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서실 미션은 옛이야기 찾아오기이다.

어떤 아이가 <방귀쟁이 며느리>책을 찾아왔다.

전부터 겉표지가 진짜 아름다워서 눈여겨 보던 책이어서

그 아이에게 책을 빌려서 전체에게 읽어줬다.

 

글을 쓰다 보니 지난 번 파주 사계절 북카페에 갔을 때 이 책을 사온 게 생각났다.

점점 기억력이.....

읽어보지 않고 책장에 고이 모셔 놓고 있었네!

우리 반 댄디 라이언이 책을 읽어주려고 하자

책 모양이 왜 다르냐고 질문을 한다.

음 이 녀석 눈썰미 좋네!

그제서야 다른 아이들도 책이 반대로 펼쳐진다는 걸 알아챘다

맞다. 이 책은 옛날책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책장을 넘기게 되어 있다.

글씨도 위에서 아래로 써져 있는 게 특징이다.

이걸 한눈에 잡아낸 녀석은 나를 일 년 간 제일 힘들게 한 아이이다.

그런데 이럴 때 보면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다.

남들은 모르고 지나갈 것도 잡아내는 그런 관찰력과 눈썰미를 가진 것은 분명 재능이다.

 

겉표지만 봐도 빨리 읽고 싶어지는 정말 아름다운 책이다.

마치 신윤복의 <미인도>를 연상케 하는 여인의 자태. 흠흠흠

내용은 더 맛깔나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쓰여진 이야기는 읽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웃음 짓게 만든다.

" 했당께 잉~" 하는 전라도 사투리에 재미 들린 아이들.

거기다 내용은 또 얼마나 웃긴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방귀가 뽕뽕뽕 나오니 말이다.

유쾌 통쾌 재미난 옛이야기이다.

 

방귀쟁이 며느리는 방귀를 잘 뀌는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어찌 보면 조금 창피하고 별 쓰잘데 없고 구린내 나는 재능 같아 보이기도 한다.

방귀 때문에 며느리는 시댁에서 소박을 맞아

친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가던 길에 비단 장수와 놋그릇 장수를 만나는데

방귀쟁이 며느리의 방귀가 큰 활약을 하여 비단과 놋그릇을 선물로 받아 당당하게

다시 시댁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구린내 나는 방귀가 이렇게 큰 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옛이야기는

내가 가진 소소한 재능이 큰 일을 할 수도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주는 듯하다.

 

우리 반 댄디 라이언과 방귀쟁이 며느리를 보면서

재능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남들이 다 인정하는 그럴듯한 재능을 가진 자도 있겠지만

남들이 보기에 별볼일 없는 그런 재능을 가진 자도 있다.

우린 지금까지 별볼일 있는 재능에만 집중하고 그것만 최고라고 여겼던 것 같다.

특히 지적인 재능을 더 강조하고 칭찬하고 부러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도덕성이 약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에선 별볼일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보다

별볼일 없는 재능을 가진 자들이 더 많다. (후자는  본인이 아예 재능이 없다고도 생각한다.)

우리 교실만 봐도 그렇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재능을 가진 아이들(가령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재능)이 숫자적으로 더 많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

재능이 있으되 공부 재능이 아니니 며느리처럼 숨기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들도 어쩌면 방귀쟁이 며느리이다.

공부 재능만 재능으로 여겨지고 추앙받던 시대는 이제 과감히 물러갔으면 좋겠다.

공부 재능이 아니고 다른 재능을 가진 아이들도 가슴 활짝 펴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방귀로 맛있는 배를 높은 배나무에서 떨어뜨린 방귀쟁이 며느리처럼

남이 보기엔 별볼일 없어 보이는 재능일지라도 언젠가 빛을 발할 수 있음을 믿었으면 좋겠다.

설사 빛을 발하지 못하더라도 남의 재능만을 부러워하며 세월을 탕진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특정한 재능을 갖도록 몰아세우는 분위기는 사라졌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각자 자신의 재능을 자랑스러워하고 자신의 재능에 따라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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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12-2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교육은 오로지 공부로만 아이들을 몰아가고 있어서 안타깝죠.
그래도 다른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주려 애쓰시는 선생님들이 계셔서 고맙고 다행이죠~ ^^

수퍼남매맘 2013-12-21 19:10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이에요.
다른 재능을 가진 아이들까지 공부로만 몰아붙이는 것이 불행의 시작인 것 같아요.

숲노래 2013-12-21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그림책은 그림도 무척 곱게 잘 그렸어요.
참 재미나지요.
게다가 '남자 아닌 여자'가 방귀로 콧대 높은 분들을
모두 다스려 주는 이야기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