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터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황금가지 블랙 로맨스 클럽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황금가지 블랙 로맨스 클럽은, 브랜드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맨스’ 소설이면서 핑크빛이 아닌 검은색 로맨스를 등장시킨다. 기존의 로맨스 소설하면 떠오르는 클리셰로 뒤덮인 소설이 아니라, 신선한 소재와 발상을 결합시킨 독특한 구조의 로맨스 소설인 것이다. 돌연 죽음을 당한 소녀가 자기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는 [열일곱, 364일]이나, 좀비와 인간의 사랑을 다룬 [웜 바디스]처럼 오컬트나 좀비 장르를 로맨스와 결합시켜 독특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열일곱, 364일l 블랙 로맨스 클럽 1
제시카 워먼 (지은이) | 신혜연 (옮긴이) | 황금가지 | 2011-11-18 | 원제 Between (2011년)



△ 웜 바디스l 블랙 로맨스 클럽
아이작 마리온 (지은이) | 박효정 (옮긴이) | 황금가지 | 2011-12-20 | 원제 Warm Bodies (2011년)


 이번에는 근미래 스릴러다. [스타터스]는 지금이 아닌 전쟁 뒤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따라서 미리 알아야할 설정들이랄까, 친숙해져야 할 용어들이 있다. 생물학 전쟁으로 중장년층이 모두 죽고 노인층인 ‘엔더’와 10대의 ‘스타터’로 나뉘어진 사회. ‘스타터스’라는 제목은 바로 이 스타터의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주인공도 스타터이고, 이야기의 핵심도 스타터를 둘러싼 음모다.
 주인공은 보호자가 없이 아픈 동생을 보살피는 ‘캘리’다. 십대 소녀가 음모와 모험에 휘말리면서도 주저앉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다. 장편소설인만큼 캐릭터의 매력이 중요할 터인데, ‘캘리’는 한 권을 이끌어 나갈만큼 충분히 당차고 위트를 곁들인 채 사건을 돌파한다. 독자로서 소설에 금세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주인공인 캘리에게 거부감이 들지 않고, 오히려 공감을 하며 함께 사건을 풀어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복잡한 사건이고, 다양한 인물들이 쉴새없이 나오며 사건 전개 속도가 상당히 빠르지만, 혼란스럽지 않고, 주인공의 발걸음을 차분히 따라갈 수 있다.
 부모가 죽고 난 뒤, 캘리와 동생은 빈집을 전전하며 힘겹게 생활한다. 보호자가 없는 캘리와 동생은 집도, 먹을 것도, 약도 없이 생활해야 하고, 200세를 넘게 사는 ‘엔더’들 때문에 만들어진 미성년자는 취업할 수 없다는 법에 의해 일을 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절망밖에 없는 상황. 살곳도 없는 처참한 환경속에서 동생까지 아프다면, 캘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일까.
캘리는 결국 동생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바디 뱅크’라는 ‘엔더’들에게 몸을 대여해주는 일을 계약한다.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이라는 회사는 10대들을 고용해 성형수술로 완벽한 몸을 만든 뒤, 뇌에 칩을 심어 ‘엔더’들이 렌탈한 십대의 몸을 조종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캘리는 세 번의 렌탈을 하기로 했고, 마지막 한 달의 장기 렌탈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상이 발생한다. 만약, 아무 일도 없이 한 달의 렌탈이 자연스럽게 끝났다면 소설은 쓰일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은 갈등이 벌어져야 한다. 캘리는 열흘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낯선 클럽에서 깨어나고 칩에 문제가 일어나 엔더의 접속이 끊겼음을 깨닫는다. 바로 회사로 돌아가야 할 테지만, 머릿속에서 가지 말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캘리는 결국 계약을 이행해 무사히 돈을 받기 위해, 경고의 목소리를 따라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제 캘리는 ‘엔더’ 행세를 해야 한다. 자기 몸이면서 타인이 대여한 듯이 흉내를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상원 의원의 손자인 블레이크와 데이트까지 하게 되는데, 다시 불안정한 엔더의 접속이 반복된다. 그 사이 캘리는 자기를 렌탈한 사람의 이름이 ‘헬레나’라는 것과, 그녀가 자기 몸을 이용해 누군가를 살해하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에는 프라임 데스티네이션 회사와 결합된 음모가 있었고, 캘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책의 카피처럼 생존은 시작에 불과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보호받지 못하는 십대들을 구하기 위한 모험이 펼쳐진다.

 [열일곱, 364일]처럼, 이 소설은 십대 소녀를 주인공을 내세웠는데, 두 소설 다 십대 소녀의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다. 두 소설 모두 청소년 소설이라 할 수 있다.(아마존의 분류도 영 어덜트나 청소년 소설로 되어 있다.) 십대 독자들이 매우 재미있게 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영 어덜트(Young Adult)는 최근 출판계의 트렌드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독자를 지칭하는 출판계의 신조어로 '청소년도서'로 뭉뚱그려져 있던 10대 후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참신한 책들을 내놓으면 20대 초반의 감성 세대까지 노리는 전략이다. [해리포터]의 세계적 성공 이후, [트와일라잇]이 다시 열풍을 몰고 왔고, 이후에 청소년물과 뱀파이어가 결합된 소설들이 쏟아졌다. 최근에는 [점퍼], [견인 도시 연대기], [십 브레이커] 등 영 어덜트 SF도 국내에 많이 소개되고 있으며, 한국 청소년 소설로도 [완득이]의 성공 이후, 판타지물인 [위저드 베이커리], SF인 [싱커] 등 장르와 결합된 청소년 소설의 출간이 이어지고 있다. 즉, 한국과 미국에서 로맨스, 판타지, SF가 결합된 영 어덜트 소설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초반에는 배경 설정이 많아서 설명하는데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 따라서 지루할 수도 있지만, 설정을 다 받아들이고 본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지점부터는 매우 흥미로운 소설이다. 그러니까, 룬 클럽에서 캘리가 의식을 차리는 순간이 바로 이 소설의 끓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캘리가 혼란스러운만큼 독자 역시 온갖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면서 동시에 캘리가 어떻게 사람들을 속이고 대처할지 긴장감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왜 이렇게 접속에 이상이 생겼는지, 머릿속에 들린 목소리는 누구인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캘리는 무슨 행동을 할지. 게다가 빠른 전개로 이야기는 점입가경에 빠진다. 캘리는 암살 도구로 사용되는 중이었기에, 살기 위해서 암살을 막아야 하는데, 그 암살은 사실 ‘스타터’들을 위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존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음모와 맞닥뜨리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 다시 고군분투하게 된다.

 [열일곱, 364일]과 비교하자면 퍼즐 같은 구성은 흡사하지만, [스타터스]가 훨씬 전개 속도도 빠르고 긴장감이 있다. 사건의 스케일도 크며, 목적 의식도 더 분명하고, 액션도 많아서 머릿속에 쉽게 영상으로 상상된다. 즉, 영화로 만들어지기 좋은 소설이었다. 1백 만불에 영미 판권이 팔린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멋진 배우와 괜찮은 각색이 만난다면 좋은 영화가 나올 것이다.

 물론 영화로 만들기 쉽다는 것은 그만큼 익숙한 전개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설정이 약간 복잡하긴 해도,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고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스릴과 모험에 초점을 맞췄다. 전개는 빠르고 가볍게 진행된다. 소설적인 특징을 살린 전개이거나, 너무 의외의 방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면 영화화 하기는 어렵다는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스타터스]는 예견감이 느껴질 정도로 큰 예측을 벗어난 의외의 전개는 나오지 않는다. 그게 익숙한 재미를 주는 한편, 이런 종류의 스릴러를 많이 읽은 독자라면 전개를 예측하기 쉽다는 아쉬움이 있다.(물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기 때문에 내용이나 깊이가 의도적인 가벼움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영화 [AI]가 피노키오의 SF판이듯, [스타터스]도 초반부는 신데렐라를 모티브로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측된 전개로 나아가지만, 뒷부분은 동화를 벗어나 소설만의 개성과 새로운 전개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런 점들은 일부 독자에게만 해당할 것이고, 오히려 근미래 스릴러라는 장르가 낯설고 다가가기 어려워하거나 쉽사리 읽으려는 독자가 없을 것이란 우려가 더 크다. 이런 장르에 익숙지 않더라도 이 소설은 어렵지 않고, 완성도 높은 구성과 이야기 전개 그리고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인해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다 읽고 나서 충족된 만족감을 느끼지는 못 했는데, 그건 많은 암시와 복선만 깔아놓고 이번 권 내에서 사건이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출판사 홍보 내용을 보면 ‘바디 뱅크’ 시리즈 첫 번째 권이라고 하니, 앞으로도 계속 나올 시리즈에서 해소되기를 바랄 수밖에. 원서를 검색해보면 [엔더스]가 있다. [스타터스]에 이은 [엔더스]의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최근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시리즈, 스콧 웨스터펠드의 [어글리] 시리즈. L.J. 스미스의 [뱀파이어 다이어리], 스콜피어 리첼 미드의 [뱀파이어 아카데미], 제프리 디버의 [문 콜드](머시 톰슨 시리즈), 샬레인 해리스의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 수잔 콜린스의 [헝거 게임] 시리즈, 제시카 워먼의 [열일곱, 364일] 등 영 어덜트, 청소년 소설, 강한 여성이 주도하는 장르 소설들이 많이 출간되었다. 그만큼 현재 장르 소설의 트렌드이면서 많은 독자들의 지지를 받는 이야기라는 소리일 것이다. 이런 소설들은 십대 독자와 여성 독자들의 많은 지지를 받는다. 강한 여성 캐릭터가 조력을 받으며 문제를 해결하고 로맨스가 들어가 있으며, 오컬트, SF, 판타지, 스릴러 등 장르 소설의 매력까지 더해져 많은 인기를 얻고 드라마 영화로 영상화도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진부한 로맨스 소설의 틀을 깨고, 새로운 세계관과 색다른 모험 그리고 사건을 주동하는 매력적인 주인공을 등장시켜 소설의 재미를 배가시켰기 때문에 독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리사 프라이스의 [스타터스]는 새로운 매력을 가진 블랙 로맨스로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디 뱅크 시리즈가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또 멋지게 영상화 되기를 기대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2345678910 2015-05-21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빅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