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토요일 딸의 미술 영재 4차 면접이 있었다. 작년에 4차 면접까지 가서 고배를 마시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연말을 좀 우울하게 보냈다. 이번에는 꼭 붙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번 3차 실기 시험을 볼 때는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구내염과 구순염이 동시에 생겨 학교를 3일 동안 결석한 상태였다. 딸말로는 태어나서 가장 아팠다고 한다. 입 안팎이 난리가 나니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해 보는 사람도 안타까웠다. 실기 시험이 제일 중요한데 최악의 컨디션으로도 최선을 다해 힘든 3차를 통과해 준 딸이 정말 기특하였다. 3차에서는 1.3배수를 뽑는다. 최종 20명 선발인데 26명이 면접을 봤다. 면접 보기 전, 구내염과 구순염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온 얼굴에 알러지가 생겨 또 하루 결석을 하였다. 피부과에 가니 의사가 피곤해서 그런 거라면서 약과 연고를 처방해줬지만 면접 때는 온 얼굴이 불긋불긋한 상태로 임할 수밖에 없었다. 일 주일은 간다고 하니 여드름 난 것처럼 당분간 그렇게 지내야 한다. 다행히 가렵지는 않은가보다.
면접 시험은 인성을 물어보는 문제들로 나온다. 올해까지 합하면 4번 면접을 본 건데 딸도 나도 문제들이 기억나지 않아 연습도 못했다. 면접 하루 전 얼굴 두드러기 때문에 집에서 쉬면서 면접 연습 좀 하라고 해도 들은 척도 안 하고.... 시험장, 학부모 대기실에서 초등 미술 영재원에 함께 다니던 엄마를 만나 줄곧 수다를 떨었다. 엄마 둘 이상이 만나면 어쩔 수 없이 아이 이야기, 교육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나 보다. 나 포함 세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눴는데 예고를 보내야 할지 일반고를 보내야할지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예고 보내려면 내신도 아주 우수해야 하고, 경제적 뒷받침도 되어야 하고.... 울 딸은 지금 거창고등학교 간다고 하는데.... 두 엄마는 작년에 중등 미술 영재를 다녔다. 올해까지 합격하면 초2년, 중 2년 그러니까 4년 내내 미술 영재원을 다니는 셈이다. 그런 경우가 참 드문데 재능도 있고 성실하고 게다가 노력파라서 3년 내내 미술 영재원을 다닌 게 아닌가 싶다. 영재원 다녔어도 3차 실기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울 딸은 그래도 매번 3차 실기는 통과하니 영재성과 창의성은 있나보다. @@과 울 딸의 공통점은 미술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 미술 학원을 한 번도 안 다녔다는 점이다. 다른 점은 @@은 성실하고 노력한다는 점, 울 딸은 그게 부족하다는 점. 초등 미술 영재 할 때도 둘이 친하게 지내고, 엄마들도 친해서 둘 다 합격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제발 그러기를.....
면접 시험은 제비를 뽑아 순서를 정한다. 울 딸은 3번을 뽑아서 일찌감치 면접을 끝내고 대기실로 왔다. 면접 문제가 뭐였냐고 물어보자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단다. 해마다 그랬다. 왜 아니겠나? 질문지를 뽑아 5분 동안 답을 메모한 후에 면접관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5분 안에 말하는 것이다. 나라도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날 듯하다. 그러더니 연필을 잡으면 손이 기억할지도 모른다면서 종이를 달라 하더니 정말 하나하나 기억해 내는 것이다.
1번 문제는 만약 다른나라 박물관에서 우리나라 문화재를 봤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2번 문제는 학교 시설물 중에서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고치겠는가?
3번 문제는 동물 로봇을 어디에 이용할 것인가?
1번 문제 듣고 " 그야, 반갑지" 했더니 딸이 " 왜 반가워? 우리나라 문화재를 빼앗아 가서 전시한 건데?" 한다.그렇구나. 엄마보다 낫다. 그래도 이번에는 황당한 문제는 아니고 평범한 문제가 나왔다는 딸의 이야기이다. 작년은 "상자가 하나 있다. 그 안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해서 말해보라" 는 했다는 거다. 3차 실기 시험 문제도 참 당황스러웠다. 딸은 이제 시험을 4번 보니 문제가 익숙하단다. 3차 실기 시험 문제는 " 원기둥을 분활하여 동물을 그리시오" (그리기 문제) " 원기둥을 이용하여 동물 로봇을 만드시오" (만들기 문제) 였다고 한다. 난 문제 자체를 이해 못하겠는데 영재 시험 치르는 아이는 그걸 이해하고 그리고 만든다는 것을 보니 역시 다르긴 다르다 싶다. 제발 합격의 페이퍼를 쓸 수 있도록 좋은 소식이 있기를 응원해 주시길.
2. 알라딘 서재의 달인에 선정되었다. 작년에 이어 2번째이다. 수상 소감 같지만 먼저 내 서재를 방문해서 댓글 남겨 주시고, 별로 잘 쓰지 못한 글임에도 공감 눌러주시고, 관심 가져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내가 쓴 글의 양이 <엄마를 부탁해 >단행본으로 7권 정도라고 하니 그래도 꾸준히 글을 쓰긴 했나 보다. 리뷰보다는 페이퍼를 많이 썼던 한 해였다. 리뷰 100개 쓰기가 목표였는데 절반 밖에 이루지 못한 점은 좀 아쉽다. 페이퍼는 책을 다 안 읽어도 쓸 수 있지만 리뷰는 완전 소화를 해야 쓸 수 있어서 솔직히 리뷰 쓰기가 더 어렵고 정성이 더 들어간다. 내년에는 리뷰를 많이 쓰도록 노력해야겠다. 얼마
전 읽은 책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서 저자가 예민함 즉 인문적 통찰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장치로 세 가지를 추천한 게 기억에 남는다. 수퍼남매에게도 오늘 그 이야기를 들려줬다. 세 가가 안전 장치가 뭐냐면 바로 글쓰기, 운동, 낭송이다. 셋 다 몸을 쓴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은 실천과 체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의 몸으로 표현할 때 비로소 체득이 된다는 것이다. 글쓰기, 낭송은 꾸준히 했었는데 운동은 전혀 하지 않았더니 몸 여기저기 경고등이 켜졌다. 알라딘은 글쓰기를 꾸준히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적합한 장소이다. 낭송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니 이것도 꾸준히 하는 것이고, 마지막 운동 이걸 보다 열심히 해야겠다. 요즘 절운동을 하고 있는데 나름 괜찮다. 실내에서 할 수 있고, 자리도 많이 안 차지하면서 쉽게 따라할 수 있어 좋다. 작심삼일에 그치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하고 있다. 수퍼남매한테 중도에 포기하는 엄마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 아자 아자 파이팅!!!
3. 드라마 <미생>이 끝났다. 다른 결말은 없었다. 이제 무슨 낙으로 사나. 원작을 다 봤지만 드라마 미생이 훨씬 더 생동감 있
었다. 그 이유는 인물의 성격이 더 섬세하게 그려졌다고 할까. 오차장, 안영이, 장백기, 한석율 기타 인물들의 캐릭터가 하나
하나 섬세하게 잘 표현되었고 갈등 구조가 원작보다 더 뚜렷해서 보는 맛이 더 있었다. 19화 20화 보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장그래의 섣부른 말 한 마디 때문에 전무와 오차장이 회사에서 물러나는 것을 보고, 말 한 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평소에는 진중하기 이를 때 없던 장그래도 그런 실수를 저지른다. 모두 미생이기 때문이다. 차가운 강대리가 본사에서 감사온 사감 선생 같은 여자를 흠모의 눈길로 보는 장면은 진짜 웃겼다. 상사 속도 모르고 사감 선생 같은 대리 보다 신입 사원이 취향이라는 말을 해버린 장백기를 향해 " 여자 취향이 그 정도입니까? 실망입니다" 라고 말하는 강대리의 모습은 코믹했다. 이처럼 주인공 장그래 뿐만 아니라 원 인터내셔널에 근무하는 한 명 한 명의 캐릭터가 잘 드러난게 드라마 미생의 매력이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회 김대리가 오차장이 새로 차린 사무실에 들어와서 벌어지는 일은 개그 콘서트보다 웃겼다. 직장을 다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김대리의 마음을 알 것이다. 일은 아무리 힘들어도 버틴다. 하지만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는 것은 버티기가 힘들다. 오차장, 장그래가 떠난 영업 3팀. 대화보다는 페이퍼로 사업 이야기 하자는 새상사는 김대리에겐 견디기 힘든 환경이었을 것이다. 학교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게 메신저와 페이퍼로 대신하는 게 많아졌다. 인간미가 없어졌다. 각자 교실에 콕 박혀 있으면 하루종일 동료 얼굴 한번 마주치기도 힘들다. 전에는 커피 타임이다 해서 잠깐이라도 모여서 이야기 나눴는데 요즘엔 겨우 1주일에 1번 회의할 때 만나는 학년도 많다고 한다. 만나야 정이 드는데 만날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 학교도 점점 개인주의가 심해지고, 삭막해져 간다. 난 그게 정말 싫은데 다른 분들은 잘 견딘다. 아니 그게 더 좋다는 분도 있다. 난 영업 3팀 라인인가 보다. 얼굴 맞대고 이야기하는 게 좋다. 메신저나 페이퍼는 딱딱하고 인간미가 없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길이 아닌 게 아니라는 오차장의 말. 여러 사람이 함께 가면 곧 그게 길이 된다는 말. 멋지다. 오차장 같은 좋은 선배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직장에서 존경할만한 상사를 만나는 것,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동지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큰 복이다. 난 운좋게도 가는 근무지마다 그런 선배를 꼭 한 분씩 만났더랬다. 진짜 감사하다. 이제는 내가 그런 선배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위치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직장에서 그런 동지가 있으면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버틸 수 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김대리가 잘나가는 대기업을 박차고 오차장을 찾아 온 것이 이해되고 그런 용기를 낸 김대리에게 박수를 보낸다. 전무도 젊었을 때는 오차장 같은 초심으로 일했을 게다. 어쩌다 전무는 초심을 잃어버렸을까. 욕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린 누구나 오차장처럼 살 수도 있고, 최전무처럼 살 수도 있다. 내 선택에 달려 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서 저자의 말을 되새겨 본다. "자신의 욕망대로 살아라." "자신이 바라는 일,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라." "행복한 개인이 모인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이다." 라는 말도 명심하자. 영업 3팀은 자신이 바라는 일,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