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개학 전날이면 잠을 설친다.

혹시나 알람을 못 들어 지각을 할까 염려되어 어젯밤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딸도 걱정되는지 옆에서 계속 부시럭거렸다.

다행히 제 시간에 기상하여 출근 준비를 하였다.

오늘부터는 아이들과 걸어다니기로 하여서 걸어서 갔다.


우리 반 꼬맹이들은 한 명도 지각없이-어제 학부모님게 일찍 재워달라고 문자를 다 돌렸다.- 제 시간에 교실에 들어와 

칠판에 써진 대로 그림책을 골라 읽었다.

39일 동안 난방기를 가동하지 않은 상태라서 교실은 조금 냉기가 느껴졌지만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1교시부터 공부하면 아이들도 나도 적응이 안 되니 준비체조 삼아

"겨울 방학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 발표하기를 하였다.

먼저 종합장에 한 번 써 보라고 하였다. (5분 동안)

쓴 내용을 가지고 짝에게 1분 동안 말하는 연습을 하였다. (1분 동안)

그 다음 앞에 나와서 전체를 대상으로 방학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발표하였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말한 것은 "겨울 왕국 관람" 이었다.

절반 정도의 아이들이 이 영화를 봤다고 하다.

아직 안 본 아이들은 꼭 보라고 말해줬다. 아주 감동적인 영화라고.

우리 수퍼남매도 그 영화를 보고와서 1주일 동안 내내 "Let it go"를 불러대서 나도 이 노래를 중얼거리게 되었다.

주제가도 덩달아 대박 났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야외 체험을 말하지 않는 걸로 봐서

올 겨울 방학은 집이나 실내에서 하는 체험을 주로 한 듯하다.


18명의 발표(1명은 결석)가 모두 끝난 후 아침독서시간에 읽은 책을 읽어줬다.

제목은 <노란 양동이>이다.

몇 년 전에 읽은 기억은 나는데 내용은 통 생각이 안 났다.

아마 리뷰를 안 써서 그럴 것이다.

리뷰를 써야 기억에 오래 남는다.

좋은 책 목록에 항상 들어 있는 책이라 책장에서 꺼내 아침시간에 읽어봤는데

내용과 주제가 참 좋아서 아이들에게 읽어줘야겠다 싶었다.


아기 여우가 우연히 발견한 노란 양동이.

주인 없는 양동이를 덥석 가지지 못한 아기 여우는

친구인 아기 곰과 아기 토끼의 조언대로

일 주일을 기다려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 양동이에 자신의 이름을 써서 가지기로 한다.

고작 양동이 하나.

그냥 가져갈 법도 한데(누가 본 것도 아니고 말이다.)

양심을 지키는 아기 여우의 모습과

세찬 비가 몰아칠 때 그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양동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슬픈 표정을 짓는 여우의 모습에서

"공감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가 전해졌다.

그새 누가 가져갔을까 봐 하루에도 몇 번씩 외나무다리 옆에 있는 노란 양동이를 찾아가 문안을 드리는 여우의 모습에서

작은 물건 하나에도 온갖 정성을 다하는 여우의 고운 마음결이 느껴졌다.

그에 비하면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자신의 물건에 대해 소중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을까!

예전에 나는 지우개 하나라도 교실에서 잃어버리면 끝까지 찾고야 말았는데

수퍼남매만 해도 학용품이나 장난감에 대한 애착이 너무 없다.

학용품, 장난감이 너무 많아서겠지.

아기 여우는 자신의 것이 되지도 않은 주인 없는 노란 양동이에 대해서도 참 지극정성이다.


월요일에 발견한 노란 양동이.

다음 주 월요일까지 주인이 나타날까 나타나지 않을까 조마조마 이야기는 전개된다.

내가 실감 나게 읽어줘서인지(자화자찬) 우리 반 아이들이 아주 귀 기울여 잘 들었다.

드디어 월요일,

항상 있던 자리에 노란 양동이는 없었다.

친구 아기 곰과 아기 토끼가 아기 여우를 위로해 준다.

나 같으면 너무 속 상해서 꺼이꺼이 울 듯한데

여우는 "괜찮아!" 라고 말한다.

지난 일주일 동안 노란 양동이로 인해 좋은 추억이 생긴 것으로 충분하다는 아기 여우의 말에 가슴이 찡하다.


결말이 노란 양동이가 아기 여우의 것이 되었다면 이 책의 감동은 훨씬 덜하였겠지.

일 주일 동안 그렇게 애지중지 하였건만

운명은 얄궂게도 아기 여우에게서 노란 양동이를 빼앗아 갔다.

물론 처음부터 노란 양동이는 아기 여우의 소유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 주일 동안 노란 양동이를 지켜보면서 아기 여우는 행복했고,

어쩌면 마음 저 밑바닥에서 ' 저게 내 양동이가 되었으면' 하는 욕심도 스멀스멀 올라왔을 것이다.

노란 양동이 대신 비싼 물건이나 돈다발이라고 생각해 보면

욕심이 생길 법하다.

이 명제 가지고 도덕 수업을 해도 좋을 듯하다. 또는 토론 수업?


노란 양동이가 없어지고 나서 아기 여우가 보여준 어른스러운 행동은 본받을 만하다.

아무리 지극정성을 다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내 것이 되지 않는 경우가 살다보면 꽤 많다.

그럴 때 자족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좋은 인생 공부라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해 본다.

노란 양동이를 발견한 첫 날, 그걸 냉큼 가져갔다면 여우는 양심 없는 녀석일 뿐이었을 것이다.

가지고 싶어도 참고 기다리는 여우의 인내심과 절제력

사라졌다고 해서 분노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양동이와 함께한 추억을 떠올리는 아기 여우의 어른스러움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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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4-01-28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학을 하셨군요.
우리는 명절을 보내고 개학을 합니다.
노란 양동이... 읽으면서 조마조마했던 그 기억~

수퍼남매맘 2014-01-28 07:37   좋아요 0 | URL
아하! 부산은 개학이 늦군요. 오늘과 내일만 나가면 또 며칠의 황금연휴가 있다는 이 설레임....

마노아 2014-01-28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체 관람가 영화가 극장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게 흐뭇해요. 온 가족이 함께 열광할 수도 있고요.^^

수퍼남매맘 2014-01-28 18:5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오랜만에 온가족이 열광할 수 있는 애니가 나왔어요. 연휴동안 더 많은 관객이 보게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