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다. 발레를 관람한 건.
아들과 함께 가까운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하는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라는 창작 발레를 봤다.
딸이 다니는 미술영재원 어떤 엄마가 그쪽 계통에서 일을 하셔서 고맙게도 카톡에다 무료초대장을 올려주셨다.
나 포함 다른 엄마들이 가족들과 보려고 초대장을 여러 장 받아서 무료로 관람을 하게 되었다.
딸도 같이 가자고 하니 자기는 발레에 관심 없다면서 데이트신청을 거절하여 아들과 둘이서 가게 되었다.
남편은 이런 것에 별 관심이 없어서 물어보지도 않았다.
이 곳에 가끔 좋은 공연이 온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 클래식 공연 보러 갈래?" 물어보면 항상 반응이 시큰둥한 수퍼남매 때문에 나역시 적극적으로 알아보질 않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이렇게 좋은 기회를 잡게 되어 기뻤다.
영화 관람 만큼 클래식이나 발레, 뮤지컬 공연도 나름 재밌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따라나서기 귀찮아하던 아들도 공연 보고나서는 괜찮다고 하였다.
다음에는 여기서 크리스마스 때 " 호두까기 인형 " 발레를 하니까 함께 보러오자고 약속하였다.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창작 발레 "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한 마디로 지독한 사랑 이야기이다.
아이들한테는 조금 난해할 수도 있었겠다 싶다. 냉정하게 말하면 불륜 이야기이니깐.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골로 왕자는 숲에 있는 우물가에서 멜리장드라는 어여쁜 아가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둘은 결혼을 하고 왕과 왕비,이복동생 펠레아스의 환대를 받으며 성에 도착한다.
멜리장드를 본 펠레아스는 한눈에 반하게 되어 그 사랑을 거역하지 못한 채 둘은 위험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둘의 만남을 눈치 챈 골로는 결국 펠레아스를 칼로 찔러 죽이고, 멜리장드는 오열한다.
멜리장드에게 " 펠레아스를 진정 사랑했냐?" 물어보는 골로.
멜리장드는 "네" 라고 대답하고 아기를 낳으며 서서히 죽어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진짜로 발가벗은 갓난아기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아기가 용하게 울지도 않았다.
무대 인사할 때 다시 한 번 등장했는데 울지 않아 정말 신기했다.
제일 열연한 듯하다. ㅋㅋㅋ
아니지 열연했으면 울어야 했나!
골로와 멜리장드도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오자 셋의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가족보다는 사랑을 택한 펠레아스.
사랑은 참 잔인하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사랑에 빠져 행복하게 춤을 출 때
골로는 끓어오르는 질투와 좌절감 때문에 몸을 가누지 못한다.
새롭게 시작한 둘의 사랑은 정말 달콤하지만
남겨진 사람한테 둘의 사랑은 너무 잔인한 일인 듯하다.
난 유부녀라서 그런지 혼자 남겨진 골로의 마음에 더 감정이입이 되었다.
둘의 사랑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골로의 마음 말이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고 하지만
어찌 되었건 선택받지 못한 자, 버려진 자, 남겨진 자 입장에서 보면
잔인한 것이다.
멜리장드를 맡은 발레리나의 몸이 정말 길쭉길쭉하고 가늘어서 참 예뻤다.
우리나라 사람치고는 라인이 정말 좋았다.
다른 발레리나에 비해 단연코 아름다웠다.
그래서 여주를 하는 게 아닌가 싶고...
펠레아스를 맡은 발레리노는 한국인이 아니고 러시아인 같았다.
단연코 다리 길이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역시 동양인은 발레 하기에 신체 조건이 많이 부족해 보였다.
그 속에서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발레리나, 발레리노들이 대단해 보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주가 상의를 탈의하고 나오는데
와! 근육이 장난이 아니었다.
눈앞에서 초콜릿 복근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가장 근사했던 장면은
펠레아스, 멜리장드, 숲의 요정 미샤 셋이 춤 추는 장면이다.
셋이 손을 잡은 채 서로 풀렸다 엮었다 하는데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게 참 멋졌다.
기존 발레 공연 뿐 아니라
이렇게 창작 발레를 내 놓는 것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진부한 내용이 아니라 좀더 색다른 내용이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공연은 딱 사흘이었다.
자리도 꽉 차지 않고 대부분 나처럼 인맥으로 온 사람들 같아서 수지 타산이 맞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런 도전들이 있어야 발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여튼 오랜만에 눈과 귀가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