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학교에서는 말이 잘 통하는 선후배들이 여럿 있었다. 말이 잘 통한다는 것은 가치관 내지는 사상이 비슷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른 학교로 뿔뿔이 흩여졌는데도 불구하고, 가끔 가다 만나는데 이번 모임은 우리 집에서 했다.지난 목요일, 날도 춥고, 수퍼남매 저녁도 차려줘야 해서 겸사겸사 집으로 오시라고 했다.

 

물론 손님들이 오시니 청소 때문에 좀 거시기 하였지만  열심히 청소한 덕분에 그런대로 집안꼴이 되어 있었다. 가끔 집에 손님이 오셔야 집이 깨끗해진다. 그러면 뭐하나? 수퍼남매 특히 작은 아이가 한 번 어질러 놓으면 쓰나미가 지나간 것처럼 되어 버리는데...

 

우리 모임의 이름을 정했는데 <청소좀해>이다. 진짜 창의적이지 않는가! 임산부인 후배가 지어낸 이름이다. 다음 번에 자기 집에서 모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청소좀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임산부가 되니 해 먹는 것도, 청소하는 것도 귀찮다는 후배 말에 우리 모두 푸하하하 웃었다. 그럼 나는? 이미 출산도 다 했고, 두 아이의 엄마인데 여전히 요리 하는 것도, 청소하는 것도 귀찮은데...... 영화 <화양연화>보면서 제일 부러웠던 게 바로 매식하는 거였다면 내가 너무 게으른 건가? 밥하고, 청소하는 것에 들이는 시간이 너무 많다. 특히 우리들처럼 워킹맘들은 집에 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또 가사일을 해야 하니깐. 어찌 되었건 후배 덕분에 우리 모임의 이름이 탄생하였는데 진짜 마음에 든다.

 

나, 임산부 후배, 선배님은 전학교에서 동학년(6학년)을 같이 해서 친하게 되었고, 나머지 후배 한 명은 임산부 후배와 동기여서 같이 뭉치게 되었다. 만남이 이어지기 위해서 필수조건은 만나고 싶고, 만나면 재미있고, 뭔가 나를 일깨워 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모임이 나에겐 그런 존재이다. 만나고 나면 에너지를 받는다.

 

모두들 우리 집에 있는 책들을 보더니 입이 쩌~ 억 벌어졌다. 우리 집에 온 다른 사람들은 책에 대해 별 이야기 안 하는데 역쉬 책에 대해 기본 관심이 있어서인지 이것저것 물어보고 빌려가고 싶다고 했다. 남편이 있었으면 임산부 후배에게 딱인 책들을 추천해 주었을 텐데 난 그 쪽은 문외한이라서... 집이 가까우니 운동 삼아 우리집에 와서 빌려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도서관 책들보다는 수퍼남매 도서관책이 훨씬 깨끗할 테니까. 태교 삼아 읽는다고 몇 권을 빌려갔다. <그림형제동화집>은 잔인하여 비추천했는데도 극구 빌려갔다. 자기 스타일이라면서. 하여튼.

 

 

 

 

 

 

 

 

 

 

 

 

 

 

 

 

네스카페 돌체 구스토로 커피를 내려 드렸더니 맛있다고 칭찬해 주셨다. 후배가 지난 번에 " 선배님, 총알 사갈까요?" 해서 그게 뭔 말인가 했더니 캡슐을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이럴 땐 세대 차이를 팍팍 느낀다.(나와 9년 차) 다음 모임에 갈 때 기계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선배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애니팡 점수가 53만점이 넘냐고 물어 보셔서 직접 아이패드로 시연을 해 드렸다. '이 선배 한 번 빠지면 무서운데 앞으로 경계 대상이다. ㅋㅋㅋ' 선배님과 나의 인연은 참 깊다. 지난 학교에서 첫 친목회 행사를 가는데 버스 옆자리에 나란히 앉게 된 게 계기가 되어 친하게 되었다. 50대인데도 진보적인 생각과 따뜻한 마음, 배려심을 가진 정말 멘토 같은 선배이시다. 고민거리가 있으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분이다.

 

선배님의 말씀 중에서 " 난 교실 앞문을 항상 열어 둬. 누군가 우리 교실을 방문하려고 왔을 때 문이 닫혀 있으면 발걸음을 돌릴 수도 있잖아. 그래서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게 항상 열어 둬. " 이 말 하나만 봐도 얼마나 상대방을 배려하는 분인지 알 수 있다. 그 말 듣고 나도 앞문을 열어 놓으려고 노력하는데 겨울에는 찬바람이 씽씽 들어와 닫고 지낸다. 지난 학교에서 한 번은 옆반 후배가 하도 조용하고 말도 없어서 방해 될까 봐 옆반을 잘 안 갔던 적이 있다. 물론 후배도 우리 교실 안 오고 말이다. 서로가 서로를 방해할까 봐 극도로 조심한 것이다. 하지만 중간에 담임이 바뀌어 다른 후배가 오고나서는 둘 다 들락날락 거리면서 얼마나 수다(?)를 떨었는지 모른다.  난 원래 후자 스타일이고, 후자가 좋다. 너무 조심스러운 사이보다는 편한 사이가 좋다.

 

학교사회도 갈수록 개인주의가 팽배해져서, 내가 남의 교실 방문하기도 어려워지고, 남이 내 교실 오는 것도 귀찮아하는 추세이다. 사람은 만나서 차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밥도 먹고, 여행도 같이 가고, 잠도 같이 자 봐야 친해지는데..... 요즘은 삭막해져서 그게 불만이다.  연락사항도 메신저로 띡 하고 날리기만 하고 알아서 하라고 하고, 같은 학년인데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한 번 회의할 때만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 우리 학년은 자주 만나서 수다를 떨어서 유대감은 좋다.<청소좀해>모임이 가까워진 것도 바로 매일매일 만나서 회의하고, 수다 떨고, 고민을 나눴기 때문이다. 전임 학교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다. 다음 모임이 기다려진다.

 

기다려지는 또 다른 모임은 바로 독서동호회 모임이다.

지난 금요일, 동호회 시간인데 회의와 학년 일 때문에 결국 모임을 하지 못해서 얼마나 서운했던지.... 꼭 잊지 말고 건의해야지. 동호회 시간을 꼭 지켜 주시라고 말이다. 금요일 아침, 동호회 모임 선배님이 일 년 간 리더하느라고 수고했다고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셔서 무한 감동을 받았다. 선배님들이 개근하시지 않았다면 이 모임은 중간에 흐지부지 되었을 텐데 끝까지 개근해 주시고 열심히 참여해 주신 것에 내가 오히려 감사한데 말이다. 친정 어머니 말씀이 " 넌 인복은 있어" 라는 말에 나도 동감한다. 내 주변에 좋은 분들이 있어서 나도 조금씩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나만의 착각?)

 

아무튼 사람은 얼굴 맞대고 만나서 대화를 해야 정이 드는 법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찬샘 2012-12-04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이 정말 끝내주네요.
앞문 열어 두시는 선배님~ 아, 정말 찡하네요. 저도 학교에서 이런 선배님 보면서 많이 배웁니다. 말도 많이 나누어 보지 않았는데, 향기를 품고 계시는 분이 계세요. 그 반 아이들 너무 행복해 보이고요. 지금까지 두 분의 선배님을 마음에 담고 있는데 (물론 좋은 분은 수도없이 많지만!!!) 저는 꼭 그 분들처럼 나이들거라 맘 먹고 있어요. 남보다 일찍와서 아이들이 앉을 변기를 물수건으로 닦아 두시고, 복도에 나팔꽃씨를 심어 두시곤, 날마다 물을 주시던 분(컨테이너 교실이어서 바깥과 뚫려 있는 복도의 난간에 화분을 매달아 두시곤 날마다 물을 주셨지요. 그리고 우리가 감동하면 "내 잘했재?" 하시며 웃어주셨는데... 벌써 첫 발령지 이야기라 15년이 되어 가네요.)
우리도 그렇게 나이들 수 있어요. 아자!!!

수퍼남매맘 2012-12-04 07:39   좋아요 0 | URL
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도 감동이네요.
점점 선배가 되어간다는 것에 어깨가 무거워지곤 합니다.
후배일 때가 최고로 좋았어요. ㅋㅋㅋ
멋진 선배가 되도록 아자 아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