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7시, 딸과 함께 최은희 선생님 강연회에 다녀왔다.
좀 일찍 출발하여 인사동을 둘러 보고, 저녁도 먹으려고 하였다.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 정독 도서관 가까운 곳에서 저녁만 먹게 되었다.
정독 도서관 올라가는 길이 참 예뻤다.
인사동에 굳이 갈 것 없이 삼청동 길도 볼거리, 먹거리가 참 많았다.
다음에는 낮에 와서 찬찬히 둘러봐야지.
강의실에 도착하여 출석 사인을 하고 좋은 자리를 찜했다.
일찍 오길 잘했다.
늦게 왔으면 후미진 구석 자리에 앉을 뻔 했다.
둘러보니 150명 정도 모인 듯하다.
평일, 7시에 그 정도 숫자만 꽤 많이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독도서관은 도서관이라기보다 대학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어두워 잘 보이진 않았지만
도서관 앞 정원도 꽤 넓고, 여러 가지 문화 시설도 많고, 다양한 강좌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열람실을 안 가봐서 그 곳은 잘 모르겠고, 외관만 보면
내가 가 본 도서관 중에서는 최고이다.
최은희 선생님의 소개가 있었다.
첫 인상은 옆집 아줌마 느낌이랄까! 단언컨대 교사의 이미지는 아니었다.ㅎㅎㅎ
선배님들은 어디 나가면 처음 보는 분들이 금방 직업을 알아차릴 정도로 교사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최 선생님은 그렇지 않았다. 이 부분은 양가적 해석이 가능하다.
선생님은 자신의 미모를 연거푸 강조하시며 웃음을 선사하셨다. ㅋㅋㅋ
꾸미지 않은 수수한 모습과 약간 넉넉한 풍채에, 목소리는 꾀꼬리처럼 낭랑하셨다.
어젯밤에도 큰 아들과 한바탕 하셔서 온몸이 뭉쳐서 기치료를 받고 오셨다고 첫인사를 하셨다.
두 아들이 아직도 자신의 큰 스승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문을 여셨다.
선생님은 책에서 세 명의 스승을 말하고 있다.
첫째는 멘토가 되어주시는 진짜 스승님들.
둘째는 커다란 스승으로 온 자신의 두 아들.
셋째는 불편함을 주는 그림책들.
이 셋이 선생님의 고양이 꼬리 같은 존재라고 털어 놓으신다. 나는 어떤 스승들을 모시고 있을까.
강연 내내 아들의 일화를 꺼내 주셔서 귀에 쏙쏙, 마음에 쏙쏙 들어왔다.
학교 아이들, 우리 아이들도 내 스승이 되어 주겠지!
선생님은 우리 사회가 실패를 공유하지 않은 사회라는 것을 아이들이 엇나가기 시작할 때 비로소 알게 되셨다고 한다.
옆집 아줌마들은 하나같이 자녀들의 성공담을 늘어 놓은데 왜 나만 이렇게 애들 때문에 힘들까 생각하셨단다.
더구나 친한 친구는 승승장구하는데 난 왜 이 모양이지 할 때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단다.
친구와 만난 날은, 마그마 같은 분노가 끓어올라 여지없이 가족에게 퍼붓게 되고, 급기야 몸이 아프기도 했단다.
내 경험상 마음이 아프면 몸이 따라 아프게 되어 있다.
나도 전에 대학 친구 모임 갔다오면 꼭 남편 바가지를 긁곤 했었다.
그녀들 앞에서 쿨 한 척 해도 절대 마음은 그렇지 않아 부글부글 거리는 마그마를 남편에게 쏫아내곤 했었다.
선생님은 수많은 사람들의 성공담이 어쩌면 허세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잘 포장해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런 성공담 뒤에도 아픈 이야기들이 무수히 숨어 있는데 아름다운 부분만 쏙 뽑아서 자랑을 했던 거라고.
실패담까지도 속속들이 꺼내 놓을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데
우리 사회는 성공담만 공유하는 사회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철저히 자신들의 아픔과 실패는 꼭꼭 감춘 채 성공만 부풀려 말하는 사회가 우리 사회인 것이다.
그런데
강연을 하러 다닐 때, 자연스레
자신의 아픈 이야기, 실패한 이야기들을 꺼내 놓으니 청중들이 고개를 끄덕끄덕, 더 열렬히 지지를 하더란 것이다.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지 누구나 그런 실패담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누구의 성공담을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의 실패담에 더 공감하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는 것을 그 때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도 강연을 듣는 입장에서
잘난 체 하는 강사보다 자폭하는 강사의 말에 더 공감하고
강사의 실패담에 무장해제되어 더 강의를 잘 듣곤 한다.
아픔과 실패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나부터도 글을 쓸 때
나와 우리 가정은 전혀 아픔이나 불행, 슬픔이 없는 것처럼
성공한 이야기, 행복한 이야기들만 썼던 것 같아 반성을 하였다.
나의 슬픔이, 나의 아픔이, 나의 실패가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고, 공감과 희망의 단초가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실패를 공유하는 사회가 되자.
그 첫마디부터 공감이 팍 되면서 저 밑으로부터 커다란 지지가 생겨났다.
선생님은 강연 내내, 자신이 아팠던 이야기, 괴로웠던 이야기, 실패했던 이야기들을 쏟아내셨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마음으로 공감했다. 나부터도.
하다 못해
책을 그렇게 많이 읽어주고, 책도 여러 권 낸 선생님의 자녀인데도
두 아들은 한글을 깨치지 못한 채로 학교에 입학하였단다.
책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단다. 70쪽 넘어가는 책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단다.
나도 그 기분 안다. 수퍼남매도 책벌레가 아니다.
부모는 책을 좋아하는데 집에 책이 사방팔방 있어도 스스로 책을 즐기지 않아 얼마나 애 타는지 모른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공감대는 또 한 번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책 좋아하는 부모 밑에서 책 안 좋아하는 아이가 나올 수도 있다.
그걸 인정하기 까지 얼마나 내 안의 나와 싸워야 했던가!
옆집 아줌마 아이처럼
그림책을 매일 읽어줬더니 아이가 스스로 한글을 깨치고, 학교 들어가서 공부도 잘하고, 모든 상을 휩쓸고,
사춘기도 겪는 둥 마는 둥 지나가고, 스카이 대학 진학에, 좋은 직장 취업,
게다가 집안 빵빵한 곳으로 시집, 장가 잘 가고 등등
이런 자녀 양육 성공담들은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모두 공감하지 않는가!
많은 아픔들과 실패들은 외면한 채
가장 빛나고 행복한 순간들만 캡쳐해서, 부풀려서 옆집 아줌마에게 전하지는 않았던가!
옆집 아줌마의 그 말만 듣고 난 우리 아이들을 다그치지는 않았던가!
서천석 박사님 말씀이 또 생각난다.
옆집 아줌마 말이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에 절대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말이다.
선생님이 들려주신 에피소들 중에 헬리콥터 엄마 이야기는 완전 대박이다.
얼마 전 제주도 강의를 하러 가야 해서 비행기를 타셨단다.
그 비행 시간(50분 정도)동안 줄기차게 통화를 하는 어떤 아주머니가 있었단다.
친구랑 통화를 하는데 앞뒤 사람들이 다 들릴 정도로 목소리 세기를 크게 해서
자식 자랑을 한도 끝도 없이 늘어 놓더라는 것이다.
학교 선생님들은 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부터 시작해서
어떤 학원을 보내야 하며, 어떻게 해야 외고를 보낼 수 있으며 등등
자세히 이야기 안 해도 그 상황이 다 그려진다.안 봐도 비디오다.
그렇게 비행기 타는 내내 주위 사람들이 다 들릴 정도로 통화를 하신 그 분의 마지막 말이.
" 근데 자기야, 우리 둘째가 나 닮아서 배려심이 많아, 호호호!"
뒤로 넘어가겠다.
친구와 대화 중에 자신의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자식 이야기로 시작해서 자식 이야기로 끝나는 그 분의 삶은 과연 풍요로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년 이상 여성 모임 즉, 학부모 모임, 동창 모임, 계 모임 온갖 모임에 가면 모두 자녀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걸로 끝난다.
갓난 아기부터 장성한 자녀까지 오로지 자녀 이야기 뿐이다.
"나"는 없다. 참 슬픈 현실이다.
이런 내가 온전히 자식을 사랑하고 있을까!
내 맘대로 자식을 조정하려고 하겠지.
선생님은 부모가 갖는 이런 문제점-자식만 바라보는 잘못된 부모관-을
" 해와 달이 된 오누이"라는그림책으로 부연 설명해 주셨다.
거기에 나온 호랑이가 바로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 하는 부모의 또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다.
"사춘기"라는 것은
결국 부모 품 안에 있던 자녀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성인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훈련 과정인데
부모는 그 자녀를 언제까지 자신의 품안에 끼고 살면서 조정하려고 든다는 것이다.
그 호랑이의 모습이 선생님의 모습 같아 불편하였다고 한다.
내가 장렬하게 전사해야 자녀가 올바른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데
나는 호랑이처럼 끝까지 오누이를 쫓아가서 잡아먹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온 아들을 잡아먹는 크로노스처럼 말이다.
특히 386 세대들은 자신들의 부모도 잡아먹고, 자녀도 잡아먹는 크로노스들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셨다.
호랑이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은 마주하기 힘든 참 불편한 진실이다.
결국 비행기 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식 자랑을 늘어놓던 그 아줌마의 모습이 내 안에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겁난다.
어쩌겠나!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가 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지.
"나"를 먼저 돌아보고, 살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자식만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가 없어지고, 급기야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가 될 수밖에 없다.
자녀는 해와 달처럼 또 다른 객체로 나아가야 할 존재이지
내가 잡아먹을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수수밭에 떨어진 호랑이처럼 내가 장렬히 전사해야 한다는 말씀 기억하자.
선생님은 또 다른 그림책 <해골이 딸꾹>을 보여주시며 "나"와 직면해야 한다고 하셨다.
선생님이 자녀 문제로 고민하고, 힘들고, 괴로울 때, 이 그림책에 나온 해골의 모습이
바로 자신으로 투사되었다고 한다.
잠에서 깨어난 해골이 갑자기 딸꾹질을 하게 된다.
이걸 멈추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을 총동원하고,
어디선가 나타난 유령(선생님은 내 안의 현자라고 하셨다.)의 지시에 따라 다양한 시도를 해 보지만 멈출길이 없다.
마지막 유령이 내세운 방법은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보라는 것이었다. 와! 진짜 대단한 그림책이지 않는가!
그런데 절판되어 구할 길이 없다. ㅋㅋㅋ
살다 보면 딸꾹질처럼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럴 때 외면하고, 회피하고, 도망가기보다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나를 들여다 보는 것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하셨다.
이것과 관련하여 꿈 이야기도 많이 해 주셨는데 생략한다.
한 가지
여자 아이들이 뱀 관련 꿈을 꾸는 것은 머지 않아 생리할 수 있다는 메시지란다.
"꿈이라는 것은 신이 보내 준 연애 편지" 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꿈 속에 나오는 모든 것들은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꿈 공부도 오랫동안 하셨단다.
결국 사춘기 자녀와의 문제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문제도 그들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의 문제였음을 이 그림책을 통해 불편하게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쓰신 책 보고 남편과 나 모두
이 분 내공이 대단한데...... 감탄했었는데
오늘 강연을 들어보니 그림책에 대한 해석이 정말 예리하고 독창적이었다.
아! 나는 언제쯤 그런 단계에 오를 수 있을까 심히 부러워졌다.
그림책 하나에도 이런 철학적인 내용들을 찾아내고, 풀어낼 수 있는 창조적인 독자가 되려면
그림책도 찬찬히, 꼼꼼히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고양이 꼬리가 그림책들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되새겨 본다.
이런 그림책들을 보면서 선생님은 얼마나 불편한 진실들을 대면하고, 아프고, 절망하고, 사색하고, 용기를 내었을까 생각하니
그 고단한 과정이 조금은 이해된다.
어른에게 있어서 그림책은 불편함을 느끼게 해 주는 존재라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그런 듯하다.
직면하기 싫은 내 모습, 현실들을 바라보게 한다.
마지막 읽어준 그림책은 바로 이것이다.
세 권 중 두 권은 우리나라 옛이야기 그림책이다. 선생님의 우리나라 그림책 사랑이 느껴진다.
선생님은 우스갯소리처럼
외국그림책은 도서실에서 빌려보셔도 되지만 우리나라 그림책은 꼭 사서 보시길 바란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아까 이야기한 <해와 달이 된 오누이>도 여러 출판사 버전이 있다. 나도 확인한 바이다.
사계절에서 나온 버전을 독서운동가들이 추천하는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어떤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조악스러운 그림에다
채록본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채로 글을 쓴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좋은 그림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독자가 그림책을 돈 주고 사는 것이야말로
좋은 작가가 좋은 그림책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나쁜 그림책을 발 붙이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뒤집힌 호랑이>도 다수의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보림 것을 최고로 생각한다고.
나도 다른 출판사 버전을 읽어봤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 이 책이 으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옛이야기는 저학년 어린이들이 많이 읽는 만큼 다수의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있으니 꼼꼼히 따져보고 선택해야겠다.
이 책에 대한 선생님 설명은 정말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좋은 만큼 할 말이 많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총총.
<별에서 온 그대>할 시간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