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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고민상담소 - 독자 상담으로 본 근대의 성과 사랑
전봉관 지음 / 민음사 / 2014년 6월
평점 :
경성 고민상담소 – 1930년대 미즈넷? 네이트판? 마녀사냥?
1930년을 살아가는 사람이든, 2014년을 살아가는 사람이든, 사람의 본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 청춘의 고민들도 비슷한 고민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경성 고민상담소]는 남성 위주였던 1930년대 남녀 청춘들의 문제들을 보여주고 있다.
1930년대 조선일보 독자문답란인 ‘어찌하리까’와 조선중앙일보 독자문답란 ‘명암의 십자로’에 소개된 사연과 답변을 위주로 당시 남녀 관계 문제들을 정리하고 있다. 사실 살면서 1930년대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살았는지, 그때 청춘들의 일상을 생각해보려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들도 지금 이 땅에서 똑같이 살아간 사람들이라는 점이 피부로 와 닿았다.
여기서 고민하는 불륜 등은 지금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흔한 고민 중 하나다. 미즈넷 등에서 사연을 읽어보면 근대의 불륜과 지금의 불륜이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어느 시대나 사람들의 고민은 비슷비슷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고민들이 흥미로운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매우 재미있을 것이다. 반대로 미즈넷의 사연들이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독자라면, 이 책 역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리라. 그렇더라고 하더라도 이 책은 1930년대 사람들의 사고관과 생활상을 훑어볼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미즈넷이이나 네이트판 말고도 TV 프로그램도 연상케 하는데, 독자 상담이라는 사료를 분석한 자료이니만큼, 비슷한 포맷인 KBS의 고민 해결 프로그램 “안녕하세요?”나 “마녀사냥” 같은 프로그램들을 떠올리게 한다. 모두 본인이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을 이야기하고 그 해답을 듣는다는 점에서 같은 구조를 취하고 있다.
경성 고민상담소의 특징은 당시 시대가 구시대와 신시대의 경계에 있다는 점이다. 유교적 문화와 새로운 문화가 맞부딪치면서 벌어지는 여러 문제점들이 지금 살펴봐도 분명 흥미롭게 다가온다. 조선 시대의 사상과 새로운 사상이 혼재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구여성과 새로운 문물을 익히고 교육을 받은 신여성이 함께 있는 세계였다. 이런 시대는 격변기인만큼 가장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당시 벌어진 문화적 충돌은 마치 시간 여행을 가서 그 시절을 생생히 살펴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한편, 생각해 볼 지점은 그때에서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고민들이다. 시부모의 갈등이 핵가족이 진행된 지금에 와서도 변함이 없다는 점이나, 불륜에 있어서도 구 여성과 신 여성의 차이 뿐만이 아니라, 여전히 지속되는 점들에 있어서 생각해 볼 점들이 있었다.
또한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남성들에 대한 시선, 가정 폭력, 여성들의 약자적 위치가 지금에 와서도 강도만 달라지고 퍼센트만 달라졌을 뿐, 비슷한 점들이 많다는 것도 아직 사회가 성숙하지 않은 부분들이 많으며, 가족 제도나, 한국 사회의 남녀평등 문제도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점을 다시 깨닫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아직도 남자에 예속되어 있는 여성의 지위 문제나 남녀 사이의 갈등과 폭력 등 근절되어야 할 여러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당시 사회상을 들여다보고, 지금 이 시대를 성찰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책이지만, 논문을 단행본으로 만든 책이기 때문에 구성 자체가 딱딱한 느낌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사연을 인용하고, 그 뒤에 다시 한 번 사연을 설명하고 이어나가는 방식이 같은 이야기를 두 번씩 되풀이해서 듣는 듯해서 지루함과 답답함을 주기도 한다. 단행본으로 만들어지면서 이런 부분들은 과감하게 쳐내고 좀 더 간결하게, 대중들을 생각하게 바꿨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연과 답변도 나중 가서는 비슷한 패턴을 보여서 전체적인 서술이 지겨운 느낌을 준다. 따라서 단숨에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종류의 책은 아니다. 말 그대로 재미있는 논문을 읽듯이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서 역사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했다. 그저 몇 년도에 무슨 일이 있었고, 당시 무슨 사건이 벌어졌는지 외우던 역사가 사실은 그 시대에 숨 쉬고 있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던 시대였다는 것. 역사 교육이라는 게 그렇게 사실들만 외우는 것보다,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풍속사를 보는 것이 더 재미있게 와닿고 역사에 더 관심을 가지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살던 세계로 접근하면, 역사가 어려운 과목이나 지루한 수업이 아니라, 다른 나라나 세계를 엿보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이런 종류의 책들이 더 많이 나올 필요가 있고, 이런 미시사가 역사를 공부하는 청소년들에게도 교육되면 좋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고민을 하게 된다. 원시인들도 남녀 문제를 걱정했을 것이다. 자신의 외모를 생각하고,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기만하고 걱정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들의 삶을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바로 책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닐까. 책은 과거를 되살리고, 머릿속에서 펼쳐지게 만든다. 우린 실제로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할 수는 없지만, 머릿속에서 활자를 통해 체험해볼 수는 있다. 그들의 고민을 공감하면서 내 고민과 연결시켜 볼 수도 있고, 다른 해답을 내놓을 수 있다. 그들의 삶을 엿보면서 과거를 재구성하고, 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과거와 역사와 사람을 공부한다. 지금 우리의 삶도, 언젠간 책으로 변할 것이다. 미래에는 지금의 삶을 우리가 남긴 이런 리뷰와 책들, 드라마, 영화, 인터넷 게시판에 남길 글들로 재구성할 것이다. 그리고 깨달을 것이다. 환경이 다를 뿐 우린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