 나지만 소품과 같은 느낌을 준다는 점 때문에 고민을 하더군요. 그러다 보니까 서사를 가지고 있되 한 두 시간 분량의 필름에 담을 수 있는 걸로는 경장편이 맞겠다 싶은 겁니다. 중편보다 조금 더 긴 분량의 짧은 장편이죠. 그렇게 되면 작가 스스로도 압축하게 되고 지지부진한 묘사도 성큼성큼 건너뛰면서 영상적인 신으로 표현하게 되겠죠. 그게 영상에 어울릴 뿐만 아니라 요즘 독자들의 구미와 생활방식에도 맞는 형식이 아닌가 생각한 겁니다. 원고지 7, 800장 분량이면 주말을 이용해 읽어 한 권을 읽어 치울 수도 있고, 직장인들은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며칠 만에 끝낼 수도 있겠구요. 그런 경장편은 쓸 거리가 너무 많습니다."
즉, 이런 관점에서 현대 사회에서는 더 이상 대하 소설은 읽히기 힘들며, 영상 세대에 맞는 경장편 내지 중편이 세계적인 트렌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베스트셀러인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도 역시 편집에 여백이 많은 경장편으로 176쪽 밖에 되지 않으며, 배명훈의 스페이스 오페라 중편 『청혼』도 양장본으로 편집이 동화 식으로 줄간격이 넓고 글자 크기가 커서 한 페이지에 몇 줄 들어가지 않는 방식으로 260쪽이다.
소수의 독서가만이 좋아할 두툼한 책들은 지금 서점을 찾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블라드』와 같은 민음사에서 나온 이탈로 칼비노가 엮은 『세계의 환상소설』을 보자. 총 668쪽에 2만원이 정가인 책으로 총 2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분량 대비로 『블라드』에 비해 엄청 값싼 책이라지만 이 책이 『블라드』보다 요즘 일반 독자들에게 더 잘 다가올 수 있을까. 서점에서 가볍게 지하철에서 읽을 책으로는 『블라드』가 더 나은 게 아닐까? 다른 예로 SF로 보자면, 로저 젤라즈니의 SF 중단편집 『드림 마스터』는 양장본으로 684쪽에 총 19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테드 창의 SF 중편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문고본으로 216쪽 분량으로 단 한 편의 중편이 실려 있다. 벽돌책과 얇은책 중에 일반 독자가 서점에서 집어들 가능성이 높은 책은 무엇일까? 집에서 며칠 씩 책 읽을 틈이 없는 현대 사회의 독자들에게는 지하철에서 혹은 주말에 가볍게 읽고 소화할 수 있는 얇은 책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단행본이 사람들에게 하루 이틀은 시간을 써야 다 읽을 수 있는 매체로 인지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영화가 두시간이면 감상을 확실히 끝낼 수 있는 것에 반해 책은 감상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고, 그만큼 영화가 더 쉽게 많이 소비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블라드』처럼 단편이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처럼 중편이 책으로 나온다면 영화 한편을 보는 것처럼 두 세 시간이면 한 권을 끝낼 수 있다. 역시 영화의 상영 시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런 식의 단편이나 중편이 출간되는 경향은 새로운 출판 문화 트렌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예전 독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어색하고 읽고 나서 김이 빠진다든가 섭섭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의 출판이 시각적, 심리적 부담감을 줄이고 더 많은 독자에게 읽힌다면 출판사에서는 적극 시도해볼 것 같기도 하다.
단편 하나를 판매하는 방식은 문고본으로 얇고 싸게 만든다든가, 들고 다닐 때나 책장을 장식할 때 좋을 만한 고급스런 표지의 양장본으로 만드는 방식이 있을 테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자책이 있을 것이다. 전자책으로 단편이나 중편을 다운 받아 두 세시간만에 읽고 넘길 수 있는 게 앞으로 트렌드 중 하나가 될 것이고 실제로도 전자책은 이런 식으로 단편집 하나를 쪼개 단편 하나나 두 세편을 따로 금액을 책정해서 팔기도 한다. 『블라드』 역시 전자책으로도 나와 있다.
그럼 이제, 판형에 대한 단상을 이쯤에서 끝내고 작품으로 들어가 보자. 단편이기 때문에 복잡한 스토리를 가진 이야기는 아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우리가 익히 하는 드라큘라, 왈라키아의 공작 블라드 체페슈가 멕시코 시티로 온 이야기를 다룬 소품인 것이다. 블라드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죄인이나 포로를 꼬챙이 꿰어 죽이는 공포 정치를 했기 때문에 흡혈귀의 대명사가 되어 지금도 흡혈귀 하면 드라큘라라는 체페슈의 별칭을 떠올리게 된다.
"문제는 내 오랜 친구가 멕시코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는 거라오. 일반적인 통념이 얼마나 손쉽게 무너지는지 알겠소. 친구의 영지에 있던 저택은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오. 그런데 그 친구가 바로 이곳 멕시코시티에서 보금자리를 구하고 있는 거요."(22)
여기서 말하는 오랜 친구란 바로 드라큘라, 블라드다. 그러나 이때까지 주인공은 사장의 오랜 친구라는 블라드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주인공은 점차 자신의 일상이 무너져감을 느낀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일상에 거부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절대적인 비일상이 일상에 스며드는 과정을 섬뜩하게 그린 작품이다. 인간은 모두 필멸자다.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유약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만들고, 영생을 믿는다. 한편으로 여러 서브컬쳐에서는 언데드가 등장한다. 죽지 않은 채 시체 상태로 살아가는 존재들. 그들은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은 존재들이다. 이 역시 죽음의 공포에 대한 반항이 엿보인다. 흡혈귀들을 보면서 인간은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영생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선악과처럼 탐낸다. 영생과 흡혈 같은 비일상 앞에서 죽음이 정해져 있는 고단한 짧은 생의 반복은 하루살이처럼 하찮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블라드는 섬뜩하다. 평범한 가정이 무너지는데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무력함이 이 소설 전체에서 느껴지는 가장 강렬한 정서다.
주인공의 단촐한 가정이 결코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아들을 바다에 잃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죽음으로 인한 결핍을 가졌기 때문에 그 틈새로 영생의 유혹이 스며들어간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유혹은 아니다. 마치 숙명처럼, 징벌처럼 내려오는 철퇴 같이 막을 수 없게 묘사된다. 거장의 솜씨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필자가 느낀 공포는 단순히 흡혈귀 소설이라서가 아니라, 일상을 조여 오는 이 비극의 물결을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안정적인 구성으로 차츰 작가가 설계한 결말로 치닫는데, 그 과정이 정갈해서 단편의 모범을 보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이야기도 새롭지 않고,(특히 장르소설을 많이 읽은 독자라면) 멕시코인이라면 더 와닿을 설정도 다른 나라의 독자의 입장에서는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만약, 한국 작가가 서울로 온 흡혈귀를 묘사했다면 신선한 느낌을 받고 더 잘 이입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국에서 외국으로 이동하는 느낌에서는 타지에서 고향으로 침범한 이질적 존재에 대한 낯선 두려움이 좀 퇴색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대화나 묘사, 문장들은 번역된 소설임에도 아름답다.(물론 부드럽게 읽히지는 않는다.) 인상적인 문장들이 많다. 라틴 아메리카 문단 거장의 공력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읽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백작은 머리를 갸웃하는 바람에 가발을 매만져야 했다. "설명할 수 없는 슬픔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나 우리를 덮친단 말입니까? 그 슬픔들에도 어떤 원인이나 근거가 있어야 해요. 알겠어요? 우리는 완전히 고갈된 민족이에요. 무수한 내전, 쓸모없이 뿌려진 수많은 피……. 이 얼마나 우울한 상황입니까? 모든 것에 부패의 씨앗이 들어 있어요. 사물에는 쇠퇴라는 씨앗이. 사람에게는 죽음이라는 씨앗이."(43)
환상적인 이미지들도 있고,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핏빛 이미지도 있다. 고풍스런 고딕 소설의 느낌이 나기도 하며, 현대적인 감각이 섞여서 이 소설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한다.
"잊지 마시오. 부인에게…… 아수시온, 맞지요? 부인에게 전해 주시오. 따님은 언제든 환영한다고."
하인이 촛불을 주인의 얼굴 가까이 가져가며 덧붙였다.
"우리 같이 놀 수 있어요, 셋이서……."
하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내 코앞에서 문을 쾅 닫았다.(47~48)
비루한 삶의 균열 속으로 이질적인 타인이 침입하고 마침내 붕괴한다. 그리고 새로운 불안의 세계로 이어진다는 서사는 익숙하면서도 음울하고 두렵다. 이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언제든 주변을 둘러싼 삶이 한 순간에 산산조각 나고, 전혀 다른 세계로 미끄러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의 씨앗을 품고 살기 때문이 아닐까. 현대인의 불안을 환상적인 장치를 통해 표현했다고 독해한다면, 소설이 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주인공이 직장을 다니고,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조금은 지루하지만, 이게 사실 언제든 부서질 수 있는 것이라면. 평이한 일상이 결코 단단한 기반 위에 서 있지 않다는 것,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는 것. 그것을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이 단편은 서늘하게 다가온다. 블라드는 죽음의 의인화처럼 보이지만,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또 다른 죽음이다. 어긋나버린, 세상과 불일치 된 죽음. 절망의 절벽 속으로 떨어져 내리듯이. 고대에서 혹은 전설 속에서 육신화 된 죽음이며 주인공을 혼돈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악령이다. 어쩌면 주인공의 무의식의 발로로 생각할 수도 있다. 아내와 딸이 떠날 수 있다는 불안감,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일상에서 일탈하고 싶다는 욕망, 잃어버린 아들의 대한 죄책감. 모든 게 주인공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환영일 수도 있다는 것이, 혹은 블라드가 주인공의 또 다른 자아일 수 있다는 것이, 문학을 읽는 재미가 아닐까. 그만큼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정제되어 있으면서도 불안이 스멀스멀 영혼을 잠식해 나가는 것을 치밀하게 다룬다. 겉으로 행복해 보이던, 그러나 견고하지 않았던 가정이 한 순간에 낯설어지는 그 찰나의 불쾌한 이질감. 도무지 손댈 수조차 없는, 악이 아닌 불멸의 저주 같은 것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이 소설은 고혹적이기까지 하다.
아수시온이 나를 쳐다보던 그 원한에 사무친 눈초리를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두 번 다시 그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하나의 실존과 다름없는 그 부재. 소리쳐 울부짖는 그 침묵. 어린 시절에 영원히 붙박인 그 사진…….(31)
"아십니까? 어린아이는 아직 죽지 않은 작은 신과 같아요."
"죽지 않은 신이요?" 나는 움찔하며 말했다. "그건 사탄에 대한 적절한 정의가 아닐까요?"
"그렇지 않아요, 사탄은 추락한 천사예요."(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