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그러니까 둘째가 여섯 살 때 가족여행으로 제주도에 갔었는데 통 기억을 못 했다.
이래서 너무 어릴 때 여행하면 남는 게 하나도 없는 듯하다.
금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여행 기간이었다.
가기 전 일기예보에서 4일 내내 제주도에 비가 온다고 해서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계획한 대로 다 해봤다.
우도도 가고 말이다. 마라도를 못 가서 좀 아쉽다.
이번 여행은 각자의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남편은 싱싱한 회를 먹기 위해
난 수요미식회에서 극찬한 " 풍림 다방"의 융 드립 커피를 마시기 위해
딸은 영어 학원을 공식적으로 빠지기 위해
아들은 낚시 체험을 하기 위해.
각자 목적을 다 이루었을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부부는 목표 달성을 못 했고
수퍼남매는 성공했다.
부부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한 번 더 제주도를 방문해야 할 듯하다. ㅎㅎㅎ
셋째날 아침, 오픈 시간보다 일찍 풍림 다방에 당도했다.
전파를 타고부터 오랜 시간 대기를 한다는 소문이 있어서 말이다.
인척이 없길래
다방 앞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인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 당분간 개인 사정으로 쉰다"는 안내멘트가 나왔다.
그것 하나 보고 비행기 타고 왔는데.....
도대체 무슨 개인사정이 있을까.
다른 제주도 맛집은 유명세 타도 열심히 장사하더구만.
한창 휴가철이라 손님이 엄청 찾아올 시기인데
이런 때 임시휴업이라니?
주인장 목표가 " 돈 " 아니라 " 내 인생" 인 듯하다.
돈에 구애받지 않아 멋져 보이기도 하였지만
전국 각지에서 주인장의 커피 맛 보러 온 사람이 많은데
메모 한 장, 멘트 하나로 먼 길 온 손님을 이리 돌려보내도 되나 싶어 내심 속상하기도 했다.
유명해지기 전에 왔더라면 주인장이 정성스레 내린 커피와 함께 이야기 한 자락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4일째 되는 날도 숙소와 가까와 한번 들러봤는데 역시나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임시 휴업 중"이었다.
하여튼 다방 앞 경치는 참 아름다웠다. 마을도 아기자기하고 말이다.
모모(개 이름)와 눈인사 나누고 간판 배경으로 사진 찍고 아쉽게 돌아서야했다.
나처럼 수요미식회 보고, 커피 맛 보러 왔다가 허탕친 사람이 꽤 많은 듯하다.
근래 들어 풍림 다방 커피 맛을 본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서도
당분간 풍림 다방의 커피는 맛보기 힘들 듯하다.
꼭 전화로 영업 하는지 확인해 보고 가시길...
풍림 다방 커피 맛을 못 봐 내내 아쉬웠는데
"협재 해수욕장" 근처에서 딸의 뛰어난 눈썰미 덕분에 맛있고 색다른 핸드 드립 카페를 발견하였다.
커피 맛도 일품이었다.
이 곳을 적극 추천한다.
"최마담네 빵다방"이란 곳인데
주인장이 키크고 예쁜 여자분이다.
앞집은 카페고 뒷집은 안채가 있는 구조이다.
제주도 집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인데 아담하고 주인장이 직접 빵을 구워 판매한다.
일회용품은 절대 사용하지 않아 테이크 아웃이 안 되고,
대신 텀블러를 가져오면 할인을 해 준다고 한다.
화장실도 일회용 티슈 대신 1인용 핸드 타월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화장실 휴지도 재생 화장지였다.
여러 모로 주인장이 환경을 꽤 생각하는 분 같았다.
조금만 친절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커피 잘 내리시는 사람은 어쩐지 도도함이 느껴진다. 예전 강릉에 갔을 때도 그랬다.
커피를 좋아하는 것만큼 사람도 좋아했으면 하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일까.
<커피 비경>이란 책에 나온 카페 주인장들은 커피를 좋아하는 것은 결국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고 하더구만.
이 책을 갖고 갔어야 하는 건데( 집에 와서 들춰보니 제주도 카페 2군데가 나와 있었다. )
풍림 다방만 생각하고 안 가져갔다가 맛있는 커피 한 잔 못 먹을 뻔 했다.
하여튼 최마담이
핸드 드립하는 것을 유심히 봤는데
커피잔에 뜨거운 물을 부어 예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게 예사롭지 않았다.
커피 맛도 아주 좋았다.
남편과 내가 공동으로 가장 맛있던 커피로 꼽는 게 강릉의 "히피커피"인데 그것과 견줄 만한 맛이었다.
핸드 드립 솜씨가 아주 훌륭했다.
남편은 인도네시아 만델링, 난 케냐 AA를 마셨는데 피곤이 쫙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딸이 최마담이 직접 구운 시나몬 빵을 먹고 싶어해서 먹었는데 이것도 아주 맛있었다고 한다.
커피와 함께 나온 후추 쿠키도 색다르고 맛있었다.
3박 4일간 제주도를 둘러봤어도 절반도 못 돌아본 듯하다.
제주도가 그렇게 넓은지 몰랐다.
1년만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 제주도를 보지 못 했는데 겨울도 나름 괜찮다고 하니 이번 겨울에 한 번 더 와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제주도에서 아직도 가 보지 못한 곳이 여럿 있다.
송악산도 좋다는데 못 가 봤다.
수퍼 남매 데리고
산굼부리도 못 가봤고, 한라산 백록담도 못 갔다.
갈 때마다 새로와져서 둘러볼 때가 많아지는 듯하다.
이번에는 수퍼남매 체험 위주로 계획을 짰다.
다음에 또 제주도 갈 기회가 생긴다면
올레길도 한번 걸어보고 싶다.
15년 전 남편과 결혼 1주년으로 갔던 우도의 모습이
많이 훼손된 듯하여 너무 안타까웠다.
일단 사람이 너무 많고
여러 가지 생겨난 이동 수단 때문에 정신 없었다.
사고도 많이 난다고 한다.
"서빈백사"도 예전의 그 바다가 아니었다.
두 번 가서도 이렇게 실망하는데
유홍준 교수가 매년 간다는 " 선암사"는 과연 어떤 멋을 간직하고 있길래 매년 가도 질리지 않는 것일까! 정말 궁금하다.
하여튼 이번 제주도 여행을 가서 느낀 건데
두 번 가면 실망하게 되는 게 현실인 듯하다.
두 번 가서 실망하기 보다
한 번의 좋은 추억으로 남겨 놓는 게 더 나은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우도가 나에게 그렇다.
그래도 여행은 언제나 설레고, 즐겁다.
게다가 솥뚜껑 운전에서 해방되어 맛있는 음식을 골고루 먹는 즐거움도 크다.
먹방이 대세이니 먹는 이야기를 다음 편에 해보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