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나 때문에 지각을 했다.
이럴 줄 알았다.
방학을 하면 마음이 느슨해져 알람 소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이 그랬다.
알람 소리를 분명 들었는데 무시하고 다시 자버렸다.
뭔가 낌새가 이상해 일어나보니 8시 26분!
으악!
딸을 서둘러 깨웠다.
딸은 세수도 안 한 듯.
교복만 대충 챙겨 입었다.
담임 선생님께 지각 사유를 문자로 보내고
차로 태워다 줬다.
아침도 못 먹고 간 딸한테 너~ 무 미안하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말이다.
'딸아, 미안해! 엄마가 저녁에 맛있는 거 해줄게'
굳이 변명을 하자면
어제 남편과 함께 아들 크리스마스 선물 사러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산타한테 편지를 썼는데 레고를 갖고 싶다는 거였다.
이 녀석이 편지를 쓰려면 일찍 쓸 것이지
지난 일요일에 쓰니 인터넷으로 살 수도 없고....
남편과 상의하여 어제 장을 보는 척 하고, 이마트에 갔더니 아들이 찾는 그 레고가 없는 거였다.
그런데 편지에 적은 레고 번호가 아리송송해서
딸한테 티 내지 말고 살짝 물어보라고 문자를 했다.
딸이 눈치껏 동생에게 물어봐 아들이 원하는 레고를 알게 되었다.
완전 007 작전이 따로 없었다.
두 번째 롯데마트 토이저러스에 가니 이마트와는 달리 사람이 좀 북적댔다.
이마트에는 손님이 너무 없어- 완구 코너에도 없어서 경기 침체가 확실히 느껴짐- 놀랐다.
그곳엔 다행히 딱 하나가 남아 있었다.
가격이 후덜덜하다.
으쒸~ 이 녀석이?
항상 느끼는 거지만 레고는 너무 비싸다.
레고 모으는 취미 가진 아들 있으면 부모 등골 휜다.
가격 비싼 것 알고, 비싼 것은 산타한테 부탁했나?
아들이 본인 생일에는 필요한 것 없다고 해서 우리 부부는 용돈을 줬더랬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용의주도하게 계획한 것인지
아님 너무 순수한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토이저러스는 센스 있게
계산대 앞에 간이 책상을 마련해 놨다.
손님에게 포장지를 무료로 주고, 선물을 포장할 수 있게 비치해 놓은 것이다.
굿 아이디어!!!
우리는 포장지에 토이저러스를 상징하는 "R" 로고가 있어
아들이 눈치 챌 듯하여 다른 포장지를 샀다.
이왕이면 완벽하게 작전을 성공해야지 싶었다.
포장지 하나로 모자라서
또 하나를 덧대느라 우리 부부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난 크리스마스 때 우리 부모님이나 산타한테 선물 받은 적 한번도 없는데...
참 불공평(?) 한 세상이다. ㅋㅋㅋ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지켜주고 싶은 우리 부부-이번엔 누나까지 합세-의 노력이 결실을 맺길 바란다.
이제 몇 년 안 남았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