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 (생략) 그리고 나는 심층과 표층, 죽음과 삶을 갈라서 얘기한 게 아니에요. 죽음과 삶, 현실과 비현실, 이게 다같이 공유되어 있는 거예요. 박민규(朴玟奎)란 작가가 최근에 젊은 작가들끼리 좌담하면서 근사한 말을 했더라고. 소설은 물질이다…… 이게 근사한 말이지요. 내가 최근에 리옹에 가서 얘기를 하는데 어떤 프랑스 여성작가가…… 인기 절정의 여성작가래요. 몇 십만부가 팔리고 하는데 맨날 자기 사생활을 작품으로 쓰고 그런데요. 누가 "글은 어떻게 씁니까?" 물었더니 작가가 하는 말이 내면이 피투성이가 되고 어쩌고, 아주 난리가 났어요. 나는 뭐라고 했냐면 "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 그리고 궁둥이로 쓴다." 그건 뭐냐면 소설창작은 8, 90퍼센트가 노동이 결정하는 거예요. 우선 오래 앉아 있어야 되거든, 프로 작가는 글이 안 나와도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해요. 안 나오면 어떡합니까? 그래서 난 글쓰는 행위를 물질적 행위로 보고, 세상에 표출된 것도 그 물질의 부분으로 봅니다. 요새는 작가들이 왜 그렇게 엄살이 심한지 모르겠어요. 하늘에서 천형, 천벌을 받은 것처럼 말하더군.
― 『창작과 비평 2007 가을호』, 「도전인터뷰|한국문학은 살아 있다」, 심진경, 251~252면
심진경 : 이제 서서히 마지막 주제로 넘어가볼까요? 요즘 젊은 작가의 작품 중에서 재미있게 읽은 작품에 대해서 얘기 좀 해주세요.
황석영 : 외국에 있는 바람에 다 자세히는 읽지 못했는데, 작년에 박민규의 『핑퐁』하고 이혜경의 『틈새』, 김애란의 단편을 봤는데 기분이 좋았어요. 내가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한국어판에 "이 소설들을 읽으니 나에게도 돌아갈 정처가 아직 있다는 걸 알고 반가웠다"고 썼죠.
― 『창작과 비평 2007 가을호』, 「도전인터뷰|한국문학은 살아 있다」, 심진경, 272면
문학은 자폐의 길에서 벗어나야
황석영 : (생략) 내가 얼마전 기자간담회에서 "올해가 한국문학의 중흥기야" 어쩌고 했는데 한국문학 격려하느라고 그런 거예요. 사실이 그렇기도 하고…… 아니, 기자라는 사람들이 겨우 이삼년을 못 참아서 지난 몇년간 한국문학은 끝났다 어쩐다 하면서 난리를 쳐요? 한국문학이 잘 안 팔리고 번역소설들이나 팔리고 그러니까 그런 기미가 아주 없지는 않았어요. 그러면 편집자 평론가 기자 들이 좋은 작품이 나올 거다 하면서 옛날 것도 다시 한번 얘기하고 그러면서 기다리고 북돋아주어야지. 올해를 봐요. 그동안 한국작가들이 제각기 쓰고 있었던 거야. 나도 쓰고 있었다고……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다들 쓰고 있던 거예요. 올해 나올 책들이 앞으로도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는데. 쏟아져나올 거요. 김애란도 가을에 나온다며? 천운영도 나온다고 하고, 또 김영하 나올 거고, 김연수도 준비중이고. 지금 원로에서 젊은 신인들에 이르기까지 연이어 역작들을 내놓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물론 한국문학이 위기가 아니었던 때가 없지만 지금이 결코 나쁘지 않다고 봐요. 그리고 우리는 아직 사회변혁이 진행중이고 분단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얘기할 거리가 너무 많아요. 문학을 하는 사람들마저 문학이 현재 '문하의 최하위'라고까지 말하는데…… 자학하지 말고 자기를 존중해야 남들도 존중한다고.
근데 나는 요새 기분나쁜게 어디 가서 호통을 쳤으면 좋겠어요. 아니, 이 싸가지없는 국회의원들이 저희들끼리 싸우다가 상대가 거짓말하는 것 같으면 '소설' 쓰지 말래. 그러더니 어린 네티즌들도 누가 허튼소리하면 '소설 쓰고 있네' 그래요 외국에서는 당대의 소설, 문학책, 이런 게 그 사회 교양의 척도예요. 아니, 이렇게 허섭스레기 같은 취급을 받다니 말이야. 그래서 좀 자부심을 갖고…… 왜냐하면 사회에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없어졌기 때문에 근대문학의 종언이 아니고, 그런 역할을 잊을수록 허섭스레기가 되고 종언되는 거예요.
― 『창작과 비평 2007 가을호』, 「도전인터뷰|한국문학은 살아 있다」, 심진경, 275~276면
예전에 수업시간 발표 때문에 『오래된 정원』을 읽었을 때는 시간은 없는데 책은 두 권이나 되고 촉박한 마음에 지루하게 읽은 기억이 나네요. 만약, 이런 인터뷰를 먼저 읽었다면 황석영 작가 발표를 훨씬 더 열심히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황석영 작가도 저번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린 좌담회를 읽었었군요. 그때, 저 말 말고도 박민규 작가가 좋은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근대문학 종언 파트의 글들은 전체적으로 시원했습니다. 여기에 일부만 옮겨놓아 봤지만요. 아무래도 요즘 작가들의 언급이 있는 부분들이 눈이가서 옮겨적어 봤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