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어 시간에 시가 나와서 다른 시들도 함께 공부하고, 암송하고 있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시는 정두리 님의 <우리는 닮은꼴>이란 시이다. 난 동시가 나오면 외우게 하는 편이다.  우리 아이들이 시 한 편 정도는 외우는 수고를 느끼게 하고 싶기도 하고, 일단 암기하는 그 자체가 학습하는 거니깐.

 

우리는 닮은꼴

 

정두리

 

곱슬머리

아빠 닮았다.

 

검지 발가락 긴 건

엄마 닮았다.

 

늦잠꾸러기인 건

아빠 닮았다.

나는 잠꾸러기

 

책 읽기 좋아하는 건

누구 닮았나.

누굴 닮았나?

 

   시를 외우게 하면 유난히 암기력이 약한 아이들이 금방 드러난다. 어제 오늘 시켜 보니 암기가 약한 아이들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공부라는 게 어차피 암기력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데....요즘 아이들이 암기를 해보지 않아서 암기력이 약한 아이들이 많다. 어제 울 딸도 영어 단어를 못 외우길래 잔소리를 좀 했다. 창의력은 있는 반면 암기력이 약하고 암기를 해 보지 않아 암기 근육이 미발달한 듯하다.  그래서 지난 겨울 방학 부터 매일 영어 단어 5개를 외우게 하는데 그것도 잘 못 외운다.  그래서 어제는 잔소리를 좀 했다. " 이래 가지고 중학교 가서 따라 가겠냐?" 고 말이다.

 

   나 어릴 때는 모든 공부가 거의 암기하는 거였는데 요즘은 주입식 교육이 안 좋다고 하여 암기를 너무 안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너무 암기를 안 하는 바람에 아이들의 암기 근육이 늘지 않는다. 그런데 어디 암기하지 않고 내 머릿 속에 남는 게 있던가! 100%는 아니라도 거의 대부분의 지식이 암기를 해야 학습이 되는 건데.....하다 못해 구구단도 암기해야 되는 것이고.

 

  언젠가 6학년 담임을 할 때 한자 시험이 있어서 아이들과 한자 암기를 연습하는데 유독 한자 외우는 게 안 되는 아이가 있었다. 수학은 90점 이상 받으면서 한자 쪽지 시험을 보면 매번 20점 대였다. 이 아이는 암기하는 그 자체를 귀찮아 하고, 그래서 암기 근육이 발달하지 못한 거였다. 그 아이를 보면서 우리 뇌의 발달 정도가 참 다르구나 실감하였었다. 자신의 게으름과 암기력 부족으로 인하여 그 아이는 수학은 상위권이었지만 암기 과목의 성적은 하위권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학년 맡으면 남자 아이들이 사회 교과를 무지 싫어한다. 죄다 암기해야 하는 과목이니까 말이다. 남자 아이들은 이 귀차니즘 때문에 도통 암기를 하려고 하질 않는다. 오늘 우리 반 아이 한 명이 짧은 시를 하루 종일 못 외우는 것을 보고 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는 귀차니즘은 아닌데 기본적으로 암기력이 약한 아이였다. 아이의 재능이나 학습력을 빨리 알아차리는 것도 담임과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인 것 같다. 이런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면 그 아이는 성취감을 못 느낄 테니까 말이다. 그 아이를 보면서 각자 달란트가 다르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각자 잘할 수 있는 것들이 따로 있는데 모든 아이들에게 암기력, 이해력, 사고력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 공부만을 잘하라고 강요하는 그 자체가 모순이란 생각이 든다.  시는 암송하지 못하지만 그 아이가 잘하는 게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교과서에 나온 동시 말고 어제는 시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윤동주 님의 <서시>를 함께 암송했다. 교과서에 윤동주님의 다른 동시가 나와 있긴 한데 <우리는 닮은꼴>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진 고전적인 시를 한 번 맛보게 해 주고 싶어 서시를 선택했다. 윗시는 쉽고, 재미있어 금방 외우던 아이들인데 서시는 시어가 낯설고 고전이라서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실상 시 길이는 별로 차이가 없는 편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함께 여러 번 반복하고 격력를 해 주니 점점 암송하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아이들의 표정 또한 점점 밝아졌다. " 내가 해냈다"는 자랑스러운 성취감을 아이들의 표졍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이런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는 거야말로 가장 중요한 학습 동기가 된다. 잡에 가서 부모님께 멋지게 낭송해 드리라고 숙제를 내 주었다.  " 애들아. 우리 나라 초등학교 1학년 학생 중에서 윤동주 님의 <서시>를 암송하는 아이가 몇 명이나 되겠니? 너희들은 그런 대단한 존재가 된 거야." 라고 마구마구 칭찬을 해 주었다. 쉬는 시간에 자기들끼리 모여 <서시>를 암송하는 아이들을 보니 뿌듯하다.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그리고 오늘, 어제는 고전시를 암송했으니  약간 다른 맛이 나는 현대시를 한 편 골라 암송해 봤다. 안도현 님의 <냠냠>이란 동시집에 있는 <김치 악당>이란 아주 재미있는 시이다. 이 동시집에는 온통 먹을 거리를 주제로 쓴 시들이 그득하여 아이들이 참 재밌어 하고 좋아하는 동시집이다. 어제 <서시>는 암기하기 힘들어하더니 오늘은 금방 암기를 한다. 그래도 한 명은 결국 못 외우고 갔다.

 

김치 악당

 

안도현

 

밥 먹을 때마다

밥상에 쳐들어와요.

빨간 혀를 날름거려요.

퀴퀴한 냄새를 풍겨요.

김치 악당이에요.

- 매운 맛 좀 볼래?

나를 놀려요.

- 매운 맛 좀 봐라!

내가 물리쳐야겠어요.

우걱우걱 씹어요.

   아이들은 아주 재미 있어 하면서 이 시를 암기하였다. 시에 어울리는 그림까지 그려 멋진 시화도 꾸며 보았다. 오늘도 집에 가서 부모님께 이 동시를 낭송해 드리는 숙제를 내 주었다. 어제 오늘 암송한 시를 장기 기억에 저장한 아이가 한 명이라도 나온다면 나의 시 공부 전략은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시를 접할 기회가 흔하지 않은데 교과서에 동시가 나올 때만이라도 다른 동시도 소개해 주고, 명작시도 함께 읽어 보고, 암송하여 본다면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도서실에서 가서 시집 찾아오기 미션을 주면 아이들이 일 년에 한 두 번이라도 시를 접할 기회가 마련된다. 울 반 아그들은 어제 오늘 동시집을 대출해 가서 읽고 있는 중이다. 시를 읽다 보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은 무슨 시를 골라서 함께 암송해 볼까?  학교에 시 낭송 대회 같은 게 있음 좋으련만.....한 번 건의드려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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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1-31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광주에는 시암송대회가 있어서
반대표로 뽑히면 학년대표 대회를 거쳐 교육청에서 학년별로 대회도 열었어요.
광주에서도 지금은 시암송대회는 없어진 거 같아요.ㅠ

수퍼남매맘 2013-02-01 12:48   좋아요 0 | URL
제가 발령받고나서 지금까지 시 암송대회를 하는 건 못 본 듯해요.
시가 조금 천대 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반면 영어 대회는 여러 가지로 많이들 하고 있죠.

세실 2013-02-01 0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기력도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하겠죠. 무조건 외우기보다는 흐름을 이해하고.... 울 아들에게도 시를 암송하게 해야겠어요^^

수퍼남매맘 2013-02-01 12:50   좋아요 0 | URL
지당하신 말씀이에요. 시 암송하는 것 인성 교육에도 좋은 듯해요.
공부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메마른 감성을 오늘 내리는 비처럼 촉촉하게 적셔줄 것 같아요.
오늘은 <2013학교>에서 고남순 학생이 암송하던 나태주 님의 <풀꽃>시를 울 반 아그들과 암송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