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알라딘 지인을 통해서였다. 그 분이 추천하는 책이라면 믿을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방학하자마자 이 책을 손에 들었다. 박웅현 이라는 유명한 광고인의 독법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소개한 책들을 나도 하나하나 읽어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생기는 걸로 봐서 이 책은 참 잘 쓰여진 책이다. 비단 광고 뿐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지 저자처럼 다양한 책들을 꼼꼼히 씹어 읽어야 커다란 울림을 느낄 수 있고, 그래야 나에게 울림을 주었던 책들을 다른 사람에게도 이렇게 잘 소개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두기에는 아까운 책이다. 두고두고 필요할 때마다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광고라는 일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굉장히 창의성을 요구하는 일이다. 저자는 자신이 이 일을 24년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책읽기라고 한다.  저자는 다독보다는 정독을 하는 편인데 아주 꼼꼼히 씹어서 읽는 스타일이다. 읽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밑줄을 긋고, 밑줄 그은 것을 메모지에 써서 작업실 등 잘 보이는 곳에 여기저기 붙이고, 다시 워드로 작업하여 필요할 때마다 들여다 본다. 저자의 이런 습관 덕분에 이 책이 나오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저자는 책 한 권을 읽을 때 아주 천천히 음미하며 읽는다. 나도 이 책을 읽을 때 저자의 습관을 닮아보려고 몇 군데 옮겨 적어봤지만 그 일이 만만치 않았다.  일단 내 글씨체가 맘에 안 들었다. 저자의 글씨체 보니 뭔가 예술적인데 말이지. 손글씨보다 워드가 더 편하게 느껴지는 터라 조금만 옮겨 적어도 매우 힘들었다.  적는 것이 힘든 만큼 적을 때 한 번 더 곱씹어 보는 잇점은 있었다. 아무튼 몇 군데 옮겨 적어 보니 저자의 끈기가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저자가 추천해 준 책들 중에서 내가 읽은 것도 있고 안 읽은 책도 있었는데 울림을 주는 부분에 밑줄을 그으면서 읽었다. 꽤 여러군데다. 다음에 읽을 때는 지금 놓친 것들이 또 다른 울림을 주어 밑줄이 더 많아지리라는 확신이 든다. 이래서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이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말이 나오는가 보다.


사실적으로 글을 쓰신다는 김훈 작가의 책도 읽어보고 싶고, 판화에 쓴 짤막한 글이 큰 울림을 준다는 이철수 판화가의 책도 궁금하다. 2012년 가을, 출판 도시 파주에서 만났던 고은 시인의 시도 이제는 읽고 싶어졌다. 그 때 강연하실 때도 술이 고프시다며 진행자들에게 소주를 요구하셨다가 포도주 밖에 없어서 포도주로 목을 축여가시면서 시를 읊으셨는데 이 책에도 애주가의 술에 관한 재미 있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지중해 문학에  대한 소개를 읽고나서는 반드시 지중해 나라를 여행하리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면 지중해적 사고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가장 난해했던 것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는데 대학 다닐 때 분명 읽었는데 기억이 도무지 나지 않는다는 것에 한 번 절망하고, "키치"라는 개념과 니체의 "영원회귀"사상이 언뜻 이해되지 않아 내 이해력에 두 번 절망했다. 하여 이 꼭지는 두 번 읽었다. 두 번째 읽으니 조금 이해가 되어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세 번 네 번 읽으면 더 이해가 되겠지 하는 믿음이 생긴다. 이 책은 근본적으로 사랑 이야기라는 저자의 말에 서로 얽혀 있는 네 명 남녀의 삶을 40대의 눈과 마음으로 찬찬히 들여다 보고 싶어졌다. 가장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 책은 <안나 카레니나>라는 책이다. 일단 결말이 비극적이라는 데서 관심이 간다. 왜 안나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저자가 이 책을 정말 매력적으로 소개해 나서 2014년에 꼭 읽어야 할 책 목록 1위로 올려 놓는다. 내가 이 책을 꼭 읽겠다고 하니 남편이 살짝 나를 비웃는다. 흥? 어디 두고 보셔. 다 읽고야 말테니까. 


가장 좋은 리뷰-이 책도 일종의 리뷰라고 생각한다.-는 리뷰를 읽은 독자로 하여금 그 책이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아주 훌륭한 리뷰이다. 어려운 책은 별로 눈여겨 보지 않던 나로 하여금 여기에 소개된 책들이 읽고 싶다는 욕구가 저절로 생기게 했으니 이보다 좋은 리뷰가 또 있을까.  글씨체도 별로 안 이쁘고 글씨를 조금만 써도 손이 아파 금방 쓰는 것을 포기해버리는 나지만  새해에는 저자처럼 책을 꼭꼭 씹어 읽고, 울림을 주는 부분에 밑줄 긋고, 옮겨 적어 보는 노력을 해 보려고 한다. 그 동안 게을러서 밑줄만 긋고 옮겨 적지는 않았는데 이 방법이 울림을 오래 기억하는데 효과가 좋은 듯하다. 끝으로 나에게 울림을 주었던 문장들을 옮겨 적어 본다. 워드라서 그나마 힘이 덜 든다. ㅋㅋㅋ


내 인생을 움직이는 질문은 오직 하나.

어떻게 하면 그 속도에 내가 온전히 편입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동차 달리는 속도가 아니라 잔디가 자라는 속도로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숨쉬는 속도가 바닷가 파도 치는 속도와 한 호흡이 될 수 있을까.

내 인생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박웅현 <내 인생의 질문은 무엇인가>중에서 

 

다시 한 번 책을 왜 읽느냐, 읽고 나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볼 수 있는 게 많아지고, 인생이 풍요로워집니다.


순간순간 행복을 찾아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행복은 삶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그러나 풍요롭기 위해서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 얼마만큼 감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풍요와 빈곤이 나뉩니다.

그러니까 삶의 풍요는 감상의 폭이지요.


-박웅현 <책은 도끼다>중에서

시인의 재능은 자두를 보고도 감동할 줄 아는 재능이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랍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는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중에서

실제적 궁핍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감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외려 늘어나기까지 했다.

-알랭드  보통의 <불안>중에서

이 세상의 부유한 사람은 상인이나 지주가 아니라, 밤에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알랭드 보통-

이런 문장들이 도끼가 되어 얼어 붙은 내 감수성을 깨고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한다. 저자의 말처럼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는 분명 다르다.  다음 번에 읽을 때는 이보다 더 좋은 문장들을 발견하리라고 본다. 저자의 책 소개가 나로 하여금 여기에 소개된 책들을 읽고 싶어지게 한 것처럼 내 리뷰가 <책은 도끼다>라는 책을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작은 씨앗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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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1-04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굿입니다^^
님의 이책에 대한 애정과 진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네요.
그래서 제가 안나 카레니나랑 조르바를 다시 읽었지요.
문학동네 강추합니다. 안나 책 첫문장 오우! 느낌 아니까~~ㅎ

새해 첫 책 선물 감사합니다.
새로운 곳에서 알라딘 상자를 받으니 더 행복했답니다.
님의 고운 편지도 가슴에 담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시길~~~~ 빌어요.
땡큐^^

수퍼남매맘 2014-01-05 18:10   좋아요 0 | URL
칭찬 받으니 좋기도 하고 부끄럽네요. ㅋㅋㅋ
선물이 잘 도착했군요. 다행이에요.
새해에도 서로의 서재에 자주 방문하며 인사와 소식 나누길 바랍니다.
새로 발령난 곳에서 좋은 만남과 멋진 일들 이뤄 나가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