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작년까지는 아이들 일기장에 코멘트를 달아 주질 않았다.
별 도장만 세 개, 두 개, 한 개 이런식으로 찍어 줬었다.
글씨도 엉망이면 다시 쓰라고 하였다.(일기가 국어 지도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었다. )
하지만 금년, 한 권의 책이 나를 변화시켰다.
바로 이 책이다.
책은 어마어마한 마력을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킨다.
이번 아이들과는 그 책에 나온 대로 일기 지도를 해 보자고 결심하였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원칙을 정했다.
첫째 맞춤법과 띄어쓰기 안 보기(그건 예전에도 그랬다.)
둘째 생각과 느낌을 쓰라고 강요 안 하기
셋째 글씨를 좀 못 쓰더라도 용납하기( 이 부분이 좀 어렵다. 적어도 읽을 수 있게는 써와야 되지 않나? 나중에 자신이 쓴 일기를 읽을 수 있을까 싶은 아이가 두서너명 있다.)
다섯째 아이들 일기 밑에 코멘트 달아 주기
나름대로 작년과 비교해서 참 헐렁해졌고 열심히 코멘트를 달아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이 책 읽기까지는 즐겁게 하는데 일기 쓰기는 수퍼남매도 즐겨 하지 않는다.
교육경력 19년에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여럿 봤어도 일기 쓰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아직 못 봤다.
그래서 이번 아이들과 한 번 책에서 가르쳐준대로 해 보고 아이들의 변화를 관찰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의 결심과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얄미운 아이들이 몇 있다. 그나마 수가 많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개발새발 글씨를 써와서 알아 보지 못하게 하는 아이와
무지 간단하게 써서 써 줄 코멘트가 없게 만드는 아이이다.
진짜 마음 같아선 그냥 사인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몽실몽실 피어난다.
윤태규 작가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예전에 내가 했던 일기 지도와 비교해 보면 참 허용적이고, 나름대로 열심히 코멘트도 달아주고 있는데
1-2명의 아이의 일기글에는 도대체 해 줄 말이 없다. 너무 짧아서 말이다.
글씨도 도대체 알아 볼 수가 없다. 나보고 안경 위에다 또 안경을 쓰라는 건가?
선생님이 노력하시는만큼그 아이들도 노력을 좀 해 줬음 좋겠다.
물론 내가 달아주는 코멘트와 일기 지도가 긍정적인 효과를 끼친 아이도 몇 명 있다.
그 아이들 때문에 웃는다. 보람도 느낀다.
자기네들끼리 내가 써 준 말들을 서로 읽어 주기도 하고, 무슨 말이 써져 있는지 몰래 보는 아이들도 있다.
오늘 코멘트를 달아 주다 보니 어떤 아이가 지난 주말에 매일매일 일기를 쓴 것이 발견되었다.
엄마가 시켜서 썼는지 자기 스스로 쓴 건지 확인할 길 없고,
진짜 일기가 쓰고 싶어서인지 일기장 2로 넘어가면 받는 쿠폰이 탐나서인지 알 길 없지만
어떤 이유인들 어떠랴!
일기를 자주 쓰는 아이들이 생겨 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2명의 아이들은 벌써 일기장을 한 권 다 쓰고 2권으로 넘어갔다.
교사가 똑같은 걸 지도해도
잘 쫒아오는 아이들과 못 쫒아오는 아이들이 항상 존재한다.
교사는 후자 아이들에게 더 마음을 써야 한다는 그 기본을 또 한 번 실감하는 요즘이다.
의원은 건강한 자에게가 아니라 아픈 자에게 필요하다는 진리 말이다.
아주 간단히, 그리고 글씨를 엉망으로 써 온 일기장을 다시 들여다 봤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머리를 쥐어 짜서 댓글을 달아 줬다.
윽~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할 아량이다.
걔들은 선생님이 이렇게 고생하고 있단 걸 알기는 할런지.....
생각해 보니 할 말이 없는 자신들이 더 답답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