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독서시간에 <신발 속에 사는 악어>라는 위기철님의 동시집을 읽었다. 동시집을 읽으니 가을이 더 깊어진 기분이 든다. 요즘에는 오후에 교실에 앉아 있으면 해가 깊숙하게 고개를 들이밀어 모니터 화면이 시꺼멓게 하나도 안 보인다. 깊어 가는 가을에는 시가 딱이다.

 

이 책도 나온 지 꽤 되어서(1999년 출간) 아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뒷북을 치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지금 읽어도 아니 10년이 더 지난 후에 읽어도 여운이 남을 좋은 동시들이 들어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한테 몇 편을 읽어줬는데 그다지 반응이 뜨겁지는 않았지만 한 편 한 편 소리내어 읽다 보면 동시의 맛을 알 것 같다.

 

작가님 말씀처럼 아이들은 잠자리에 누워서 부모가 지어내어 들려 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정말 좋아한다. 작가님도 본인의 딸에게 들려주던 이야기 같지 않은 이야기들을 모아서 이렇게 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부모의 별 것 아닌 이야기에도 " 까르르" 웃어주는 아이들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 어느 누가 자신이 들려 주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에 이렇게 화끈한 반응을 보여주겠는가!

 

누가 더 행복할까?

 

너는 참 좋겠다.

 

엄마가 비싼 옷만 입히니

친구들한테 뽐낼 수 있고,

 

집에 피아노가 있으니

피아노도 멋지게 잘 치겠구나

 

용돈을 많이 받으니

실컷 군걸질하고,

 

집에 자가용이 있으니

주말마다 차 타고 놀러 가겠구나.

 

너는 참 좋겠다.

 

엄마가 비싼 옷을 안 입히니

모래 장난도 실컷 할 수 있고,

 

집에 피아노가 없으니

피아노 연습도 안 하겠구나.

 

군것질할 용돈을 안 주니

이빨 썩을 염려도 없고,

 

집에 자가용이 없으니

차 타고 놀러 가자 떼 쓸 필요도 없겠구나

 

 

나비 한 마리 잡았을 뿐이라고?

 

나비 한 마리가

173송이의 꽃에 꽃가루를 나르고,

 

꽃 173송이에서는

열매 575알이 열리는데.

그 열매 576알을

벌레 769마리

들새 83마리

들짐승 34마리가

먹고 사는 거야.

 

그 나비를 빨리 풀어 주지 않으면,

네가 잡은 동물들이 모두 몇 마리인지

덧셈을 해 보라고 할 거야,

 

자, 덧셈을 해 볼래,

그 불쌍한 나비를 풀어 줄래?

 

 

책은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와 3부는 작가가 딸에게 지어내어 들려주던 이야기들이, 2부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주로 하는 잔소리나 교훈적인 내용이 담긴 동시들이 들어 있다. 잔소리 대신 시를 읊어 주는 방법도 괜찮을 듯하다. 나도 써 먹어봐야지.

아이들 방이 돼지우리처럼 어질러져 있을 때 딱인 동시이다.

 

돼지가 내 방에 들어와

 

돼지가 내 방에 들어와 꿀꿀꿀

이렇게 더러운 방에서는 꿀꿀꿀

낮잠을 잘 수가 없어 꿀꿀꿀

차라리 우리 집이 더 깨끗하겠어 꿀꿀꿀

돼지우리로 돌아갔다네 꿀꿀꿀

 

시궁쥐가 내 방에 들어와 찍찍찍

이렇게 어수선한 방에서는 찍찍찍

새끼를 낳을 수 없어 찍찍찍

차라리 우리 집이 더 깔끔하겠어 찍찍찍

시궁창으로 돌아갔다네 찍찍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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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2-09-23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특한 시집이잖아요. 위기철님 말씀대로하면 시짓기가 그리 힘든 일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야기를 연과 행을 구분하여 써 둔 형식이랄까. 저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어요.

수퍼남매맘 2012-09-24 23:11   좋아요 0 | URL
첫 페이지를 읽기 전까지 전 이 책이 동시집일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위기철 님 같은 분이 이런 말랑말랑한 동시를 지었다는 게 잘 믿기지 않았지만 정말 유익한 동시집이었어요. 전 위기철 님 같은 사회적이고 시사적인 글 쓰시는 분 좋아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