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고전읽기 혁명 - 내 아이가 고전에 빠져든다! 성장한다! 초등 고전읽기 혁명
송재환 지음 / 글담출판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사람마다 타인에게 호감을 느끼는 부분은 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외모에, 어떤 이는 유머에 또 어떤 이는 경제력에 호감을 느끼겠지만 난 주로 상대방의 지적인 모습에 호감을 느낀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언제 내게 이런 호감도가 생겼나 하면 고등학교 때, 1학년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부터이다.

 

 고 1 담임 선생님은 박학다식한 분이셨다. 담당 교과는 한문이었지만  한문 외에도 중국사, 미술, 음악, 철학 등 정말 여러 방면에 두루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가지고 계셨다. 덕분에 한문 시간이 즐거웠다. 한문을 해석해주시면서 그와 관련된 배경지식을 총망라하여 들려주셨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역사의 보고, 이야기의 보고 같았다. 하나의 문장에 저렇게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음에 놀라면서 많이 안다는게 참 멋있는거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 때부터 지적인 면에 대한 호감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선생님은 어떻게 저 많은 지식들을 머릿 속에 담아 둘 수 있었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바로 책 덕분이었다는 걸. 선생님은 정말 책벌레셨다. 항상 몇 권의 책을 손에 들고 계셨다. 책은 선생님의 그림자 같았다. 그 책을 틈날 때마다 읽으셨다. 야간 자율학습을 할 때도 기억나는 건 우리들을 감독하시는 모습이 아니라 항상 저만치서 열중해 책을 읽는 모습뿐이다. 그렇게 읽으시는 책들이 방대한 지식의 원천이 되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지적인 모습에 대한 호감과 더불어 책에 대한 흥미도 그 때 비로소 생기게 되었다. 책을 통해 담임과 친해졌고 그 분이 추천하시는 책들을 읽으면서 점점 책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내게 책을 읽으라고 권해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다가 온 책의 세계는 내게 신천지나 다름없었다. 매혹되었고 중독되었다. 물론 사는 게 점점 바쁘다보니 그 때처럼 열정적이고 지속적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책이 얼마나 멋진 것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똑똑히 마음에 새겨 둘 수 있었다.

 

 새삼스레 선생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초등 고전읽기 혁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랐던 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고전을 처음 접했던 것도 선생님 덕분이었다. 그 때 추천해 주신 <데미안>이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읽은 고전이었다. 처음 추천해주셨을 때 솔직히 실망했다. 나는 뭔가 근사한 베스트셀러라도 추천해 주실 줄 알았는데 나온지 한참 되는 케케묵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라니! 내가 이렇게 실망했던 건 일단 고전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어렵고 지루하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공부의 부담 때문에 어지러운데 어려운 고전까지 읽으면서 심신을 괴롭혀야 하나 싶어 좀 망설였지만 그래도 그토록 박학다식한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데는 뭔가 이유가 있겠지 싶어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솔직히 굉장했다거나 좋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말은 어렵고 내용은 선뜻 들어오지 않아 읽다 말다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다 읽고나니 '해냈다!'라는 뿌듯한 성취감은 있었다. 물론 내가 얻은 게 그 성취감만은 아니다. 비록 집중해서 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읽어 온 책들과는 남다른 깊이를 가졌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스스로 고양되는 느낌도 나고 지금까지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이 왜 이 고전을 추천해주셨고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를...

 

 그런 고전과의 첫만남이 있었기에 고전의 유용성을 말하는 이 책에 쉽게 설득은 되었으나 그래도 초등학생에게 고전을 읽히는 건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했다. 아무래도 고전의 깊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나이를 먹어야 가능한 일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역시 아이들에게 고전을 읽히지 않았다. 적어도 중학생 정도 되면 읽혀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초등학생부터 시작하라니! 솔직히 어디 어떻게 하나 보자라는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지은이는 현직 초등학교 교사이다. 독서교육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그는 독서 교육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책을 읽혀야 하고 그러러면 검증된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는 <고전>이 가장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 말한다. 이건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머리가 채 자라지 못한 초등학생이 과연 이 고전을 소화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지은이는 아예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전을 읽혀야 한다고 하는데 가벼운 책조차 부담스러워 하는 그 나이의 아이들에게 이런 고전이란 무거운 짐을 안겨주면 이제 막 싹을 틔운 책에 대한 흥미마저 잃게 만들어 버리지나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이건 비단 나만의 걱정은 아니다. 사실 학부모들은 고전이 좋다는 걸 안다. 하지만 다들 고전이 아직 아이들에게 버겁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많은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베스트셀러, 권장도서 혹은 흥미위주의 독서를 시키는 것은 독서의 중요성은 알고 있으니 최소한 아이들이 독서에 대한 흥미라도 잃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책들이 깊이가 얇다는 건 알지만 여건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학부모들은 이런 깊이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독>에 집중하기도 한다. 양을 늘려 질을 높이려는 전략인 셈이다. 또 어떤 학부모들은 그래도 고전을 읽혀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축약본>에 집중하기도 한다. 막상 고전을 아이들이 소화시키기는 어려우니 미음처럼 소화하기 쉽게 만들어진 <축약본>을 읽히는 것이다. 하지만 둘 다 문제가 있다. <다독>은 결코 양이 질을 높이지는 못한다는 문제가 있고 <축약본>은 전혀 다른 책이나 마찬가지라는 문제가 있다. 지은이는 축약본에 대해 이런 비유를 든다.

 "축약본은 2시간짜리 영화를 30분짜리로 편집한 것과 같다. 과연 그것으로 2시간의 내용을 다 파악할 수 있을까?"

 한 마디로 축약본은 고전을 미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르게 지은 밥이라는 이야기다. '고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진짜 고전을 읽혀라'가 지은이의 주장인데 그럼 강력한 장애물이라 할 수 있는 이 소화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남는다. 과연 아이들이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고도 고전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이 책이 이론에 치우치지 않고 지은이가 실제로 실시했던 <고전 읽기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듯이 아예 실제 사례를 통해 아이들이 고전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리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이다. 책은 자세하게 학급 단위에서 시작되었던 고전 읽기 프로젝트가 어떻게 학교 전체 단위까지 나아가게 되었으며 또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보여주고 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아이들은 전혀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았다. 물론 소화하는데 어려움을 느낀 아이들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다들 무난히 소화시켰다. 고전을 읽히기에 아이들의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고전을 이해한다. 그러니 너무 걱정말고 당장 시작하라!"고...

 

 이렇게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결과가 나왔으니 나 역시 승복할 수 밖에 없다. 그동안 내가 아이들의 수준을 너무 얕잡아 보았는지도 모르겠고 사실 고전이라는 게 딱 이런 의미다 하는 것도 없으니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해석하면 그만일텐데 너무 어른들이 생각하는 수준을 아이들에게 요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도 이제 고전을 읽혀보려 한다. 이 책엔 그 학교 독서전문가 선생님들이 1년간 함께 노력한 끝에 선정한 학년 별 고전 목록이 나와 있어 아이들에게 맞춤한 고전을 읽히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아무리 아이들이 나름대로 고전을 이해한다해도 2학년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이해하는 건 역시 버거울테니까 말이다. 

 

 나는 일단 고전의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아이들에게 고전을 읽히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것을 중점으로 글을 써 왔지만 이 책은 이런 나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학부모들에게 참 유용한 것 같다.

 

  첫째, 고전이 중요하다는 건 막연히 알지만 정작 고전을 읽히는 게 왜 좋은지는 잘 몰랐던 학부모.

  둘째, 책만 잡고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아이가 학습만화나 흥미위주의 책들만 봐도 만족했던 학부모. 

  셋째, 그저 많이 읽히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다독에 집중시키는 학부모

 

 이런 분들이 이 책을 보면 참 깨닫게 되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깊이 없이 재미만 있고 내용만 습득하는 독서가 얼마나 수박 겉 핥기에 지나지 않는지 똑똑히 배울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여기서 자꾸만 굳이 '학부모'를 운운하는 건 역시 아이들 독서 지도에 있어서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3년간 <아침 독서 10분>을 이끌었다. 그 때의 경험으로 나는 아이들은 어른이 이끄는대로 잘 따라온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의 독서를 성공시키기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은 먼저 부모부터 좋은 안내자가 되는 것이다. 좋은 책들을 선별하고 제대로 된 목표와 그 때 그 때 이정표를 세워 놓으면 아이들은 잘 따라오니 성공적인 독서교육을 할 수 있다. 지은이도 이를 강조한다. '아무리 고전이 좋다고 해도 그냥 툭 던져 놓고 읽으라고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100% 실패한다. 고전은 오히려 다른 책들 보다 철저한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다'라고 말이다.  즉 관리가 중요한 것이다. 아이들의 독서는 방목이 아니라 유목이 되어야 한다. 부모가 길잡이가 되고 앞에서 잘 이끌어 주어야만 아이들은 <고전>이라는 양질의 풀을 뜯어 무럭무럭 잘 자라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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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3-01-16 0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잘 읽는 아이들은 고전도 잘 읽지요. 책 읽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는 선뜻 권할 수 없지만, 먼저 고전명작부터 접근해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해요.

희망찬샘 2013-01-16 06:09   좋아요 0 | URL
데미안은 이 책을 찬양하는 언니 덕에 읽었는데, 중학교 때 읽어서 제겐 무지 어려웠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축약본으로 읽었네요. 그 때 문고판 도서로 언니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많이 읽었거든요. 다시 읽어봐야지 생각하고 있는 책 중 하나에요.

수퍼남매맘 2013-01-16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 읽기 중요하고 꼭 필요하단 걸 알고 저부터 실천해 보려고 지금 <논어>를 조금씩 읽고 있어요.
딸도 창작 동화와 고전을 교대로 읽기 시작했답니다.
<데미안> 저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스승님 생각하면서요.

1학년 봐도 가끔 축약본을 읽는 아이들이 있더라고요.
아이들이 뭘 알겠어요? 부모가 사주고 읽으라고 하니 읽는 거겠죠.
축약본은 차라리 안 읽는 것보다 더 못한 것 같아요.

희망찬샘 2013-01-17 21:36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논어>>를 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