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시대 - 문보영 에세이 매일과 영원 1
문보영 지음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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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시대라는 기록집.



4차원이라 공감하기 어려웠다고 해서 살짝 걱정되었는데 이게 재밌었던 걸 보면 나도 좀 4차원인건가 싶은....

일기라기엔 매우 길고 정교하여 에세이를 넘어 소설같기도 하다. 작가가 시인이라는 걸 중간에 알았는데 꽤나 이해가 된다. 어릴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썼다고 하던데 그래서 이 책에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다 들어있다. 어릴때 쓴 건 아니고 그때의 일기를 보거나 떠올리며 썼으리라.

읽으면서 정확한 표현력과 재밌는 에피소드들에 눈도 맘도 즐거웠지만 이 책은 일기라기 보단 제목이 일기시대인 에세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물론 에세이도 일기라면 일기지만. 시인의 일기는 보통 사람의 일기의 수준으로 보자면 넘사벽이다. 이 정도가 일기라면 내 일기는 장롱 속에 평생 쳐박혀야 할지도 모른다 ㅠㅠ

재밌는 남의 기록을 보고자한다면 더없이 재밌는 책이다. 그래도 좀 피로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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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분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3
윌리엄 포크너 지음, 공진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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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말에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1년만의 오프라인 모임이었다.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모임에, 그것도 1시간도 넘게 걸리는 지역에서 하는 모임에 참여하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책이 바로 [소리와 분노]였다. 도대체 몇 년간 세계문학책장에 꽂혀만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이 울부짖는 소리와 분노가 드디어 내 귀에 닿은 듯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이 책의 첫번째 섹션인 1부 벤지 섹션에서부터 난관은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1부를 넘어가면 그래도 쉽게 읽을 수 있다고들 하였으나 개인적으로는 2부 퀜틴 섹션이 훨씬 힘들었다. 버지니아울프의 의식의 흐름에 조금은 익숙한 탓인지 벤지섹션의 변주는 긴장되면서 흥미로웠다. 어떤 이들처럼 집요하게 읽지는 않았다. 그저, 시간의 변화를 벤지처럼 감각적으로 느끼고 싶었고 그렇게 읽으려고 했다. 그러니 오히려 더 내 이야기인듯 다가왔다.  1-2-3-4-1-2의 순으로 읽으라는 충고들이 많았다. 그 충고는 새겨들을 만 했다. 두번째 읽은 벤지 섹션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사건을 명명하는 대신 감각(특히 후각)으로 두서없이 표현하는 벤지의 표현력은 관념과 감정에 치우친 퀜틴과 제이슨에 비해 훨씬 객관적이었으며 그 객관성이 주는 아름다움이 내겐 어마어마했다. 이 소설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색깔 하나로 변주를 드러내는 것이 불친절하다고도 느낄 수 있겠지만 나는 그마저도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마저 했었다. 


두번째 읽은 퀜틴(퀜틴 섹션 = 퀜틴 자신)은 처음 읽은 퀜틴보다는 공감하기 쉬웠으나 그래도 내겐 너무나 벅찬 캐릭터였다. 몰락하는 집안의 기대주로서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을 법도 한데 그는 오직 캐디만을 생각했다. 캐디의 타락과 결혼과 불행을 받아들일 수 없는 퀜틴은 그녀를 구해내지 못한 자신의 과거를 용서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 집안의 문제는 언제나 벤지로부터 시작하는데 퀜틴에게 벤지는 그다지 중요한 의미는 아닌 걸로 봐서 가족으로서의 소속감은 가장 적은 인물이다. 인두 두개를 준비할 정도로 치밀하면서 삶을 나아갈 치밀함을 갖지는 못한 퀜틴에게 공감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시간과 과거와 인간의 삶을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들이 가득찬 퀜틴 섹션을 읽으며 그 관념적인 생각들이 모조리 똥처럼 느껴지는 건 내가 너무 현실화되었기 때문일까? 소싯적 멜랑꼴리와 친했고 오늘 아침에도 감성적이라는 말을 들은 사람으로서 100% 현실적 인물은 아닌데 퀜틴을 이해하기는 두번 모두 어려웠다. 차라리 제이슨을 이해하는 것이 쉬웠다. 


퀜틴의 머릿속을 빠져나오니 3부 제이슨이 기다리고 있었다. 화자가 말하는 시점으로 보자면 1910년 퀜틴을 제외하곤 제이슨은 가장 빠른 날짜인 1928년 4월 6일을 살고 있다. 미스퀜틴(캐디의 딸)을 드잡이하고 빨강 넥타이와 일거에 잡으려는 제이슨의 하루. 그의 하루 동안 내뱉은 말들을 보면 '폭력적'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래, 엄마의 삐뚤어지고 부담스러운 기대에 진절머리가 날 만도 하지. 아버지도 장남도 아닌데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가족을 부양할 책임을 몽땅 짊어지는 데다가 고용된 흑인 가정까지도 책임을 져야하는 삶의 무게가 내게도 가혹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강물에 뛰어들고 싶은 사람은 제이슨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남을 것이다. 캐디의 돈을 꿍쳐놓으며 엄마와 미스퀜틴을 속이면서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뻔뻔하게 그들 위에 군림하는 제이슨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기 어려웠을 제이슨이 가엾기도 했다. 


딜지의 시선도 아닌데 딜지 섹션이라 이름붙은 4부.  마지막 장면에서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마차를 모는 것을 못 견딘 벤지가 그간의 끙끙댐이 아니라 울부짖음을 토했다. 그런 벤지와 러스티를 집으로 돌려보내던 제이슨의 말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거칠었지만 왠지 거기에서 나는 이별을 느꼈다. 4부에 딜지를 내세운 것은 교회에서 "제이슨은 집에 집에 오지 않을 거야. 나는 처음과 마지막을 봤어."라는 복선을 드러내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어찌 보면 작가의 생각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듯도 하지만 윌리엄 포크너는 대답할 수 없으니 그냥 그렇게 짐작한다. 물론 딜지는 실재적 부모가 없는 콤슨가에서 실질적 모성을 담당하는 인물이니 충분히 하나의 섹션을 차지하는 것이 부당하지 않지만 캐디를 능가할 정도의 존재감은 아니니 딜지의 섹션 그것도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4부는 결국 제이슨의 떠남을 말하고자 함이 아닐까? 벤지만 남겨두고 모두가 떠나는 그 마지막을 위해서 말이다. 


천치의 감각에 의존한 문체, 수재의 관념으로 가득찬 문체, 감정을 그대로 대사로 드러낸 문체,  사건의 처음과 끝을 아우르는 듯한 문체.  이처럼 [소리와 분노]는 그 내용적인 면에서는 인간 몰락의 향연같았지만 다양한 문체의 향연이라는 매력도 있다. 내용적인 면은 내가 당시 상황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무하여 복잡한 해석은 할 수 없지만 남북 전쟁이 끝난 후에 몰락된 가정이 어디 콤슨가 뿐이랴? 싶은 생각은 든다. 콤슨가는 당시 몰락할 수 있는 한 가정의 끝판왕으로서 의미가 있으리라. 형식적인 면에서 한 섹션도 차지하지 못했지만 네 개의 섹션에 고르게 존재하는 사랑스러운 캐디에 대해서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벤지에게 친절했던 캐디, 퀜틴을 불안하게 했던 캐디, 제이슨의 도구였던 캐디, 미스 퀜틴의 원천인 캐디. 콤슨 가에 가면 캐디가 사랑스럽고 다정한 미소로 반겨줄 것만 같은데 캐디도 미스퀜틴도 그집에선 살아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요상한 자존심과 집착으로 사람을 질리게 하는 이 집의 엄마같은 사람이나 있을 수 있는.  그런면에서 타락을 선택한 두 여성을 더 지지하고 싶다. 타락이란 무엇인가? 캐디와 미스퀜틴을 타락이라고 할 수 있나? 그때는 몰라도 지금의 관점에서 그들을 타락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도리어 무너져버린(몰락) 아버지, 퀜틴, 제이슨에 비해 캐디와 미스퀜틴에게선 생명력마저 느낄 수 있었다. 


어려운 소설임은 분명하다만 흥미로운 소설이고 읽고나면 이름 붙이기 어려운 충만한 마음이 드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가지고 다양한 방면으로 해석이 가능한 모양이다. 윌리엄 포크너는 말이 없으니 그 다양한 해석이 모두 신기하다.  내가 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목대로 <소리>와 <분노>는 잘 느끼지 못했다. 소리라곤 벤지의 끙끙거림이요, 분노라곤 제이슨과 미스퀜틴의 폭발이다. 제목이 은유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아마 나는 퀜틴을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너무 아픈 은유는 은유가 아니었음을......백치가 된 기분으로 끙끙대다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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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나팔꽃사진을 찍는 내게 동료가 그건 나이든 증표라고 했다. 내 휴대전화에는 애, 책, 꽃이 전분데. . .


맞는 말이긴 하다. 어릴 땐 자연이 고운 줄 몰랐다. 두렵기는 해도 아름답다고 생각 못 하고 20대를 보냈었다. 아이를 낳고 한 해 두 해 지내다보니 온통 피사체는 아이와 꽃이다. 그러니 어찌 그 말을 부정할까?



과학 실험 후 남은 꽃도 아깝고 예뻐 플라스틱 비커를 꽃병삼아 꽂아두었다. 예쁜 걸 어째?



요즘 꽃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그림책도 두 권 읽어주고 나도 책 하나 빌렸다. 그림을 배우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 수채색연필을 하나 살까 고민 중이다.




















자연은 너무 아름다운 날들인데

사람이 너무 많은 잘못을 했다.
사람이 자연을 애틋하게 여기면 좋겠다.

내가 너무 안쓰러했나 아이들이 해부된 백합을 땅에 묻어주자고 했다. 웃음이 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묻지는 않았는데 묻을 걸 그랬나 후회가 되기도 한다. 우리의 실험 재료가 되어주어 고맙다 백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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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20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는 말씀이에요 애틋하고 소중히 여기면 참 좋을 텐데 말이에요 ^^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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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책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단숨에 다 읽어버릴 줄은 몰랐다. 더구나 아버지의 이야기를. 내게 아버지는 아킬레스건과 같은 되도록이면 건드리고 싶지 않은 주제인데 아니에르노의 냉담한 듯 무덤덤한 듯 쓰여진 아버지 이야기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요즘 말로 이 무슨 129?


나의 아버지도 그녀의 아버지도 가난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녀의 아버지는 그 시대 많은 아버지들이 그러했듯 못 배웠지만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고 나의 아버지는 당시 흔치 않게 대학 교육까지 받아 그 시대에 쓰임이 많았음에도 무엇 한 가지 끝을 보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이리라. 사춘기 소녀 시절엔 못 배운 아버지에게 느끼는 부끄러움이 무책임한 아버지에게 느끼는 부끄러움보다 크겠지만 어른이 되고 나면 전자의 경우 부끄러워한 자신이 더 부끄러워지게 된다. 다음 세대에겐 천하게 느껴지는 삶이어도 그 세대의 삶에서 그것은 어떤 대표성을 띨 만한 삶이므로 그에 대한 명예회복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하기에 아니 에르노는 이 소설을 쓸 수 있었고 나는 나의 아버지에 대해 아무 것도 쓸 수 없다. 


가진 것이 없는 집안에 태어나 갈수록 머리는 굵어져 눈에 보이는 것도 많아진 딸에게 아버지의 천박함이란 얼마나 멸시하고픈 대상이었을까? 그 멸시는 실제로 아버지에게 닿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때로는 모르는 척, 때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버티어가며 끝까지 아버지와 딸로서 남았고, 한 세대가 저물고 나서야 다음 세대로서 앞 세대를 위해 '당신 잘 살았구려!'하는 마음의 헌사를 바치고 싶어진 것이리라. 어쩌면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내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기억 하나가 있는데 사춘기 시절 파란 슬리퍼를 신고 마주오는 엄마를 못 본 척 한 것으로 그 죄책감이 지금껏 나를 누르고 있다. 그런데 정작 엄마는 먹고 살기 바빠 그런 것은 예민하게 느끼지 못했다. 아마 아니에르노의 아버지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자녀들이 자신들을 부끄러워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나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이런 마음으로. 그저 예민함은 다음 세대로 넘어가야 하는 자녀들의 몫일 뿐.  그래서 참 다행이기도 하다. 상처를 준 사람은 있는데 상처를 준 사람만 상처를 받는 거니까. 그러니 이 소설은 아버지에 대한 헌사이지만 아버지를 위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만약 이 소설을 읽는다면 그녀의 아버지는 무척 기쁠 것이다. 


아니 에르노는 가난하고 천박했던 세계에서 부유하고 교양있는 세계로 넘어가는 자신이 그 문턱에 내려놓을 유산으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소설로 썼다. 어쩌면 다음 세대에게 똑같이 멸시의 대상이 될 세계로 들어간 것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넘어가는 그 문턱에 내려놓을 유산이 있는 아니 에르노가 부러웠을까 나는 왜 이 책을 그토록 빨리 읽었나? 내 아버지의 유산은 그 흔한 '아버지처럼 살긴 싫었어!' 뿐인데 그것을 내려놓고 그렇게 문턱을 넘어갈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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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1-06-07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너무 쓰기 힘들 것 같아요. 이걸 썼다는 그 자체로 작가는 정신적으로 어느 지점을 넘어선 성장을 이루지 않았을까 싶네요. 저도 찾아봐야겠습니다.

그렇게혜윰 2021-06-07 07:04   좋아요 1 | URL
심지어 글이 아름답기까지하니 대단한 작가입니다!!
 

  아들은 열네 살이 되었고 지난 해부터 조짐을 보였던 홀로서기가 본격화되면서 공유하는 것들이 많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 관해서는 다소간 공유의 흔적이 남아 있어 책이라는 존재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지난 해에 함께 독서일기 쓰길 얼마나 잘했던가, 올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첫 국어 시간에 선생님의 칭찬을 들은 아들은 대뜸 논술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자고 권해도 강하게 거부만 하던 녀석이 왠일인가 싶었지만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고, 쇠뿔도 단김에 뽑아야하니 급하게 그러나 신중하게 논술학원을 등록했다. 원래도 책이라면 꾸준히 즐겨 읽는 아이였는데 너무 판타지 소설 등 재미주의로만 읽는 게 내심 불만(?)이었던지라 학원에서 선정해주는 책들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지난 달엔 과학책을 읽더니 이달엔 심리학(?) 분야를 읽는 모양이다. 아들 녀석 덕분에 나도 류츠신의 [삼체]를 완독할 수 있었고 - 그 얼마나 버거운 여정이었던가- 지금도 아들이 읽는 책의 귀퉁이나마 만나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 저런 이유로 도서관에서 아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들을 고르는 건 무척 설레는 일이다. 물론 나만 설렌다. 홀로서기 중인 아들은 "굳이 엄마랑?"이런 마음일 테지...그래도 꿋꿋하게 시도한다.


[질문의 책], 에바 수소 (지은이),안나 회그룬드 (그림),홍재웅 (옮긴이)

우리학교2021-01-25원제 : Alla frågar sig varför



우선은 얇아서 합격! 그림이 마치 모리스센닥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합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길을 주지 않는 아들은 불합격! 흥! 내가 먼저 읽자!


 철학자들의 명언10가지가 답이라면, 그 답을 얻는 질문은 어떤 것이 있을까? 그런 고민을 나는 해 본 적이 없다. 사실 아이들의 고민에 철학자의 답까지 연결시킬 생각도 없었다. 마치 내 안에 답이 다 있는 것처럼 그렇게 아이의 말을 들어줬겠지?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철학자들의 답이 아니라 그 답이 나오는 아이들의 마음 속 질문들이다. 나는 누구이며 내 감정은 무엇에 의해 변하는지, 내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어떨 때 달라지며 그 태도의 의미는 무엇인지 엄마의 잔소리가 아니라 이 짧은 책을 통해 한 번 멈춰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거라 아이에게 꼭 읽히고 싶었다. 예전에 읽었던 [질문 상자]라는 책처럼. 다만 [질문의 책]이 좀더 열네 살에게 어울린달까? 그런 차이는 분명 있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책을 한 번 쓰윽 읽더니 "별로야."라고 말했다. 흙빛으로 변하는 내 얼굴을 숨길 수 없었다. 너의 마음은 진지한 것을 외면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아직은 어려서 이런 깊은 질문이 마음에까지 닿지 않은 걸까? 어쩌면 둘다 일수도 둘다 아닐 수도 있겠지. 그래도 꿋꿋이 너에게 책을 건네는 쓸모없는 부지런을 떨 테다. 그래서 한 권 더 권하려고 내가 먼저 읽어봤다. 


[보여진다는 것] 김남시 (지은이),이지희 (그림)너머학교2020-09-11


 이 시리즈의 책이 다 좋다. 역시 얇고! 내용은 깊다! 

 홀로서기와 동시에 가족의 눈이 아닌 친구의 눈이 더 중요하게 된 열네 살 아들. <보여진다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그 나이 때의 누구나 그런 일이라 심각하게는 여기지 않는다. 나는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하지 않았다. 책의 초반이 참 좋았다. <사물-나>의 세게에서 나는 보는 사람일 뿐이었지만 <사물-나-타인>의 세계가 되면서 나는 보는 사람임과 동시에 보여지는 사람이 되어, 남에게 어떻게 보여질까를 고민하고 타인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정하게 된다는 글을 읽으며 아들에게 권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아이들에게는 가볍고 친숙한 예시들(셀카와 같은)이었으나 더 깊은 내용을 원했던 나는 작가가 뒷부분 쓸 때 바빠서 집중력이 흐트러졌나 싶은 생각마저 했다. 결국 아들에게 읽히지는 못했다. [질문의 책] 반응을 받은 직후라 일단 내가 기억해두는 것으로 참았다. 뭐랄까 비상식량이랄까?


 책으로나마 맺어진 연결줄은 서서히 가늘어지고 있는 요즘, 아들이 내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새롭게 생겨난 연결줄이 하나 있는데 바로 <탐정 포와로>이다. 히가시노게이고에 이어 애거서크리스티의 소설을 하나씩 읽는 게 내 독서 패턴 중 하나인데 애거서크리스틴 중에서도 탐정 포와로를 좋아해서 마플 여사보다는 포와로가 등장하는 소설을 주로 읽는 편이다. 읽고 재밌으면 드라마도 찾아본다. 그러던 참에 아들이 함께 보게 된 게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이었다.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다작을 하는 작가들은 내용의 유사성을 피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 많은 작품들 중에 몇몇은 '이야~~기가 막히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작품이 그랬다. 포와로와 헤이스팅스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라는 것, 애거서 크리스티의 데뷔작이라는 작품 배경도 의미있지만 그냥 자체로 재미가 있었다. 도대체 범인이 누구지? 그 질문을 소설이 끝날 때까지 가져간다는 점은 추리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인물이 초반에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게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의 힘든 점이지만 어느 인물하나 불필요한 게 없어 정신을 꼭 붙들어매야 한다. 그래서일까 드라마에서는 한 사람이 빠졌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아들이 탐정 포와로에 반했다. <명탐정 코난>도 엄마 덕에 입덕했는데 자기 말로는 "코난 이후에 나를 사로잡은 건 포와로 뿐이다."라고 하니 엄청 맘에 들었나보다. 이어서 우리는 '1일 1포와로' 하는 중이다. 시즌13까지 나온 드라마이다 보니 많은 소설이 드라마로 각색되었는데 이때 아들이 드라마를 고르는 기준이 바로 <엄마의 추천>이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들의 기대인가! 실망시킬 수 없어 그제는 <나일강의 죽음> 어제는 <힐로윈 파티>를 함께 보았다. 일단 내가 읽었던 소설 중에 재밌는 작품을 골라야하니 오래 전 읽은 소설까지 다 소환해야 할 지경이다만 열네 살의 네가 이렇게 나를 찾아주니 어렵게 잡은 주도권을 꼭 오래 지켜내고 싶다. 뒷방 늙은이 같은 신세여 잠시만 안녕! 아들이 시간이 난다면 소설도 같이 읽고 싶은데 지금 당장은 드라마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그냥 너에게 '열네 살 적의 추억'을 쌓아주는 것으로 만족하련다.


 말을 하고 보니 아들은 어느 나이 때에 얻은 추억들이 있어 지금도 간혹 그 이야기들을 꺼내곤 한다. 그때의 표정은 얼마나 순순한지... '일곱 살 적의 추억'은 엄마랑 2박 3일 강화도 여행을 간 것이고, '여덟 살 적의 추억'은 만삭의 엄마와 다닌 시내 구경 및 산후 조리원에서의 이별 악몽이고, '열한 살의 추억'은 엄마의 생일 선물로 대학로에서 모자를 골라 선물하고 와플대학을 처음 영접한 일이고, '열세 살 적 추억'은 낯선 동네를 오로지 걸어서 알아가던 과정이다. 그 추억들에 다른 사람은 없다. 오직 엄마와 저 뿐이다. 그런데 열네 살엔 그 엄마가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이 억울해서라도 내가 애거서크리스티를 더 읽어야겠다. 


 열네 살의 아들아, 너의 홀로서기를 응원하면서도 때때로 한없이 허전한 이 마음을 이해하니? 너 역시도 엄마로부터 분리되고 싶으면서도 엄마가 서운함을 표현하지 않으면 또 서운해 하더라? 그렇게 우리는 이 시간을 잘 보내는 중이라고 믿고 있어. 오늘은, <ABC 살인사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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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04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위한 좋은책을 고르기가 참 힘든 것 같아요..
작가 층도 전혀 다르고 ㅜㅜ, 학원 그리고 심지어 학교도 상업적인 추천이 많아서 더 혼란스러워서 그런 것 같아요.
이렇게 추천해주셔서 감사하고 아들을 생각하시는 마음에 또 좋네요 ^^
그리고 5월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그렇게혜윰 2021-06-04 22:07   좋아요 0 | URL
5월 당선되었나요??? 오~~~씐나네요^^ 기쁜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렇게혜윰 2021-06-04 22:08   좋아요 0 | URL
최근 <토요일의심리클럽 >이란 책도 재밌었어요^^

transient-guest 2021-06-11 0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티는 황금가지 판을 다 갖고 있는데 아직도 나오고 있는 해문 판이 너무 갖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망설이고 있어요. 다른 건 많이 내려놨는데 책욕심은 어쩔 수가 없네요.ㅎㅎ 책으로 소통하시는 것 꾸준이 이어가시길 바래요. 저는 아버지와 그랬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유투브로 정규재 같은 걸 듣게 되면서 알고리즘이 자꾸 이상한 걸 추천하고, 그러면서 책도 심드렁해지셨네요. 원래 문청에 단과대 학생대표로 박정희 때 미리 구금된 적도 있었다고 하셨는데 말이죠. 자식 입장에서 그렇게 책 이야기를 하는 건 큰 즐거움이었는데 이젠 뜸하네요.

그렇게혜윰 2021-06-11 15:12   좋아요 1 | URL
황금가지판도 다 갖기는 넘 부담스러운 양인데 ㅋㅋㅋㅋ 근데 저도 해문판이 더 맘에 들어서 최근엔 해문판으로만 읽고 있어요. 사는 건 그중 맘에 드는 작품만 몇 개. 너무 많아서 엄두가 안 나요 ㅋㅋㅋ 부모와 자식이 책으로 연결되는 것은 참 아름답고 귀한 경험 같아요. 부끄럽지만 이런 이야기가 곧 책으로 나옵니다 ㅋㅋㅋㅋㅋ

transient-guest 2021-06-12 22:30   좋아요 1 | URL
와우 책을 쓰셨군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ㅎ

그렇게혜윰 2021-06-13 10:34   좋아요 1 | URL
쓰고 있던 건 아니구요. 아이랑 쓴 독서일기를 어여삐 봐주셔서 책으로 내 주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