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크스를 별로 신경 쓰지도 믿지도 않는 편인데

나에게도 징크스라 할 만한 일이 닥친 날이다.

 

직장에서 1박 2일 변산반도로 연수를 떠나는 날이다.

남편에게 수퍼남매 모두 맡기고 가는 게 조금 불안하였지만

(네 끼 식사를 인스턴트로 해 먹일 게 분명해 보여서)

변산반도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거니와

우리 학년에서 두 명 밖에 참석을 안 하는데 나까지 빠지면 안 되는 터라

가기로 마음을 굳히고

모든 준비물을 챙겨서 출근을 하였다.

 

그 런 데

등교 준비할 때까지 멀쩡하던 둘째가

차에서 내리려는데

갑자기 힘이 없고, 온몸이 욱신거린다는 것이다. 이건 뭐야?

어제 감기 기운이 있어 보여서 미리 병원에 다녀왔고 간밤에 열도 안 났는데....

혹시 열이 나는가 싶어 보건실에 데려다주고 열 체크를 하였다.

열은 없었다.

하지만 둘째는 멀쩡하다가도 열이 팍 오르는 스타일이라 안심이 안 되었다.

한 시간 동안 보건실에 누워 있다

교실에 갔다고 전해 들었다.

그때부터 좌불안석

 

어떻게 해야 하지?

학년부장이라 빠지면 안 되는데

그렇다고 아픈 아이를 놔두고 연수 가면 내 맘이 내내 불안할 터이고

남편은 애 열 날 때 조치를 잘 못하기 때문에 미덥지가 않다.

놀아주는 것은 잘해도 그런 것은 아직도 초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

그렇게 오전을 보냈다.

참 고민이 많이 되었다.

이럴 때 부장이 아니었으면 고민을 별로 안 하고 아이를 선택했을 테지만

위치가 위치인지라 참 곤란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학년 참석자가 제일 적어서 좀 그런데

나까지 빠진다고 하면....윽 머리 아퍼!

 

점심 시간, 고민 끝에 윗분들께 아이가 아파서 못 갈 것 같다고 사정을 말씀 드렸다.

감사하게도 사정을 이해해 주셨다.

가장 미안한 분은 바로 동학년 선생님이시다.

우리 학년에서 동행인이 없어서 얼마나 쓸쓸하실까!

다른 학년 선배님께 전화 드려 잘 챙겨주시라고 부탁 드렸다.

혼자 가시는 선생님반에 찾아가서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 드리니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셨다.

마음의 짐을 덜었다. 이제 애 간호만 잘하면 된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아~콧바람 쐬고 싶었는데.

 

집에 와 생각해 보니

변산반도 징크스인 듯하다.

대학 때도 유일하게 못 간 MT 장소가 그 곳이었다.

그 때도 갑자기 일이 터져 못 갔다.

친구들이 갔다와서 얼마나 자랑질을 해대던지 많이 부러웠었다.

변산반도는 나와는 인연이 없는 곳인가보다.

또 하나

작년 연수 때도 갑자기 심한 감기에 걸려 참석을 못했는데

이번에는 둘째가 아파서 갑자기 취소를 하게 되고

직장 연수와도 인연이 없나 보다.

직장 사람들과 1박 2일 다녀오면 서로에 대해서도 깊게 알게 되고 무엇보다 좋은 추억이 되는데 못내 아쉽다.

꿀꿀해 하는 엄마를 보고 첫째가 위로해 줬다.

둘째는 왜 그리 허약해서 매번 엄마의 발목을 잡는지 애한테는 표현 못했지만

내 속마음은 그렇게 구시렁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학교에서 언니, 동생처럼 친하게 지낸 후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후배말인즉 큰 아이가 발달이 늦어 입학을 못 시키고 유예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이 있을 때도 언어 치료 다니면서 신경을 많이 썼는데

지금도 발달이 늦다니

게다가 유예까지 시켜야 한다니 후배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조금 전까지 둘째가 허약해서 구시렁대고 있던 나의 불만이 후배의 그 말에 싹 사라졌다.

인지발달이 늦어 제 나이에 학교 보내지 못하는 후배에 비하면

감기 자주 걸리고 자주 우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데

그걸 투덜댔으니 부끄러웠다.

후배와 겨울 방학 때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고나서

왜 하필 오늘 후배와 난 연락이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후배가 몇 번이나 전화했는데 그 때마다 전화 통화가 안 됐단다.)

따지고 보면 우연이란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이 나를 회개시키려고 후배와 연결시켜 줬나 보다.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불만을 토로하던 나를 조용히 일깨워 주셨나 보다.

그리고 이 책을 꺼내 읽었다.

 

다음에 후배집에 놀러갈 때 이 책을 선물해야겠다.

그리고 힘들었을 후배의 이야기를 오롯이 들어줘야겠다.

작가님 말씀이 "정신과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환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 이란다.

난 정신과 의사도 심리 상담가도 아니지만

그 동안 큰 애 때문에 힘들었을 후배의 말을 진심을 다해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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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3-12-01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여행으로 변산반도 다녀 오세요.
우리도 이번 여름 휴가를 변산반도 다녀왔는데.. 정말 좋더군요.

수퍼남매맘 2013-12-01 12:48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부산에서 가는 것도 멀 것 같아요.
겨울에는 바닷바람이 너무 추울 것 같고(추위에 워낙 약해서리)
내년 여름에 한 번 생각해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