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교시 책 읽어주는 시간에 책 자리에 앉힌 후, 세 책 중에서 골라보라고 하니
아이들이 이 책을 선택하였다.
권사우 그림 작가가 그린 책으로
겉표지를 보면 지금 날씨처럼 좀 으스스하다.
커다란 그릇을 들고 있는 색시의 손은 과장되게 크며,
얼굴 또한 분장을 한듯이 허여멀겋다.
이쁜 그림은 아니다.
아이들은 별로 이쁘지-다른 두 책에 비해서- 않은 그림의 이 책을 왜 선택했을까? 궁금하다.
몰래 색시를 엿보고 있는 남편의 얼굴 또한 귀신처럼 하얗다.
내 느낌상 꼭두를 보는 듯하다.
도대체 이 부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읽어주기 앞서 아이들과 약속을 하나 정했다.
선생님이 책 읽어줄 때 옆사람과 장난하는 게 세 번이 되면
선생님은 그대로 책을 덮겠다고 말이다.
(최은희 선생님이 그렇게 하셨단다. 그러면 아이들은 꾸러기들 때문에
행여나 선생님이 책 읽기를 그만둘까 봐 귀 쫑긋 세우고 듣더란다.)
그 말을 해서 그런지
아니면 잘 듣는 친구에게 사탕을 준다고 해서인지
오늘은 단 한 사람만 딴짓을 하였다.
욕심 많은 남자가 색시를 얻었는데 입이 함지박만한 색시다.
이 색시가 얼마나 밥을 많이 먹던지 상상초월이다.
남자는 점점 곳간의 곡식이 줄어들까봐 근심이 쌓여간다. 아내가 밥 많이 먹는 게 그렇게 아까울까?
어느 날, 남자는 색시가 얼마나 밥을 많이 먹는지 실험을 하는데 색시가 가마솥에 있는 밥을 다 먹고,
그것도 모자라 콩을 볶아 먹는 것을 보고 자기도 먹을까 봐
아내의 배를 콕 찌르고 그만 아내는 배가 터져 죽는다.
남자는 새장가를 드는데-아내가 죽었는데 슬퍼하지도 않는다.-
이번에는 입이 개미구멍만한 여자라 밥을 겨우 세 알 먹고도 배부르단다.
아까 고봉으로 담긴 밥과 밥알 세 개 담긴 밥 그릇은 아주 대조적인 게 인상적이다.
새색시가 밥을 적게 먹자 신이 난 남자는 머지 않아 곳간에 곡식이 그득 차겠구나 생각하고
색시에게 밥을 좀 줄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겨우 밥 세 알 먹는데 어디 줄일 게 있다고? 남편의 욕심이 대단하다.
그렇게 두 알로 줄이고, 결국 한 알까지 내려간다.
다이어트가 절로 되겠다.
이렇게 절약을 했으니 곳간에 곡식이 그득하겠지 싶었던 남자는 곳간 문을 열어보고 깜짝 놀란다.
곡식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 몰래 숨어 밥 안 먹는 색시가 무얼 하나 엿보는데....
밥 한 알 먹고
" 모자라네, 모자라" 하던 색시는 우리가 상상하던 이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ㅋㅋㅋ
전에 이 책을 봤을 때도 깜짝 놀랐는데
오늘 아침에 보고 또 놀랐다.
참 기발하다 싶다. 옛이야기에도 이런 멋진 반전이 숨어 있다는 사실.
밥 안 먹는 색시의 숨겨진 모습.
그 장면을 보자 아이들이 "꺅" 소리를 질렀다.
진짜 엽기적이다.
내 생각에는 남자가 배를 찔러 죽었던 첫째 번 색시가 너무 억울하여 남편을 혼내주러 온 게 아닐까 싶은데...
예전에 어떤 일본 영화-제목이 생각 안 난다-에서
보고 있던 TV에서 머리를 산발한 귀신이 어그적어그적 나오던 그 장면만큼이나 충격적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했다.
함지박만한 입.
개미구멍만한 입. 이런 표현이 참 맛깔나다.
밥 좀 많이 먹는다고 찔러 죽이고,
밥 적게 먹는 색시더러 더 적게 먹으라고 주문하는 이 남자는 도대체 아내의 존재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자신의 욕심에 따라 색시를 조정하던 남자의 몰락은 그래서 통쾌하다.
어쩌다 보니 계속 색시가 나오는 옛이야기를 읽어주고 있다.
색시가 나오는 옛날 이야기가 또 있나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