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인 온우주 단편선 10
박애진 지음 / 온우주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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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애진 작가의 단편집 [각인]에서는 1인극이라는 말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모든 단편소설이 1인칭 화자에 중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할 테지만, [각인]에서 느껴지는 집요함은 다르다. 마치 한 명의 목소리가 9번 반복되는 것처럼, 내면으로 파고드는 목소리가 독자에게 새겨지는 것만 같다. 머릿속이 얼얼할 정도의 울림이 있다. 단지, 강렬한 플롯이나 잔혹한 장면만으로 이런 느낌이 조성되는 게 아니라, 단편집을 이룬 단편의 배치와 단편들의 구성과 인물들이 하나의 일관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이 소설들은 우리 안에 어떤 심연에 닿으려는 몸짓처럼 느껴진다. 화자들이 닿으려는 건, 외부와의 누군가가 아니다. 이 소설들에는 다른 작품들처럼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서사’에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의 배제에서 벌어지는 ‘심리’와 ‘이미지’의 집중이 돋보인다. 세계관이 치밀하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세계관은 무대 위에 놓인 소품처럼 다뤄진다. 연극으로 치자면 독백조차도 적다. 상황과 행위만으로 글을 이끌어간다. 모노극처럼 느껴진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심연 속에 잠기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심연이 어떤 해답이 될 수도, 다른 세계를 열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심연은 불가해한 장소이며, 정체불명의 내면이다. 영원히 해석할 수 없는 문제다. 자기도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풀어낼 수 없는 신비다. 우리 안에는 각자 심연이 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흔히 수수께끼로 남는다. 그건 자신도 몰랐던 재능일 수도, 욕망일 수도, 감정일 수도 있다. 어떤 가능성이나, 죽음의 욕구일 수도 있다. 세계를 파괴하려는 행위나 세계를 구원하려는 행위 역시 그 안에 있을 수 있다. 심연에 닿으려는 건 곧 세상의 근원에 가닿는 행위와 흡사하다.
 그렇지만 이 소설들은 이질적이다. 보통 외부의 전형적인 서사의 플롯을 따르지 않는다. 배경을 드러내고 인물을 설명하고, 사건이 발생하고 해결하는 구조가 아니다. 해결해야 할 사건은 없다. 해결할 수도 없다. 우리 삶이 그러하듯이. 질문도 응답도 없다.
 외부가 아니라 자기 내부의 심연에 닿으려는 여러 시선들. 우리는 자신의 심연 속에 닿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들 속에 그려지는 시선들은 낯설기 짝이 없다. 그게 이 소설의 낯선 면을 만든다. 그 시선은 무엇일까. 진실에서부터 영원히 회피하려는 시선. 타인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선. 자신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선. 그러나 이 여러 갈래의 시선들은 걸핏하면 길을 잃는다. 외부를 바라보고 관조하다가 때론 무심한 척하고 침묵하며 좌절한다. 시선은 머물 곳을 찾지 못해 결국에는 어둠에 잠식되고 만다.
 시선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상처를 풀어헤쳐 놓거나, 상처를 내거나, 혹은 봉합하는 행위가 된다. 이 소설집에 실린 제목들은 바로 그 일련의 흐름들을 드러내는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 나와 나 사이에 놓인 횡단보도를 지나 심연에 닿으려는 행위. 누군가에게 존재로서 선물이 될 수도 있고, 심연에 닿으려는 행위를 무대에서 펼쳐 보일 수도 있으며, 집사의 시선으로, 학교에서, 또 자기 자신의 클론을 만들어내서, 무간지옥 같은 불멸자의 일상에서, 뒤바뀌어버린 세계, 단절된 세계에 빠져버린 아이들로 제시된다.
 시선은 외부(세계)를 바라보다가 이내 한 점으로 수축한다. 그때 세계가 한 점으로 응축되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 이미지가 머릿속에 강렬히 각인된다. 이 소설은 이런 시선의 각인들이 모여 있다.

 물과 유리 조각으로 엉망이 된 바닥을 보며, 물에 젖어 더 거치적거릴 조각들을 치우고 닦을 생각을 하다보니 이제 다치는 게 지겨워졌다. 그런데 언제는 다치고 싶어서 다쳤던가.(46쪽)


 화자는 끊임없이 과거의 한 지점으로 돌아가면서, 회상하면서 외부의 세계,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바라본다. 화자의 시선으로 우리도 화자를 구성한 지리멸렬한 세계를 바라보고, 그를 둘러싼 거리감 있는 타인들을, 상처 입고 입히는 관계들을 바라본다. 그 외부 세계는 이내 마지막에는 발바닥에 밟히는 조각들로 수렴된다. 앞서 보여준, 시선들이 한 점으로 모여서 발바닥에 조각들로 밟히고, 우리는 앞으로도 그 시선들을 밟고 가야한다는 사실을 안다.

 새벽 6시였다. 식구들은 아직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수간을 챙겨 들고 욕실로 갔다. 아직 냉수 목욕을 할 때는 아니지만 샤워기를 최대한 오른쪽으로 돌렸다. 벽을 짚고 서서 몇 번이고 호흡을 확인했다. 샤워기에서 물줄기를 맞는 동안 숨을 멈추고 있어도 좋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오래도록 심호흡을 한 후에야 수도를 열었다. 차가운 물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온몸을 벌벌 떨며 주먹을 굳게 쥐고 몸을 따라 흘러내린 물이 개수구로 흘러 나가는걸 바라보았다.(75쪽)


 우리 내면을 비유하는 듯한, 세상의 중심부로 한없이 내려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단편 「심연」. 이 단편에서는 이국의 아름다운 풍광과 바다와 잠수의 색다른 경험을 디테일 있는 묘사로 사실감 있게 그리고 있는데, 마지막 장면은 익숙한 풍경이다. 새벽 6시, 식구들이 자고 있을 시간에 샤워기에서 물을 튼다. 물이 개수구로 흘러 나가는 걸 바라보는 마지막 시선은 그런데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소설의 자장 안에서 이 장면은 깊은 인상으로 남는다. 앞에 화자가 경험한 외부 세계가, 느꼈던 모든 감정이,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이 수챗구멍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같은 물이라는 상징으로 전유되어 무중력의 바다 속에 빠져들었던 기분, 죽음의 감각이 다시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개수구에 빨려드는 물을 예사롭지 않게 보게 만든다. 앞서 있던 경험들이 새로운 환상적인 설정으로 세계관을 만들지 않아도, 새로운 세계를 덧씌우고 있는 것이다. 이 전이의 충격, 이미지의 간극에서 오는 느낌은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지워지지 않는 이미지로 남게 만든다.
 뱀파이어가 존재하는 세계를 천연덕스럽게 그려낸 「선물」은 결핍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를 찾아 만나게 되면서 묘한 울림을 준다. 매혹 능력이 없어서, 사람을 기절시키기 위해 고생하는 여자 뱀파이어와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남자가 어울려 합을 이루는 과정은 소설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찾아 가는 느낌을 주면서 안정적이면서도, 위안을 주는 글이다. 사람은 결국 타인들에게 인정받기 전에 제대로 이해받지도, 무리에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누군가가 있다는 것, 서로가 서로 비슷한 내면을 가졌다는 것. 그 어울림이 주는 무게감이 소설의 원동력이다. 환상과 현실이 적절하게 배합되면서 주는 묘한 느낌과 적나라한 타인들의 시선이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현실에 있을 법한 사람들은, 이 소설이 뱀파이어가 등장함에도 붕 뜨지 않고 현실적인 세계로 느껴지게끔 한다. 뱀파이어들 사이에서의 대화도 여느 남매처럼 처리한다든지, 뱀파이어 여자 친구인지 모르고, 일반적인 여자 친구가 생긴 걸로 오해하며 던지는 타인들의 말들이 사실적이고, 남자 화자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 생각하는 부분 역시 일상과 환상 사이에 적절히 걸쳐져 있어서, 어느 쪽으로도 말이 되게 그럴 듯한 해석이 나온다는 점은 이 소설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 소설만이 아니라, 그 다음에 수록된 「무대」 역시 실제 희곡 같은 구성을 차용하면서 소설에 낯선 형식이 주는 이질감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소설의 내용과 잘 맞아떨어지지만, 한편으로 이 화자의 사고는 끊임없이 배역을 설정하고, 세계를 무대로 보는 한 사람의 내면을 촘촘히 파고들어간 소설로서 형식과 내용이 맞물리며 완성도를 높인 글이다.
 「학교」는 이 소설집에서 가장 환상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글이다. 그렇지만 역시 현실을 비튼 해석으로, 즉 세계의 은유로 보아도 무리 없게 만든 작품임은 물론이며, 동시에 환상성이 주는 그로테스크하면서 이질적인 이미지의 충격과 파격적인 설정이 주는 당혹감이 재미로 느껴지게 만든 소설이다. 오직 수능만을 바라보며 학교에서 벗어나는 청소년은 낙오자처럼 만드는 이 사회를 이전의 『배틀로얄』 같은 여러 소설이 그러하듯 충격적인 설정으로 알레고리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점이 직접적인 비유처럼 작용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소설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형성함과 동시에 사실적인 심리 묘사 등이 핍진성을 부여하고 있다. 

 나는 늘 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언제나 다른 아이들이 날 찾아내 당선시킬까봐 숨 죽여 살았다. 전보다 더 납작 엎드려 숨어 다녀야 했다. 절대 저 아이들에게 발각되어선 안 되었다. 나는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릴 때까지 텅 빈 운동장에 홀로 서 있었다.(211쪽)


 주인공인 ‘나’는 매번 죽을 아이를 뽑는 ‘당선’이 되지 않으려고 평균 점수만을 받아왔다. 이런 잔혹한 사회에서 눈에 띄지 않는 아이로 살아가기 위한 행동은 언뜻 보면 당연하고, 영리한 처신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이들 사이에 일어날 법한 어그러짐을 치밀하게 그려내면서 ‘나’를 학교 밖으로 쫓아낸다. 학교를 떠난 아이들이 사는 숲. 그곳에는 ‘아기’가 사람이 되기 전 괴물인 곳이고, 아이들끼리 몰려 살고 있다. 이곳도 학교와 같은 ‘당선’ 제도만 없을 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유사하며 이 소설집에 실린 비슷한 영혼을 가진 주인공들처럼 ‘나’는 세상에 유리된 단절감을 맛본다. 그럼에도 꿋꿋이 버텨내려고 하지만, 세상의 무정함, 부조리성에 마주하게 된다. ‘나’가 학교에서 타인을 관찰하는 시선, 주목을 받는 시선, 학교 밖 숲에서 다시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등은 세계와의 불화를 지닌 자아의 몸부림이다. ‘나’는 자기 내면에 닿을 수도, 욕망에 충실할 수도 없이 타인의 시선 속에 떠밀리고 맞부딪치고 헤매다 파국을 맞는다. 그건 세계라는 시스템이 이미 파국으로 운영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아가 끝내 세계와 불화를 했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이 포착하는 지점은 이 자아의 내면, 그 심연의 몸짓이다. 세계와의 불화 속에 부유하는 ‘나’의 시선이 각각 학교와 학교 밖 숲, 외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았고, 마침내는 어둠에 잠식되는 순간, 이 소설은 다시금 ‘나’의 발자취를 돌아보게 만들고, 그 생각들을 떠올리게 만들고, 어디서부터 이 흐름이 시작되었는지, 누가 시작했는지, 부조리를 생각하고 낱낱이 파헤치게 된다. 소설은 다시금 우리 자신과 소설과 이 세계에 대해서 묻게 만든다. 세계에 패배할 수밖에 없으며 끝없이 파국을 맞고 있는 사람들, 자신을, 이 ‘나’에 빗대어 생각하게 된다. 은유로만 이 소설을 판단하는 것은 작품을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보려는 태도에 그치는 것일 수 있다. 그보다는 이 화자의 사고가 어떻게 구성되었을지, 세계와의 불화와 그 관계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연역하는 과정에서 이 소설이 가진 힘과 문제의식을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을 크게 세 분류로 나눈다면, 현실을 배경으로 한 것과,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것, 환상성이 깃든 배경으로 한 것 등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집사」와 「클론」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설정된 작품으로, SF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도 크로스로드에 실린 이 두 편은 비슷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주로 공간이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이며, 로봇 기술이나 클론 기술 등이 소설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이다. 집사에서는 집사 로봇의 시선으로만 소설이 진행되는데, 로봇의 시선으로 관찰되는 화자의 내면을 행동과 대사만으로 추측하게 만들고 있다. 이 소설 역시 별다른 큰 갈등을 일으키는 사건이 벌어지고 해결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데 로봇을 넣어서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관찰 대상인 주인공 역시 남들과 다르다. 이 소설집에 실린 인물들은 다 독특한 면을 가지고 있는 문제적 인물들인데, 세계와 유리된 느낌이 크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느껴진다. 이 세계와의 거리감에서 주인공들은 각기 다른 행동을 취한다고 할 수 있는데, 집사의 주인공은 달로 떠남으로써 일종의 회피를 택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집사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점에서 단순 도피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마주하려 하거나, 심연에 직접 닿으려는 행위로도 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 사람이랑 헤어졌을 때, 하나도 안 슬펐어. 그 사람 집도 이 근처고, 회사도 여기서 안 멀어. 만약에 그 사람이랑 끝까지 잘 되었다면, 영원히 여기서 살았겠지.”(191쪽)


 ‘마님’에게 집사 로봇은 헤어진 남자 친구의 물건으로 느껴지고, 지구 자체가 남자 친구가 있는 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다. 한때는 마님에게 세계는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불광’이었고, 부모님이 내려간 ‘시골’이 될 수도 있었지만,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곳 같아서 가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집사 로봇과 사는 공간이 또한 마님의 세계였지만, 영원할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다시금 모든 것을 버리고 지구를 떠나 달에 갈 수 있는 기회를 택한다. 우리가 때때로 내리는 결정들과 닿아있는데, 결국 우리는 내면을 들여다보려면 공간의 전환을 시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면, 심연에 닿으려면, 태국으로 떠나 깊은 심해 속에 들어가보든가, 학교 밖 숲 속으로 가야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정답이 예정된 길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대표적인 작품이 환상성이 두드러지는 작품 중 하나인 「살아남은 아이들」에서 드러난다. 그림을 그려서 자신이 성공한 세계를 찾아보았던 ‘아빠’는 결국 어디서도 그런 세계를 찾아내지 못하며, 아이러니하게 그림을 포기해서야 잘 사는 자신을 발견하고 뒤바꾼다. 그러고 나서 하는 행위는 또다시 그림 그리기이다. 결국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자체가 그 사람 자체인 것처럼 묘사되는데, 엄마와 아빠가 서슴없이 세계를 건너가고 아이를 죽이는 행위를 하는 것보다, 그림을 그리는 일상적인 행위가 섬뜩하게 느껴진다. 그 점이 이 작품이 독창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지점이다. 예술에 대한 집착이 비틀린 것처럼, 광기처럼, 절망처럼 느껴진다. 절망을 추구하는 욕망이 무한히 펼쳐지는 세계 속에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광기의 희생자인 아이들은 처음에는 미스터리한 구성을 보여주는 장치처럼 느껴지면서도 끝내는 폭력 속에 부서진 또 다른 현실과 세계의 부산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재능과 그림으로 잇는 평행세계를 잇는 환상적인 장치가 많아 유독 과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면서도, 죽은 희재가 그림으로 희철의 곁을 서성이고, 희선이 그리스 신화의 비극적인 운명에 속박된 듯한 엄마아빠에게 욕을 하며 주변에서 흔히 보는 우리 시대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등이 한 편의 기묘한 연극을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시시포스를 연상케 하는 끊임없이 죽음을 구하고 살아나고, 또다시 삶이 벗어날 수 없는 저주받은 세계처럼 느끼는 영생자의 이야기를 다룬 「일상」은 소재에 비해 클라이맥스는 카페 매니저를 붙잡는다는 아주 소박한 사건에 있다. 이 소설집의 상당수가 그렇다. 단편이라는 장르의 특성도 있지만, 사건이 없거나, 혹은 스케일이 작은 소박한 사건들로 이루어지면서, 이야기가 결말을 맺는다. 횡단보도에서도 마지막 장면은 조각을 밟는 것이며, 심연에서는 개수구의 빨려드는 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소설에서 가장 큰 사건은 중간에 잠수하다가 죽을 뻔한 경험인데, 일상에서 이야기하면 소소한 체험담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집사에서도 집사 로봇은 산책을 나가고 싶어 할 따름이며, 마님은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달로 떠날 뿐이다. 애인과 헤어지고 이사를 가는 한 여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살아남은 아이들에서도 평행세계가 등장하는 소설이지만, 술 취한 아빠를 무시한 채 그림만 거는 작은 행위로 이야기를 일단락 짓는다. 학교에서도 커다란 사건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 아직 사람이 되지 않은 괴물 같은 아기가 이탈해서 덮치면서 ‘나’에게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할 뿐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결국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은 굵직한 서사 중심의 소설들이 아니며, 외부를 관조하는 시선과 세계와의 불화 그리고 그 가운데서 그들이 가닿으려는 내면을 조명하고 있다. 소설들이 갖는 개성도 거기에 있으며, 절절한 문장이나, 선명한 묘사 없이도 상황과 서술 중심으로도 관찰하는 시선만으로도 시선의 교차와 전환만으로 세계를 설명하고, 인물을 그려내며, 독자의 마음에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학교, 수중, 가상의 무대라는 공간으로 혹은 영생의 삶, 복제된 자기 자신인 클론, 집사 로봇 등으로 상처 입은 영혼들을 드러내고 비춤으로써 그 각인을 드러내고, 독자의 마음에도 하나의 응축된 이미지로 각인을 남기는 소설집인 것이다.
 비정하고 부조리하면서도 불합리한 외부 세계들, 인간들, 타인을 섬뜩하게 현실적으로 그려내면서 환상적인 장치를 적절히 섞는다. 그래서 그 교차점에서 독특한 이미지들이 생성되고 독자를 끌어들이며, 새로운 세계를 선보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1차원적인 알레고리를 형상화한 것 같은 배경을 가진 이야기들도,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자아는 무언가 결핍되어 있으면서도 독특한 시선을 견지하여 이야기의 겹을 두텁게 만든다. 세계를 읽고, 서사를 읽으면서 자아의 형태를 독자가 구성하고, 이해하고, 각인을 어루만지는 과정이, 독서를 통해 이루어진다.
 다시 심연으로 다이빙하는 시선으로 이야기를 돌아오자면, 9명으로 분화된 한 상처 입은 거인의 내면 속을 다이빙 했다가 천천히 올라온 기분이다. 어쩌면 섣불리 독서를 한다면 잠수병 에 걸려 머리가 얼얼하고 여운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 수도 있다. 때로 나는 무대 위의 인물처럼, 배역을 바꿔가며 연기했고, 새로운 배역을 찾고, 이 세상을 벗어나려고 죽음을 시도하다가도, 살기 위해서 학교를 벗어나 숲으로 들어갔지만, 사람이 되지 못한 아기에게 공격당하고 타인과의 거리감만큼 불길 속에 시선이 끊긴다. 집사는 산책을 가지 못하고, 다른 평행세계에서는 자아를 표백 당했지만, 또 다른 평행세계에서는 새 주인을 맞아 목소리를 되찾는다. 이들은 세계를 바라보고 또 타인에게 목격 당하면서 자신을 들여다보려고 하지만, 심연은 어둡고 무한하게만 보인다. 그 안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모르며, 때로 자신의 각인을 어루만져주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지만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 세계의 냉혹함이 자리 잡고 있을 수 있고, 자신보다 더 자신 같은 자신이, 잊힌 인연이, 헤어진 연인이, 살해당한 형이, 헤어나올 길이 없는 영생이란 저주가, 새로운 연인이, 새로운 주인이 있을 수 있다. 우리의 삶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소설 속의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이들의 삶과 사고는 상처 입어도 때로는 움직여야 하고, 읽어야 하고, 써야 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상처 입은 개들이 서로를 핥는 행위처럼, 아련하게 읽힌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아 줄 수 있는 시선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축복이지 않은가. 시선은 그 자체로 상처를 드러내지만, 시선이 없이는 상처를 인지할 수도 없다. 소설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우리는 결핍과 상처를 드러낸다. 그것을 읽는다. 또다시 쓴다. 그게 심연을 어루만지는 행위이고, 각인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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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징크스 - 김주영 환상문학 단편선 작가와의 만남 1
김주영 지음 / 기적의책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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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메론 프로젝트로 쓰인 여러 단편들, 다시 쓰는 동화 이야기들, 이미 여러 장편을 낸 역량있는 작가의 단독 단편집이라 기대가 큽니다. 배송이 얼른 되면 좋겠네요. 기대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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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M-B 1 - 시체들의 학교 대런 섄의 신화를 잇는 오싹한 상상력의 New 호러 시리즈
대런 섄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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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 좀비물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 소수만 보던 장르였던 좀비물은 어느새 『워킹 데드』 (The Walking Dead, 2010)같은 드라마와 『웜바디스』(Warm Bodies, 2013), 『월드워Z』(World War Z, 2013) 같은 좀비 영화가 국내에서도 흥행을 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워킹 데드』(로버트 커크먼 지음, 토니 무어 그림, 황금가지, 2011년 7월)의 원작 그래픽노블이 소개되었고, 『월드워Z』의 원작 소설 『세계대전Z』(맥스 브룩스, 황금가지, 2008년 6월)는 2008년 출간되어 올해 영화 개봉 후 누적 판매 10만부를 기록했다.(역시 이전에 영화가 개봉한 『나는 전설이다』 역시 10만부가 넘게 팔렸음은 물론이다.)
 이 외에도 『나는 전설이다』(리처드 매드슨, 황금가지, 2005년 6월), 『셀』(스티븐 킹, 황금가지, 2006년 11월),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맥스 브룩스, 황금가지, 2011년 10월), 『세계대전Z 외전』(맥스 브룩스, 황금가지, 2012년 11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제인 오스틴,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해냄, 2009년 8월),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 1, 2』(J.L 본, 황금가지, 2009, 11월), 『종말일기Z』(마넬 로우레이로, 황금가지, 2013년 5월) 등이 출간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국내에서는 김중혁 작가가 창비에서 『좀비들』(김중혁, 창비, 2010년 9월)이라는 책을 출간했었고, 정명섭의 한국판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라고 할 수 있는 『좀비 제너레이션』(정명섭, 네오픽션, 2013년 5월), 구현의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구현, 휴먼앤북스, 2009년 1월)을 비롯해 라이트노벨, 웹툰에서도 좀비물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황금가지 출판사에서는 좀비 아포칼립스 공모전을 개최하여 『섬, 그리고 좀비』(황희 외, 황금가지, 2010년 6월), 『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를 만나다』(황태환, 황금가지, 2012년 8월) 등의 수상집과 이 중 장편으로 발전시킨 『좀비 그리고 생존자들의 섬』 (백상준, 황금가지, 2013년 4월)같은 책이 출간되었다. 또한 1회 수상작 중 하나인 황희 작가의 「잿빛 도시를 걷다」는 MBC에서 《나는 살아있다》라는 제목으로 한국 최초의 좀비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이렇듯 국내에서 좀비물은 인지도를 넓히며 여러 매체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학수첩에서 『해리포터』(조앤 K. 롤링, 문학수첩, 1999년 11월)의 작가 조앤 롤링이 격찬한 작가로 국내에 소개된 대런 섄 작가의 신작 좀비물을 출간했다. 일단 책의 외형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시중에 진열되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확 뺏을 만한 책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직 좀비 독자들에게만 시선을 끌 수 있게 좀비가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사실 좀비 소설을 안 읽던 독자라도 처음 입문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괜찮은 책이다. 책을 받아보고 인상적인 것은 무게가 가벼운 종이를 쓴 탓인지 가벼워서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에 좋았다는 것이다. 책을 손에 드는 감촉이 참 마음에 든다.(한편, 가격 역시 저렴하고 좋은데, 요즘 웬만하면 만 몇 천원이 기본이 된 상황에서 9,000원의 가격이라 사기에 큰 부담이 없다.)
 『ZOM-B』(대런 섄, 문학수첩리틀북스, 2013년 7월)는 이미 국내에 소개된 여러 좀비물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패턴의 좀비물이라는 걱정 없이 신선한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 뒤편에 “올해 최고의 YA소설!”이라는 추천사처럼 굳이 이 소설의 장르를 정의하자면 영 어덜트 좀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영 어덜트는 미국 십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장르로 국내로 보자면 청소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ZOM-B』를 청소년만 읽어야 하는 장르소설로 제한하기에는 이 작품의 매력이 아깝다고 할 수 있다. 십대뿐만 아니라, 나이에 관계없이 재미있는 좀비 소설을 읽고 싶은 독자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재미와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다.
 일단 책을 펼치면 끝까지 단숨에 읽게 되는 종류의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만큼 전개가 빠르고 문장이 잘 읽힌다. 흡인력이 뛰어나고 특히 인물들의 개성이 잘 살아 있다. 좀비 소설이든, 장르소설이든 소설을 읽게 만드는 흡인력은 바로 문체와 캐릭터에서 갈린다고 할 수 있다. 감정을 이입할 만큼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인물이 등장하고,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읽히며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으면 놀라운 독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그런 두 가지 요소가 잘 결합되어 최고의 흡인력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좀비물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면 얼마든지 킬링타임으로 오락적인 장르소설을 찾을 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죽은 자들이 살아나 마치 전염병처럼, 혹은 메뚜기 떼처럼 펠라스켄리 마을을 휩쓴 것은 가장 깊고 어두운 한밤중이었다. 잠을 자다가 머리가 부서져 골을 파먹힌 채 죽은 이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축에 속했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한 운명과 마주해야 했으니.(9쪽)


 제1권 「시체들의 학교」 편은 첫 장면부터 영화 5분의 법칙처럼 속도감 있게 독자를 사로잡는다. 몇 장의 프롤로그만으로 독자에게 기대감과 강렬한 충격을 주며 다음 장을 얼른 읽게 만드는 능력이 예사롭지 않다. 한 마을이 좀비로 뒤덮이는 광란을 한 소년의 눈으로 선보이면서 독자를 소설 속 세계를 초대한다. 그 뒤에 제1장이 시작되는데, 여기서는 인종차별주의자 아버지를 둔 비행 청소년 주인공이 등장한다.


 내가 아빠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아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당분간 아빠와 함께 살아야 한다. 나는 일찍부터 아빠의 말에 반기를 들면 좋지 않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그래서 아빠가 무슨 말을 하건 그냥 잠자코 듣는다. 더러는 인종 차별이 왜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책자를 읽기도 한다. 아빠의 유치한 농담에는 웃음을 터뜨려야 한다. 심지어는 아빠를 따라 성난 백인들이 한 방 가득 모여서 잔혹한 살인을 거론하는 회의에 몇 번 참석한 적도 있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연기를 하다 보니, 어디까지가 연기고 어디부터 나 자신의 원래 모습인지를 헛갈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44쪽)


 흥미롭게도 주인공은 정의감에 넘치기 보다는 아버지에게 불만을 가지면서도 겉으로는 그 말에 따르고, 그러면서 자기 스스로도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진짜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불량 학생이다. 이 갈등은 1권의 핵심 소재이자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고, 2권 「악몽의 지하탈출」에서도 이 고민과 주제는 본격적으로 좀비라는 소재와 결합되어 시너지 효과를 만든다. 작가의 영리한 전략이 돋보이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일러, 나는 인종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말 좀 해줘. 너랑 나는 좋은 친구 사이고, 그저 농담을 나누고 있었을 뿐이잖아.”
 “얘는 끌어들이지 마.” 낸시가 말한다. “시비를 걸고 싶으면 나한테 걸란 말이야.”
 나는 굳은 미소를 짓는다. “좋아.” 나는 한 발 더 다가서서 낸시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까치발을 해야 했지만, “흑인 이야기를 한 거 맞아.” 이렇게 나가면 안 되는 것은 알지만, 만약 낸시가 정말로 나를 인종 차별 혐의로 신고할 생각이라면 어차피 빠져나갈 구석은 없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 꼬리를 내리고 사과를 하거나 아니면 진짜 인종 차별주의자처럼 끝까지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사과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특히 이런 여자애한테는.
 낸시가 나를 와락 밀치며 소리친다. “넌 쓰레기야.”(88쪽)


 학교에서 저학년의 음식을 빼앗거나 약한 애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등 전형적인 문제아의 행태를 보이는데, 이때 친구들의 묘사라든지,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절묘해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묘사가 과하지 않고 서술 위주의 전개인데도 불구하고 장면들이 생생하게 연상되고, 인물들이 다 있을 법한 인간처럼 느껴진다. 대사도 위트가 있고, 요즘 영국의 청소년이 연상되는 자연스러움이 있으며, 드라마를 다운 보고 인터넷을 하다가 잠드는 요즘 시대의 생생한 묘사도 공감대 형성이 좋았고, 좀비가 등장하는 부분의 긴박감도 뛰어나다. 감정적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당돌함과 솔직한 내면 묘사가 묘한 매력을 형성한다.
 소설은 인터넷에서는 좀비 동영상들이 퍼지고, 뉴스에서도 야간 통행 제한이 시작될지도 모른다고 방영하는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을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수 촬영이라고 믿고 좀비의 실재를 믿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 좀비에 대한 토론이 잠시 벌어져도 마땅한 근거가 나오지 않을 만큼, 우리가 생각해도 좀비가 실재 한다면 그에 대한 그럴 듯한 과학적 근거를 덧붙이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상들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며 평소에 비슷하게 지낸다. 그러면서 소설은 절반이 넘도록 주인공의 생활과 친구들의 묘사에 힘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제목에서부터 또한 프롤로그에서 독자는 이미 이 소설에서 좀비들이 나타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또 주인공의 기괴한 아기가 나오는 악몽 때문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공기 중에 퍼지는 것을 떨치기 어렵다. 이들의 대화에서도, 조금씩 페이지가 넘어가면서도 끊임없이 언제 좀비들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조성된다.
 마침내 주인공이 인종차별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에서 드디어 좀비들이 학교에 해일처럼 밀려오고,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고 대화했던 친구들을 하나씩 잃어가면서 폐쇄된 학교 안을 질주하며 필사의 탈출을 벌이게 된다.
 1권은 특히 인종차별을 주도하는 아버지와 그 자식의 내면 갈등이 좀비보다도 더 핵심 갈등으로 여겨질 정도인데, 그럼에도 소설의 재미는 뛰어나며 좀비물로써의 재미도 전혀 놓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좀비라는 소재를 인종차별적인 문제와 더불어 몇 개의 층으로 교묘하게 짜놓은 듯한 솜씨가 인상적이며 이에 좀비에 대해 여러 은유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장르소설 만이 할 수 있는 추상적인 관념을 실재적인 것으로 치환해서 드러내고 상징화한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주제는 1권보다 2권에서 더욱 세세하게 다뤄진다.


 선생님은 다시 한 번 화이트보드를 돌아보며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꼭 염두에 두도록. 세상에는 더럽고 사악한 영혼을 가진 개자식들이 엄청 많다.” 선생님 입에서 평소에는 좀처럼 듣지 못한 과격한 표현이 나오자, 나직이 탄성을 내뱉는 아이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그런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는 늘 그들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너희들 자신이 바로 그 더럽고 사악한 영혼을 가진 자들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다는 점이야. 따라서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단다.”(81쪽)


 작품 자체의 구성이나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매 장이 짧게 끊어지면서 이어지는 소설인데 전혀 어색함을 느낄 수 없고 오히려 가독성만 높이고 있다. 번역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문장은 매끄러워서 술술 읽힌다. 요즘 젊은 세대의 내면 묘사나 행동 묘사가 정교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특히 십대나 이십대가 읽으면 공감할 부분도 많아 보이는 책이기도 하다. 과연 영 어덜트 좀비 소설로써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볍지만 빠르고 재미있으면서도 작품의 완성도까지 높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복선들이 1권에서 여러 개가 제시되고, 이는 2권을 읽어서도 완벽히 해결되지 않으며 다음 권을 기다리게 된다. 결코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해서 자극적인 좀비 소재와의 단순한 결합으로 쓰인 글이 아니라, 치밀하게 암시와 복선이 깔린 구성이 뒷이야기를 계속 기대하게 만든다.(프롤로그 남자의 정체는? 돌연변이 괴물의 정체는? 주인공이 어릴 때부터 꾸는 악몽의 정체는?) 특히 놀라운 것은 1권을 다 읽는 순간, 절로 “악!” 소리를 내지르게 만드는 극적인 전개를 선보이며 당장 2권을 집어 들게 만든다는 것이다.(이런 경험을 해보기 위해서는 결코 책날개의 문구조차도 읽지 않고 그저 본문만 읽기를 추천한다.)
 2권 역시 1권과 비슷한 정도로 흥미와 긴장감이 넘치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읽는 내내 새로운 의문들과 상황들이 놀라움을 선사하며, 어떻게 보면 1권보다 더 새롭고 본격적인 좀비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2권 역시 1권처럼 후반부에 정신없이 독자를 밀어붙인다. 이 아치는 능력이 경이로울 정도로 재미를 선사하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3권을 외치게 만드는 매력적인 책이다.
 당신이 좀비를 좋아한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좀비 소설이 당도했으니.
 

 생각하고 말고 할 시간이 없다.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우리는 좀비들을 피하기 위해 정신없이 복도를 내달린다.
 어느 교실 앞을 지나치는 순간, 린저가 열린 교실 문 안으로 뛰어든다. “난 여기 숨을게!” 그녀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우리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고 문을 쾅 닫아버린다.
 메드스가 속도를 늦추자, 스태거 리는 버럭 고함을 지른다. “그냥 나둬!”(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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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외전 : 그들이 살아가는 법 퇴마록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 이 리뷰를 읽을 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90년대 장르 소설의 상징이자, 하나의 문화였던 [퇴마록]의 외전이 20년이 지나 출간되었다. [퇴마록]은 혜성처럼 등장한 책이었고, 특별한 마케팅이 없이도 전 국민적인 인지도를 얻은 작품이었다. 그야말로 온 국민이 열광적으로 읽은 책이었으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고 하나의 현상이었다. [퇴마록]은 단순히 베스트셀러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신드롬이자 문화 현상이었던 것이다. 당시의 열기가 얼마나 높았냐면 사람을 만나서 할 말이 없을 때, [퇴마록]을 읽었는지 물어보고 그에 관해서 대화를 나눌 정도였다. 이제야 출판사를 옮겨 1,000만부가 팔린 책으로 홍보되고 있지만, 새로 나온 소장판을 합치지 않더라도 더 팔렸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퇴마록] 말세편 6권 출간 당시 2001년 누적 판매량이 970만부였으며, 완간 이후 지속된 판매량을 예상하면 상당한 수치일 것으로 알 수 있다. 세월이 지난 지금 [퇴마록]은 엘릭시르(문학동네) 출판사로 옮겨 소장판이 출간되었고, 여러 문학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문열의 [삼국지](이문열·나관중, 민음사, 1988년 5월)가 순수 창작물이 아닌 것을 감안하면 조정래의 [태백산맥](조정래, 한길사, 1986년 10월)과 함께 놀라운 판매량을 기록한 시리즈다. 이렇듯 판매량만 놓고 봤을 때 [퇴마록]은 한국 장르소설계에 깨지지 않을 전설이다.
[퇴마록]은 PC통신에 연재되었던 작품이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사례로 대표적이며,(93년 하이텔 공포/SF(summer)란에 연재) 작품 속에는 90년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은 물론, PC통신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삽입되어 있다. 거대담론과 리얼리즘에 천착하는 한국 문학계와 달리 귀신, 기공, 투시, 염력, 도교, 불교, 밀교, 기독교, 신화, 전설, 무속 등 온갖 판타지·오컬트 소재를 혼합하여 독특한 매력을 선보였다.(초기 국내편의 경우 이 소설의 장르를 명확히 규명할 수 없다고 말한 것에 반해 2000년대 이후에 출간된 말세편에서는 판타지 소설로 말할 만큼, 시대를 앞서나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퇴마록]의 영향력은 15~24억 원을 투자하여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를 표방하고 나선 영화가 1998년 8월 15일에 개봉했으며 그 당시개봉 이후 1주일 만에 전국적으로 6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서울관객 45만, 전국 관객 150만) 한국영화 사상 최단기간의 흥행기록을 세운 것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① 영화가 원작(소설)과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였고, ② 평이 최악일 정도로 완성도가 떨어졌으며 무엇보다도 ③ 청소년 관람불가였는데도 불구하고 100만을 넘었다는 소리다.(그해 한국영화 흥행 순위 5위 기록) 그 당시 [퇴마록]의 핵심 팬들이 십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관람 연령을 낮추고 완성도를 높였으면 [쉬리] 이전에 진짜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퇴마록]은 고루한 소설의 인식을 깨트린 90년대의 본격적인 엔터테인먼트 소설이었으며, 옴니버스 형태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독특한 구조를 취한 작품이었다. 등장인물들은 지금보아도 매력적으로 그려졌으며, 한국 장르소설 역사를 봐도 20년 동안 팬덤이 유지될 정도로 강력한 개성과 생동감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이었다. 또한, 따로 해설집이 발간될 정도로 방대한 조사량의 [퇴마록]의 정체성 중 하나인데, 이는 작품의 매력이며 독자들을 열광케 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퇴마록]의 매력 요소로는 책에서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관념에 부합한 면도 있다. 그리고 장르적 감성에 직격하는 다양한 기공과 주술은 당시 십대들을 매료시켰던 것이다. [퇴마록]은 지금의 판타지, 무협, 라이트노벨이 하고 있는 오락적 성격이 강한 청소년 소설의 역할을 했다. 물론 모든 면에서 완벽한 작품은 없듯이, 습작 경험이 없는 작가가 PC통신에 충동적으로 연재한 처녀작이었기 때문에 문장력에 대한 비판이 있었고, 지나친 국수주의나 역사관 등이 꾸준히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는 책 뒤에(혼세편 6권) 직접 그런 비판적 논지를 실어서 글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하였다.
 90년대 초반 장르소설의 대표 아이콘인 [퇴마록]은 2001년 작가가 초반부터 예정한 결말로 마무리되었다. 여기서 작가 의식이 드러나는데, 장르 소설 중에서 인기를 얻으면 중단하지 못하고 몇 십권씩 아직도 책을 출간하는 작품들이 있다. 그러나 [퇴마록]은 돈이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작가가 계획한 대로 끝났다. 이는 조앤 롤랑의 [해리 포터]를 연상케 하는데 아무리 엄청난 인기를 얻어도 작가는 처음에 계획한 결말을 맺고 끝내는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퇴마록 외전]의 경우도 당시부터 출간이 예고되어 있던 작품으로 갑자기 기획된 것이 아니다. 이미 PC통신에서도 몇몇 외전은 짧게나마 연재가 되었고, 어린이 동아에도 준후가 학교를 가는 에피소드가 연재된 적이 있었다. 즉, 다른 작품의 집필이나 작가의 슬럼프, 출판사를 변경하는 일들이 맞물리면서 공교롭게 20주년 기념으로 나오게 되었을 뿐이다.(그렇기 때문에 외전에서 말세편 이후의 이야기는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팬들이 오랜 기간 기다렸던 [퇴마록 외전]은 그럼 어떤 모습일까. 일단 외전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이 작품은 본편에 수록되지 못한 이야기이다. 즉, 본편의 성격과 다르며 이야기도 가볍기 짝이 없다. 보편에서 항상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목숨을 건 전투를 하고, 처절하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펼쳐지고, 씁쓸한 감정이나 감동을 주었던 것에 반해 외전은 주인공들의 숨겨진 일상을 팬서비스 성격으로 보여주는데 치중하고 있다. 따라서 대상 독자층은 이미 [퇴마록] 전권을 읽은 사람이며, 주인공들의 일상을 엿보고 싶은 팬인 것이다. 이점을 간과한다면 제대로 독자층을 파악했다고 할 수 없으며 책의 성격 역시도 알지 못한 채 읽게 되는 것이다.
 그 당시 나왔어야 했다는 평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외부 사정 때문에 차치하고라도 외전의 특성상 본격적인 에피소드가 아니라서 아쉽다는 평이나, 이야기가 다소 김이 빠져서 약한 인상을 받았다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지하고 심각하며 구성이 치밀한 작품들이었다면 이미 본편에 수록되지 않았을 리가 없는 것이다. 결국 이 소설들은 [퇴마록]이 옴니버스 형태를 취했기 때문에, 그 간극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로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한 마디로 외전을 정의하자면 늦게 도착한 추억의 편지다. 이미 90년대 퇴마록과 함께 자라온 세대에게는 [퇴마록]은 자신의 90년대이자 유년시절 추억 그 자체이다. 그리고 여기, [퇴마록 외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90년대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늦은 추억이 도착한 것이다.
 마치 어렸을 때 미처 읽지 못한 친구의 편지를 개봉하듯이.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치면 90년대 [퇴마록] 독자들을 울고 웃게 했던 인물들이 약간은 낯선 모습으로 살아 움직인다. 서로 어색한 것은 끝까지 사라지지 않지만,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게 만든다는 점에서 외전은 의의를 지닌다.
 [퇴마록]의 매력은 그 뛰어난 캐릭터성과 온갖 초자연적인 소재뿐만 아니라 탄탄한 구성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독자들은 열렬히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장르적인 소재를 사용해도 얼마든지 지루할 수 있지만, [퇴마록]은 계속 사건을 발생시키고, 의문을 증폭시키면서 수수께끼를 푸는 추리적 구조를 취했기 때문에 페이지 터너(Page-Turner,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책)로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었던 것이다.
 외전에서는 그러한 추리적 요소는 확실히 약하며, 항상 비장하고 참혹하기까지 했던 전투 역시 없는 편이다. 따라서 본편에서 느낀 매력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소설의 중심은 캐릭터들의 일상이다. 비일상에서 활약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아닌 일상의 모습을 보는 게 외전이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인 것이다. 여기에는 본편에서는 볼 수 없는 캐릭터들의 허술한 모습과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들이 살아가는 법」


 [퇴마록] 국내편 「하늘이 불타던 날」 직후의 에피소드를 담은 단편이다. 바로 세 명의 퇴마사가 처음 만나는 역사적인 첫 에피소드의 직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후에 합류한 승희는 여기에 등장하지 않고, 세 남자가 어떻게 뭉치게 되었는지 그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모습은 결코 화려하거나 비장하지 않다. 오히려 궁상맞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하지만 사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안면이 없던 세 남자가 갑자기 모여 살게 되었는데, 서로 성향도 살아온 이력도 가지고 있는 능력도 다른데 금세 화합이 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본편에서는 알 수 없었던 준후의 적응기를 볼 수 있다. 본편만 봤을 때는 금세 세상에 익숙해진 아이로 알았지만, 사실은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이 단편에서 드러난 디테일을 통해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나아가서 그 뒤에 준후가 겪었을 어려움도 독자는 이제 더 구체적으로 상상이 가능해졌다. 또한, 세 사람이 서로를 놀랍게 본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보편에서는 익숙해진 모습만 봤기 때문에 이들이 서로의 능력에 감탄하고 놀라는 부분은 민망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현암이 벽을 부수고 그것을 다시 메꾸는 것을 내면의 구멍의 은유로 보여주는 것도 단순하면서도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진전되었는지 알 수 있는 단초였다. 또한, 결국 이들이 관계의 진전을 보이며 끝맺음을 했을 때, 이미 19권의 책을 읽은 독자들은 결국 이들이 어떤 과정을 겪을지 알기 때문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적」


 바로 앞 에피소드의 며칠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앞에서는 주로 대화를 통해서 세 사람이 소개를 하는 일종의 인트로 같은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이들의 첫 퇴마행을 다룬다. 전설적인 퇴마사들의 첫 퇴마행이라니. 설명만으로는 아직 안 읽은 독자라면 엄청 기대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시 외전답게 본편과 달리 엉망진창인 퇴마행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잘 하는 경우는 없고, 모든 퇴마행이 화려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본편에 들어갈 수 없었던 수 천의 퇴마행들은 대부분 이토록 사소해보이면서 혹은 중요한 일들이었을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주는 에피소드이자, 현실의 사회문제까지 내포한 의미심장한 단편이었다. 본편에서도 PC통신과 관련된 에피소드와(「아무도 없는 밤」 네트워크를 타고 원령이 컴퓨터 바이러스에 깃든 에피소드(「아라크노이드」) 등에서 네트워크와 주술적인 요소를 섞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는데, 이번 단편 역시 마찬가지다. 단말기로 PC통신을 하는 할머니가 등장한다. 그런데 박신부만 영적인 기운을 느끼고 준후와 현암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미세하지만 분명 무언가가 있다. 그건 과연 무엇일까? 퇴마사들은 고생 끝에 그 정체가 원귀가 아닌 악의, 증오심 같은 존재임을 깨닫는다. 여기서 작은 힘으로 소멸시켜버릴 수 있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고립된 인간의 마음을 좀 먹는 존재이며, 영원히 없앨 수 없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외전 전체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는데, 과거의 사건으로 묘사하지만, 지금의 인터넷에 만연한 문제들을 풍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퇴마록]에서는 낙태아들이 모인 원귀가 세상에서 제일 강한 능력자들도 모조리 압도할 만큼 강력하다는 식으로 초자연적인 현상과 사회적 문제점들을 절묘하게 녹여내는 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사람들을 자살로 모는 악플들이 만연한 지금은, 이 세 명의 퇴마사가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을 뒤덮은 악의의 화신이 되었다. 현암이 과거에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 미래는 이미 우리 앞에 당도해 있는 것이다.


「준후의 학교 기행」


 오래 전 사설 BBS 혁넷에 연재하기도 한 작품으로 그때와는 설정이 바뀐 채 나왔다. 준후가 처음 학교를 가게 되는 이야기는 외전에 수록될 대표적인 에피소드였다. 우리는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다. 본편에서도 짧게 준후가 학교를 갔었지만 문제가 생겼고 금방 나와야 했다는 것이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사건을 실제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 속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준후의 모습은 새로운 매력을 선사한다. 준후의 앳된 모습은 준후의 팬들에게는 색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야기는 현암의 조언으로 점입가경으로 빠지는 준후의 학교 생활을 보여주며 잔잔한 웃음을 준다. 동시에 준후는 학교에서 어린 영을 보게 되고 그 영을 위한 진언을 외운다. 준후의 행동은 학교에서 용납되지 않을 일들 뿐이었고, 무리에서 이탈하는 일이었다. 그건 퇴마행이 결국 사회에 편입되기 힘든 비일상이라는 소리며, 이 에피소드는 단순히 준후가 학교에 적응 못하는 일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준후가 자신이 퇴마사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현암 역시 준후의 모습을 보며 아무 이득도 없고 어둠 속에서 이름 없는 영을 도와야만 하는 일을 스스로 하게 될 것이라는 깨닫는다. 영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외면하고 무사히 학교 생활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준후는 그러지 않는다. 이미 퇴마사이기 때문에.


「짐 들어 주는 일」


 [퇴마록] 세계편 초반, 승희가 막 합류한 더운 여름날의 에피소드다. 드디어 외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승희가 등장하는 외전이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는 가장 소품이라고 할 수 있다. 승희가 현암에게 마음이 있어서 같이 쇼핑을 가는 게 주된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가벼운 외전답게 둘의 소박한 첫 데이트를 그리고 있다. 초반에는 쇼핑에서 여자들이 장시간 활기 넘치게 하고 남자들은 지루해 죽는다는 속설을 그대로 그리고 있는데, 이런 속설을 이용해서 승희와 현암의 모습을 그리는 게 소소한 재미를 주면서도 약간은 뻔해서 아쉬웠다. 후반부에 갈등이 심화되는 것은 승희가 보답으로 바다를 보러 가자고 하고, 불량배들과 일부러 트러블을 일으키는 부분이다. 여기서 승희는 자신을 보호해서 현암이 멋지게 싸울 것을 기대했지만, 현암은 목석처럼 맞기만 한다. 현암은 함부로 공력을 써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승희는 자기 생각은 안 하냐며 화를 내고 가버린다. 이때, 현암의 속마음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이미 승희의 마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모른 척하기로 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현암의 마음은 말세편까지 다 읽은 독자라면 얼마나 오랫동안 절절히 숨기고 키워나갔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라서 애틋해진다. 그리고 제목이 단순히 쇼핑 본 짐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승희의 마음을 들어주는 것을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독자는 이들의 이후 미래를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씁쓸한 미소를 짓게 되는 이야기였다.


「생령 살인」


 네 명의 주인공 다음으로 처음으로 조연의 에피소드를 다룬 단편이다. 바로, 퇴마사 일행만큼이나 인기 있는 주기 선생(박상준)이 주인공으로 활동하는 이야기다. 퇴마사들이 세계편에서 {왕은 아발론에 잠들고} 편에 해당하는 영국으로 출국했을 무렵, 검사 백호는 할 수 없이 주기 선생에게 초자연적인 사건을 의뢰한다. 주기 선생의 팬이라면 정말 즐겁게 읽을 만한 단독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외전이라면 역시 이렇게 조연들이 조명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재미를 느끼게 한다. 사이비 교주가 사람들이 다 목격한 상황에서 살인을 저질렀지만, 다른 곳에서도 동시에 목격되어 무죄로 판정난다. 그러나 이것은 초자연적인 힘을 사용한 살인이기 때문에 주기 선생에게 의뢰를 한 것이다. 주기 선생은 교주가 생령을 통해 살인을 했다고 추리한다. 이 단편은 주기 선생이 현암을 계속 의식하는 점이나, 기부를 하는 점이나, 양과 늑대에 대한 생각 등 속내가 여실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고 재미있다. 본편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심리묘사가 자세하게 되기 때문에 내면을 더 들여다보는 효과를 가져 온다. 인물에 대해서 더 뚜렷하게 알 수 있었고, 앞의 단편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인간미가 입체적인 모습으로 살아나는 듯했다. 외전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단편이었고, 작가도 즐겁게 써내려간 느낌이 났다. 흥미롭게도 말세편의 현암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황금의 발」과 거울의 상처럼 쌍을 이루는 단편인데, 여기서 현암과 주기 선생의 차이가 드러난다.


회상을 마치며


 그야말로 전설이자 신화인 [퇴마록]의 외전은 일단 다시금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책이었다. 인물들이 다시 머릿속에서 살아나 움직이고 들어보지 못한 대화를 나눈다는 점은 신기했고,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었다. 물론 그 [퇴마록]이라는 이름에 비해서는 아쉬운 점도 분명 크게 다가왔다. [퇴마록] 하면 손을 놓을 수 없는 흡입력과 긴장감이 최고인 장르소설 아니던가. 외전에서는 힘이 빠졌기 때문에 추억을 음미하면서 읽을 뿐, 손에 땀이 난다든가, 뒤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그 당시 표현대로 국민학교를 사용하지만 ‘몸’, ‘반려동물’ 같이 그때 잘 안 쓰인 용어들의 등장은 어색했고, 대화들도 지나치게 평이하고 친절해서 전체적으로 민망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서먹서먹한 관계이고 초반이라지만 일상에서의 대화들은 집중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본편에서 주로 비장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던 이들이, 어색한 연기를 하듯이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일상을 보여주자, 낯 뜨거운 느낌이 드는 것이다.
 또, 오랜 시간이 지나 나왔는데 외전의 편수도 아쉬웠다. 주기 선생을 제외하고 다른 조연들은 등장조차 못하다니. 출판사의 말세편 소장판 보도자료에서도 ‘일제 강점 시절 무련(현정)의 추적담’ 같은 작품이 예고되어 있었는데 빠졌고, 그 외에도 다른 조연들도 충분히 외전의 에피소드로 나올만한데 분량의 문제인지 계획이 없는지 안 나와서 아쉬운 감이 있다. 이후 외전이 한 권 더 나온다고 하니 이런 아쉬움들이 해소될만한 이야기들이 기대가 된다.
 물론 이 책만으로도 20년의 세월 동안 [퇴마록]을 잊지 않고 그 인물들을 가슴 한켠에 새겨놓은 독자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시간이 지나도 독자들의 뇌리 속에는 여전히 퇴마사들은 유년 시절을 함께한 좋은 친구로 남아 있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다. 허구 속의 존재이면서도 함께 생사를 같이 한 친구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영원히 기억 속에 살아간다는 것. 이야기는 사람을 웃게 만들고, 즐겁게 하고, 감동을 주고, 추억을 갖게 만든다. 허구의 모험과 삶 그리고 친구를 선물한다. 삶에서 이야기가 없다면 얼마나 허전할 것인가.
 외전을 통해 이들의 일상을 엿본 덕분에 독자는 이제 이들의 비일상 뿐만 아니라 일상까지 상상할 동력을 얻었다. 퇴마사들은 때로는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고, 악령을 없애지만 한편으로는 궁상맞은 모습도 보이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법을 읽었기에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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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완드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1편인 [체인질링]보다 2편을 호평하는 경우를 봐서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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