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아트 온라인 10 - 앨리시제이션 러닝, J Novel
카와하라 레키 지음, 김완 옮김, abec 그림 / 서울문화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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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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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 무협 단편집 - 더 이상 칼은 날지 않는다
진산 지음 / 파란미디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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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 무협 단편집 - 더이상 칼은 날지 않는다


  진산은 여성 무협 작가로 유명한 작가이다. 본명은 우지연, 1969년 생이고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1996년 장편 처녀작인 『홍엽만리』를 출간한 이후로 총 여섯 편의 장편 무협소설과 네 편의 로맨스 소설을 발표했다. 그러나 나는 진산의 소설을 어느 것도 읽지 않았다. 무협, 로맨스 장르와 그리 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진산이라는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은 장르문학웹진 이매진의 초대 편집장이었고, 환타지 문화 웹진 워터가이드와 이매진의 후신인 디겐의 고문이었으며, 조선일보에 <성밖에서> 코너에서 장르문학 서평을 적기도 하고, 그 외에도 장르 쪽에서는 자주 접하게 되는 이름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 『진산 무협 단편집 - 더이상 칼은 날지 않는다』를 읽고 나서 간단한 감상 및 소개를 목적으로 쓰는 이 리뷰글에서는 이번에 실린 작품에 대한 언급만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산의 작품 세계나 장르의 핵심을 꿰뚫는 천재성 등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다. 이 점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광검유정


  그리고 노인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협께서도 무림인이라 하니 내가 하나 묻겠네만, 소협은 무武의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느닷없는 질문에 잠시 멈칫했지만, 청년은 곧 서슴없이 대답했다.

  “쾌快와 강强입니다.”

  “옳네. 얼마나 빠른가, 얼마나 강한가. 이 두 가지가 무武의 도道가 갖는 두 가지 요체라고들 이야기하지. 그래, 소협의 무공은 그중 무엇을 취하고 있는가?”


- 「광검유정」中


  『진산 무협 단편집』에 첫 번째로 실려 있는 단편은 바로 「광검유정」이다.  이 책에는 그동안 진산이 쓴 7편의 단편이 집필 순서대로 실려 있다. 즉, 이 단편은 진산이 쓴 첫 번째 무협 단편인 것이다. 또한, 이 단편은 진산의 무협 쓰기의 계기인 작품이라고도 한다. 1994년 하이텔 무림동의 공모전 공지를 보고 충동적으로 몇 시간 만에 써내려간 글이라는 것이다. 한 문장을 쓰고, 그 다음 문장을 쓰는 식으로 써내려갔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글에 군더더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은 이 책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한데, 담백하게 필요한 내용, 필요한 말, 필요한 묘사만 적절히 하고 있다. 과도하게 화려한 묘사로 읽기 버겁게 만들지 않고, 그렇다고 적은 설명으로 내용 이해를 흐트러트리지도 않는다. 그야 말로, 더도 덜도 말고 딱 적정선을 정확히 알고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 세 시간에 걸쳐 완성된 「광검유정」은 당시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지금 보면 내용이 기발하다거나 놀라운 반전 등이 있는 글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전형적인 글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문장 하나하나가 정답만을 찾아간 것처럼 깔끔한 글이라 순식간에 읽고 재미를 느끼게 된다.

  책으로 처음 읽게 된 무협 단편이다. 읽으면서 태생적으로 장편 위주인 무협이라는 장르에서 이런 단편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까지 했다.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서 성조차 무(無)로 칭하고 끊임없이 암사자들을 보내는 여자와 그 여자를 사랑하여 그 여자의 아비를 죽이려는 남자. 그리고 전설적인 살인광 광검. 이 단편은 구성이 단조롭지 않고, 각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조금씩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즉, 차츰 나오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퍼즐처럼 모두 조합해야만 전체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결말이 쉽게 예상이 가는 편이나, 오래전 작품이며, 처녀작임을 감안하면 첫 시작으로는 무척 좋았다고 생각한다.


  청산녹수


  “아니, 아니야. 오빠, 이제 은망세銀蟒勢를 보여 줘.”

  황창은 잠자코 누이가 시키는 대로 은망세를 펼쳤다. 은망세란 은빛 구렁이가 휘감아 나가는 자세를 말한다. 이것은 사면을 두루 돌아보며 칼로 몸을 감아 두르면서 스쳐 베어 죽이는 방법인데, 앞을 향해서는 오른손과 오른다리로 방향을 바꾸어 움직이면서 좌우로 급히 바람을 날리어 번개치듯이 하는 것이다. 거대한 은빛 구렁이가 온몸을 뒤척이며 앞을 향해 나아가는 듯이 보인다는 이 검초를 어린 창이 시전하자, 거대하지는 않지만 날렵한 은빛 새끼 구렁이와 같았다. 더군다나 땅에는 눈이 가득 덮여 있어 창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눈가루가 날리니, 말 그대로 은망세였다. 희는 그런 오라버니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창도 누이를 보면서 휘날리는 눈가루 아래서 함박 웃었다.


- 「청산녹수」 中

  

  청산녹수는 1년이 지난 1995년에 쓰인 단편이다. 그러나 1년 동안 진산은 글쓰기를 잊었다가 동기, 후배들과 연극을 하기 위한 비용마련을 목적으로 공모전에 응모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준비를 해오지 않았음에도 첫 작품보다 비약적으로 발전된 글을 볼 수 있다. 이 단편은 쓴 시간도 스물한 시간이 걸렸다고 하고, 그만큼 분량도 훨씬 늘어났다. 이야기도 절절하고 다채로우며 운문까지 섞여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가진 여러 가지 특징이나 장점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한반도가 배경이라는 것이다. 신라를 배경으로 화랑이 나온다. 백제와 신라와의 역사적 사실이 작가의 예측불가인 상상력이 결합되어 멋진 팩션을 만들어낸다. 그 때문에 작품의 완성도가 높다고 느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 자체의 비극성 때문에 기억에도 오래 남았다. 이 책에 실린 많은 단편들이 대부분 우열을 가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각자 가장 인상에 남는 소설 한 두 개를 꼽을 수 있을 텐데, 이 소설은 꽤 여러 사람에게 손꼽힐 만한 소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그러하고.


  백결검객


  그의 형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널 두려워해. 원래 너는 이 세상에 없는 줄 알았어. 10년이나 소식이 없었으니까. 우리도 모두 그렇게 알고 있었지. 그리고 네가 다시 나타났을 때, 놀라기는 했지만 두려워하지는 않았었어. 그래서 적은 인원만을 보냈던 거야. 한데 지금은 그들이 너를 두려워하고 있어.”

  “내가 산장에 갈 수 있다면, 그들은 좀더 두려워하게 될 겁니다.”


- 「백결검객」 中


  진산은 자신의 단편들을 돌연변이라고 칭했다. 그 말이 맞다. 무협은 초인문학이고 성장물이며 성공담이지 않은가. 그런데 진산의 무협 단편은 비극적이고, 회귀하는 내용이며, 해체하는 이야기다. 특히 그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 바로 「백결검객」이다. 주인공을 백결검객으로 보자면, 이 단편 소설의 시점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강호에 초행으로 나온 주인공이 백결검객을 따라가며, 강호의 비정함과 덧없을 깨닫고 그 비극에 질려버려 강호에 나서지 않고 평범한 삶을 선택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수많은 장편 무협 소설의 이야기들이 무공을 성취하고 명성을 얻는 것과 상반된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의 무협 단편. 아무리 단편 소설이라 하더라도 관찰자 시점의 글은 많지 않다. 하물며 장르 소설에서는 더 적다는 느낌인데, 이 단편은 이런 시점으로 밖에 쓰일 수 없었고, 또한 애잔한 느낌으로 읽히게 만들었다. 독자는 1인칭 화자와 함께 백결검객의 뒤를 따라가게 된다. 강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절대적인 실력을 가진 백결검객. 그러나 그가 가진 자신의 어머니일지도 모르는 여자와의 비극적인 사랑을 더듬어가다 보면 강호의 무정함에 대해 화자와 동질감을 느낀다. 참 씁쓸하면서도 아련한 느낌을 주는 단편이다. 머릿속에 오래 기억될만한 이야기다.


  고기만두


  그가 나를 떠날 때, 내가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일을 그래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때 만일 울어버렸다면 나는 형편없이 무너지고 녹아 버렸을 것이다. 그것을 참아 냈기 때문에 오늘날의 철죽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몹시 분하다. 등을 보이고 떠난 것이 내가 아니라 그라는 사실이다. 난 지금도 내게 등을 보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 한 번.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내가 그에게 등을 보이고 떠날 수 있다면.


- 「고기만두」 中


  제목부터 독특한 「고기만두」는 내용 없이 예사롭지 않다. 굉장한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용이 꼭 무협이 아니어도 될 법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물론 앞에 단편들도 그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무공을 설명하거나 은원을 이야기하는 부분 등에서 무협적인 색채가 짙었다. 무협이 아니고서는 그 맛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을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이 단편은 오히려 무협이기 때문에 어색해 보이는 면도 존재한다. 무협 단편이라고는 하나, 무협의 배경만을 취하고 그 내용물은 로맨스가 주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정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사랑에 빠져 버린 두 남녀. 그러나 남자의 배신으로 둘은 이어지지 못하고 여자는 서른이 되는 십 년 가까이 그를 원망하며, 칼을 휘두르며 강호를 살아가고 있다. 뜻밖에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다시 만난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마음의 교차. 그들의 마음과 선택. 이야기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보면서도 내가 주목한 것은 이 소설이 사군자 연작 소설의 첫 번째라는 것이다. 내가 진산의 첫 글을 읽은 것은 글틴에서 본 「잠자는 꽃」이었다. 바로 묵란을 주인공으로 한 사군자 연작 소설의 마지막 작품이었는데, 물론 연작이긴 했어도 완결성이 있어서 그 작품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연작 소설의 재미는 모든 연작 소설을 다 읽음을 통해 머릿속에 연결되는 연대기가 또 참 재미중에 하나가 아닐까? 항상 말이 없는 묵란이 초기작에서도 역시 묵묵히 웃고만 있는 모습이 반가웠고, 처음 보게 되는 철죽, 취국, 소매 역시 신기한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었다. 사군자가 다 모여 있는 광경이 생경해 보였고, 한편으로는 정겨워 보였으며 다른 두 편도 어서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웃는 매화


  그녀의 이름은, 웃는 매화라는 뜻이다. 그러나 아까 형의 서재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한 번도 그녀가 웃는 꼬락서니를 본 적이 없었다. 그 이름은 잘못 지은 게 틀림없다. 물론 그녀가 웃는 것을 보고 싶은 생각도 없다. 여자라는 짐승이 그나마 예뻐 보일 경우는 딱 두 가지뿐이다. 첫째, 벙어리 여자. 둘째, 소복 입고 조용히 흐느껴 우는 여자. 내가 대답이 좀 늦자, 그녀는 술잔을 조용히 움켜쥐었다. 두꺼운 사기 술잔이 그녀의 손 안에서 가루가 되었다.

  “이름이 뭐냐니까?”

  시끄러울 뿐 아니라 힘도 센 여자다. 내가 싫어하는 두 가지를 모두 갖췄다. 나는 대답했다.

  “철죽.”


  - 「웃는 매화」 中


  난 앞에서 「청산녹수」고 좋았고 「백결검객」도 좋았다. 그러나 독자를 매료시키는 요소는 문체, 이야기, 구성, 작품의 완성도뿐이 아니다.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적인가에 따라서 독자는 그 작품의 팬이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웃는 매화」는 내게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우선 이 작품의 제목인 「웃는 매화」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소매는, 처음 등장한 「고기만두」편에서부터 인상에 남았었다. 항상 웃고 밝으면서도 어딘가 강인해 보이는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이상형이라고 할까? 머릿속에 그려진 이미지는 작지만 강단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항상 분위기를 주도하는 야무진 캐릭터라는 점이 좋았던 것이다.

  사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소매가 아니다. 바로 전 편에서 사군자를 떠난 철죽을 대신하여 새롭게 철죽으로 자리한 풍적회, 회주의 배다른 동생이 주인공인 것이다. 1인칭 시점으로 계속 시니컬하게 주변 이야기와 자기 이야기를 결합시켜나가며 주절거리고 있는데, 말하는 스타일이 때론 귀엽기까지 한 녀석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녀석이 어찌 이리도 개그적인 감각을 갖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끝까지 유쾌하게 읽을 수 있던 작품이었다. 분량도 긴 편이고 구성도 복잡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소매와 철죽이라는 두 걸출한 캐릭터가 가장 인상적이었지만 말이다. 서로 티격태격하며 싫어하는 듯 싸우지만 나중에는 미운정 고운정 들 것 같은 커플은 항상 보기에 즐겁다. 같은 무협 로맨스라고 해도 직설적이고 빤히 보이는 「고기만두」보다 은근히 신뢰가 쌓여가는 「웃는 매화」가 더욱 감동이었다.


  날아가는 칼

 

  이상한 일이었다. 그의 몸은 점점 차가워졌는데 쇳덩이는 점점 따스해졌다. 마치 쇳덩이가 그의 몸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체온을 흡수해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심지어 그것은 말랑말랑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취국은 그 모든 게 환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신기하기만했다.

  지칠 정도로 자다가 무심결에 쇳덩이를 쓰다듬어 보면, 그 모양이 그의 손길에 따라 바뀌는 듯 여겨졌다. 손톱으로 꾹 누르면 쇳덩이에 손톱자국이 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모두 착각이었다. 누군가 자박자박 걸어와 대롱에 약을 붓고 나간 뒤, 아주 잠깐 정신이 돌아올 때 다시 만져 보면 그건 처음과 다를 바 없는 단단하고 차가운 쇳덩이에 불과했다.


- 「날아가는 칼」 中


  이기어검술. 검이 스스로 날아가는 절대 무공. 「날아가는 칼」은 그 무공을 익히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앞에 나온 기존의 단편들과는 확실히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진산도 책 뒤편 해설에서 무협이 아니면 안 되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다. 무공을 익히는 게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지만, 읽을수록 빠져들게 된다. 검이 난다는 것이, 취국에게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올 법하다. 특히 장르 독자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무언가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죽음을 뛰어넘는 과정을 겪는 것은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흡인력을 가진다. 차분하게 취국의 수련 과정을 따라 읽으며, 설 선생이 겪은 생사의 고통을 바라보면 어느새 이야기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 짜인 글이고 냉랭한 글이며 섬뜩한 글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읽고 나서 만족하게 읽었더라도 아쉬운 점도 없잖아 있었다. 우선 취국이라는 캐릭터가 정체성이 지나치게 흐릿하다는 점이었다. 사군자 연작 소설 중에서 가장 개성이 없었다고 할까? 존재감이 적고 자신의 생각을 도무지 내비치지 않아서 답답했다. 취국이 집중 조명되는 이번 단편에서도 취국의 생각은 그리 많이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무공을 익히면서 점차 인간의 감정이 사라지기 때문에 더욱 취국에게 생동감을 느끼기란 힘들다. 그래서 그들이 겪는 외로움, 고독 같은 감정은 공감이 되지 않으며, 결말 부분도 크게 와 닿지 않는 것이다.

  검이 날자, 심장이 뛰었으나 검날은 여자의 나신처럼 위험했고 차디 찼다.


  잠자는 꽃


  마침내 좌호법인 취국이 회를 떠났을 때, 회주는 너를 풍적회의 좌호법으로 임명했다. 그것은 사마세가의 마지막 혈손으로서 풍적회에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는 것 외에 또 하나의 의미를 갖는 일이었다. 풍적회의 우호법은 묵란. 너는 마침내 그 여자와 대등한 위치에 선 것이다.

  호법으로 임명받은 날, 너는 술병을 들고 묵란의 처소를 찾아갔다. 본타에 뿌리를 내린 지 몇 년이나 지났는데 그녀의 처소에는 처음으로 가 보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문전박대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너는 하인을 불렀다. 하인은 없었다. 그녀가 나왔다. 너는 술병을 떨어트릴 뻔했다.

  “이야기나 좀 할까 해서 왔소.”


- 「잠자는 꽃」中


  이 글은 내가 처음으로 읽은 진산의 소설이며, 유려한 문장과 구성, 완결성에 큰 인상을 받은 작품이다.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시점일 것이다. 이 소설은 2인칭 시점을 사용했다. 글쓰기를 하는 작가라면, 시점에 대해서 자주 고민을 하게 될 것이고, 항상 1인칭 아니면 3인칭을 선택하는 상황에서 가끔은 2인칭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순수문학이 아닌 장르문학에서 2인칭을 사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우선 단편보다 장편 위주이기 때문이고 단편을 쓴다고 하더라도 2인칭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산은 매우 능숙하게 2인칭 시점을 사용하며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그렇게 자연스러웠던 이유 중 하나는 작가도 해설에서 말했듯이 묵란이라는 독특한 캐릭터 때문일 것이다. 명경지수라는 심법을 익히며 타인의 감정을 대변하는 얼굴을 가지고 말 한마디 없이 존재하는 묵란이라는 캐릭터에게 초점이 맞춰진 단편에서 2인칭은 더 없이 딱 맞는 선택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별다른 위화감 없이 소설을 읽게 된다.

  사군자 이야기의 마지막. 그러나 처음에 난 그런 걸 전혀 모르고 읽었다. 즉, 연작인지 모르고 온전한 단편 하나로만 대하고 읽었다는 것인데, 그래도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굉장히 잘 쓰인 무협 단편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복수와 성공, 좌절이 잘 얽혀 있고, 화려한 무공이 나오지 않아도 ― 무협 단편에서는 대부분 무공 대결 같은 건 분량 상 나오기가 힘들다 ― 명경지수 같은 심법은 신비롭고 묘한 느낌을 주어 좋았다.

  이제 다시 책으로 사군자 이야기의 마지막 편이며, 묵란의 이야기이며, 종장이고 에필로그라는 사실을 알고 읽게 되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마냥 좋게만 보이던 이야기가 왠지 가슴 저린 느낌을 주었다. 사군자 중에 마지막 묵란만이 남아 풍적회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모습이 울적한 느낌을 주었나 보다. 게다가 묵란의 마지막은 씁쓸함을 더해 주었다.

  꽃이 잠들고,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다시 꽃은 필 것이나 칼은 더 이상 그 위를 날지 않을 것이다.


  마치며


  이 무협 단편집이 정식 출간으로는 최초이며 또한 최후의 작품이 될 가능성은 높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더욱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칼은 날지 않기에, 지금 날아오른 이 칼을 쉽게 놓아주고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다.

  더 이상 말해서 무엇하랴.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부드럽고 격정적이며 아름다운 유려한 문장들이 촘촘하게 강호와 사람을 그리고 있다. 수십 권에 달하는 무협 소설들이 주는 재미가 있겠지만, 때론 단 한 편의 단편이 주는 감정이 가슴을 가득 채울 때도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칼이 날지 않는 것에 연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진산의 무협 고별사라고 할지라도, 진산의 글에 대한 고별사는 아니기에. 이후에도 어떤 장르로든 글이 나올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무협 장르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적다고 할지라도 두려워 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나부터도 무협 소설을 읽은 것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별다른 무협 지식 없이도 공감하며 웃으며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한 권의 멋진 단편 소설집을 읽고 싶다면 주저 없이 사서 읽으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멋진 글을 찾는다면 말이다. 방금 날아오른 이 책이 소리 없이 사라지기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소망한다. 이미 얼마나 즐거운 책인가를, 빛나는 책인가를 알기 때문에.

  화려한 춤사위 속으로 지금 당신을 초대한다. 푸른 산, 흐르는 물가에 핀 꽃들, 따스하고 쓴 고기 만두 맛, 웃는 매화, 그 위를 나는 칼춤. 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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