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 연휴 기간은 완전 파라다이스였다. ㅎㅎㅎ
어떤 후배는 친정에 시댁까지 경상도, 전라도 지방을 두루 다녀와서 담에 걸렸다고 하는데...
난 진짜 휴가 기간 같았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로스터리 카페도 갔다 왔다.
<커피 비경>이란 책에 나온 카페인데 이름이 <커피 마시는 고래>이다.
울산이 고래가 잘 잡히는 지역이라서 그런 이름을 지었나 보다.
시댁이 울산이라 제일 눈여겨 보던 카페였다.
울산에 태화강이라는 제법 큰 강이 있는데 그 근처에 있다고 해서
딸과 함께 찾아 나섰다.
우리 모녀는 카페 탐방을 아주 좋아해 호흡이 잘 맞는다.
명절 연휴라 가게 문을 닫았을 지도 몰라 미리 전화를 하니 마침 영업을 한다 해서 쾌재를 불렀다.
"블루 마운틴 커피"는 사장님이 직접 내려야 해서 예약을 한단다.
그쪽 시간에 맞춰 3시 경에 예약을 했다.
언양 쪽에 2호점을 개업 준비하느라 그 때쯤 가게에 나오신단다.
이 카페가 유명한 것은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인 오리지널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 커피를 마셔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장님 지인이 자메이카에 생산지를 갖고 있어서 거길 통해 직접 들여오는 거라고 알고 있다.
시중에 나오는 블루 마운틴은 오리지널이 아니라 블루 마운틴이 소량 들어간 블렌딩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고 한다.
커피 비경 책에도 여기서 마시는 블루 마운틴은 진짜라고 하였다.
기대가 엄청 되었다. 블렌딩은 마셔봤지만 단종은 처음이라서 말이다.
도대체 어떤 향과 무슨 맛이 날까?
태화동 정류장에서 내려 지도에서 본 대로 골목길을 쭈욱 따라 내려가다 막다른 골목에서 좌회전을 하니
책에서 본 그대로 <커피 마시는 고래>간판이 보였다.
그 일대가 모두 카페 거리였다.
바로 앞에는 태화강대공원이 있어 길 따라 코스모스가 만발하였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걷고, 자전거 타고, 전동 휠을 타고 있었다.
커피 마신 후에는 나도 코스모스에 파묻혀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전동 휠에 꽂혀 자기도 타고 싶다고 졸랐지만 모른 척했다.
우린 커피를 마시러 온 거지 전동 휠을 타러 온 게 아니니깐.
우리가 카페 안에 들어가니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 아까 전화 드린 사람인데 블루 마운틴 마시러 왔는데요" 라고 말을 부치자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으셨다.
아까 전화 통화한 분이 아니가 보다.
사장님을 기다린다고 하자 아메리카노 한 잔 하시며 기다리라고 서비스로 주셨다.
수제 쿠키까지 내주셨다. 인심이 후해서 일단 10점 플러스다.
딸은 배고프다며 혼자 다 먹었다.
아메리카노가 아주 보드랍고 달콤하였다.
지지난 겨울에 여기서 택배로 한 번 블렌딩 커피를 시켜봤는데 그때도 참 달콤했던 기억이 난다.
사장님이 로스팅 할 때 달콤한 맛이 나는 것에 포인트를 준다고 읽은 기억이 난다.
맛은 좋지만 조금 가격이 세서 택배를 끊었더랬다. 110 그램에 9000원이니 좀 센 편이다.
아메리카노를 다 마시면 블루 마운틴을 못 마실 듯하여 조금만 마셨다.
딸이 낼름낼름 다 마셨다.
도대체 중 2 위는 언제 포만감을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
북 카페처럼 책이 여러 권 꽂혀 있어 책 1권씩을 골라와서 읽었다.
3시 30분 정도 되자 책에서 본 것과 똑같은 커트 머리 여사장님이 쿠키가 가득 든 비닐 봉지를 들고 카페 안으로 들어오셨다.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책에서 본 것보다 훨씬 동안이셨다.
고맙게도 블루 마운틴 내려 주시러 언양에서 오신 모양이다. 감동이다.
딸은 카페 라떼를 시키고, 난 핸드 드립 블루 마운틴을 시켰다.
" 핸드 드립 하는 것 구경해도 돼요?" 하자 괜찮다고 하셔서 아주 가까이서 드립 하는 걸 지켜봤다.
지난 번 제주도 <최마담네 빵다방>은 너무 쌀쌀 맞아서 말도 못 붙여서 먼 발치서 구경했더랬다.
역시 책에서 소개한 대로 진한 파랑색에 찻잔 안이 금색인 잔을 준비하셨고
동으로 된 드리퍼를 사용하였다.
블루 마운틴은 110그램에 5만원 판매한다고 하셨다.
저렴한 것은 블렌딩 한 거라고 하셨다.
금잔에다 담겨진 블루 마운틴은 어떤 맛일까!
사장님이 자리까지 배달해 주셨다.
먼저 향을 맡아 봤다.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났다.
이제 맛을 볼 차례.
쓰지도 않지만 아까 아메리카노 보다는 훨씬 바디감이 느껴지고 부드럽게 목구멍을 넘어갔다.
커피잔을 예열했는데도 약간 식은 감이 있어 그게 좀 아쉬웠다.
솔직히 그렇게 좋다는 느낌은 못 받았는데 어찌 되었건 블루 마운틴을 먹어봤다는 그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난 번 제주도 갔을 때 " 풍림 다방 " 융 드립 커피를 못 마셔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나보다 미각이 뛰어난 딸은 아메리카노보다 훨씬 부드럽고 좋다고 하였다.
로스터리 카페 여러 군데 다녀본 중에 여기 사장님이 가장 친절하고 말씀도 조곤조곤 잘하셨다.
자리에 오셔서 이런저런 설명도 해 주시고, 로스터기도 이해하기 쉽게 말해 주시고,
커피 콩도 먹어보게 하시고 말이다.
그래서 커피는 좀 식었지만 100점을 주고 싶다.
게다가 핸드 드립과 비교해 보라면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덤으로 주셨다.
에스프레소를 먹기 힘들면 설탕 한 숟가락을 넣어 휘젓지 말고 먹으면 좋다고 팁을 알려주셨다.
그대로 해 보니 먹을 만하였다.
마지막에는 커피잔을 살살 돌려가면서 먹으라고 해서 따라하니 달콤한 설탕 맛과 어우러져 목구멍으로 잘 넘어갔다.
내가 만약, 은퇴하고 나서 북카페를 차리면 뚱하고 말 없는 사장님보다는
여기 사장님처럼 친절하고 말 잘하는 카페 주인장이 될 테다.
오래오래 머물고 싶었으나 집에 빨리 돌아오라는 호출이 와서 서둘렀다.
이왕 온 김에 여기서 볶은 커피를 사가지고 가야겠다 싶어
케냐 AA 와 블렌딩 커피 두 봉지를 샀다.
사장님이 멀리서 왔다면서 수제 쿠키 두 봉지를 서비스로 넣어주셨다.
인심도 후하고, 말씀도 잘하시는 사장님!
'2호점도 잘 되시길 바랄게요' 마음으로 응원했다.
"설날에 울산 오면 꼭 들를게요. " 약속하며 카페를 나왔다.
아! 고래 카페 주인장이 <커피 비경>에 나온 다른 로스터리 카페 중에서 하나를 추천해 주셨는데
나도 예전부터 가고 싶어 노래를 부르던 곳이었다. 양평에 있다.
회사를 은퇴하신 나이 지긋한 사장님이 오래된 단독 주택을 개조하여 도자기 박물관 겸 로스터리 카페를 하는 곳이다.
이름은 잊어버렸다. (책을 찾아봐야 하는데 행방불명 상태다)
집에서도 가까우니 남편 꼬셔서 꼭 가봐야겠다.
다음 목적지가 되겠다. ㅎㅎㅎ
카페 주인장 보면서 또 생각한다.
한 번 보고 또 볼 일 없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 순간 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게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말이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술도 그런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왠지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런 것 같다.
블렌딩 커피는 바로 이웃이면서 나처럼 커피를 좋아하는 사서 선생님께 오늘 아침 선물로 드렸다.
항상 곁에서 도와주시고 힘이 되어주는 고마운 분이다.
가끔 커피도 얻어마신다. ㅋㅋㅋ
혼자 마시는 커피도 맛나지만 함께 마시는 커피는 더 그윽하고 향기롭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덕분에 커피가 더욱 그리워진다.
지금 마시면 잠이 안 올테니 참기로 하자.
맛있는 커피와 후한 인심, 더불어 친절한 카페 주인장 덕분에 <커피 마시는 고래>는
나에게 당분간 최고의 로스터리 카페로 남을 듯하다.
서비스로 주신 아메리카노와 수제 쿠키
로스팅 기계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 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