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에서 앨라배마까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사이공에서 앨라배마까지 - 2012 뉴베리상 수상작 ㅣ 한림 고학년문고 25
탕하 라이 지음, 김난령 옮김, 흩날린 그림 / 한림출판사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베트남 전통 의상을 입고 한 손에는 작은 파파야 나무를 들고 있는 이 소녀의 이름은 " 하 "이다.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이름인 듯하다. 이 책은 작가의 어린 시절의 회고담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작가 또한 하 처럼 어린 시절 베트남 전쟁을 경험하고 보트 피플이 되어 미국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실 되게 담은 글은 힘이 있고, 진솔하여 독자를 감동시킨다. 그렇기에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 뉴베리상을 거머쥔 게 아닌가 싶다.
일단 형식면에서는 일기인데 그냥 산문 일기가 아니라 운문 일기이다. 그래서 책장이 아주 잘 넘어간다. 일기 한 편 한 편은 그대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완벽한 시이기도 하다. 어려운 상황 임에도 불구하고, 일기 곳곳에서는 하의 유머가 느껴진다. 특히 미국에 건너와서 영어를 배우면서 쓰는 일기들을 읽을 때는 우리 딸 생각이 나서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명사에서 복수를 만들 때 "S" 를 붙이는 것에 대하여 미국 사람들은 뱀을 좋아한다던지 하는 표현들은 하가 얼마나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 아이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의 일기를 읽다 보면 <안네의 일기>의 안네를 연상하게 되는데 하의 성격이 안네와 많이 비슷하다. 자존심이 강한 점,고분고분하지 않은 점, 책을 좋아하는 점, 일기를 친구처럼 대한다는 점 등등. 배경 또한 전쟁 중이거나 전쟁을 경험한 뒤라서 일맥상통한다.
하의 일기는 베트남의 설인 뗏에서부너 다음 해 뗏까지 일 년 간의 기록이다. 그 기간 동안 하와 하의 가족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였던 사이공을 떠나야했고, 배에서 죽음 직전까지 가 보기도 했으며, 낯선 이국 땅에서 따를 당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하는 일기장에 써내려 간다. 그런데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좌절하거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배에서도 그랬고, 미국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이 자신을 납작하다고 놀릴 때도 마찬가지이다. 사이공에서 제법 똑똑한 아이였던 하가 이국 땅에서는 언어의 장벽과 외모 때문에 하루 아침에 바보 취급을 당하면서 자존감이 많이 낮아지긴 하지만 그녀에게는 가족과 그녀를 사랑하는 친절한 이웃이 있었기에 그녀는 그 힘든 시절을 겪어 낸다.
하를 보면서 만약에 내가 이민을 가게 된다면 언어 때문에 하처럼 힘든 시기를 겪어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아침에 의사 소통이 안 되고, 그 때문에 자신이 마치 바보처럼 느껴질 때 얼마나 비참할까!!! 하가 그랬다. 베트남에서는 제법 수준 높은 책도 읽곤 하던 하가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해 학교에 가서도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동양인이라서 놀림을 당할 때는 하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 남의 나라에 가서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 하와 같은 경험을 하고 그 힘든 시기를 잘 겪어낸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가히 존경할 만하다. 남의 나라에 가서 산다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님을 하의 이야기를 통해 새삼 깨달았다.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상황 중에서 거의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과 "가족의 죽음" 그리고 이국 땅에서의 생활을 모두 겪어 내는 하의 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칙칙함보다는 발랄함을 더 느낄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이 책의 매력이지 않나 싶다. 하의 팡팡 튀는 매력이 하의 운문 일기 곳곳에 들어 있어서 힘든 시절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미소 짓게 하고, 더불어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