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윤 리의 소설집 두 권이 동시에 출간되었습니다.  국내의 한 소설가는 이 책들을 읽고 '막막할 정도로' 잘 쓴다는 찬사를 보냈다고 하지요. 작가 프로필을 보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중국 과학도가 우연히 작가 수업을 들은 뒤 영어로 작품을 쓰는 소설가가 되었다는 특이한 경력이 눈에 띕니다. 무엇보다 중국어가 아닌 영어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모국어를 거부하고 다른 언어로 글을 쓴다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단절을 부르니까요. 

  나보코프가 <롤리타>에서 보여주듯, 외국어는 도구 이전에 소재입니다. 작가는 소설 속의 세계 이전에 그 소설을 담게 될 그릇인 언어 자체부터 관찰해야만 하죠. 이때 문장은 태어나고 성장하는 대신에 제조와 조립을 요하는 공정에 가깝습니다. 이는 소설 전체를 의식이 장악한다는 뜻입니다. 서술 대신에 진술하고, 전달이 아니라 규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격리당하는 존재는 바로 작가 자신입니다. '외국어 소설'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은 그 문장 형태까지 규정되어야만 하는데, 작가는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으니까요. 모국어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증명은 불필요합니다. 언어가 작가 자신의 것이니까요. 모국어는 작가의 무의식이고 뮤즈이며 홈그라운드입니다. 거꾸로, 외국어로 소설을 쓰는 사람은 끝없이 원정 경기만을 반복하고 있는 운동 선수와 같습니다. 그(녀)는 홈에서 격리되었습니다. 증명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가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소설가는 소설 속에서 자신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윤 리는 일부러 중국어 대신 영어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자의로 타국어를 사용함으로써 자기자신을 격리시키는 소설가를 떠올려본다면, 이 두 권의 단편집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공백(과도 같은 삶)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 공백의 지점, 잃어버림과 흩어짐의 기운은 지아 장커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자기자신을 열외자로 만듦으로써 소설 전체를 여백처럼 만들어버리려면 얼마나 많은 고뇌가 필요할까요. 혹은 얼마나 많은 두려움이나 슬픔이. 버려야 할 일들이.

  며칠 전 출판사에서 이윤 리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보내 주었습니다. 부디 여러분도 이 소설가를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피냄새가 날 정도로 걍팍한 현실을 이렇게 버텨내는 글들도 있음을 알고 위안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길고 어두운 날들입니다. 

*인터뷰는 학고재 출판사 편집부에서 진행하였습니다. 내용 및 사진의 저작권은 학고재 출판사의 소유입니다.  

(인터뷰 진행_학고재 강상훈, 번역_김현경) 

 

 

마음은 천천히 진화한다. 그래서 문학이 중요하다.
 

-『천년의 기도』『골드 보이, 에메랄드 걸』 작가 이윤 리 이메일 인터뷰


이윤 리(Yiyun Li)는 1972년 베이징에서 태어나 1996년 미국에 유학한 후 영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첫 단편집 『천년의 기도』로 헤밍웨이상을 수상했으며 2010년 ‘뉴요커가 선정한 젊은 작가’로 선정되는 등 영미문단에서 ‘천재 작가’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현재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데이비드)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며 신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011년 5월 15일 학고재 출판사 편집부는 이윤 리의 신작 『천년의 기도A Thousand years of Good Prayers』와 『골드 보이, 에메랄드 걸Gold Boy, Emerald Girl 』 번역 출간 직후, 작가 이윤 리에게 이메일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다음은 5월 30일경 작가가 보내온 답변입니다.


      ⓒ_the John D. & Catherine T. MacArthur Foundation


1. 생물학 전공의 박사과정 유학생이 문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된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 전까지는 작가가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 들었는데?

-작가가 되는 데는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 큰 계기가 되었다. 나는 원래 과학 분야의 학위를 받으러 미국에 왔고 글쓰기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글쓰기 강좌를 듣고 영어로 글 쓰는 일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2.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에 대해 알려주면 좋겠다. 그리고 소설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나?

-이곳 아이오와는 모든 사람들이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나는 100년 전통의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에서 많은 작가들을 만났고 아주 좋은 경험을 했다. 퓰리처상 수상자들인 매릴린 로빈슨, 제임스 맥퍼슨 등 미국 최고의 작가들에게 글쓰기를 배웠다. 나는 그곳에서 단순히 글을 쓰는 방법이 아니라 문학을 읽는 방법을 체득할 수 있었다. 독자는 항상 최고의 작가들을 모방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하면서 내가 이 시대 최고의 작가들만큼 글을 잘 쓰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다. 
 
3. 첫 데뷔작 이야기가 궁금하다.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산더미처럼 원고가 쌓이는 <파리 리뷰> 지에 첫 번째 소설을 보냈는데, 그곳에서 편집자 브리지드 휴즈가 내 원고를 채택했다. 『천년의 기도』에 수록된 ‘독재자를 닮은 아이’다. 그때 이후 휴즈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최고의 독자가 되었다. 그것을 계기로 단편소설집과 장편소설 『부랑자들The Vagrants』을 계약했다.

4. 자연과학도로서의 배움과 경력이 글쓰기 작업에 미치는 영향이 클 듯하다. 어떤 점을 들 수 있나?

-나는 지식에서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지 않고, 그보다는 훈련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과학자라면 매일 실험실에 가서 실험을 하고 실패하면 다시 시도할 텐데 그것은 글을 쓸 때도 거의 마찬가지다.

5. 영어로 글을 쓰는 것과 중국어로 쓰는 것의 차이를 작가는 어떻게 느끼는가? 어려움은 무엇이고 장단점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중국어로 (창작 측면에서) 글을 전혀 쓰지 않기 때문에 비교하기가 어렵다. 글을 쓰고 글쓰기에 대해 생각할 때는 전적으로 영어를 사용한다.

6. <뉴요커>나 <뉴욕타임스> 등에 칼럼이나 논픽션을 자주 기고한다. 저널적인 글쓰기에도 관심이 있는 듯하다. 소설 쓰기와 구별되는 장점이 있는지?

-대부분 신문이나 잡지에서 청탁을 받아 논픽션을 쓰는 편이다. 때때로 나의 삶, 가족, 생각 등 소설에서는 쓰지 않게 되는 사소한 이야깃거리들이 있어서 논픽션에 즐겨 쓰지만, 논픽션보다는 소설을 선호한다.

7. 중국을 자주 방문하는지? 소설의 소재는 어떻게 얻는지 궁금하다.

-가끔 중국을 방문하지만, 원하는 만큼 자주 가지는 못한다. 내 생각에는 단편이든 장편이든 소설이 당혹감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뉴스거리, 내가 전해들은 것, 혹은 잠깐 마주친 어떤 사람 등이 매력적이고도 당황스러울 수 있는데, 나는 이런 것들을 탐구하고 이해하려고 소설들을 쓴다. 어떤 지점에서는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경험이 주도권을 가지고, 더 이상 내 호기심이 소설을 좌우하지 않고 온전히 그들의 삶과 기쁨과 고통이 그려진다.

8. 소설에서는 중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가늠하게 하는 장면(노동조합, 당, 법원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이혼이 가능했던 예전에 비해 손쉽게 이혼이 가능하게 되었다거나, 스타벅스와 인터넷 카페가 등장하는 등)도 있지만 여전히 낙태가 횡행하거나, 살인은 살인으로 벌한다는 등 전통의 습속이 강력히 남은 장면도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이토록 급변하는 고국을 바라보는 심경은 어떤가?

-음, 공식적으로 나는 여전히 중국인이다. 아직도 중국 여권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변화한 부분을 보면 흥미롭다. 마천루, 고속도로, 쇼핑몰, 서구의 영향 등등으로 풍경이 변했다. 그리고 변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바로 인간의 마음속 풍경은 어느 정도 동일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문학이 중요하다. 사람의 마음이 천천히 진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제인 오스틴이나 디킨스 혹은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을 때 그 책은 오늘날의 책만큼이나 의미를 지닌다.
 
9. 중동 발 재스민 혁명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중국 사회에까지 전해졌지만 중국 공안의 계엄에 준하는 경계에 부딪쳤다. ‘포스트 톈안먼 세대의 중국의 목소리’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본인의 생각은?

-아마 이 질문에 현명하게 답하려면 좀 더 조사를 하든지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 같지만, 소설가로서 내가 하는 일은 인간의 정서와 마음을 연구하는 것이다. 사람을 압박하고 숨 막히게 하는 모든 관습은 연구할 가치가 있다. 
 
10.
신작 『골드보이, 에메랄드 걸』에서 중편 길이의 ‘여름의 마지막 장미’는 1인칭 시점으로 쓰인 유일한 작품이다. 자신의 소설에서 시점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실제로 나는 대개 1인칭 시점을 쓰지 않는다. 나를 가르친 선생님 한 분이 언젠가 천성적으로 1인칭 시점 화자인지 3인칭 시점 화자인지가 결정된다고 했는데 나는 직관적으로 3인칭 시점을 자주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여름의 마지막 장미’는 실제로 내가 군대에서 경험한 일을 빌려왔지만, 반드시 그렇기 때문에 1인칭 시점으로 쓴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소설을 지나치게 극적이거나 감상적으로 쓰지 않으면서도 나 스스로 화자의 마음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서고자 도전했다. 그 소설을 쓰며 결국 화자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기 때문에 매우 즐거웠다.

11. ‘여름의 마지막 장미’에서는 디킨즈와 하디, 그리고 로렌스의 소설이 자주 등장하고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영문학 고전 소설이 언급된다. 이 소설들을 학창 시절 읽었다는 것이 작품 활동에 영향을 주었는지? 자신에게 영향을 준 소설가나 작품이 있다면?

-소설 쓰기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일이 내가 아끼는 다른 책들과 연관을 맺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서는 중요한 경험이고, 그것은 내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 경험을 글쓰기에 담아 전달하고 싶다. 디킨스, 하디, 로렌스, 헤밍웨이, 그리고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체호프 같은 러시아의 대작가들은 내 성장기에 큰 영향을 미친 작가들이다.
 
12. 소설 속 캐릭터들은 고집스럽고 고독한 인물이 대부분이다. 『천년의 기도』에 이어 신작 『골드 보이, 에메랄드 걸』에서도 고아들이 주인공이거나 전통적 가치와 부딪치고 좌절하는 게이 및 레즈비언들의 쓸쓸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 특히 표제작 ‘골드 보이, 에메랄드 걸’에서 어머니를 사랑하는 여제자가 어머니의 아들과 결혼해 세 식구가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결말은 충격을 준다. 따스한 관용의 보금자리가 될지,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이 될지 알 수 없는 긴장을 독자들에게 남기는 것이다. 그런 주인공과 관계를 그린 이유라면?

-나는 대부분 인생의 드라마가 아니라 표면 아래에 있는 것, 즉 실현되지 못한 드라마나 극적인 순간 전후에 생기는 일들에 마음이 끌린다. 행복의 가장자리에, 아니면 드라마의 외곽에 사는 외로운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하게 되고, 바로 그 순간의 선택이 내게는 아주 매력적이다. 거기에는 팽팽한 긴장이 있고 그것이 사랑과 열정에 기반한 선택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체념에서 나온 선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문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13. 중국어판 번역 제의를 받고 있다고 들었다. 중국어 번역에 대한 생각은? 

-나는 어떤 면에서 그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제안에 동의하기 전에 좀 더 차분히 생각해보고 싶다.

14. 미국에서 아시아계 작가들의 진출과 그 성과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최근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김영하의 『빛의 제국』 등 몇몇 한국 소설가의 작품이 미국에 번역 소개되었다. 아시아계 작가로서 이들 작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런 문제를 자주 생각하지 않지만, 친구들 중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이 많다. 하나의 집단으로 볼 때 그들은 성숙했고 지난 10년간 더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고 생각한다. 한국 작가들에 대해서는 내가 조언할 만한 입장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단지,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15. 지금은 어떤 작품을 쓰고 있는지?

-첫 소설 『부랑자들』이 1970년대에 관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20세기 말과 현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면서 좀 더 현대적인 무대로 옮겨가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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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2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 제가 나름 이윤 리 팬이거든요.

외국소설/예술MD 2011-06-28 19: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만족스러우셨기를. ^^

주성치 2011-07-29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흥미로운 작가네요. 인터뷰 덕분에 아직 읽지 않은 이 소설을 만나는 일이 무척 기대가 됩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11-07-30 01:35   좋아요 0 | URL
진심으로, 열렬히 추천합니다. 붐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