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남편과 오랜만에 데이트를 했다.

연애할 때는 정말 자주 가던 곳이 극장이었는데

결혼하고 애 낳고, 양육하다보니 둘이서 잘 안 가게 되는 곳 또한 극장이 되어 버렸다.

남편은 주로 혼자서 영화를 보고

난 주로 아이들과 영화를 보니

단둘이 영화를 보게 될 일이 거의 없었다. 에궁!!!

둘만 남겨 놓고 가는 게 내내 마음에 걸렸지만

아이들은 부모님이 안 계시니 그야말로 해방구를 맛본 셈이었겠지.

(중간에 누나와 싸웠는지 아들이 한 번 울면서 전화를 하긴 했다.)

 

세계 3대 해전 중의 하나라고 하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 해전"을 영화로 만든 "명량" 시사회를 다녀왔다.

작가와 감독이 이순신 배역을 놓고 처음부터 다른 배우는 생각해 보지 않고 무조건 "최민식"씨를 염두에 뒀다고 하니

최민식 씨가 그려내는 이순신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영화화 하기 쉽지 않은 해전을 어떻게 그려낼까 하는 게 이 영화를 보는 관전 포인트였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 남편이

" 당신이 생각하기에 흥행할 것 같아?" 묻는다.

난 취향이 대중적인 편이어서 흥행 성공을 잘 맞추는 편이다.

" 음~ 별로 흥행 못 할 것 같아. 너무 진지해!"

아뿔사! 오늘 뉴스를 보니 내 예상이 빗나가서  개봉 3일 만에 관객수 200만을 넘어섰단다.

예상은 빗나갔지만 반가운 일이다.

이런 영화는 꼭 봐줘야 한다.

40대 이상 남성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고 하니

드라마 "모래시계" "정도전 " 같이 중년 남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이 생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 우리도 이순신 장군과 같은 그런 인물을 갈망하기 때문에 이 영화에  빠져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백성과 소통하고, 백성의 고통에 공감하고,

무조건 명령하기보다 자신이 몸소 죽기를 각오하고 적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백성에게 보여줌으로써

백성의 두려움을 진정한 용기로 변화시키는 그런 카리스마 말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을 꼽으라 하면

한글 창제의 업적을 이룬 세종대왕과 아마 막상막하를  견줄 사람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 아닐까 싶다.

영화 명량에서 최민식이 보여주는 이순신은 그동안 알고 있던 이순신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라서 좋았다.

영화 에피소드 중의 하나를 예로 들면 이렇다.

12척의 배만 남겨진 시점에서 백성과 병사들의 사기 저하는 물론이거니와 왜군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극에 달해 있다.

병사들의 탈영이 속출하는 가운데

탈영병 한 명이 잡혀 오고 이순신 장군과 대면한다.

그는 울면서 "살고 싶었다, 죽음이 두려웠다"고 말하고

이순신은 " 다 말하였느냐?" 하고나서

그의 목을 단칼에 베어 버린다.

군율을 어긴 자는 마땅히 엄하게 다스려야 하는 것이라면서 말이다.

기존 이순신 이미지였다면 따듯하게 병사를 위로하고 용서할 줄 알았는데

그런 예상을 깨고 단칼에 목을 베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자상하고 인자한 모습의 이미지로만 이순신을 기억하고 있다면 영화 명량에서는 단호한 장군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어떤 이순신을 그려낼 것인지

작가, 감독, 배우가 고민한 부분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기존의 이미지로만 끌고 가기에는 너무 식상하고,

그렇다고 새로운 이미지를 부각시키면 기존 이미지와 충돌이 심해 역효과가 날 우려가 있고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기존 이미지와 새로운 이미지를 잘 버무렸다고 할 수 있겠다.

 

이순신 장군과 아들 이회가 주고 받는 대화가 참 마음에 와닿는다.

흔히 충성을 말할 때 임금에 대한 충성을 떠올리는데

이순신은 "백성에 대한 충성"이라고 대답한다.

엔딩신에서 아들과 주고 받는 대목 또한 명대사이다.

명량 해전을 승리로 이끈 천행이 울돌목에 생긴 회오리이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순신은 그 천행 또한 백성이라고 대답한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 그것이야 말로 12척으로 330척을 물리친 기적 같은 명량 해전을 이끈 천행이라는 것이다.

 

충이라는 함은 백성에 대한 충성을 뜻하며,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이야말로 천행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지도자들이 많아진다면

지금보다는 좀더 살만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 명량 해전을 소재로 한 그림책을 아이들과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이 담 작가의 그림이 아주 인상적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08-02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03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망찬샘 2014-08-03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 보고 싶어지네요. 남편과의 오붓한 시간~ 참 좋아요. ^^

수퍼남매맘 2014-08-03 16:30   좋아요 0 | URL
귀가하시면 남편분과 꼭 보셔요. 요즘 이 영화가 대세인가 봅니다.
우리 시대에도 이순신 같은 인물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마음들이 극장으로 향하게 하는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