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 연재- 다섯 개의 작은 미스터리

 

 오늘부터 5일간, 한 편의 작품이 단 4페이지로 완결되는 독특한 화제작 <4페이지 미스터리>의 수록작들을 하루에 하나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본래 출퇴근 시간에 깔끔하게 읽을 수 있는 신문 연재작이었다고 하죠. 분위기도 각양각색이고 트릭들도 다양해서 막간에 짧게 읽기에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즐겁게 읽어 주시기 바라며, 아울러 포레와 알라딘이 진행 중인 4페이지 미스터리 공모전에도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보시다시피 단 한 방으로도 족하니까요. 소개드리는 작품들이 좋은 참고가 되리라 믿습니다. 

 

  

 

록 온 lock on

 

 “아이 참, 왜 안 나온 거야? 계속 전화했단 말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미안해,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어. 무슨 일 있었어?”

 나는 긴장된 목덜미를 주물렀다.

 “어쩐지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 따라오고 있어.”

 “수상한 사람이라니, 전에 전화로 말했던 사람?”

 약 한 달 전, 낯선 남자가 아파트 우편함을 뒤지고 있었다며 그녀는 아주 난리법석이었다. 결국 실질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아닐 거라고 생각해, 아마도.” 오늘은 아파트가 아니라 본가로 돌아가는 중이니까 같은 남자일 리가 없다고 그녀는 추측했다. 요즘 그녀는 본가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게다가 말이야, 아파트에 있던 사람은 더러운 아저씨였는데, 오늘은 그보다 젊어.”

 “어떤 사람인데?”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하얀 티셔츠, 빨간 반바지를 입고 머리띠를 두르고 있어.”

 “……그냥 심야에 조깅하는 사람 아냐?”

 “아냐, 달리지 않는단 말이야.” 본가로 향하는 그녀 뒤에서 20미터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고 한다. “역에서부터 계속 따라오고 있어. 이상하지?”

 역부터 그녀의 본가까지는 외길이지만 이 시각에는 문을 연 가게도 없고 행인도 급격히 줄어든다. 그녀의 공포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뛰어서 도망치면 어때?”

 “집까지? 못 해. 아직 상당히 남았고, 나 지금 샌들 신었어.”

 그래도 그녀 나름대로 서두르고 있는 것 같다. 빠른 템포의 발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집에 전화해서 나와달라고 해.”

 “그것도 못 해. 지금 아무도 없어.”

 “그러면 경찰을 부르든가.”

 “……아, 그거,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그럼 지금부터 데리러 와. 경찰차라면 금방이잖아.”

 경찰차?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뭐야, 왜 그래?”

 그녀가 목소리를 낮춰 재빨리 대답했다. “모르겠어? 형사 남자친구에게 전화한다는 설정이야. 그냥 적당히 맞춰줘.”

 그러고는 다시 목소리가 커졌다. “일반 승용차를 타고 있다고? 뭐야, 경찰차 한번 타보고 싶었는데. 아, 하지만 경광등은 있지? 차 지붕 위에 올려놓는 거 말이야. 그걸 켜고 와. 괜찮아. 화 안 낼 거야. 사건이라고 말하면 되잖아. 살인마에게 습격당한 미모의 여사원을 구하기 위해서 현장으로 달려가는 거라고…… 뭐? 좋잖아, 미인 여사원이라면. 이럴 때는 미인이라고 말하는 법이야. 상식이잖아.”

 그녀의 연기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이러니까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잠복? 응, 전혀 상관없어. 같이 해, 같이 하자고. 그거지? 차 안에서 뽀뽀하는 척하면서 망보는 거. 안 돼, 일이니까 진지하게 해야지. 형사잖아? 여기서 공적을 올리면 경부보로 승진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응, 그래, 돌아간 뒤에 느긋하게. 내일은 비번이니까 자고 갈 수 있지?”

 듣는 중에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저기 말이야, 연기를 방해해서 미안한데.”

 “뭔데?”

 “뒤에 있는 남자, 뭐 하고 있어? 슬쩍 봐봐. 슬슬 내뺐을지도 몰라.”

 밤의 목소리는 잘 들린다. 게다가 큰 소리로 떠들었으니 분명 남자에게도 들렸을 것이다.

 “아, 잠깐. 누가 오는 것 같아. 오빠일지도…… 아니네. 모르는 사람이었어.”

 뒤를 돌아보기 위해 연기한 뒤에 그녀는 목소리를 낮춰 웃었다.

 “대성공이야. 역 쪽으로 달아나버렸어. 해냈다.”

 나도 안심했다. 남자는 정말로 조깅하던 중에 잠시 쉬기 위해 천천히 걷고 있던 것뿐이었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녀에게서 떨어져주어서 다행이다.

 “이참에 얼른 돌아가.”

 “물론이지. 아, 하지만 만약 그 남자가 또 오면 전화해도 돼?”

 “물론……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제부터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나야 돼. 휴대전화 같은 걸 꺼두지 않으면 화내니까.”

 “그렇구나, 알았어.” 그녀의 목소리는 밝았다. “그러면 이대로 전화하는 척하면서 돌아갈게. 오늘 고마워, 리사.”

 그녀는 리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도청기의 이어폰을 빼고 귀를 가볍게 주물렀다. 잠을 잘못 잤을 때처럼 목이 아프다. 이 빈 집의 담벼락 그늘에서 그녀를 기다리면서 움츠리고 있던 탓일까. 하지만 고생에 대한 보답은 받았다. 그녀를 회사에서부터 미행해 본가를 알아내고, 잠복을 개시한 지 나흘째. 오늘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다.

 그녀의 기지로 수수께끼의 조깅남은 사라졌다. 그녀의 가족이 집을 비운 사실도 알았다.

 그녀의 친구인 리사가 전화로 방해해 올 걱정도 없다.

 마치 하느님이 나를 위해 준비해준 것 같다.

 이제 곧 그녀가 이 집 앞에 나타날 것이다.

 최고의 밤이 시작되리라.

 오늘 밤 그녀도 ‘더러운 아저씨’라는 편견을 버리게 되겠지.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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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MD 바갈라딘 2011-09-05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섯 편의 선정 기준이 없는데 원호가 꼽은 베스트5인가요??? 그렇다면 초기대!!! 아니라도 기대!!!

외국소설/예술MD 2011-09-05 17:38   좋아요 0 | URL
일단 출판사에서 준 다섯 편을 갖고 있습니다만, 두 편 정도는 제가 꼽은 걸로 올릴까 싶네요. ㅎㅎ

aida 2011-09-05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미스터리 문외한이 보기에도 재밌는 발상의 작품에 재밌는 공모전이에요!(혹시 문외한이어서 그런가;)
무섭지만; 기대돼요.ㅎ

외국소설/예술MD 2011-09-07 23:21   좋아요 0 | URL
재미있으셨나요? 한번 도전해 보시죠 ^^

cc 2011-09-14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외국소설/예술MD 2011-10-05 15:31   좋아요 0 | URL
아...

달사르 2011-10-13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아침에 읽고 깜짝 놀랐어요. 밤에 읽으면 무섭겠는데요. 대박!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선정에 나름의 작은 원칙은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했던 책들로만 채우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무척 좋았는데 비교적 덜 알려진 아까운 책들을 위주로 골랐습니다. 2011년 발간된 소설들이 대상입니다.

  

 

조이스 캐롤 오츠, <블론드> / 마릴린 먼로에 대한 전기 소설이 아닙니다. 먼로를 주인공으로 이용한 소설입니다. 포스트모던 계열의 실험을 꾸준히 수행했던 오츠는 이 소설에서도 어지럽게 분열하는 시점과 사막처럼 건조한 문장을 선보이며, 그 지옥의 한가운데를 순교자처럼 걸어가는 여자는 갖가지 현명함을 모두 거부한 백치 성자입니다. 그녀의 도그마는 오직 사랑입니다. 사랑은 너무 단순하고 좋은 것이니까요. 신 없이 도그마만을 가진 고독한 성자 마릴린 먼로와 그를 둘러싼 사막 혹은 지옥 모두가 빛을 발하는, 불길하고 절망적이고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앤드루 포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데뷔작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잘 다듬어진 단편집입니다. 읽기 쉽고 정서적으로 반응이 강하게 오는, 해설하고 설명하는 대신에 사건과 묘사에 충실한 '드라마'들입니다. 소위 본격 문학이 보통 사람들의 인생에서 너무 멀어진 게 아닌가, 대체 무슨 소리들을 하고 있나 싶으신 분들은 이 책을 통해 소설의 세계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죄다 상실과 슬픔에 관한 이야기지만, 단정하고 부드러운 문체가 인생의 씁쓸함마저 초콜릿의 어떤 맛처럼 느껴지게 하거든요. 담백하고 향이 나는 쓴맛이 풍성합니다.

이윤 리, <골드 보이, 에메랄드 걸> / 앞서 소개드린 앤드루 포터와 좋은 대조를 이루는 단편집입니다. 등장인물들이 막다른 벽에 부딪히거나 불가피한 상실과 맞딱드린다는 점은 닮았으나, 이 책에서 고난은 영원한 현재입니다. 아물어가는 상처가 아니라 불치의 질환 같죠. 고통의 순간은 더디고, 증상은 눈에 띄지 않은 채 몸속 깊은 곳에서 일어납니다. 고통은 조용하고 성실합니다. 그리고 이윤 리는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내상을 입는 순간을 정확히 포착합니다. 작가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보실 분은 클릭하세요.

에이미 벤더, <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판타지죠. 그러나 에이미 벤더는 조금 특별합니다. 평범한 중산층의 일상(과 권태)에 대한 묘사가 무척 풍부하고 다채롭기 때문이죠. 여기서 판타지 장치는 사람들이 자기 안에 숨겨놓은 슬픔을 끄집어내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현실 밖으로 떠나는 게 아니라 더 안으로 파고들기 위한 판타지죠. 스폰지 케이크처럼 풍부한 감정 묘사로 사람들의 마음이 사그라져가는 모습을 그려내는 이 역설적인 '특별한 슬픔'은 다른 데서는 만나기 어렵습니다.

필립 K. 딕, <화성의 타임슬립> / 화제가 된 책은 왠만하면 고르지 않으려 했으나, PKD 선집만큼은... 즐겁고 신나는 SF 대모험 같은 것만 바라지 않으면 됩니다. 시간의 왜곡으로 인한 인과관계의 붕괴, 가상공간이나 환상으로 인한 현실 감각의 왜곡이 안겨주는 찝찝한 즐거움에 주목하시면 좋습니다. 21세기를 향해 쓰여진 카프카의 숨겨진 작품집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PKD의 장편소설의 매력은 단편과는 다르게 고전 문학의 그것과 닮아 있죠. 추후 출간될 책들을 보실 때도 유념해 두시면 좋습니다. 그들 모두가 요제프 K의 후손들이니까요. 

 

 

  

W. G. 제발트, <토성의 고리> / 만약 소설이란 게 글을 통해 세계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이라면, 올해 나온 소설 중에 <토성의 고리>를 따라올 수 있는 작품은 없을 겁니다. 이 소설 속에서 세계는 화자가 보는 풍경으로, 대화로, 등장 인물로, 그리고 그 '경험'들에서 촉발된 역사 속의 에피소드들로, 그 에피소드는 다시 화자가 경험한 다른 어떤 순간으로 계속 순환합니다. 고정된 주제(테마)로써의 세계는 없고, 세계는 그 순환하는 움직임 자체입니다. "세계를 말하지 않고 세계가 되기." 언어로는 원래 달성 불가능한 저 목표에 바싹 다가선 작품입니다. 걸작입니다.

아이슬란드 전승, <냘의 사가> / 유럽 중세 전승 문학에 대한 국내의 관심도를 생각해 보면 이 책이 발간된 건 행운입니다. 보통 '니얄 사가'라고 알려진 이 아이슬란드 이야기 속에서는 욕망과 금기, 그리고 서로 다른 종류의 정의가 서로 힘을 겨룹니다. 근대 비극의 초석이며 수많은 북유럽 예술 작품에 영감을 주었음은 당연지사. 근데 그것만으론 재미가 없죠. 반지의 제왕 찜쪄먹는 액션씬, 하드보일드 소설을 방불케 하는 각종(시크, 바보, 열혈 등) 마초들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더왕 전설이 달콤하고 진한 영웅담이라면, 냘의 사가는 하드보일드의 조상님입니다. 

콘라드 죄르지, <방문객> / 이상한 고발 소설. 사회 밑바닥의 절망적인 삶들을 아무 희망도 없이 증언하는 화자는 얼핏 심드렁하거나 냉정해 보이지만, 그 시선이야말로 하루하루의 생활에 저당잡힌 대부분의 인간을 대변합니다. 화자는 살아남기 위해서 하류인생들과 거리를 유지합니다. 그들과 공명하는 순간 위험해진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다만, 끝없는 독백 가운데 때로 시처럼 흐드러지는 문장들 자체가 고발입니다. 자신이 시인인지도 모르는 노동자-음유시인이 20세기 문명 사회에 대한 비가를 부릅니다. 밀란 쿤데라가 빛(!?)이라면, 콘라드 죄르지는 그 맞은편 어둠 속에서 지금도 노래하고 있습니다.

기예르모 로살레스, <표류자들의 집> /  이번에는 미국 밑바닥입니다. <방문객>과 비교하면 그 배경도 글도 덥고 뜨겁습니다. 강렬하고 불쾌하고 나른하고 자기자신을 연민하게 만듭니다. 유머도 있는데 일부러 웃기진 않고, 다만 누군가가 무너지는 과정의 어떤 순간이 반짝 코믹할 뿐입니다. 이 쓴맛나는 유머들 덕에 작품 전체의 리얼리티가 훨씬 좋아집니다. 익사자는 공기를 내뿜으며 몸부림치니까요. 절망의 바닥에서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 내뿜는 쿨함, 물에 잠겨드는 폐가 내뿜는 공기방울처럼 반짝거리는 웃음. 얼마나 슬프고 좋은가요?

옥타비아 버틀러, <야생종> /  4000년을 살아온 남자가 300년을 살아온 여자를 만납니다. 남자는 다른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여자는 다른 누군가를 살려냄으로써 생명을 유지해 왔습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이 일궈놓은 곳으로 가자고 말합니다. 다음 세대의 인류가 준비중인 곳으로... 이 이야기는 수많은 메타포를 품고 있습니다. 남성성과 여성성, 백인과 흑인, '정상'이라는 파시즘적인 개념, 진화에 관한 고찰, 죽음과 인간성의 관계... 옥타비아 버틀러를 페미니즘 SF작가로 분류하고 구획을 나누는 건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 SF는 구별짓기를 거부하는, 가능성으로 가득찬 풍요로운 이야기니까요.

 

 

...해서 열 권입니다. 밝고 활기찬 리스트는 아니네요. 제가 그런 사람이어서는 아닐 겁니다. 

이 열 권에 들어가지 않은 좋은 책들도 아주 많습니다. 더 유명해서, 더 잘 나가서, 완결이 안돼서, 하필 비슷한 내용의 완전 최고작이랑 붙게 돼서 등의 이유가 있습니다. 떠나간 친구들을 되뇌이듯이 왠지 미안한 마음으로 불러 봅니다. 조르주 심농, 마거릿 밀러, 로버트 매캐먼, 로렌 올리버, 엠마뉘엘 카레르, 버너 빈지, 렌조 미키히코, 타데우슈 브롭스키, 니콜 크라우스, 루이즈 페니,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유메노 큐사쿠, 조세핀 하트, 미하엘 조셴코, 나쓰메 소세키, 시마다 소지, 찰스 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알랭 로브그리예, 츠쯔졘, 요네자와 호노부, 리앙, 앨런 브래들리, 르 클레지오, 타나 프렌치... 

남은 한 해 동안에도 좋은 책 많이 나오고 많이들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만드는 분들과 읽는 분들 모두에게 행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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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 중간점검, 한국소설/시 MD의 추천 이 책
    from PUNCH LINE_펀치라인 2011-08-15 16:57 
    2011년에도 수백 권의 책을 (만져) 보았습니다. 수십 권의 책을 만나고, 또 수백 권의 책을 떠나 보냈습니다. 그리고 올해가 갈 때까지 다시 수백 권의 책을 만나게 되겠지요. 이쯤에서2011년 중간 결산! 외국소설 MD가 10권을 (링크 참조), 한국소설 MD가 10권의 소설과 5권의 시집을 골랐습니다. 이미 많은 사랑을 받은 책,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은 책은 눈물을 머금고 선택에서 배제했습니다.순서는 의미가 없습니다.귀가도 / 윤영수 / 201
 
 
poptrash 2011-08-11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소설 MD님께도 행운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

외국소설/예술MD 2011-08-11 21:18   좋아요 0 | URL
ㅎㅎ.. 다들 잘 살았음 좋겠음다. 일단 저부터;

2011-08-22 0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 목소리는 온화하고 명랑했다. "클라보 양인가요?" 

"예."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아니요." 

"친구예요." 

"저는 친구가 아주 많아요." 클라보 양은 거짓말을 했다. 

  

 

때로 어떤 작품들은 시작부터 독자의 턱을 붙들고 책에 고정시켜 버린다. 수많은 '새로 나온 책들' 속에서 그런 매혹적인 오프닝을 발견하는 건 도서MD만의 은밀한 기쁨이다. 근래 가장 빛나는 출발을 보인 소설은 마거릿 밀러의 심리 스릴러 <내 안의 야수>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오프닝 오타쿠의 고백 같은 건 없었다.

한 단어도 뺄 것 없이 완벽하게 다듬어진 출발. 건조하고 선명한 글쓰기 이면에 꿈틀거리는 불안함. 인물 묘사조차 따로 문단을 할애하지 않고 대화와 캐릭터들의 반응을 통해 드러낸다. 작가는 완전히 숨은 채, 작품 전체가 하나의 사건 뿐이다. 그 뜨겁고 건조하고 단단한 느낌이 바로 하드-보일드다. 뜨겁게 달구어진 '빈 양철냄비'다. 냄비는 비어 있기 때문에 터진다. 하드보일드를 표방하는 많은 소설들, 폼나는 컨셉트에 우쭐우쭐 말이 많은 스릴러들은 뜨겁기는 하지만 안에 수프라거나 족발 같은 것들이 가득 들어 있다. 그래서 결코 터질 것 같지는 않다. 진짜 하드보일드는 조용하고 간결하다.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더욱 매혹적이다. 군더더기 없이 팽팽하게 이어진 작품이 끝날 때, 비로소 처음으로 브래지어 후크를 푸는 듯한 탐미적인 문장 몇 개. 더이상 바랄 게 없다.

이제 고전이 된 <내 안의 야수>의 반전은 흔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건 오히려 좋은 기회다. 그 기회가 무엇인고 하니, 고전은 소재만으로 쉽게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이다. 

  

 

 

내 안의 야수 (마거릿 밀러, 1955) 

미국 추리작가협회 에드거상 최우수 장편상 (1955년)

미국 추리작가협회 선정 100대 추리소설 

영국 추리작가협회 선정 100대 추리소설 

독일 추리문학회 선정 20세기의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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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1-07-15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으로 브래지어 후크를 푸는 듯한 - 요 문장이 볼드체로 폰트 40 정도로 눈에 들어오는 저를 용서하셔요. 아흑.

외국소설/예술MD 2011-07-15 14:19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부분 쓰면서 좋았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1-07-22 10:42   좋아요 0 | URL
치니님의 이 댓글이 본문보다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ㅎㅎㅎ

외국소설/예술MD 2011-07-25 14:26   좋아요 0 | URL
이런 문구가 잘 먹히는군요. 기억해 두겠습니다 ㅎ

다락방 2011-07-15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이제 정말 책 안살라고 했는데 또 사야겠네요. 또 사서 알라딘 로또 또 해야겠어요.

외국소설/예술MD 2011-07-15 14:21   좋아요 0 | URL
12주년 말고 장르 이벤트에도 놀러 오셔요.;; 추천코너도 있고, 적립금도 드리고, 디비디 응모도 됩니다. 엄선한 영화들입니다.;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110711_genre

굿바이 2011-07-15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으로 브래지어 후크를 푸는 듯한 탐미적인,이 문장에서 급하게 뭉클했다고 쓰면서 보니
치니님이 볼드체를 이미 말씀하셨군요. 아아아- 음흉하고 순발력도 떨어지는 저를 용서하세요.


외국소설/예술MD 2011-07-15 15:23   좋아요 0 | URL
아, 이런 것이었군요. 이렇게...(웃음)

웽스북스 2011-07-15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프닝 오타쿠님. 매력적인 오프닝 얘기 또 해주세요. 아예 이참에 연재를 하시는 건 어때요? ㅎㅎㅎ

외국소설/예술MD 2011-07-16 00:06   좋아요 0 | URL
아.. 이거 연재하면 고과에 반영될까요? ㅎㅎㅎ

카방글 2011-07-27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코디 포크, 이 개자식" 내가 낮게 속삭였다 "누구죠?" "시체입니다. 아직 모르고 있을 뿐이죠." <비를 바라는 기도>의 대목이 생각나서 재밌군요.

외국소설/예술MD 2011-07-30 01:35   좋아요 0 | URL
비를 바라는 기도의 큰어머니쯤 되는 작품이죠.
 

 

         

 -얼마 전, 이윤 리의 소설집 두 권이 동시에 출간되었습니다.  국내의 한 소설가는 이 책들을 읽고 '막막할 정도로' 잘 쓴다는 찬사를 보냈다고 하지요. 작가 프로필을 보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중국 과학도가 우연히 작가 수업을 들은 뒤 영어로 작품을 쓰는 소설가가 되었다는 특이한 경력이 눈에 띕니다. 무엇보다 중국어가 아닌 영어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모국어를 거부하고 다른 언어로 글을 쓴다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단절을 부르니까요. 

  나보코프가 <롤리타>에서 보여주듯, 외국어는 도구 이전에 소재입니다. 작가는 소설 속의 세계 이전에 그 소설을 담게 될 그릇인 언어 자체부터 관찰해야만 하죠. 이때 문장은 태어나고 성장하는 대신에 제조와 조립을 요하는 공정에 가깝습니다. 이는 소설 전체를 의식이 장악한다는 뜻입니다. 서술 대신에 진술하고, 전달이 아니라 규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격리당하는 존재는 바로 작가 자신입니다. '외국어 소설'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은 그 문장 형태까지 규정되어야만 하는데, 작가는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으니까요. 모국어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증명은 불필요합니다. 언어가 작가 자신의 것이니까요. 모국어는 작가의 무의식이고 뮤즈이며 홈그라운드입니다. 거꾸로, 외국어로 소설을 쓰는 사람은 끝없이 원정 경기만을 반복하고 있는 운동 선수와 같습니다. 그(녀)는 홈에서 격리되었습니다. 증명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가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소설가는 소설 속에서 자신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윤 리는 일부러 중국어 대신 영어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자의로 타국어를 사용함으로써 자기자신을 격리시키는 소설가를 떠올려본다면, 이 두 권의 단편집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공백(과도 같은 삶)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 공백의 지점, 잃어버림과 흩어짐의 기운은 지아 장커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자기자신을 열외자로 만듦으로써 소설 전체를 여백처럼 만들어버리려면 얼마나 많은 고뇌가 필요할까요. 혹은 얼마나 많은 두려움이나 슬픔이. 버려야 할 일들이.

  며칠 전 출판사에서 이윤 리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보내 주었습니다. 부디 여러분도 이 소설가를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피냄새가 날 정도로 걍팍한 현실을 이렇게 버텨내는 글들도 있음을 알고 위안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길고 어두운 날들입니다. 

*인터뷰는 학고재 출판사 편집부에서 진행하였습니다. 내용 및 사진의 저작권은 학고재 출판사의 소유입니다.  

(인터뷰 진행_학고재 강상훈, 번역_김현경) 

 

 

마음은 천천히 진화한다. 그래서 문학이 중요하다.
 

-『천년의 기도』『골드 보이, 에메랄드 걸』 작가 이윤 리 이메일 인터뷰


이윤 리(Yiyun Li)는 1972년 베이징에서 태어나 1996년 미국에 유학한 후 영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첫 단편집 『천년의 기도』로 헤밍웨이상을 수상했으며 2010년 ‘뉴요커가 선정한 젊은 작가’로 선정되는 등 영미문단에서 ‘천재 작가’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현재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데이비드)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며 신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011년 5월 15일 학고재 출판사 편집부는 이윤 리의 신작 『천년의 기도A Thousand years of Good Prayers』와 『골드 보이, 에메랄드 걸Gold Boy, Emerald Girl 』 번역 출간 직후, 작가 이윤 리에게 이메일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다음은 5월 30일경 작가가 보내온 답변입니다.


      ⓒ_the John D. & Catherine T. MacArthur Foundation


1. 생물학 전공의 박사과정 유학생이 문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된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 전까지는 작가가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 들었는데?

-작가가 되는 데는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 큰 계기가 되었다. 나는 원래 과학 분야의 학위를 받으러 미국에 왔고 글쓰기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글쓰기 강좌를 듣고 영어로 글 쓰는 일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2.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에 대해 알려주면 좋겠다. 그리고 소설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나?

-이곳 아이오와는 모든 사람들이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나는 100년 전통의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에서 많은 작가들을 만났고 아주 좋은 경험을 했다. 퓰리처상 수상자들인 매릴린 로빈슨, 제임스 맥퍼슨 등 미국 최고의 작가들에게 글쓰기를 배웠다. 나는 그곳에서 단순히 글을 쓰는 방법이 아니라 문학을 읽는 방법을 체득할 수 있었다. 독자는 항상 최고의 작가들을 모방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하면서 내가 이 시대 최고의 작가들만큼 글을 잘 쓰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다. 
 
3. 첫 데뷔작 이야기가 궁금하다.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산더미처럼 원고가 쌓이는 <파리 리뷰> 지에 첫 번째 소설을 보냈는데, 그곳에서 편집자 브리지드 휴즈가 내 원고를 채택했다. 『천년의 기도』에 수록된 ‘독재자를 닮은 아이’다. 그때 이후 휴즈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최고의 독자가 되었다. 그것을 계기로 단편소설집과 장편소설 『부랑자들The Vagrants』을 계약했다.

4. 자연과학도로서의 배움과 경력이 글쓰기 작업에 미치는 영향이 클 듯하다. 어떤 점을 들 수 있나?

-나는 지식에서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지 않고, 그보다는 훈련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과학자라면 매일 실험실에 가서 실험을 하고 실패하면 다시 시도할 텐데 그것은 글을 쓸 때도 거의 마찬가지다.

5. 영어로 글을 쓰는 것과 중국어로 쓰는 것의 차이를 작가는 어떻게 느끼는가? 어려움은 무엇이고 장단점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중국어로 (창작 측면에서) 글을 전혀 쓰지 않기 때문에 비교하기가 어렵다. 글을 쓰고 글쓰기에 대해 생각할 때는 전적으로 영어를 사용한다.

6. <뉴요커>나 <뉴욕타임스> 등에 칼럼이나 논픽션을 자주 기고한다. 저널적인 글쓰기에도 관심이 있는 듯하다. 소설 쓰기와 구별되는 장점이 있는지?

-대부분 신문이나 잡지에서 청탁을 받아 논픽션을 쓰는 편이다. 때때로 나의 삶, 가족, 생각 등 소설에서는 쓰지 않게 되는 사소한 이야깃거리들이 있어서 논픽션에 즐겨 쓰지만, 논픽션보다는 소설을 선호한다.

7. 중국을 자주 방문하는지? 소설의 소재는 어떻게 얻는지 궁금하다.

-가끔 중국을 방문하지만, 원하는 만큼 자주 가지는 못한다. 내 생각에는 단편이든 장편이든 소설이 당혹감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뉴스거리, 내가 전해들은 것, 혹은 잠깐 마주친 어떤 사람 등이 매력적이고도 당황스러울 수 있는데, 나는 이런 것들을 탐구하고 이해하려고 소설들을 쓴다. 어떤 지점에서는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경험이 주도권을 가지고, 더 이상 내 호기심이 소설을 좌우하지 않고 온전히 그들의 삶과 기쁨과 고통이 그려진다.

8. 소설에서는 중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가늠하게 하는 장면(노동조합, 당, 법원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이혼이 가능했던 예전에 비해 손쉽게 이혼이 가능하게 되었다거나, 스타벅스와 인터넷 카페가 등장하는 등)도 있지만 여전히 낙태가 횡행하거나, 살인은 살인으로 벌한다는 등 전통의 습속이 강력히 남은 장면도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이토록 급변하는 고국을 바라보는 심경은 어떤가?

-음, 공식적으로 나는 여전히 중국인이다. 아직도 중국 여권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변화한 부분을 보면 흥미롭다. 마천루, 고속도로, 쇼핑몰, 서구의 영향 등등으로 풍경이 변했다. 그리고 변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바로 인간의 마음속 풍경은 어느 정도 동일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문학이 중요하다. 사람의 마음이 천천히 진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제인 오스틴이나 디킨스 혹은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을 때 그 책은 오늘날의 책만큼이나 의미를 지닌다.
 
9. 중동 발 재스민 혁명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중국 사회에까지 전해졌지만 중국 공안의 계엄에 준하는 경계에 부딪쳤다. ‘포스트 톈안먼 세대의 중국의 목소리’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본인의 생각은?

-아마 이 질문에 현명하게 답하려면 좀 더 조사를 하든지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 같지만, 소설가로서 내가 하는 일은 인간의 정서와 마음을 연구하는 것이다. 사람을 압박하고 숨 막히게 하는 모든 관습은 연구할 가치가 있다. 
 
10.
신작 『골드보이, 에메랄드 걸』에서 중편 길이의 ‘여름의 마지막 장미’는 1인칭 시점으로 쓰인 유일한 작품이다. 자신의 소설에서 시점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실제로 나는 대개 1인칭 시점을 쓰지 않는다. 나를 가르친 선생님 한 분이 언젠가 천성적으로 1인칭 시점 화자인지 3인칭 시점 화자인지가 결정된다고 했는데 나는 직관적으로 3인칭 시점을 자주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여름의 마지막 장미’는 실제로 내가 군대에서 경험한 일을 빌려왔지만, 반드시 그렇기 때문에 1인칭 시점으로 쓴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소설을 지나치게 극적이거나 감상적으로 쓰지 않으면서도 나 스스로 화자의 마음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서고자 도전했다. 그 소설을 쓰며 결국 화자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기 때문에 매우 즐거웠다.

11. ‘여름의 마지막 장미’에서는 디킨즈와 하디, 그리고 로렌스의 소설이 자주 등장하고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영문학 고전 소설이 언급된다. 이 소설들을 학창 시절 읽었다는 것이 작품 활동에 영향을 주었는지? 자신에게 영향을 준 소설가나 작품이 있다면?

-소설 쓰기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일이 내가 아끼는 다른 책들과 연관을 맺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서는 중요한 경험이고, 그것은 내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 경험을 글쓰기에 담아 전달하고 싶다. 디킨스, 하디, 로렌스, 헤밍웨이, 그리고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체호프 같은 러시아의 대작가들은 내 성장기에 큰 영향을 미친 작가들이다.
 
12. 소설 속 캐릭터들은 고집스럽고 고독한 인물이 대부분이다. 『천년의 기도』에 이어 신작 『골드 보이, 에메랄드 걸』에서도 고아들이 주인공이거나 전통적 가치와 부딪치고 좌절하는 게이 및 레즈비언들의 쓸쓸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 특히 표제작 ‘골드 보이, 에메랄드 걸’에서 어머니를 사랑하는 여제자가 어머니의 아들과 결혼해 세 식구가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결말은 충격을 준다. 따스한 관용의 보금자리가 될지,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이 될지 알 수 없는 긴장을 독자들에게 남기는 것이다. 그런 주인공과 관계를 그린 이유라면?

-나는 대부분 인생의 드라마가 아니라 표면 아래에 있는 것, 즉 실현되지 못한 드라마나 극적인 순간 전후에 생기는 일들에 마음이 끌린다. 행복의 가장자리에, 아니면 드라마의 외곽에 사는 외로운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하게 되고, 바로 그 순간의 선택이 내게는 아주 매력적이다. 거기에는 팽팽한 긴장이 있고 그것이 사랑과 열정에 기반한 선택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체념에서 나온 선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문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13. 중국어판 번역 제의를 받고 있다고 들었다. 중국어 번역에 대한 생각은? 

-나는 어떤 면에서 그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제안에 동의하기 전에 좀 더 차분히 생각해보고 싶다.

14. 미국에서 아시아계 작가들의 진출과 그 성과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최근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김영하의 『빛의 제국』 등 몇몇 한국 소설가의 작품이 미국에 번역 소개되었다. 아시아계 작가로서 이들 작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런 문제를 자주 생각하지 않지만, 친구들 중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이 많다. 하나의 집단으로 볼 때 그들은 성숙했고 지난 10년간 더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고 생각한다. 한국 작가들에 대해서는 내가 조언할 만한 입장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단지,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15. 지금은 어떤 작품을 쓰고 있는지?

-첫 소설 『부랑자들』이 1970년대에 관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20세기 말과 현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면서 좀 더 현대적인 무대로 옮겨가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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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2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 제가 나름 이윤 리 팬이거든요.

외국소설/예술MD 2011-06-28 19: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만족스러우셨기를. ^^

주성치 2011-07-29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흥미로운 작가네요. 인터뷰 덕분에 아직 읽지 않은 이 소설을 만나는 일이 무척 기대가 됩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11-07-30 01:35   좋아요 0 | URL
진심으로, 열렬히 추천합니다. 붐업!
 

  

 

그렇습니다. 혜성같이 등장한 필립 K. 딕의 걸작선입니다. 담당MD이기 이전에 팬으로서 기립! 

당연히 국내 첫 번역작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책 내용 소개는 어차피 등록이 되면 보시게 될 터, 여기서는 유독 눈에 띄는 이 시리즈의 뽄새를 보여드리는 걸로 하겠습니다. 색감은 최대한 실물과 비슷하게 보정해 봤으나 지금 제 모니터가 영 보급형인 관계로 장담은 못합니다. ^^; 참고로 일러스트 부분에는 에폭시 처리가 되어 반짝반짝해요.

 

  

 

보시다시피 표지가 멋집니다. 원서 표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국내에서 작업한 거여서 놀랐습니다. 생각해보면 PKD의 원서 표지들은 별로인 경우가 더 많긴 했습니다만.;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을 레벨의 PKD 시리즈가 한국에서 나오다니 기분이 묘하고 그렇습니다...

전 12권으로 기획된 이 시리즈의 1차분 세 권은 위와 같습니다. 10권까지는 올 여름 이전에 다 나올 기세라고 하네요. 

4-10권의 라인업은 다음과 같습니다.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 The Three Stigmata of Palmer Eldritch

작년을 기다리며 Now Wait for Last Year

흘러라 내 눈물, 하고 경관은 말했다  Flow My Tears, the Policeman Said

높은 성의 사내 The Man in the High Castle

발리스 VALIS

성스러운 침략 The Divine Invasion 

티모시 아처의 환생 The Transmigration of Timothy Archer

 나머지 두 권은? 유빅과 안드로이드-전기양 입니다. 

  

 

아, 겉표지를 벗긴 모습을 안 보여드렸네요. 이것도 폼납니다.

 

패턴이 있는 어두운 회색 표지에 깔끔하게 활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책등의 색깔이 다른 것이 포인트.   

 

 

  


왼쪽은 표지 확대. 하얀 부분은 플래시가 터진 거구요. 검은 글씨, 음각으로 패여 있습니다. 

오른쪽은 책등 부분. 넘버링만 되어 있어요.

 

 

PKD 걸작선은 다음주 중으로 판매 개시됩니다. 많은 호응 부탁드립니다! 

->5/13 현재 판매중입니다! 아래 표지를 클릭클릭! 

        

 

 

아..더불어 얘네들도 좀 사랑해 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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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5-06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책 멋있네요. 소장하고 싶어진다능...^^

외국소설/예술MD 2011-05-06 17:44   좋아요 0 | URL
헐리우드 SF의 원작자 정도로 기억되기에는 아까운 작가죠. 실제로 이 시리즈는 미국문학사의 걸작만 취급하는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 시리즈에서 출간된 판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카스피 2011-05-06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 대박입니다용^^

외국소설/예술MD 2011-05-09 13:37   좋아요 0 | URL
말 그대로 대박입니다 네.

마노아 2011-05-06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일단 허우대가 끝내주는데요. 소장해 두면 어깨 으쓱해질 것 같아요!

외국소설/예술MD 2011-05-09 13:37   좋아요 0 | URL
전집이라면 폼도 나고 작가도 왠지 있어보이는 PKD가 소장용으로 으뜸입니다 네

bytheway 2011-05-07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흘러라 내 눈물아; 제목과 한줄짜리 줄거리만 듣고 정말 보고 싶었던 건데 마침내 나온다니 초감동이네요^^; 죽이는데요!(엄청 기대됩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11-05-09 13:38   좋아요 0 | URL
네 그 작품은 저도 궁금해하던 책이었습니다. 발리스도 그렇고요. 미번역작들이 대부분을 이룬다는 점에서 더 환영할만한 일이죠.

moonnight 2011-05-07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멋져요. +_+ 명성은 많이 들었으나 작품은 하나도 읽은 게 없는데 이번 기회에 차근차근 정독하고 싶습니다. 열두권 다 갖고 말겠어요!!! ^^

외국소설/예술MD 2011-05-09 13:41   좋아요 0 | URL
PKD의 책들은 발매 당시 펄프픽션으로 나왔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묘한(..) 내용들이 많죠. 영화화가 이렇게 많이 되었다는 것 역시 개인적으론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암울하고 비비 꼬인 내러티브를 탐독하는 재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죠. 네

하이드 2011-05-09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워 있다가 무릎 끓고 마저 읽었습니다. 경배를!

외국소설/예술MD 2011-05-09 13:44   좋아요 0 | URL
제 생각입니다만, 아마 마음에 드실 겁니다. 일단 만듦새에서는 확실히. ㅎ

구름고래논술토론 2011-05-1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권 모두 나올 때까지 꾹꾹 눌러 참았다가 한번에 지르렵니다!
제발, 제발, 끝까지 모두 나오기를!

외국소설/예술MD 2011-05-12 14:03   좋아요 0 | URL
1차분 발매되었습니다! 금일 입고!

하드커버네? 2011-05-12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블레이드 러너

stefanet 2011-05-12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과 만듦새 모두 ㅎㄷㄷ이군요! 이건 필히 사야겠는데요!!!

외국소설/예술MD 2011-06-21 11:07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흡족한 세트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하네요.

ll 2011-05-12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건 꼭 사야해! ㅎㅎ 소개감사합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11-06-21 11:07   좋아요 0 | URL
마음에 드셨길 바랍니다 ㅎ

열시에산다 2011-05-18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진 비쥬얼에 세 권 지금 지릅니다. 이번달에는 책 안사려고 했는데ㅜㅜ PKD에 책을 이렇게 이쁘게 만들어놓으면 정말 참을 수 가 없잖아요. 위즈덤덤덤

외국소설/예술MD 2011-06-21 11:04   좋아요 0 | URL
재밌으셨는지요? 추후 대표작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곧 2차분이 나옵니다 ㅎㅎ

유빅 2011-05-19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유빅 괜히샀네요. 여기서 나오는걸로 사야했는데 ㅡㅡ. 여기서 유빅 출간하면 다시 살렵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11-06-21 11:03   좋아요 0 | URL
번역이 새로 나올지는 저도 궁금하네요..

asdf 2011-05-19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착한 가격에 정말 예쁘게 나왔네요 SF시리즈라는 느낌도 나고...

외국소설/예술MD 2011-06-21 11:04   좋아요 0 | URL
표지 일러스트를 외국에서 직접 컨택해서 쓰신다고 합니다

카방글 2011-06-20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런데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경우 판권이 황가에게 있을텐데 이게 해결된건가요?

외국소설/예술MD 2011-06-21 11:03   좋아요 0 | URL
그래서 2013 출간 예정입니다. 저작권 넘겨받는 데 걸리는 시간이지요.

샤유 2011-09-05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빅, 높은 성의 사나이,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 꿈을 꾸는가는 꼭 이걸로 사고 싶군요. 나머지 권들도 사고 싶습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11-09-05 18:05   좋아요 0 | URL
네, 처음 번역되는 책들도 아주 볼 만합니다. 그나마 중립적인 표현으로 순화시켜 말씀드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