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도 개저녀기는 성균관에 간다 ㅣ 똑똑! 역사 동화
최영희 지음, 유설화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5년 11월
평점 :
개저녀기라니? 이 듣도 보도 못한 낱말은 무엇인고?
책을 읽어보니 성균관 유생을 도와주는 직동의 이름이었다.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에는 유생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유생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세숫물부터 해서 여러 가지 잔심부름을 하던 직동이라 불리는 아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은 직동 중 하나인 개저녀기와 개저녀기가 모셨던 유생 성삼문의 이야기를 통해
성균관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1:1 즉 유생 한 명당 직동 한 명이었다고 한다. )
작가는 어느 날 성균관에 갔다가 직동의 이야기를 써보기로 마음 먹었고
이제야 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 덕분에 우린 성균관에 유생만 있었던 게 아니라
그들이 나라의 일꾼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
어린 아이들이 존재했음을 깨닫게 된다.
푸른숲에서 나온 역사 동화 시리즈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기존 책은 고학년에게 어울리는 내용인데 비해
이번 시리즈는 중학년에게 어울리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처음 접하게 되는 시기가 보통 중학년 정도인데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어렵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내용이라 좋다.
중학년 독자를 저격할 요량으로 주인공 개저녀기 나이도 열살로 한 듯하다.
중학년 아이들이 즐겁고 재밌게 하지만
역사의 큰 줄기 속에 "성삼문" 같은 위인만 있었던 게 아니라
개저녀기 같은 민초도 곳곳에 있었다는 걸 자연스레 깨달을 것 같다.
개저녀기는 개 저녁밥 줄 때 태어났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이름이 지어진 사연을 알고나니 참 슬프다.
엄마가 죽고나서 갈 곳 없던 개저녀기를 반촌에 살던 덕쇠라는 총각이 데려다 키운다.
반촌은 성균관의 살림살이를 맡아보던 곳으로
포졸 또한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던 곳이라고 한다.
반촌의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직동으로 일하게 된다고 한다.
개저녀기 또한 반촌에 살고 있었기에 직동으로 일하지만 외부에서 데려다 키운 아이라해서
매번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곤 한다.
개저녀기가 직동으로서 처음 모시게 된 유생은 천재로 소문난 신입 유생 성삼문이다.
태어날 때 하늘에서 "태어났느냐?" 세 번 물었다고 해서 삼문이라 이름 지은 성삼문.
개저녀기 이름과 차이가 나도 참 많이 난다 싶다.
나이도 다르고, 신분도 다른 개저녀기와 성삼문의 성균관 생활을 지켜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성균관은 지금으로 말하면 서울대학교라 할 수 있고
유생은 이 곳에서 동재와 서재로 나뉜 곳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다.
직동은 이곳으로 출퇴근하며 유생을 돌봐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직동으로 경력을 쌓고 관례를 치르면 성균관에서 상주하는 수복이 된다고 한다.
이런 구조이니 성균관 유생과 수복이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200명의 유생 중에서도 천재 소리를 듣는 성삼문의 직동이 된
개저녀기는 마냥 행복해 보이지 않아 보인다.
아까도 말했듯이 직동은 유생을 돌봐야 하는 게 임무인데
신입 유생 성삼문이 공부만 하느라 번번히 끼니를 거르자
개저녀기는 고민에 빠진다.
왜냐하면 얼마 전 끼니를 거른 한 유생이 쓰러진 사건이 있어서이다.
게다가 사사건건 반촌 출신이 아니라고 자신을 놀려대는 직동이 있어
생활이 녹록하지 않다.
나중에는 자신이 모시는 성삼문을 세 번 놀렸다는 오해까지 받아
대추나무에 재갈 물린 채로 꽁꽁 묶이는 벌까지 받게 된다.
직동이 되어 좋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인생 새옹지마라고...
이런 나쁜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헛똑똑이 같이 자신의 직동 얼굴조차 못 알아보고 데면데면하던
성삼문이 개저녀기를 때린 고참 유생에게 당당히 따지거나
개저녀기의 이름에 담긴 새로운 뜻을 말해주는 훈훈한 이야기도 나온다.
책은 성균관의 유생과 직동 생활을 재밌게 알려주면서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신분과 나이를 뛰어넘은 우정도 들려준다.
개저녀기와 성삼문의 이야기가 실화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시대 성균관에는 유생만 있었던 게 아니라
그들을 극진하게 돌봤던 어린 직동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200명의 유생은 됨됨이가 다 달랐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성삼문처럼 신분을 뛰어넘어 직동을 자신의 가족처럼 돌보던 자도 있고
담뱃대 유생처럼 어리고 신분이 낮다 함부로 무시하고 괴롭히는 유생도 있다는 것 말이다.
그건 지금 시대도 마찬가지이다.
공부만 잘한다고 해서 됨됨이가 훌륭한 건 결코 아니다.
이들 중 누가 과연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겠는가!
성삼문 같은 성균관 유생도 기억해야 겠지만
유생을 힘써 도와준 개저녀기 같은 직동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