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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연필 일공일삼 71
신수현 지음, 김성희 그림 / 비룡소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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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를 한 편 본 듯하다. 그 중에서도 무조건 착한 일만 하는 수퍼 히어로가 아니라 초능력을 가진 자로서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스파이더맨 >이 가장 어울릴 것 같다. 

평범한 우리네들은 누구나 한 번 내가 수퍼 히어로라면, 나를 초능력을 가진 자로 만들어 주는 마법과도 같은 비밀의 물건이 있다면 구질구질하지 않고 한 번 폼나게 살 수 있을텐데 라고 상상해 봤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민호도 요즘 흔히 말하는 엄친아와는 거리가 먼 아이이다. 부모님은 별거 상태이고, 학교에서 그닥 모범생도 아니고, 평범하기 아니 약간은 부족한 것 처럼 보이는 아이이다.  그런 아이에게 어느 날 꿈만 같이 뭐든지 잘 쓰게 만드는  빨강 연필이 손에 들어온다. 그 빨강 연필로 글짓기를 했더니 하루아침에 반에서 최우수 글짓기로 뽑히게 되고,  글짓기로 상도 타게 된다. 뜻하지 않게 변방에 있던 민호가 이제 당당히 주인공으로 주목받고 덩달아 혼자서 민호를 키우는 어머니 또한 잘난 아들 덕분에 의기양양해지기 시작한다. 

빨강 연필이 있으니 그동안 반에서 잘 나가던 재규보다도 더 잘 나갈 수 있고, 글짓기를 잘한 덕분에 혼자 좋아하던 수아에게도 관심을 받고, 재규만 좋아하는 것 처럼 보이던 선생님에게도 백일장 대회에 나가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지만 그 속에서 민호는 갈등한다. 빨강 연필이 자신을 글짓기 잘하는 민호로 만들어 주었건만 마냥 기쁜 것은 아니다. 그건 아마 민호에게 양심이란 게 있기 때문이리라.

빨강 연필이 대신 써 준 <우리 집>은 민호가 바라는 우리 집의 모습이긴 하지만 현재의 모습은 아니므로 거짓말을 한 셈이고, 그걸로 다시 글짓기 우수작으로 뽑혀 사람들로 부터 칭찬을 받게 되자 민호는 오히려 죄스럽기 마저 하다. 한 번 시작한 거짓말은 이제 엄청난 눈덩이로 불어나서 더 이상 물러설 수도 없어 보인다.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민호. 이제 진실을 밝히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은 아닐까? 아님 지금이라도 수아에게 자신이 유리 천사를 깨뜨렸다고 고백하는 게 나을까 ? 지금까지 한 글짓기는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바로 빨강 연필이 대신 한 것이라고 모두에게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게 나을까?  모든 걸 밝혀도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줄까?

민호의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민호가 자신만의 비밀일기장에 쓴 글이다.  

양치기 소년은 혼자 너무 외로웠다. 

양이 아니라 사람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했다. 

누군가 소년의 외로움을 알아주었다면 

그의 말을 한 번만 더 믿어 주었다면 

그런 사람이 한 명만 있었다면 

소년의 양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거짓말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자기를 다시 믿어주는 사람이다. 

민호의 일기장은 두 개다. 선생님께 제출하는 일기장과 별개로 자신만의 비밀일기장이 있다. 하나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일기장이고 하나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쓰는 일기장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누구나 민호처럼 제출용과 비밀일기장 두개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일기는 자신을 위해 쓰느 건데 말이다. 고학년은 그래서 일기 검사가 별 의미 없어 보인다.

민호의 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민호가 수아의 유리천사를 실수로 깨뜨린 사건부터 시작해서 빨강연필의 활약에 힘입어 글짓기 대회 수상을 한 것까지 민호에게 빨강연필이 오롯이 기쁨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속에서 민호는 선과 악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지 독자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진실을 밝힘으로써 사람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릴 지도 모르고, 무엇보다도 자기만을 믿고 있는 어머니를 실망시켜드릴 수도 있기에 섣불리 진실을 말하지도 못하는 민호의 마음이 절절히 실려 있다. 이 비밀일기는 민호가 자신을 그대로 믿어 주는 단 한 사람을 얼마나 열망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민호는 이렇게 갈등하면서 비로소 엄마와 싸우고 나서 집을 나간 아빠도 내 마음 같지 않았을까 하면서 아빠의 입장을 서서히 이해하게 된다.  

빨강 연필- 지니와도 같은 행운이 민호에게 어느 날 찾아왔고 그 행운은 민호를 어느 새 주목 받는 아이로, 전국 백일장 대회에 나갈 만큼 능력 있는 아이로 변신시켜 놓았지만 민호는 그게 바로 자신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악마의 유혹 같은 속삭임이란 걸 깨닫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것도 자신의 몫임을 알게 된다. 빨강 구두를 신고 싶었던 아이가 빨강 구두를 신자마자 그 빨강 구두에 이끌려 미친 듯이 춤을 추고 급기야 춤을 멈추기 위해 발목을 자르게 된다는 안데르센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르다. 빨강 연필이 민호를 글짓기 재주가 많은 아이로 하루아침에 주목 받게 해줄지는 모르겠으나 언젠가는 그 빨강 연필을 자기 손으로 잘라내야 할 때가 올 지도 모른다.

평범한 우리에게 놀라운 능력을 가져다 주는 빨강 연필이 있다면 그걸로 일기도 잘 써서 선생님께 칭찬 받고, 글짓기도 잘해서 상장도 받고, 전국대회 나가  우승도 하고, 요즘 치러지는 기말고사도 올백도  맞을 것 같고 ,모든 것이 술술 잘 풀릴 것 같지만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온 행운과 능력은 우릴 꼭그렇게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만은 않는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초능력이 주어지면 그걸 선하게 쓸 사람이 거의  없기에 신은 인간을 전지전능하게 만들지 않으신 거라고 생각한다. 전지전능한 인간이었다면 그 능력으로 선을 행하기 보다 악을 먼저 행할 것을 알기에 신은 인간을 부족한 채로 놔둔 것이다.  

빨강 연필이 민호를 언제 찾아왔는지 떠올려 보자. 바로 민호가 수아의 유리천사를 실수로 떨어뜨려 깨뜨린 후 그걸 몰래 숨기려고 할 때였다. 인간이 가장 나약할 때 악마는 달콤한 속삭임으로 나를 유혹한다. 나를 한 번 가져 봐. 뭐든지 할 수 있어. 너를 최고로 만들어 줄게.그건 바로 예수가 광야에서 40일 간 금식 기도를 할 때 나타난 사단이 예수를 유혹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어떤 면에서 나약하다. 그래서 쉽게 악마의 유혹에 현혹되기도 한다. 어린아이는 더 그렇다. 민호가 그랬듯이 한 순간에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거짓말이 되어 버려 언젠가는 자기 스스로 빨강 연필을 불에 태워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럴 때 민호가 일기에 쓴 것처럼 내가 가장 나약할 때 나를 믿어줄 단 한 사람의 누군가가 있다면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어린이책을 그닥 많이 읽어보지 못했지만, 내가 읽어 본 책 중에서  베스트 5에 들어갈 정도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이것 저것 많이 하셨는데 그 경험들이 책 안에 다 녹아들어간 것 같다.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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