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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척 ㅣ 길벗어린이 문학
우메다 슌사코 글, 우메다 요시코 그림, 송영숙 옮김 / 길벗어린이 / 1998년 12월
평점 :
연말에 들려온 학생들의 자살 소식은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 넣고 있다. 연이은 학교 폭력으로 인한 학생들의 자살 소식은 분노와 함께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왜 아무 죄책감 없이 친구를 노예 부리듯이 하며 학대하는지......연일 신문에서는 그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특집 기사를 내 놓고 있다.
오늘 신문에는 초5때 왕따를 경험하고 학교를 그만 둔 뒤 5년 동안 홈스쿨링을 한 어떤 고2학생이 이메일로 보내온 사연이 실렸다. 그 학생도 왕따를 당하면서도 보복이 두려워 내내 가족에게도 숨기고 있다가 아버지께서 자꾸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 보시는 바람에 결국 토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가족들은 자퇴를 결정하고, 홈스쿨링을 하고, 전학을 가고, 상담 치료를 받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를 해 나갔다. 그 과정이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래도 다시 학교에 들어가서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도 관계가 좋아졌다면서 그 학생은 지금도 자신과 같이 학교 폭력을 경험하는 이들이 있다면 절대 숨기지 말고 털어 놓으라고 조언을 하였다.
더 이상 이런 비극적인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다시 이 책을 읽어 보았다. 1998년에 나온 책인데 지금 우리나라 학교 폭력의 상황과 그대로 판박이 한 모습은 보는 내내 깜짝깜짝 놀랄 정도였다. 일선 학교에서 교실마다 이 책을 하나씩 비치해서 학생들에게 꼭 읽게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2/0110/pimg_772868196727375.jpg)
이 책은 왕따를 목격하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보았던 내용을 고백하듯이 말하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돈짱의 왕따는 겨우 " 재채기" 로 인해 시작되었다. 돈짱이 우연히 재채기를 할 때 야라가세 4인조가 지나가다가 그걸 봤고, 거기서부터 그들의 돈짱 괴롭히기는 시작되었다. 참 어이없지만 왕따는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이유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야라가세 패거리에게 찍힌 돈짱은 재채기를 한 그 날 이후부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한다. " 나 "를 비롯한 학급의 아이들은 그걸 모두 목격하지만 "모르는 척" 한다. 자신도도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할지 모르니깐 말이다. 야라가세 패거리들은 돈짱의 그림에다 마구 낙서를 하고, 이상한 춤을 추게 하고, 도둑질을 시키고, 심지어는 교실에서 돈짱을 엎어 놓고 바지를 벗기는 등의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벌인다. 그런 모든 것을 보면서도 " 나 "는 모르는 척한다. 학급의 누구 하나도 선생님에게, 어른들에게 알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선생님 또한 교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눈치 채지 못한다. 대구에서 벌어진 일과 똑같다. 돈짱은 그렇게 같은 반 급우들로 부터 철저하게 인권이 유린되고 있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나"를 비롯한 급우들은 자신들 또한 폭력의 희생자가 될까 두려워 철저히 침묵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2/0110/pimg_772868196727376.jpg)
그러던 학예회 날, 연극을 하던 중 돈짱은 그동안 자신이 당한 그 모멸감을 그대로 갚아 주고, 학교를 나오지 않는다. 학예회 연극 때 그 엄청난 일이 벌어졌음에도 누구도 그 일에 대한 철저한 규명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일선 학교들이 학교 폭력이 벌어져도 쉬쉬하고 덮으려고 하는 것과 똑같다. 이에 절망한 돈짱은 전학을 가 버린다. 더 이상 희망이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돈짱이 전학을 간 이유를 두고 사람들이 도둑질을 한 것 때문이라고 말할 때 "나 "는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낀다. 정말 이건 아니다. 그동안 인권을 유린당한 것도 억울한데 도둑이라는 누명까지 쓰다니 말도 안 된다. 하지만 "나"는 또 모르는 척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모르는 척으로 일관했던 " 나" 는 드디어 의자에 올라가 더듬거리며 말을 한다. 그건 그동안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도 모르는 척 하고 있었던 "나" 자신에 대한 회개의 고백이었다.
이 이야기는 제3자의 입장에서 학교 폭력을 보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야 말로 마음의 빛을 잃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묵직하게 깨닫게 해 준다. 더 이상 무슨 부연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모르는 척" 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 말로 친구를 죽음으로 내몰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모 학교에서 학교 폭력을 목격하면 그 자리에서 " 멈춰 "라는 말을 하는 멈춰 제도를 시행해서 큰 효과를 봤다는 기사를 읽었다. 앞에서 말한 그 고등학생도 그런 상황이 오면 용기를 가지고 " 멈춰"라고 말하도록 배웠다고 한다. 올해에는 누구든지 폭력을 목격하면 큰소리로 "멈춰" 라고 말할 수 있는 작으마한 용기를 냈으면 한다. 그 작은 용기가 나에게는 빛을 잃지 않게 해 주고, 폭력을 당한 사람에게는 살아갈 희망을 줄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