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날, 늦잠 잘까 봐 긴장해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내년이면 경력 20년차인데도 개학날은 이렇게 긴장한다. 아이들보다 먼저 교실에 가서 아이들을 맞이하는 게 교사의 책무라고 생각하기에 오늘은 더 서둘렀다. 개학날인데 비가 와서 할 수 없이 차를 타고 갔다. 여러 아이들이 지각들 하겠구만 하고 생각했는데 웬 걸 1명 빼고는 모두들 시간 전에 와서 책을 읽는 모습이 역시 이~뻐.

 

1. 전입생이 왔다.

   조회를 하고 있는데 앞문 쪽에 누가 오셨다. 나가 보니 역시 전입생이었다. 1학기에 2명의 결원이 생겼기에 당연히 전입생이 들어올 줄 알았다. 이왕이면 남녀비율이 비슷해지게 여자 어린이였으면 했는데 얌전하고, 예쁜 여자 어린이였다. 호주에서 태어났고,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이번에 전학을 온 거란다. 아까 집에 가기 전에 살짝 다가가 오늘 어땠니 하고 물어 보니 고개를 끄덕거리는 게 좋은 출발로 보인다. 전입생 때문에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을 제대로 못 들어서 교장 선생님 훈화 내용을 아이들에게 물어 보니 다들 고개를 푹 숙인다. 교장 선생님 안 보고, 전입생이 어떻게 생겼나 보고 있었던 게지. 왜 안 궁금하겠나? 그 동안 홀아비처럼 혼자 앉아 있던 양@@는 예쁜 여자 짝이 와서 신 났다. 내가 살짝 불러서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2. 실력이 늘었다.

  1교시에는 일기장을 꺼내서 여름 방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골라 보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발표기차를 출발시켜 앞 자리부터 순서대로 칠판 앞에 나와서 발표를 하는 거였다. 여름 방학 동안 친구들이 어떤 체험을 하였는지, 발표 실력은 많이 향상되었는지 한꺼번에 검증할 수 있다. 몇 명은 발표를 못 했다. 전 같으면 끝까지 시켰을 텐데 거기다 진을 빼고 싶지 않아 발표 못 한 친구들은 그림 그릴 때 2배로 잘하라고 넘어갔다.  발표하는 모습을 살펴 보니 1학기 내내 발표력이 약하여 애태웠던 장@@가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잘하여서 엄청 칭찬을 해 주었다. 여름 방학을 부모님과 알차게 잘 보내면 이렇게 좋아져서 오는 경우가 있다.  2-3교시에 그림을 그려 보니 또 그림 실력이 좋아진 아이들도 있었다. 남자 아이였는데 1년 넘게 미술 학원에 다녔는데도 1학기에는 형태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구도도 잘 못잡았는데 이번에 보니 많이 좋아져서 혹시 학원을 바꿨냐고 물어 보니 그랬단다. 1학기말 어머니께서 면담을 오셨길래  미술 부분이 조금 약하다는 것을 알려 드렸고, 뜻밖에 아이가 1년 넘게 미술 학원을 다녔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미술학원을 1년 이상 다닌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었던 터라서.....그럼 학원을 한 번 바꿔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조언해 드렸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말이 또 증명되었다. 실력이 늘어난 아이들은 부모님께 칭찬 받으라고 알림장에 오늘 일을 적어 줬다. 집에 가는 발걸음이 룰루랄라 신났을 것이다. 작은 것이라도 긍정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 교사로서 보람이 가장 크다.

 

3. 일기를 매일매일 쓴 기특한 아이들이 있다.

   4교시에 여름 방학 과제 검사를 하였다. 그러자 하나 둘 앞에 나와서 자수하는 아이들이 있다. " 저 일기장 안 가져왔어요. 저 더불어 통장, 저 책 읽기표 안 가져왔어요. " 다른 때 같으면 혼줄을 내 줬을 텐데 이번에도 꾸 ~욱 참고, 내일까지 가져오라고 하였다. 가져 와야 칠판에 적힌 이름 지워준다고 덧붙였다. 저학년 같은 경우 방학 과제 안 가져온 것은 엄격히 말해 아이들 잘못이 아니다. 부모님이 어젯밤 신경 써서 빠진 게 없나 살펴 보셨어야 하는데....  하여튼 안 가져온 애 야단 치는 대신 다 챙겨 온 아이들을 칭찬해 주었다.  하교지도한 후 일기장 검사를 해 보니 일기를 거의 매일 쓴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일기 지도할 때 나의 역사책이니만큼 매일매일 쓰는 게 가장 좋다는 말만 했을 뿐 강요한 적은 없었다. 보통의 아이들은 겨우 8편을 채워 왔고, 달랑 2편 써 온 녀석이 2명 있었다. 내일 이유를 물어봐야지.  꿈바라기(일기장 이름이다.)가 벌써 2권, 3권까지 넘어간 아이들이 생겨났다. 내일 왕창 칭찬을 해 주어야지.  선생님이 강요하지 않아도 이렇게 알아서 써오니 얼마나 대견한지. 물론 당사자와 학부모님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눈에 훤하다. 어제 울 아들, 일기장 글씨 좀 똑바로 써라고 잔소리 좀 했더니 얼마나 대드는지... 울면서 대드는데 많이 컸다 싶었다. 그런데 매일 일기를 쓰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힘든 과정을 거친 아이들을 당연히 격려해 줘야지.

 

4. 상표판을 리셋했다.

  우리 반은 1학기부터 상표를 모은다. 상표를 다 모으면 쿠폰을 주곤 했다. 그런데 1학기 상표를 모두 리셋시켰다. 모두 초기화가 된 거라고 설명해 주자 아이들은 알아 들었다. 2학기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1학기에 잘 생활하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희망적인 뉴스가 아닐 수 없다. 1학기 이어서 상표를 모으게 되면 계속 잘하는 아이들이 잘하게 되어 하위권 아이들은 의욕을 상실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 리셋을 해 주면, 하위권에 있던 아이들도 더 분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1단계는 아주 쉽게 상표를 30개 모으는 것이다. 일단 여름 방학 과제를 빠짐없이 해 온 아이들은 상표 3개를 주었다. 매일 성실하게, 매일 근면하게, 매일 노력하는 사람들은 상표를 빨리 모을 것이며 그에 해당되는 쿠폰을 받게 될 것이다. 1단계 쿠폰은 컴퓨터 자유 이용권이다. 컴퓨터 시간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쿠폰이다.

 

5. 책을 읽어줬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어줄까 고민하다 고른 책은 바로 <양심 팬티>이다. 똥꼬, 팬티 이런 낱말만 나와도 저학년은 자지러지게 웃는다.방학 동안 선생님의 책 읽어 주는 소리 그리웠냐고 물어 보니 그렇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고맙다.  다 읽어 주고 나서 반응을 보니 조금 시큰둥해서  생각보다 재미없었나 싶었는데 물어 보니 재밌었단다.  아직 아이들이 워밍업이 안 된 것이라고 생각해야지. 나도 아직 워밍업이 안 돼 지금 어깨가 결리고, 엄청 피곤한데... 1주일 정도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 듣고 있는 연수에서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기초적으로 길러 줘야 할 인성 능력은 " 근면성" 이란다. 개미처럼 부지런하게 일하는 것, 그것이 바로 초등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생활 습관이며 기본 학습 습관이라는 것이다. 근면하게 여름 방학 과제를 해 온 아이들과 그렇지  못 한 아이들은 2학기 학습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전에는 숙제 안 해 온 아이들을 야단 치느라  몽땅 에너지를 뺏겼는데 이제는 잘한 아이들을 칭찬해 주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방학 전에 여름 방학 동안 몇 권의 책을 읽을 것인지 독서서약서를 작성했었는데 그것도 못 지킨 아이와 성실히 지킨 아이들로 갈린다. 내일 가서 서약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짚어 줘야 겠다. 내가 몇 권 읽어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자기 스스로 부모님과 함께 권수를 정하고, 약속을 한 건데 약속을 터무니 없이 안 지킨 녀석들은 다음부터는 좀 더 약속을 신중히 하고, 지키려고 노력하라고 훈화를 해야지. 물론 서약을 잘 지킨 아이들은 칭찬을 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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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2-08-22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딸도 일기 정말 매일매일 쓰고 있어요 4학년이 되어서 휴가 이틀을 빼고 아직까지 매일매일 채우고 있다지요 아주 기특해요,,

수퍼남매맘 2012-08-22 20:03   좋아요 0 | URL
대단하네요. 매일 일기 쓰기가 정말 쉽지는 않은데... 솔직히 매일 독서하는 것보다 힘들잖아요. 장하다고 저 대신 칭찬해 주세요. 저희 딸도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매일 쓰게 할 때는 쓰더니 5학년 들어서는 일기를 거들떠 보지도 않네요. 5학년 선생님은 일기 대신 글마당을 쓰라고 하시더라고요. 자기가 알아서 일기 쓰는 아이들은 정말 기특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