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권남희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11월의 좋은 어린이 책, <수상한 내 인생>의 추천글입니다.


어제는 모처럼 여고생인 딸과 수다를 떨다가 내 어린 시절 얘기를 하게 되었다. 무려 30년, 길게는 40년 전의 어린 시절 얘기이건만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서 애써 코믹하게 각색해서 들려주게 된다. 그래도 얘기를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고여, 딸이 재미있다고 몸을 젖히고 웃을 때마다 슬쩍슬쩍 훔쳐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딸은 여전히 깔깔 웃으며 말했다. "엄마 얘기 진짜 슬픈데 웃기다. 아, 재미있어."


<수상한 내 인생>을 읽은 소감이 그랬다. 진짜 슬픈데 웃기다. 아, 재미있어. 여덟 살 꼬마인 장이 시종 담담하게 자기 얘기를 하는데 사실은 그 내용, 몹시 슬프다. 엄마는 안 계시고 무뚝뚝한 아빠는 엄하고, 그나마 바빠서 자주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친구들에게 그리 인기 있는 아이도 아니어서 친구도 별로 없다. 장은 언제나 멀리 여행을 떠났다고 하는 엄마가 그립지만, 엄마 얘기는 집에서 금지어여서 꺼낼 수 없다. 그러나 할머니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아유, 딱하지" 하며 안쓰럽게 바라본다. 이미 독자들은 장의 어머니가 어디로 여행을 가셨는지 충분히 추측가능하다. 짠해서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핑 돌려고 하다가도, 그림을 들여다보는 순간 빵 터진다. 이를테면 새 학기 첫날, <무아노 선생님은 칠판에 이름을 썼다. 음, 솔직히 말해서 이름을 썼다는 건 그냥 내 짐작일 뿐이다. 난 아직 글을 읽을 줄 모른다.>라는 지문 아래 칠판 그림에는 이름이 아니라 날짜가 적혀 있다. 귀여운 장은 심지어 까막눈이었던 것. 머리에 꽃핀을 꽂고 있는 엄마의 사진을 본 뒤로 장은 엄마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는데, 그림은 꽃핀 꽂고 있는 채로 마트에서 카터를 끄는 엄마, 테니스를 하는 엄마. 시종 지문을 읽으며 짠하다가 그림 보며 웃다가의 반복이었다.


책을 읽었다고 해야 할지, 만화를 보았다고 해야 할지, 영화를 감상했다고 해야 할지...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고 나니 밀려드는 감동에 뭐라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은 주위 내가 사랑하는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에게도 이 난로처럼 따뜻한 책을 선물하고 싶어서. 올해 읽은 어떤 유명 작가의 책보다 좋았다. 최고다. - 권남희(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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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현초등학교 교사 정선희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11월의 좋은 어린이 책, <그림자 아이들>의 추천글입니다.


12월 1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요즘 우리 사회가 들썩들썩합니다. 신문과 뉴스에서는 연일 대통령 후보의 모습을 다루고 사람들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선거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세상을 들썩이게 할까요? 어떤 사람은 선거 날을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빨간 날(쉬는 날) 정도로 여기지만, 사실 우리가 모두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동등한 자유와 권리를 누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봉건사회에서는 신분제 때문에, 그다음에는 일제의 강점 때문에, 해방 후에는 독재 때문에 자유를 억눌린 채 살아야 했지요. 오늘날 민주주의의 가치가 이만큼 자리 잡은 건 많은 사람들이 눈물겹게 싸워 온 덕분입니다.


이 책 <그림자 아이들>에도 자유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이 나옵니다. 주인공들은 정부가 출산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세상에서 태어났지요. 기근으로 인해 식량이 부족해지자 정부는 한 가정에 아이를 둘만 낳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서도 당연히 셋째, 넷째, 다섯째 아이가 태어납니다. 불법 출생자이자 '그림자 아이'라고 불리는 이 아이들은 인구 경찰에 잡혀서 목숨을 잃을까 봐 평생을 전전긍긍 숨어 살아야 합니다. 독재 정치 아래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정부에서 선전하는 말만 믿고 그림자 아이들을 비난합니다. 식량을 축내는 나쁜 존재라고 오명을 씌우지요.


이 책의 주인공 루크도 그림자 아이로 태어나 집 안에만 꼭꼭 숨어 삽니다. 심지어 할머니조차 손자의 존재를 모를 정도예요. 그러다 루크는 이웃집 창문 너머로 수상한 기척을 발견하고 용기를 내 그 집에 찾아갑니다. 그렇게 자유를 향한 루크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루크와 그림자 아이들은 인구 경찰의 추적을 피해 숨 가쁘게 도망치고, 때로는 정체가 탄로 날 위기에 처합니다. 목숨을 건 무모한 게임을 벌이기도 하고, 자기 안의 두려움과 맞닥뜨리며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위기를 극복해 가며 이 아이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 그리고 용기를 내 행동하는 법을 차근차근 배워 갑니다. 예전에는 그림자 아이라는 낙인에 갇혀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모른 채 외톨이로 지냈다면, 이제는 다른 존재와 관계 맺는 법과 우정의 의미도 알게 되지요.


무엇보다 이들이 펼치는 모험은 아주 재미있어서 7권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에도 읽기가 수월하고 즐겁습니다. 순간순간 헉하고 숨을 멈추게 되는 반전의 묘가 쏠쏠하지요. 그리고 그런 흥미진진한 모험담 속에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질문들이 숨어 있습니다. 정부가 어떤 존재나 집단을 적으로 낙인찍고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대할 수 있는가? 이 책은 한 편의 성장소설로 읽을 수 있고 모험소설로 읽기에도 재미나지만, 다른 친구들과 함께 읽으며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기를 가장 추천하는 바입니다. 책을 읽는 눈과 함께 세상을 읽는 눈도 함께 커질 수 있을 테니까요. - 정선희(연현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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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세 나라의 공동 기획/출판 프로젝트, 평화그림책 시리즈의 작가 하마다 게이코가 2012년 가을 한국을 방문했다. 전쟁부터 일상까지, 평화의 크고 작은 개념들을 작품을 빌어 이야기하고, 평화 그림책 시리즈의 일본 출판을 담당하는 고단샤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평화그림책 시리즈를 같이 작업한 동료 작가이자, 이번 한국 방문에 동행한 일본 아동문학계의 거장 다시마 세이조와의 인연도 인터뷰를 통해 소개된다. 


(기획 : 사계절 출판사 / 통역 : 박종진 /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평화 그림책 시리즈를 만들어 나가는 한중일 세 나라의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벌써 몇 년이 됐나... 2005년에 일본의 그림책 작가 네 명이 한국과 중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평화 그림책을 만들어보지 않겠습니까, 하는 제안을 먼저 했다. 이 시리즈의 취지라고 하면 일본이 과거에 저질렀던 일,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파악한 지점에서부터 평화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일본이 그런 그림책을 만들자고 요청을 했을 때 한국, 중국의 분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을 했다. 그런데 같이 만들어봅시다하고 흔쾌히 받아들여주셔서 굉장히 감사하고, 반가웠다.

 

<평화란 어떤 걸까>와 비슷한 성격의 작품들을 기존에도 많이 작업해왔는지?

 

독자분들에게는 두 가지 반응이 왔다. 먼저 기존 내 작품들과 다른 이례적인 그림이다, 하는 반응. 그리고 정반대의 반응 또한 있었다. 목숨의 소중함, 탄생의 기적 같은 놀라움이랄까 그런 주제들은, 최초에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던 때부터 내 작품 속에서 변함 없이 유지되어왔다고 생각한다.

 

평화 그림책 시리즈는 지금까지 네 작품이 출간됐다. 인상 깊었던 다른 작가의 작품이 있었나.

 

어느 것 하나를 특별하게 짚어낼 수 없을 정도로 모두 다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건 왜냐면 처음 시작하는 과정에서부터 같이 토론을 하고, 의견을 내고 말하자면 다 같이 만들어온 작품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만든 것처럼 소중하게 느껴져서 어떤 한 권을 딱 고르기는 조금 힘들다.

 

토론을 하며 같이 만든 작품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다. 토론 과정에서 작품에 참여한 작가들이, 이 책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공통적으로 생각했던 부분은 어떤 것인가.

 

아이들에게 전쟁의 슬픔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라는 것이 가장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나라, 한중일 세 나라에서 어떻게 연계를 해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역시 제일 중요한 건 평화로운 세상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는 우리들의 염원이었다.

 

 본인의 작품인<평화란 어떤 걸까>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가장 부각시키고 싶었던 부분은?

 

책의 말미에 남자아이가 나와서, '평화란 내가 태어나길 잘했다고 말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에서는 '평화란 네가 태어나길 잘했다고 말하는 것', '평화란 우리 둘이 너와 네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이 마지막 장면이 작품을 통틀어 내가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이다.

 

<평화란 어떤 걸까>는 평화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문장들로 이루어진 그림책이다. 초반부의 '전쟁을 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마지막 결말은 방금 말씀해주신 문장 '너와 네가 친구가 되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 정의의 배치가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변화하는 걸 볼 수 있다.

 

<평화란 어떤 걸까>는 스토리가 없는 그림책이기 때문에 어떤 장면을 어디에 넣느냐에 따라 굉장히 달라질 수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처음에 비행기를 그리면서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라든지 폭탄이 떨어지지 않는 것 같은 전쟁과 직접 관련된 것을 맨 앞에 둔 것은, 그 뒤에 나올 사랑하는 사람과 언제나 같이 있을 수 있다 라든지 배고플 때는 밥을 먹을 수 있다라든가 잠을 푹 잘 수 있다는 것이든가 이런 평온하고 일상적인 모습들이 사실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이것이 힘들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기본적으로는 아이들의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볼 수 있는 평화를 전달하고 싶었다.

 

전쟁이 없어야 하고 폭탄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평화에 대해 익히 알려진 정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일상적인 풍경에서 길어올린 평화의 정의들은 대부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이 책에 담은 평화의 정의는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이었는지 궁금하다. <평화란 어떤 걸까>에서 평화를 풀이하는 여러 가지 문장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도 꼽아주었으면 한다.

 

이 책에 나오는 그런 평화의 정의들이라고 하는 것은 평소부터 쭉 생각을 해왔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그림책으로 그릴 수 있다고는 생각을 못했었다. 예를 들면 배고파서 죽은 아이라든가, 학교를 가지 못하는 아이가 있거나 한다면 이것은 평화로운 모습이 아니다. 그리고 학교에 갈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평화로운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상 속의 여러 장면을 보면서 평화란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은 쭉 계속 가져왔다.

 

가장 표현하기 어려웠던 장면이라고 하면, 책에서 자기가 싫은 일은 싫다고 혼자라도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부분. 그것을 표현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이것은 일상 생활 속에서 평화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 굉장히 중요한데, 목숨을 잃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옳지 않은 것에 대해서 옳지 않다고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계속 생각해왔다. 좋아하는 장면은 전부 다다(웃음).

 

이번에 같이 한국을 방문한 다시마 세이조 작가와는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는지.

 

다시마 선생님과는 굉장히 오래된 인연이다. 그림책 작가를 시작하기 전부터, 내가 20대였을 때부터 굉장히 좋아했다. 존경하던 작가였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60년대 말 쯤에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서 예술가들이 큰 판넬을 만드는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이 작업을 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다시마 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평화란 어떤 걸까>가 평화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면, 다시마 세이조의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는 평화가 사라진 풍경을 그린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상반된다. 서로가 작업한 평화 그림책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은 적이 혹시 있는지 궁금하다.

 

다시마 선생님하고는 작품에 대해 굉장히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다시마 선생님 작품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는, 접근 방법이 대단히 독특하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 그래서 그 싸워서 죽어버리는 그 허무함, 분노, 슬픔, 그런 게 죽은 사람의 눈을 통해서 표현되지 않는가.

 

다시마 선생님은 내 책에 대해 그렇게 비판적인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웃음). 언제나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면서 기운을 북돋아주셨다. 나 자신도 이 책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무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다. 여태까지 사용했던 종이들을 조각조각 내어 붙이는 기법을 사용했던 건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기법을 쓴 것이다.

 

많은 한국의 어린이 독자들이 일본에서 온 동화와 그림책의 읽으며 자라고 있다.


나 역시 그 사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내 작품 가운데서도 80% 정도는 한국어로 번역이 되었다. 지금은 한국 그림책과 동화도 일본에 많이 번역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아이들이, 서로 상대방의 나라의 책을 읽으면서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현재 만들어졌다고 생각을 한다.

 

일본에서 평화 그림책 시리즈를 출판하는 일본의 도신샤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도신샤는 원래부터 '가미시바이(かみしばい[紙芝居] : 그림 연극)'를 주로 출간해온 출판사다. 가미시바이는 2차 대전 때 군국주의를 부추기는 작용을 하기도 했었는데, 도신샤는 그것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까 반동으로 가미시바이를 사용했다. 평화를 아이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도구로서 가미시바이를 널리 보급하게 된 케이스다. 평화에 대한 그림책도 굉장히 많이 내고 있고, 가해자 의식이라는 것을 굉장히 강하게 갖고 있는 회사다. 그래서 평화 그림책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그들의 출판사에서 꼭 내고 싶다고 얘기했었고, 지금도 총력을 다해서 평화 그림책 시리즈를 내고 있다.

 

평화 그림책 시리즈는 위안부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바로 권윤덕 작가의 <꽃할머니>란 작품을 통해서였다. 일본에서 이 작품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그런 역사적인 사건이라든지 자기가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서 눈을 감고 모른척 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그림책 뿐만 아니라 위안부를 다룬 사진전이 있었는데, 그것조차도 중지를 시키거나 그만두게 하는 여론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평화 그림책 시리즈의 취지를 응원해주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다. 2006년도에 권윤덕 선생님이 <꽃할머니>를 내겠다고 처음 의견을 냈을 때부터 이 책이 나오지 않으면 이 프로젝트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다.

 

<평화란 어떤 걸까>에 나오는 여러 평화에 관한 정의들, 이 모든 정의를 아울러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한마디로 표현을 하자면 목숨. 한 단 사람의 목숨이라도 그것이 존중되지 않으면 평화란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힘 없이 연약한 사람들의 생명. 목숨. 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로서 갖고 있는 소명이 있다면.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할 생각인가.

 

크게 얘기를 하자면, 연약하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으로 생각하는 건 여자아이들이 가지는 여러 가지 핸디캡에 대한 이야기다. 남자아이에 비해서 차별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차별을 당하지 않아도 이미 의식적으로 '난 여자라서 못해' 그런 생각부터 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아이를 특별히 차별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아니고, 여자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고 즐겁게 여자아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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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반전, 평화, 생명의 예술을 추구해온' 거장 다시마 세이조. 평화 그림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간된 그의 신작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는, 전쟁으로 사망한 병사의 넋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독특한 구성의 그림책이다. 그는 전쟁은 과거의 일이라고 말하는 그림책의 정반대편에서, 평화가 파괴될 위기에 처한 지금 현재를 그려내고자 한다. 당장 전쟁으로 인한 고통이나 전쟁의 위기와 직면하지 않은 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전쟁을 막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마 세이조가 낮은 목소리로 쉼 없이 풀어낸 이야기는 깊고도 날카로운 울림을 준다.


(기획 : 사계절출판사 / 통역 : 박종진 /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일본 작가가 쓴 <전쟁은 왜 되풀이될까?>라는 책이 있다. 한국에도 번역.출간이 된 이 책의 추천사를 오다 마코토라는 일본의 평화운동가가 썼다. 이 추천사 중 "미래는 아이들의 생각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이 책이 씌어졌다고 생각한다" 라는 대목은, 평화 그림책 시리즈의 탄생 배경하고도 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평화 그림책 시리즈는 어른들도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1차적으로는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라고 볼 수 있는데, 평화를 이야기하는 책이 어린이 책으로 나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서만 책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나 어른에 대해서도 나라와 나라가 부딪혔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지금의 영토문제라든지 과거에 해결되지 않았던 그런 문제들 때문에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고 한다면 죽는 것은 아이들이고, 그 아이들을 지키려는 사람들, 그리고 힘 없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죽어나가는 그런 상황이 된다. 나에게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어릴 때부터, 어린 시기의 아이들 마음 속에 심어주고 싶은 생각이 있다. 어린 시절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이, 그것으로 인해 평생을, 일생 동안에 반전에 대한 생각을 갖도록 싶기 때문에 나는 그림책을 계속해서 그리고 있다.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를 준비하는 데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렸는지,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처음 구상을 했던 게 2007년, 이때 난징회의가 있었다. 평화 그림책 프로젝트가 시작되던 그때 이미 더미를 만들어 회의 때 가지고 갔었는데, 책으로 나온게 2011년이니까 헤아리면 5년 정도 될까? 내 작품의 평균 작업 기간으로 보면 그리 긴 편은 아니었다. 평소에도 한 권의 그림책이 완성되기까지 그 정도의 작업 시간이 든다. 같이 작업을 하는 11명의 작가에게 항상 그림을 보여주고 의견을 구했다. 나는 평소에도 그림 작업을 할 때면 친한 사람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그들이 하는 작은 말, 무심결에 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굉장히 귀담아 듣는다. 그것이 작품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창작에 응용되기도 하고 있다. 평화 그림책 시리즈의 경우 다른 친한 친구들의 반응을 들었던 평소의 그림책 작업하고 좀 달랐던 것이, 11명의 화가들에게 내 그림을 보여주었을 때, 이 부분은 틀리다, 바꿔야 한다는 굉장히 강한 의견들이 나온 것이다. 다른 때의 작업하고 다른 특징이었다. 또 하나의 특징이라고 하면, 2007년의 난징회의 때 가지고 갔던 더미가 조금씩 조금씩 달라져서 처음 더미하고는 굉장히 멀어졌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와서 결국에는 처음 시도했던 구상했던 꼴을 갖추게 된 것이 재미있는 점이다.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에서 화자가 전쟁으로 사망한 병사인데, 이 화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까닭은? 

 

달툰트람보라는 영화가 있다. 로마의 휴일의 시나리오 작가가 이 작품의 각본을 썼는데, 일본에서는 '조니는 전쟁에 갔다'라고 번역이 되는 작품이다. 그 영화 한편하고 또 하나는 터기 시인, '나짐 쿠메토'라는 시인이 있는데 그의 작품 중에 '죽은 여자아이'라는 시가 있다. 그 두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먼저 영화에 나오는 조니라는 사람은 폭탄을 맞아 부상을 입었는데 팔다리가 떨어지고 눈이 없어지고 귀도 없어지고 입도 안에 까지 파헤쳐지고 머리하고 동체만 남은 상태로 살아 있다. 전체 스토리는 생략을 하겠다. 물론 뇌가 움직이고 있긴 하지만, 이 자는 아무런 표현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지만 전쟁을 반대하는 생각이 굉장히 강하며, 두 번 다시 나와 같은 사람을 만들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턱으로, 모스 신호로 표시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는 내용 상으로 굉장히 절망적인 얘기이다. 옆에서 그를 보조하며 의사 표시를 도와주었던 간호사는 체포당하고, 조니는 턱을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도록 주사를 맞고 더 깊은 방에 갇히게 되는 내용이다. 육군병원 특별병원에 갇혀서 아무도 오지 않는 그런 방 안에서 실험동물처럼 그냥 목숨만 유지하며 살아가지만, 마음속으로는 계속 전쟁 반대를 외치는 그런 장면으로 영화는 끝나게 된다. 이 영화 자체가 굉장히 큰 반응을 몰고 와, 당시 미국에서 전쟁반대 여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 당시 매카시 선풍이 불고 있어서, 공산주의자로 생각되는 사람들은 모두 사형당하거나 해외로 추방을 당했다. 결국 이 영화를 만든 트람본은 유럽으로 추방을 당하게 되고, 그래서 거기서 로마의 휴일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터기 시인이었던 나짐 히코메토의 시는 히로시마 원폭을 맞아 불타버린 소녀의 이야기를 시로 만든 것이다. 이 시 안에서는 원폭을 맞아 불타버린 아이가 몸체는 사라지고 영혼만 남아서 계속 해서 전쟁 반대를 호소한다. 이 작품은 1950년대에 있었던 원폭 반대 서명 운동을 지지하기 위해서 씌어진 시이다. 이 두 가지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의 화자가 만들어졌다.

 

전쟁이 오늘의 한중일 사회에서는 일상적인 문제가 아니고, 그래서 우리들 가운데 이곳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땅이라고 믿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당장 피부로 느끼기 쉽지 않은 문제일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알아야 하고 막아야 되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또 막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스물 아홉 살때부터 쉰 아홉살 때까지 내가 삼십 년동안 살던 도쿄 변두리의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다. 그 시기 생활 쓰레기를 소각시킨 재를 묻어서 폐기하는 처리장을 그 마을에 만들려고 하는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십년 전부터 이곳에는 처리장 하나가 이미 가동하고 있었고, 때문에 두 개나 생길 필요는 없다는 게 사람들 생각이었다. 이러한 여론 때문에 행정일을 하는 곳에서는 굉장히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런 반대 운동에 가장 앞장 섰던 사람의 비리를, 행정일을 하는 곳에서 폭로하면서 그의 입을 막아버린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리장 설립을 반대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았는데, 그들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사람들 집에 협박 행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프로판 가스를 집 앞에 가져다 놓거나, 계속 말 없는 전화를 걸거나, 협박하는 그런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 집 앞에도 우익들의 까만 차가 있다, 굉장히 큰 차가 집 앞에 떡하니 대기하고 있다가 확성기로 '여기에 살고 있는 다시마 세이조는 독성 물질을 강물에 풀어서 흘리고 있다'라는 등의 허위 사실을 매일 같이 외쳐댔다. 있지 않은 사실들에 대하여 얘기했다. 그리고 내 아내의 약점 같은 것을 캐내서, 다른 사람들한테 소문을 내거나 하는 식의 방해를 했다.

 

반대가 계속되자 심지어는 반대하는 사람들의 친척을 찾아갔다. 그 친척이 만약 납품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너희하고 거래를 끊겠다라든가 너희에게 물건을 안 사겠다라든가 그런 식으로 협박까지 했다. 자기는 반대를 계속 하고 싶지만 친척에게 피해가 가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에, 반대 입장을 접기 시작해 여러 사람이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입을 다물게 된 것이다. 반년도 지나기 전에 전원 반대였던 입장이 전원 찬성의 입장으로 돌아서게 됐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 그래도 마지막까지 반대를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이제 이 마을을 떠나라고 하면서 너희는 이제 이 마을 사람이 아니다라는 위에서부터의 공격이 있었다.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 전쟁, 중일전쟁이랄까 조선에 침략 전쟁을 일으킨다고 했을 때, 사람들, 반대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었다. 아는 선배분들도 간도 빨치산이라고 해서 조선독립운동을 후원하는 활동을 하다가 감옥에 끌려가서 결국에는 옥사를 했지만. 그런 식으로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굉장히 많이 있었다. 반대하는 의견의 입을 틀어 막아서 반대하는 의견이 안 들리게 하는 그런 것. 진주만 공격 같은 것을 할 때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킬 때도 정부는 처음에 반대를 했었지만 일부 군인들이 강행을 해서 의원들의 입을 틀어막은 경우도 있다.


전쟁을 하게 되면 먹을 것도 없어지고, 군사훈련도 해야 하고, 조명도 밤에는 켤 수가 없고, 관제를 해야 하니까 생활 상의 불편도 나타나고 그래서 전쟁 자체에 반대하는 일반인들은 굉장히 많았었다. 그리고 그렇게 전쟁에 반대하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어느 틈에 감옥에 끌려 가서 사망을 하게 되면, 또 어느 집이 반대를 하면 그것을 누가 경찰에 알리고, 경잘치 와서 그 집 사람을 잡아가고. 그래서 어쩌다 보니 전부 다 찬성하게 되는, 그런 사회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아까 말했던 쓰레기 처리장 문제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사회였는데도 불구하고 반년만에 그렇게 여론이 확 바뀔 수 있다.

 

당장 전쟁이 안 일어날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지금 대립을 하고 있는 한일간의 문제, 독도 문제도 그렇고 중일의 영토 분쟁도 그렇고 대립을 하다 보면, 첨예하게 대립을 하다가 어느 한쪽에서든지 판단을 잘못하게 돼서 삐끗하게 되면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는 결코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세상은 불경기이고, 전쟁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많은 물자들을 소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각의 어떤 사람들, 어떤 업자들은 전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잘 꺼내기도 하고, 그리고 달콤한 말로 사람들에게 어필을 잘하는 그런 사람들이, 전쟁에 대해 굉장히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전쟁이 없는 나라도 아시아에서는 있지만 전쟁이 없다라고 단언할 수 없다. 언젠가는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내 그림책에서는 사람의 얼굴을 특별하게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정한 나라이 이야기라고 할 수 없다. 한국일 수도 있고, 일본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아랍의 어떤 나라일 수도 있고, 그렇지만 그 어떤 나라에서든지 전쟁이란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렇게 그렸고 표현을 했다. 

 

일본에도 반전 그림책이 굉장히 많이 나와 있는데, 대부분이 2차 세계대전 때 이런 피해가 있었고,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죽었고, 거기서 끝나버리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전쟁은 과거에 있었던 일이고 지금은 굉장히 평화로운 시대입니다라고 아이들에게 전쟁은 과거의 일이라고 말하는 그림책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현재를 그리고 싶었다.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그림책을 만들어왔는데, 이 작품 평화 그림책만 해도 5년이 걸렸고 이것이 긴 기간이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고된 그림책 작업을 계속해서 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내 마음 속에 '그리고 싶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전쟁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아직까지 세상에 없었던 것을 만들어 내보내고 싶다,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그림책을 그려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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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세 나라가 함께 만드는 평화 그림책 시리즈 중의 한 권인 <경극이 사라진 날>은 중국의 전통극인 경극을 소재로 한다. 전쟁이 없었던 시절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계를 그리는 한편, 전쟁이 파괴한 폐허까지 함께 담아낸 이 그림책은, 어린이 독자들과 역사의 거리를 좁히는 데 관심이 많고 색채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중국 작가 야오홍의 작품.


(기획 : 사계절출판사 / 통역 : 김상아 /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그림책 <경극이 사라진 날>에서 가장 부각시키고자 했던 부분은?

 

이전에 작업했던 그림책들보다 비교적 색을 자유롭게 썼다는 점에서 새로운 작업이었다. 이 책에서는 옛사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연출하고 싶었다. <경극이 사라진 날>에서 주로 사용한 것은 선명하지 않은 색이다. 이는 옛날에는 염색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특히 색의 고조, 색채가 가장 피크에 올랐을 때와 그 반대일 때를 표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전반부의 색깔은 굉장히 평화로운 색깔이다. 매일매일의 순박하고 일상적인 그런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림책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전쟁이 점점 임박해오고, 생활의 색깔도 굉장히 암담해진다. 점점 어두워진다. 같은 동작을 그리더라도 전반부와 후반부의 색채가 확연히 다르다. 전반부의 생활상에서는 전쟁을 찾아볼 수 없다. 이 장면은 소녀가 마음 속에서 그려내는 환상을 나타낸다. 이 소녀는 이 전체 이야기의 목격자이자 서술자이다.

 

어머니의 경험담을 소재로 쓴 이야기라고 들었다. <경극이 사라진 날>의 모태가 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언제였나.

 

내가 대학을 졸업한 후에 어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다. 가장 감명 깊었던 대목을 이 장면으로 만들었다. 강이 있고, 양쪽에 사람이 있고, 유명한 경극 배우가 노래를 하고, 사람들이 경청하는 부분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어머니의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해 그림책으로 발전시키기까지, 그 사이에 있었을 경극에 관한 취재 과정이 궁금하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이전, 직전 중국의 상황에 대해 본래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 시기를 살아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고, 따라서 굉장히 많은 자료를 가지고 공부를 했다. 그림책 속 특정 장면은 사진을 보고 그려낸 것이다. 사진에 의존한 그림도 있지만, 사진만으로 묘사할 수 없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경극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30년대와 비교해 2012년 현재의 경극은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는가.

 

지금의 경극의 무대나 복장, 조건들이 좀 더 다루기 쉬워진 것 같다. 옛날의 경극 배우들이 냈던 목소리 같은 경우는 지금 내기란 굉장히 힘들다.

 

<경극이 사라진 날>은 한중일 3국의 공동 기획으로 출판되어, 세 국가의 독자들이 함께 읽고 있다. 다른 나라의 독자들이 자신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처음에 이 책을 기획했을 때는 확신하지 못했다. 어린 독자들이 평화 그림책 시리즈가 다루는 주제에 관심을 가져줄 것인지. 하지만 작업을 조금 더 진행하고 나서는 <경극이 사라진 날>의 중반부에 나오는 굉장히 아름다운 미녀들과 화려한 색채에 여자아이들이 마음을 뺏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부분에 대한 관심이 책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질 수 있으리라 믿었다. 외국 독자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모두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라면 백설공주나 중국의 선녀나 전설 속 좋아해 본 경험이 한번쯤 다들 있듯이, 경극이란 것도 어느 나라 독자들이든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소재라고 봤다. 처음에 아이들은 아름다운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가벼운 관심에서부터 출발해서 당장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이 좀 더 자라 내가 만든 책을 이해 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어린이 문학이 아직까지는 한국에 아주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평화 그림책 시리즈와 같이 반전과 인권에 대해 발언하고, 사회 문제를 다루는 어린이 책이 많이 씌어지고 있는지?

 

우선 평화 그림책에 참여한 열두 작가 중 중국 작가가 나를 포함해 4명이다. 중국 작품으로는 <경극이 사라진 날>이 가장 먼저 출간됐고, 이제 남은 세 권의 출간을 위해 다른 작가분들이 열심히 작업 중이시라는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면서 독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반대로, 작가로 살아가며 그들(독자)에게 얻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 마지막으로 드리는 두 가지 질문이다.

 

처음 초고를 구상할 때는 아이들이 이걸 좋아할까, 이런 데 관심이 많을까를 많이 연구한다. 책이 완성되고 난 뒤, 짐작대로 아이들이 내가 그려낸 것에 관심을 가져주면 안심을 하곤 한다. 독자들이 내게 주는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다. 반대로 내가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것은 역사적인 것들이다. 아이들과 역사의 거리가 한 권의 책을 통해 바로 좁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천천히 좁혀 가고 싶다. 아이든 어른이든 어떤 한 사람이 과거를 알고 이해를 한다면 생명이 더 연장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수명이 80살이고 그 사람이 만약 다른 과거의 일을 이해한다면 160살이 되는 셈이고, 또 그 전 세대의 과거까지 이해하고 있다면 240살이 될 수 있고... 점점 그렇게 이해하는 경험을 거듭해나간다면 반복해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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