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맞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정년을 맞이한다는 게 예전처럼 흔하지 않은 일이란 걸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교직뿐만이 아니라 다른 직종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건강이 따라줘야 하고, 사건사고도 없어야 할 게다.
그런 의미에서 정년퇴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년의 교직기간 중에 교장님의 정년퇴임을 두 번 맞이한다. 내 기억상.
첫째 번은 초임 발령지에서였다.
교육청에서 발령장을 받은 나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학교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정문 근처에서 웬 밀짚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텃밭을 가꾸고 계신 것이 보였다.
당연히 주무관님(학교 기사님)인 줄 알았다.
그 분이 교장님이셨다.
농부 같은 첫인상을 주셨던 교장님은
한 때는 깐깐하기로 소문이 자자하셨던 분이셨다고 한다.
내가 발령받은 그 때는 마지막 정년을 앞두신 해라서
교사들을 참 편안하게 해 주셨다.
첫인상 그대로 농부 같으셨다.
때 되면 텃밭에 열린 것들을 교실로 나눠 주시고,
복날에는 직접 영계를 사서 교사들에게 먹이셨다.
그 때는 급식을 하지 않았던 때라
식당에서 교사들만 점심을 먹었는데
막내인 나에게 삼계탕을 끓일 것이니 닭 다리를 잘 꼬라고 하셔서 그 때 생전 처음 닭 다리를 꽈 봤다.
몇 십 마리의 닭 다리를 꽜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정년을 앞두신 교장님은 나에게 포근한 할아버지와 같은 인상을 남겨 주셨다.
둘째 번 교장님은 지금 본교의 교장님이시고 어제 정년퇴임식을 했다.
이 분은 더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쌍둥이 교장이시고, 여교장님이시고, "주부가요열창" 대상 수상자이시고,
항상 웃는 얼굴로 맞아 주시던 어머니 같이 푸근한 분이시다.
이 분과는 소소한 일들이 더 많다.
지난 여름 방학 때, 1박 2일 부장연수를 함께 다녀와서 더 그렇다.
어린이날에 교원 자녀들에게 일일이 선물을 챙겨 주시던 모습.
스승의 날에 우리 만이라도 서로 축하해주고 격려해 주자시며 교사 한 명 한 명을 챙겨주시던 모습.
어디서나 기타를 매면 노래 한 가닥 멋지게 부르시던 모습.
1학년 입학식 때 일일이 입학생들과 악수하시던 모습.
능력 없는 나에게 부장 한 번 해 보라시며 격려해주시던 모습.
무엇보다 힘든 질곡의 세월 속에서도 언제나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기억날 거다.
쌍둥이 언니와 60 세 되던 해에 제주도 여행을 하시면서
3가지를 꼭 해 보자고 다짐하셨단다.
책 출간하기, 콘서트하기, 음반 내기
정년퇴임을 하기 전, 그 3가지를 다 이루셨다.
평생 동안 한 가지 하기도 힘든데 이 세가지를 다 하시다니 그 열정과 의지가 대단하다.
쌍둥이 교장의 "두 배로 행복하기" 이야기는 이금이 아나운서가 진행하는<아침 마당>에도 나오고,
라디오에도 방송되었다.
방학 중, TV 아침마당에 교장님의 얼굴이 나와 깜짝 놀랐다는 학부모님들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정년을 맞이하는 기분이 어떠시냐는 뭇사람들의 질문에
"행복하다"고 답하신다는 교장님.
그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41년 간의 교직 생활 동안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왔다는 의미일 거라고 생각한다.
제2의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시는 교장 선생님의 발걸음에 축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