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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 ㅣ 진경문고
정민 지음 / 보림 / 2012년 9월
평점 :
아마 우리 집에 가장 많은 것은 책일 것이다. 거실 양쪽 가득히 책이 즐비하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아직도 책에 배고프다. 나보다 남편이 더 심하다. 나야 독서계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근래 들어서 책욕심을 부리지만 평생 독서가라고 칭할 수 있는 남편은 책에 대한 욕심을 지닌지 아주 오래되었다. 책 욕심 뿐만 아니라 책을 엄청 귀하게 다루어서 수퍼남매가 조금이라도 책을 함부로 다루거나 택배 온 책이 찍히거나 하는 날에는 큰일이 난다. 이런 아빠의 성격 때문에 우리 집 아이들은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해서 책을 무지 조심히 다루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틈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곤 한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신주 단지 모시듯이 하는 남편의 태도 때문에 가끔 부부싸움을 하기도 하였는데 그럴 때면 남편은 " 장정일 씨는 책을 보기 전에 꼭 몸을 깨끗이 씻은 후에야 책장을 넘겼다" 면서 자신이 결코 별스러운게 아님을 강조하곤 하였다. 그러면 나는 " 당신은 책이 소중해? 아님 우리 가족이 소중해?" 란 질문을 던지곤 하였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나서야 남편의 그런 태도가 결코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었으며 우리 조상들 중에도 남편과 같은 분들이 아주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책을 아주 사랑하는 분들은 남편보다도 더 책을 귀하게 다뤘다는 것을 알고는 그동안 남편을 이해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였다.
세계적인 기행문으로 일컬어지는 <열하일기>의 저자 연암 박지원의 말을 인용해 본다.
책 앞에서는 하품하지 말고, 기지개를 켜도 안 된다. 책에 침이 튀어도 안 된다.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는 고개를 돌려 책에 묻지 않도록 해라. 책장을 넘길 때 침을 바르지 말고, 손톱으로 표시를 남겨도 안 된다. 책을 베고 누워도 안 되고, 책으로 그릇을 덮어도 안 된다. 책을 쌓아 둔 것이 어지러워도 안 된다. 먼지를 털어 주고 좀벌레를 없애야 한다. 볕이 좋으면 즉시 말려야 한다. 남의 책을 빌렸을 때는 잘못 쓴 글자나 내용을 고쳐서 표시해 두어라. 종이가 찢어졌거든 때워 주고, 묶은 실이 끊어졌으면 다시 묶은 뒤에 돌려 주어야 한다. <선비란 어떤 사람인가>중에서- 본문 40쪽 -
이 글을 읽는 순간 내 남편이 특이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에게 정말 미안해졌다. 물론 나도 학급문고를 오픈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곤 한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앞으로는 이 글귀를 인용하면서 아이들에게 책에 대한 올바른 마음가짐 및 태도를 알려줘야겠다.
본론으로 넘어가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로 정민 교수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책을 보고나서 첫 느낌은 이 분 참 박식하다라는 거였다. 그리고 어려운 한시를 참 쉽게 풀어주셨구나 하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 분이 이제는 대학생이 되어버린 자녀에게 옛날이야기 들려 주듯이 옛날 사람들의 독서법에 대해서 조분조분 이야기를 들려주고 계시다. 독자는 바로 옆에서 아빠나 삼촌이 " 얘야, 옛날 사람들은 말이야. 책을 정말 귀하게 생각하였단다. " 며 말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책에 대한 이모저모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들려주고 있다. 가령 서양과 동양의 책장 넘기는 방법이 다르다는 점을 알고 있었는가? 난 그런 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런 부분까지 동서양의 문화 차이가 날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오른쪽 아랫부분을 잡고 넘기는데 서양인들은 오른쪽 윗부분을 잡고 넘긴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항상 아랫부분을 넘긴다. 이런 사소한 차이를 알고 서양화 그림을 보니 그림 속에서 독서하는 사람들이 모두 오른쪽 윗부분을 잡고 넘기는 게 금방 눈에 들어온다. 이 리뷰를 읽고 계시는 분은 책을 넘길 때 어떻게 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라!
뿐만 아니라 옛말에 "남자는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다섯 수레라 하면 어느 정도의 양일까? 그 당시는 대나무로 만든 책 즉 죽간이었기에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책보다 부피가 아주 컸다고 한다. 그래서 대략 계산해 보면 한 1000권 정도. 생각보다 적다고? 그런데 옛날 책이 지금의 책과 다르다는 점을 비교해 볼 때 결코 적은 양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조상들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금 우리들처럼 한두 번 정도 보는 게 아니라 줄줄 외울 정도로 본 것을 말하므로 단순히 1000권이라고 하여 얕잡아 볼 것은 아닌 듯하다.
조선 시대 문인 중의 한 명인 김득신은 사마천의 사기 중 <백이열전>을 무려 1억 1만 3천 번 읽었다는 이야기는 정말 놀랍다. 김득신 이야기는 나도 어린이들에게 자주 인용하는 부분인데 참 대단하신 분이다. 그야말로 " 노력해서 안 될 것은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분이라고 할까? 김득신은 다독하신 분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독은 많은 책을 읽는 것도 다독이지만 김득신처럼 좋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것도 다독이란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다독과 정독에 대해서 정확히 짚어 주신 점도 마음에 든다. 다독이 무조건 좋은 줄 알고 무조건 많이 읽으면 최고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주변에 많은데 그렇지 않다는 점. 다독할 책과 정독할 책이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정독할 책이다. 꼭꼭 씹어 읽어 제맛을 느끼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내용이 엄청 좋아서 여러 번 읽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나에게 완소책이 몇 권 있는데 그 중에서 책에 미친 사람들 즉 독서광에 대한 이야기책인 <책만 보는 바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 나온 사람들이 이 책에도 여러 번 등장한다.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등등이다. 그 책을 참 감동 깊게 읽고, 한 번 읽기에는 너무 부족하여 가까이 두고, 생각날 때마다 펼쳐 보곤 하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책 또한 나의 완소책이 될 성 싶다. 여러 번 읽고 싶은 책이다. 물론 김득신처럼 1억 1만 3천번은 아니겠지만서도 말이다.
정민 선생님이 자신의 자녀에게 조상들의 독서법에 대해 들려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듯이 나도 이 책을 정독하고, 또 다독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조상들의 독서법에 대해 재미나게 들려주고 싶다. " 얘들아, 우리 조상들은 말이지, 책을 눈으로만 보지 않고 낭랑한 목소리로 소리 내어 읽었단다. 그래서 옆집 도령의 책 읽는 소리에 반해 담을 넘어 와서 사랑을 고백한 처자도 있었다지 뭐야"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