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꽃신 - 갖바치 ㅣ 삶을 가꾸는 사람들 꾼.장이 8
윤아해 지음 / 사파리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꽃신만큼이나 정말 아름다운 그림책을 만났다.
솜사탕 같은 눈이 펄펄 나리는 날,
가마를 타고 외가를 향해 가던 아가씨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다.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이 추운 겨울에 얇은 옷 하나 걸치고 맨발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거지 소년이었다.
아가씨는 그 거지 소년을 보자 가마를 세우라 하고
소년을 향해 걸어간다.
절뚝절뚝.
그렇다. 아가씨의 몸도 추위에 떨고 있는 소년만큼 불편하였다.
작가는 아가씨가 다리를 저는 장애우임을 그림을 통해 보여주는데 진짜 절묘하다.
처음 그림책을 봤을 때는 발견하지 못하고 넘어갔었다.
다시 읽으니
작가가 그린 세밀한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눈에 난 아가씨의 발자국이다.
불편한 오른 발은 눈밭에 질질 끌려 하나의 선으로 표현하고,
멀쩡한 왼발은 또각또각 발자국으로 표현한 것이다.
아! 뭐라 할 말이 없다.
작가란 그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한 장 한 장에 이런 세밀함과 정교함을 담아내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에 깊이 감동했다.
그것 뿐 아니라 거지 소년이 갖바치가 되기 위해
갖바치 할아버지를 찾아가는데 갖바치 할아버지의 수염, 눈썹 한 올 한 올도 점말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그림책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림이 정말 아름답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지식그림책은 다소 그림이 투박한 편이었는데
이 그림책은 꽃신을 만드는 갖바치에 대해 알려주는 지식그림책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그림이 정교하고 한국화처럼 빼어나게 아름답다.
이 그림책에 열광하는 둘째 이유는 내용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주는 눈처럼 포근하다는 점이다.
아가씨로부터 꽃신을 전해 받은 거지 소년은
갖바치가 될 것을 각오하고
오랜 수련 끝에 갖바치가 된다.
마음을 헤아려서 가장 편안한 신발을 만드는 그런 갖바치 말이다.
아가씨와 거지 소년 디딤이가 십 년 후에 해후하는 장면은
첫사랑과 재회하는 것처럼 설레기까지 하다.
다리를 저는 아가씨를 위해
오른 쪽 신발에 굽까지 넣는 디딤이의 세심함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그 사람의 걸음걸이만 봐도 어떤 신발이 필요한지 알아보는 디딤이의 예리한 직관력은
아마 사람들 마음을 잘 헤아리려고 노력한 댓가가 아닐까 싶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려고 노력하다보니 그 사람의 사연이 눈에 보였을 게다.
마음을 헤아려서 그 사람에게 가장 편안한 신발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디딤이의 포부야말로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닐까 싶다.
내 이웃들, 내 직장 동료들, 내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려 편안케 해 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 될 듯하다.
자신의 다리가 불편한데도 거지 소년을 돌아봤던 아가씨의 그 긍휼한 마음이
디딤이에게 전염되고 디딤이를 변화시켰듯이
디딤이의 신발을 신은 사람들 또한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 마음이 전염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한 사람으로 시작해서 조금씩 변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 한 사람이 남이 아니라 나라고 생각하고
지금, 나부터 시작해 보자.
연말연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거지 소년에게 자신이 신던 신발을 내어주는 아가씨의 마음으로
주변에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은 없는지 둘러봤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