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거미잡이

김수영


폴리호 태풍이 일기 시작하는 여름밤에

아내가 마루에서 거미를 잡고 있는

꼴이 우습다


하나 죽이고

둘 죽이고

넷 죽이고

...........



야 고만 죽여라 고만 죽여

나는 오늘 아침에 서약한 게 있다니까

남편은 어제의 남편이 아니라니까

정말 어제의 네 남편이 아니라니까


1960. 7. 28


수요일 저녁 7시, 딸과 함께 도봉구청에서 하는 인문학 강연 " 강신주의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 을 듣고 왔다.

강신주 박가는 인기가 많아 자리가 없을지 몰라 조금 일찍 출발하였다.

대강당을 벌써 많은 사람이 메우고 있었다.

시간 맞춰 왔더라면 바닥에 앉을 뻔했다.

자리를 맡아 놓은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여럿 있어

구청 직원이 애를 먹었다.  

앎과 실천은 다른 것임을 또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 5분 지나도 안 오시면 다른 분께 양보하셔야 합니다" 

자리 맡는 행동은 우리나라에만 있을 듯.


지난 번, 고은 시인보다 3-4배 이상 많은 사람이 왔다.

청년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나처럼 자녀 손 잡고 온 사람도 여럿 보였다.

딸한테 "수학 공부보다 이런 강의 한 번 듣는 게 더 낫다"고 꼬드겨서 데려오길 잘했다 싶다.

딸이 집중하여 잘 듣고 강의가 정말 재밌었단다.

강신주 씨의 입담이 대단하고, 추임새처럼 나오는 거친 말이 남자애들한테 자주 듣던 거라 친숙하단다. 


대략 500여 명 정도 온 듯하다.

직장 다니는 사람도 듣게 해 달라고 하여 저녁 시간으로 정했다고 구청장이 설명해줬다.

강신주 박사의 인기는 연예인급인 듯하다.

작년 겨울, 정독도서관에서 " 감정 수업 " 출간 기념으로 했던 강연회에 이어 두번째이다.


앞에 쓴 시는 강연 도중 강신주 교수가 읽어준 김수영 시인의 시이다.

"김수영을 위하여"라는 책도 썼었지. 한번 읽어봐야겠다.

김수영 시인을 많이 좋아하는 느낌이 들었다. 김민기 씨도 그렇고.

(편집을 못해 시가 글 아래에 가야 하는데 그냥 이렇게 놔둔다. 맥북 사용이 아직도 서툴러서....)


아주 편안한 차림- 헐렁한 티셔츠에 츄리닝 같은 반바지 패션-의 강신주 씨는 언제나 자유로와 보였다.

강연 주제가 "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 인 관계로

" 지성인 "이 무엇인가 부터 짚어줬다.

지성인이란 공부를 많이 해서 SKY를 간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 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고 힘 주어 말했다.

아무리 잘 나고 똑똑하더라도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을 어떻게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못 배웠어도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사람이야 말로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단다.

아이에게 그런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주는 게 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여러 번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두서 없이-  본인이 자신의 강연을 그렇게 표현하였다- 처음 들려준 이야기가 바로 김민기 노래 중 하나인 " 백구 " 에 얽힌 사연이었다.


김민기와 양희은은 친구였는데

어느 날, 양희은 집에 놀러간 김민기가 꼬마였던 양희경의 일기를 보게 되었단다.

그 일기를 보고 만든 노래가 바로 "백구"란다.

동영상을 보니 이미 알고 있던 노래였다.

음질이 안 좋아 가사가 잘 안 들렸는데- 유투브에 가면 아이 버전이 있는데 난 이게 훨씬 듣기 좋다-

내용인즉 이렇다.


여자 아이가 키우던 백구가

어느 가을날 새끼를 낳다 병에 걸린다.

동물 병원에 데려가 주사를 맞는데 그만 병원에서 뛰쳐 나가게 된다.

백구를 찾아 나선 아이는 동네 사람에게 백구의 행방을 물어보고,

결국 어떤 아주머니가 혼자 하는 말을 듣게 된다.

" 어떤 하얀 개 한 마리가 차에 치여 숨져 있다"는 거였다.

백구는 그렇게 비명횡사 하고,

아이는 백구의 장례를 치러준다.

그 날 밤 꿈을 꾸게 되는데

백구처럼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꿈이었다.


강신주 박사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이 노래가 다 말해주는 듯하다.

감수성이란 "반응하는 능력"이란다.

아이가 백구의 아픔과 죽음에 반응하여 함께 슬프고, 아팠던 것처럼 우리도 타인에 대해 그런 감수성을 가져야 따뜻한 세상이 되는 거겠지.


그런 의미에서 감수성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으면

1년 안에 죽는(?) 동물을 키워 생로병사를 경험하게 하라고 하였다. 

그렇게 아끼는 동물의 죽음을 경험한 아이가 어떻게 친구를 아프게 하고, 왕따를 시키겠느냐고?

그렇게 첫죽음을 경험하고, 다음에 또 동물을 키우겠다고 하는 아이가 있다면 부모로서 말리지 말라고 하였다.

나도 둘째가 장수풍뎅이가 죽었을때 그렇게 서럽게 울고, 너무 슬퍼해서

다시는 풍뎅이를 안 키울 줄 알았다.

그런데 또 장수풍뎅이를 키운다고 해서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이 두 번째가 정말 중요하단다. 처음은 예상하지 못하고, 갑자기 당한 것이지만

두번째는 이미 아픔과 슬픔이 예고된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키운다는 것이기에 

거기서부터가 진짜라는 것이다.

공감되는 부분이다.

15년 전, 얼떨결에 응급수술을 하여 딸을 낳았다.

둘째를 낳을 때는, 이미 그 고통을 알고 있기에 두번째  수술실 들어갈 때 더 무섭고, 두려웠다.


죽음을 느끼는 세 가지가 있는데

나의 죽음,

너의 죽음,

그들의 죽음이 있다고 한다.


나의 죽음은 내가 죽는 것이니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너의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니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그들의 죽음은 말 그대로 나와 상관 없는 그들의 죽음이니 고통을 느끼지 못한단다.

우리가 말하는 "성인"이라 함은 그들의 죽음이 없고 오로지 너의 죽음만 존재하기에 

모든 사람의 고통에 반응하는 사람이란다. 

반대로

모든 죽음이 그들의 죽음인 사람도 존재한다. 

좋은 사회라 함은 "너의 죽음"으로 느끼는 사람이 많은 상태이고,

반대로 그들의 죽음으로 느끼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나쁜 사회가 되는 거란다. 

그게 바로 좋은 사회와 나쁜 사회를 판가름하는 기준이란다.

세월호 참사가 "너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진 사람은 지금도 함께 아파하는 것이고, 

처음부터 그들의 죽음이었거나 지금은 그들의 죽음이 되어버린

사람은 이제 아파하지 않는 거란다.


내일이 광복 70주년이란다. 

임시휴업일까지 정해 연휴를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일제시대 고통 받았던 분은 진짜 광복을 맞은 게 맞을까!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귀향"이란 영화가 배급사를 구하지 못해 상영을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위안부 할머니의 고통을  "너의 고통" 으로 느끼는 따뜻한 사회였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다.


박사 말이 보통 사람은 항상 너의 죽음과 그들의 죽음에서 왔다갔다 한다고 한다. 맞는 것 같다.

너의 고통, 너의 죽음의 경계가 넓은 사람일수록 인류애가 커지는 거겠지.

그렇게 사는 삶은 분명 힘들고, 어렵다고 한다. 일일이 반응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김수영 시인의 <먼 곳에서부터>처럼 매일 아프다.

반면 모든 것이 그들의 고통, 그들의 죽음으로 인식되는 삶은 편하고, 쉽다. 관심 끄면 되니까.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기 위한 방법으로 "여행"을 추천하였다.

그리고 시를 제대로 읽는 것. 시야말로 무뎌진 감수성을 일깨워주는 매체임이 분명하니까. 

이와 같은 맥락에서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며 살았던 김수영 시인의 시를 네 편 읽어줬다.

특히 난 " 거미잡이"가 제일 와닿았다.

거미를 죽이는 아내를 바라보며

"고만 죽여라" 라 말하는 시인의 마음처럼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능력이 어제보다 오늘 좀더 생겨나도록 노력해야겠다.

먼 곳에서부터


김수영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다시 내 몸이 아프다


여자에게서부터

여자에게로


능금꽃으로부터

능금꽃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



1961. 9. 30


김민기 씨도 이 사회의 마지막 보루가 바로 교육이라고 생각하여 지금은 어린이 창작 뮤지컬에 열심이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 깊은 아이로 자라게 해야 

성인이 되어 무감각하게 살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여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김민기 씨와 강신주 교수 생각에 동의한다.

교육이 가장 먼저 이뤄지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자녀를 가르쳐 본 사람은 다음 시가 가슴에 팍 와닿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들려준 이 시의 의미가 참 크다.

내 아이를 아이로 대한 것인지 아이들로 대한 것인지 반성하게 한다.

우리들의 웃음


김수영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우리나라가 종교국이라는 것에 대한 자신을 갖는다

절망은 나의 목뼈는 못 자른다 겨우 손마디뼈를

새벽이면 하프처럼 분질러놓고 간다

나의 아들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머리가 나쁜 것은 선생, 어머니, IQ 다

그저께 나는 파스칼이  < 머리가 나쁜 것은 나>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우리나라가 종교국이라는 것에 대한 자신을 갖는다

마당에 서리가 내린 것은 나에게 상상을 그치라는 신호다

그 대신 새벽의 꿈은 구체적이고 선명하다

꿈은 상상이 아니지만 꿈을 그리는 것은 상상이다

술이 상상이 아니지만 술에 취하는 것은 상상인 것처럼

오늘부터는 상상이 나를 상상한다


이제는 선생이 무섭지 않다

모두가 거꾸로다

선생과 나는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과 비종교, 시와 비시의 차이가 아이들과 아이의 차이이다

그러니까 종교도 종교 이전에 있다 우리나라가

종교국인 것처럼

새의 울음소리가 그 이전의 정적이 없이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모두가 거꾸로다

------태연할 수밖에 없다 웃지 않을 수밖에 없다

조용히 우리들의 웃음을 웃지 않을 수 없다


1963. 10. 11


2시간 넘게 강연이 이뤄졌고, 뒤이어 질문과 응답 시간까지 합해 30여분이 지났다. 

질문과 응답 시간도 아주 유익했다.

질문자의 의도와 속내를 꿰뚫어보는 박사의 내공에 깜짝 놀랐다.

강연은 다시 <백구>를 함께 감상하는 것으로 끝났다.


집에 와서 아들에게 <백구>를 들려주니

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온이도 언젠가는 죽을 거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먹먹해졌나 보다.

감수성 있는 아이로 잘 자라고 있는 듯하여 마음이 놓인다. 

온이가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 기르기 실천 방법은 

첫째 동물 길러보기

둘째 여행하기

셋째 시 읽기

로 요약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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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08-16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강연 후기 고마워요~~ 강신주 박사 우리 구에도 9월에 와요!♥♥

수퍼남매맘 2015-08-16 11:14   좋아요 0 | URL
박사님 말이 지방을 더 선호한다고.
서울 4대문 안은 잘 안 다니신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동네는 거의 지방 수준이라 오셨다고 하더군요. ㅎㅎㅎ

2015-08-16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6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5-08-16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 기르기!
여행과 시 읽기로 노력해야겠습니다^^
우리도서관에도 9.22에 오세요.

수퍼남매맘 2015-08-17 14:34   좋아요 0 | URL
님 계신 곳에도 가시는군요.
강신주 박사는 강연이 곧 여행이니 감수성이 늘 깨어 있을 듯해요.

2015-08-17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7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