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파과- 흠집이 난 과실" 이렇게 사전에 나와 있다.

다른 뜻이 있는데 여자 나이 16세를 의미한다고 한다.

"과" 라는 한자가 각각 다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겉표지에 한자를 적어주지 않았다.

판단의 몫을 오롯이 독자에게 맡긴 것처럼 보인다. 

끝까지 다 읽은 후에 생각해 보라고 말이다.

둘 다 평소에 잘 안 쓰는 말이라서 생경했다.

파과라는 책 제목이 눈에 띈 것은 2년 전이었던 듯하다.

알라딘 서재에 자주 노출되던 책이라 제목은 익히 알고 있었다.

 

이번 추석 연휴에 오고가는 기차 안에서 읽을 책을 찾다가 이 책과 조우하게 되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너무 긴 문장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떤 문장은 무려 13줄이나 되어서 중간에 주어와 서술어를 놓쳐 다시 읽은 적도 있다.

요즘 내가 읽었던 책들 대부분은 문장이 간결하였는데

구병모 작가는 정말 문장이 길~~었다.

그것도 능력인 듯하지만 말이다.

혼자 속으로

' 이 작가  왜 이렇게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거야? 숨 넘어가겠네' 하며

약간 오기가 생겨 끝까지 읽어보고 비판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더랬다.

그런데 첫 꼭지를 읽고나서 이야기가 재밌어지자 좀 화난 마음이 수그러졌다.

' 음 그래도 이야기는 좀 재밌네. 뒷이야기가 궁금하군'

그런 마음으로 오며가며 읽다보니 다 읽었다.

기차는 책 읽기 정말 좋은 공간이다.

 

들어보니 나름 구 작가의 이 만연체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고 한다.

함부로 비판했다간  몰매를 맞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오그라들었다.

하여튼 내가 좋아하는 문체는 아니지만 이야기는 재밌고 생각할 거리도 많았고 독특했다.

우리나라 여성 소설가의 책을 많이 읽어보진 못 했지만

내가 아는 소설가 중에서는 단연 독특하다.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보다 이야기의 힘이다.

다음이 궁금해서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된다.

또 하나 이 책의 주인공 조각에 대한 연민이다.

파과 같은 그 가여운 여인에 대한 애처로움이 끝까지 읽게 만들었다.

 

조각은 65세, 여자 킬러다.

이 설정부터가 심상치 않다.

여자 킬러까지는 그닥 독특하지 않은데 나이에서 깜짝 놀랐다.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초반 방역을 한다고 해서 액면 그대로 방역업자인 줄 알았다.

몇 장 넘기고 첫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방역 대상이 쥐나 바퀴벌레가 아니라 인간이란 걸 알게 되었다.

 

65세의 여자 킬러가 살아가는 이야기는

영화 " 레옹"을 보는 것처럼 흥민진진했다.

레옹에 마틸다가 있는 것처럼

이 책에도 조각이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메마른 겨울 나무처럼 살아가는 조각에게 두 번의 사랑이 찾아오는데

두 번 째 찾아온 사랑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전투를 치르는 장면은 압권이다. 많이 잔인하지만서도.

영화 " 암살 "에서 배우 전지현이 웨딩 드레스를 입고 총격전을 하는 것만큼 긴장감과 비장미가 넘친다.

 

킬러에게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머어마한 약점이다.

자칫하면 그걸 빌미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찾아온 사랑을 거부하지 못한 조각.

그녀가 가엽기도 하지만 멋지기도 하다.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으니깐 말이다.

 

책을 보는 내내

'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듯한데' 하는 생각이 들어 남편한데 말하니

" 누가 할머니가 킬러로 나오는 영화를 보겠냐?" 고 시큰둥 대답한다.

정말 그런가!

파과처럼 된 할머니가 킬러로 등장하는 영화는 대중한테 외면당할까?

 

그렇담 구 작가는 대단한 이야기꾼인 듯하다.

할머니 킬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를 펼치다니  말이다.

구 작가의 다른 책도 구미가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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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10-03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과... 에 그런 뜻이 있군요. 종교어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수퍼남매맘 2015-10-05 16:21   좋아요 0 | URL
이중적인 의미가 있더라고요.
그쵸? 저도 첨엔 불교옹어인가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