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그림이다>의 공저자 손철주, 이주은 님을 만났습니다. 이상하게 재미있는 인터뷰였습니다. 어떻게 표현할까? 아, 손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묘妙 하다!
정말 그런지 한번 확인해 보시죠.
-알라딘 최원호, 이승혜 MD
알라딘: 일반적인 질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 책의 포맷이 특이한데요, 두 분이 주고받는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이 책이 기획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이런 포맷의 책이 나오게 되었는지요?
손철주(이하 손): 에디터와 이주은 교수의 사전공작이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일방적으로 통보를 해서 저는 포획됐습니다. (웃음)
알라딘: 이미 다 정해진 다음에 같이 하자는 말씀을 들으셨나요?
손: 우리를 엮은 것에 나는 포박당한 거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것은 삼자가 오래 머리를 맞대고 얘기를 나눴죠. 이런 꼴이 나오게 된 것은 합작의 결과입니다.
이주은(이하 이): 제가 작년에, 마종기 선생님하고 루시드폴이 쓴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편지 형식이 신선했어요. 저도 이런 식으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책의 출판사 담당자가 제 대학원 후배에요. 요즘 뭐하냐는 질문에 ‘나도 이런 책을 써보고 싶은데 파트너가 어떤 사람이 좋을까’ 라고 했어요. 그러더니 대뜸 손철주 교수님은 어떠냐. 손 교수님이 나랑 작업을 하시겠냐 (웃음) 그렇게만 얘기가 나오고 한참 시간이 흘렀는데, 어느날 손철주 선생님을 만날 일이 생겼어요. 같이 식사를 하는데 제가 한 번 여쭤봤어요. 같이 한 번 써보실래요? 그렇게만 말씀을 드리고 생각할 시간을 드렸어요. 선생님이 여행을 다녀오시고 나중에 연락이 왔어요. 그리고 셋이 합작이 시작이 됐습니다.
알라딘: 그러면 원고는 꼭지마다 왔다갔다하면서 쓰여진 건가요? 한 분이 먼저 쓰고 다른 분이 다음에?
이: 아니에요. 처음 계획을, 어떤 것들을 써야겠다 어느 정도 정하고 시작해야 될 것 같아서 저도 목차를 짜고 선생님도 목차를 짰어요. 합의를 하면서 진행이 됐습니다.
알라딘: 제시된 주제들이 주로 어둡지 않은, 무난한 소재들이 선택이 된 것 같습니다. 두 분이 같이 고르신 건가요? 단어들을 고를 때 어떤 기준이 있었나요?
손: 우리는, 거대한 담론을 거론할 만한 - 이 교수는 제외하고- 저한테는 그런 깜냥이 없어요.
이: (웃음) 저도 없어요. 저도 일상적인 거 좋아해요.
손: 사소하지만 삶에 바탕을 이루고 있는 주제어가 무엇인가 하고 여러 개를 뽑았죠. 그 중에 어떤 것들이 다수의 독자가 공감할 만한 키워드인가 고민해보고 그래서 열 개 정도가 나왔습니다.
알라딘: 혹시 책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다루고 싶었던 주제가 있었습니까?
손: 상당히 흥미로운 질문인데 그 질문 속에는 뭔가 함정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알라딘: 이 책을 읽다가 느낀 점이 있는데요, 이따가도 여쭤보겠지만 먼저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이 책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다수의 독자가 공감할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기획과정에서 빠졌다거나 물려놓은 주제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손: 이 질문에 대해서는 허무한 답을 할 수 밖에 없는데... 딱 하나가 있어요. ‘남녀의 시각’이에요. 출판사 담당자가 이거는 했던 말 또 하는 것 아니냐 하면서 가차없이 빼버렸어요. 아마 글이 신통치 않았겠지. (웃음)
알라딘: 실제로 본문까지 작성이 됐다가 편집과정에서 빠진 건가요?
손: 네, 그렇죠.
알라딘: 그 주제에 대해서 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이: 맨 처음에는 남녀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걸 꼬집어 내기가 어렵더라고요. 각각의 입장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림을 볼 때 내가 그 그림의 어느 부분에 교감하는가가 관건이 되지, 내가 여자라서, 남자라서 관점이 다른 건 아닌 것 같아요. 남녀 시각의 차이를 꼬집는다는 게 어려웠어요. 어렵다보니까 글이 문장을 장악하지 못해서 난해해졌나봅니다.
알라딘: 그 주제만 가지고 책이 한 권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맞아요. (웃음) 그리고 그 글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제가 여자 대표자가 아니고, 손 교수님이 남자 대표자가 아니라는 거였어요. 남녀로 구분지을 수 없는 경험들이 있어요.
본격적으로
알라딘: 제가 이 책의 카피를 썼을 때 느낀 점입니다. 두 분의 글 쓰는 스타일이 다른 점이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손철주 선생님은 그림을 먼저 보고 그 안의 형식이나 기법을 서술함으로써 이야기를 먼저 풀어나가세요. 이주은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어떤 그림에서 시작된 영감이나 흥취를 포착한 뒤에 그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 다른 예술 작품들로 옮겨갑니다. 단지 문장의 스타일이 아니라 구성 자체가 그런 식인데요, 손철주 선생님과 달리 안에서 파생해서 밖으로 나가는 스타일입니다.
특히 이주은 선생님의 경우에는 이전 글에서 보여졌던, 외부로 확장되는 식의 글쓰기가 보다 심화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두 분의 글이 대조적인 위치를 갖게 되었고요. 이것이 편집과정에서 각자의 포지션을 잡아가는 전략적인 기획인지, 자연스럽게 합이 이렇게 맞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손: 저에 대한 지적은 100% 맞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의 실마리를 텍스트에서 찾습니다. 이번 책의 경우 텍스트는 제가 고른 그림이겠죠. 그림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제 이런 스타일은 과거에 기자였던 이력과 관련이 있을 거예요. 어떤 담론을 먼저 가지고 그 담론에 합당한 텍스트를 찾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반대로 텍스트를 먼저 고르는 편이예요. 일단 텍스트 속으로 들어갑니다. 무슨 뜻이냐면, 기자는 기사를 쓸 때 팩트 중심의 기사를 씁니다. 그 팩트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글을 읽는 독자의 몫이에요. 저는 그렇게 글을 써 왔기 때문에 팩트, 텍스트 즉, 그림 그 자체가 저에겐 더 중요해요. 그 텍스트는 물론 제가 지향하는 키워드도 포함하고 있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키워드에 더 가까울 수도 있을 거예요. 여기서 견강부회를 잘 해야 돼요 (웃음).
저는 텍스트 안에서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발견하면 그 포함되어 있는 가치 속으로 깊이 들어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너무 깊이 들어가면 미술 전문 서적이 되는 거예요. 우리는 (이 책에서) 결국 미술이라는 텍스트 속에서 삶의 컨텍스트를 읽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은 들어가지 않았어요. 텍스트를 분석하면서도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삶의 컨텍스트로 연결시켜야 하기 때문에, 글을 어디까지 심화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늘 가지고 있었죠. 이 책을 쓸 때는.
알라딘: 이주은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이: 저는 서양미술 속에 있는 그림들을 제가 보는 방식으로 사람들한테 소개하는 것 같아요. 서양미술을 볼 때 다른 것들이 많이 끼어들어요. 그 그림을 볼 때. 이거 영화 속에서 본 것 같은데? 책 속에 나온 장면같은데? 이렇게요.
제가 보는 방식으로 소개하다보니까, 하나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기 보다는 패치워크식으로 하나의 그림에 도달하기 위해서 조각들을 잇는 거예요. 연결고리를 만드는 작업만 제가 하는 거예요. 연결고리를 잘 만들지 않으면 억지스럽지만 잘 만들면 자연스럽게 조각보 안에서 하나의 그림을 발견하는 거예요. 그 조각보 안에는 책도 있고, 영화도 있고, 음악도 있어요. 그 조합 안에서 그림을 발견하고 ‘이게 이주은이 보는 방식이야’ 이렇게. 사람들이 공감을 하게 되는 단서들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 일에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이런 식의 글쓰기를 <당신도 그림처럼>에서 시작했다가 이번에 더 본격화한 것 같아요.
알라딘: 소재를 이어붙이는 식의 글쓰기를 점점 심화시킨 거군요.
이: 네, 자기가 보는 방식으로 결국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맨 처음에 에세이집을 몇 권 냈을 때는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먼저 제 이야기를 했어요. 이제 제 얘기를 거의 다 하고 (웃음) 이제 제 얘기보다는 제가 본 것들, 모두가 봤을 만한 것들, 모두가 나눌 수 있는 주변에 있는 소재들을 끌어다 오면 더 공감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해요.
알라딘: 친근한 소재를 가져와서 같이 공유하는 방식이군요.
이: 네, 같이 수다를 떠는 거죠. 이 그림 보면 뭐 생각나지 않니, 아 맞다맞다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저는 텍스트를 파고들기보다는 처음부터 컨텍스트에서 출발하는 방식입니다.
손: 이 교수가 중요한 얘기를 했어요. 그림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언어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맞는 이야기입니다.
중국에 왕분이라는 문인이 있는데 그 문인이 ‘일체경어개정어야 一切景語個情語也’라는 말을 했어요. 모든 경치를 말하는 언어는 모두 다 자신의 정을 드러내는 말이라는 뜻이에요. 우리가 어떤 경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책의 경우에는 그림이죠- 그 이야기는 내 자신의 정서와 내 자신의 경험과 내 자신의 정보와 지식을 드러내는 언어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 글은 경치를 자연의 이치라든가 과학적 언어로 이야기하는 글은 아니에요. 감상이란 그것과는 다릅니다. 어떤 소재를 가지고 문학, 음악, 작곡을 하건, 그림을 그리건 글을 쓰건 다 제 정에 겨워서 우는 소리라는 얘기입니다. 감상이란 그런 겁니다.
비평도 마찬가지죠. 비평에도 여러 가지 종류와 층위가 있습니다. 어떤 비평이라도 텍스트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끔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평론가들은 그 텍스트를 통해서 자기 이야기를 해요. 여기서 오류가 생깁니다. 경지를, 예술을 이야기하면서는 특히 그 오류는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과학적 언어와는 다른 것이죠.
알라딘: 맞는 말씀입니다. 사실, 여기에 대해 질문을 몇 가지 더 드리려고 했는데 결론이 나왔네요. 계단을 밟아가려고 생각했는데 본의 아니게 엘리베이터를 타게 됐습니다.
손: 그것은 인터뷰를 위해서 질문을 짜는데... 아마 질문을 짜오셨을 겁니다.
내가 이렇게 물어보면 이 사람은 이런 답을 하고 다음의 내 질문은 이렇게 한다는 계획을 준비하지 않습니까. 생각대로는 절대 안됩니다. 저는 기자를 해봐서 압니다. 좋은 질문은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질문을 한다고 해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답이 따라오지는 않아요. 전후 순서가 바뀌고, 어떤 대답이 더 가치있는지의 등위가 헷갈리게 되요. 인터뷰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런데 그 혼란 중에서도, -우리 인터뷰와는 관계가 없는 얘기에요(웃음)- 억지로 이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대답을 유도해서 내가 써야 할 글 쪽으로 몰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좋은 기자가 될 수 없어요. 내 의도와는 다른 일탈된 언술들이 나왔을 때도 그 말의 줄거리를 잡아서 글을 쓰는 사람이 유능한 기자가 되는 겁니다. 다음에 던져야 할 질문이 대답하는 와중에 일치감치 나왔다고 해서 결코 절망하거나 질문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때는 자기의 질문을 포기하고 그 사람의 말에서 단서를 잡아서 다시 질문을 던지는 게 좋은 겁니다.
알라딘: 저자 인터뷰를 여러 번 하다보면 느끼게 되는 점이 있습니다. 글을 쓸 때도 개요대로 가지 않고 쓰다보면 처음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도 하는데, 인터뷰는 특히 그런 경향이 더 심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재미있기도 해요.
손: 그렇죠. 생각지도 않은 답이 나왔을 때, 내 글을 쓰는데 있어서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예요. 인생에서 대통이 있는 게 아니에요. 인생에 기승전결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실례지만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알라딘: 서른 하나입니다.
손: 김훈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정말 말 안들을 나이입니다(웃음). 그런데 내 말, 내 뜻과 같지 않은 것이 삶이잖아요. 누구도 자신의 말에게 삶이 복종하게끔 만들 수는 없어요.
알라딘: 많이 와 닿는 말씀입니다. (웃음)
이: 좀 이상한 인터뷴데요? (웃음)
인생, 묘, 하다
알라딘: (이주은 선생님께) 개인적인 이야기를 앞의 다른 책들에서 다 하셨다고 했는데, 독자 입장에서 느낀 바로는, 다루기는 했으나 비껴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그렇죠, 완전 노출시키면 안되죠. 제가 완전 소설가도 아니니까. (웃음) 분위기만 풍기다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했어요.
알라딘: <당신도 그림처럼> 에서는 개인적인 경험의 비율이 줄었다가 이번 책에서는 다시 종종 등장하는데요, 유독 그런 부분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주로 어두운 순간들이었는데요. 왜 그런 순간들이 주로 표출이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어째서 어두운 순간만 글로 쓰여지는 걸까요?
이: 제 성격이 아마 그런가봐요. 기쁠 때는, 발산을 하면서 기뻐하는 거예요. 저는 제 인생이 기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기쁠 때는 그걸 만끽하는데, 안 좋거나 좌절하거나 어둡거나하는 부분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거죠. 글쎄요, 잘난 척, 약간의 엘리트 의식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어두운 면은 꾹꾹 누르는 거예요. 억압된 것이 그림자로 남는 거죠. 그러다가 어떤 그림을 봤을 때 그 위에 그림자가 덮이는 거예요. 어두운 기억들이 그림 위에 덮이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알라딘: 평소의 삶에서 의식적으로 누락시켰던 부분들이 그림 이야기를 할 때 나오는 거군요.
이: 네, 평소에는 잊고 있다가 올라오는 거죠.
알라딘: 선생님의 어두운 이야기를 보면서 독자의 입장에서 흥미로웠습니다. 지금까지 쓰신 책은 전체적으로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죠. 힘들지만 잘 살아봅시다하는 (웃음) 이런 류의 내용이 많았으니까요. 각종 교양서 중에서 생의 어두움을 이렇게 회복해야 한다 이겨내야 한다 말하는 책은 많은데, 직접적으로 정면으로 바라보는 책은 거의 없습니다. 이번 책에서 자화상을 이야기한 글 같은 '직접적으로 어두운' 글을 써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이: 저는 어떤 것을 극복하자, 지금 이 단계가 힘드니까 다음 단계로 넘
어가자라는 입장은 아니에요. 힘든 것도 삶의 한 측면으로 바라보려고 해요. 제가 좋아하지 않는 건 극복의 신화들이에요. 저희 부모님 세대가 그렇게 살았고, 그걸 우리에게 알게모르게 강요했는지도 모르죠. 고통을 모른 척 피하는 건 비겁해요. 피하지 않고 보는 것. 지금 순간이 고통이었을지라도 괜찮다라는 입장. 왜냐하면 생이라는 건 그런 단계들이 얼룩져있는 것이니까요. 그게 근본적인, 삶에 대한 제 입장입니다.
알라딘: 이 주제와 관련해서 처음 질문 드렸을 때, 중심을 약간 비껴갔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질문을 드렸었죠. 그때 소설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대답셨습니다. 만약 고통을 그대로 바라보자라고 생각을 하셨다면, 더 직접적인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 제가 성숙한 소설가 같은 사람이었다면 삶의 고통이나 내가 느낀 바를 폭로하듯이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 근본 입장은 필터를 끼고 보는 거예요. 그림이라는 필터처럼. 필터를 끼고 현실의 어떤 면들을 조금 미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몽환적으로. 전 그런 부분이 손 선생님과 맞는 면이라고 생각해요. 손 선생님에게도 약간 몽환적인 부분이 있어요.
손: 몽환을 쉬운 말로 번역하면 흐리멍텅. (웃음)
이: 저는 환상 속에서 살고 있는 면도 있어요. 그렇다고 완전 4차원은 아니고(웃음), 환상과 현실을 왔다갔다하는데, 환상과 환상이 깨어지는 순간에는 환멸도 느껴요. 환상, 현실, 몽환, 환멸, 그 사이를 왔다갔다 해요. 선생님과 맞는 부분이 있다면 서로가 약간 환상을 쫓는 면들이라고 생각해요.
손: 그걸 그림으로 대입을 하자면,
중국의 오랜 화론에 보면, 그림의 화품, 그림의 품격을 분류한 사람이 있어요. 가장 오래된 화품의 등급으로 신품, 묘품, 능품 이렇게 세 가지가 있어요. 신품은 귀신 신자, 귀신같은 작품이고 묘품은 아주 묘-한 작품, 능품은 아주 능한 작품을 말하는 거죠. 능품은 이른바 잘 그렸다, 명작이다라는 것들이고, 신품은 하늘의 뜻을 드러낸 작품이라는 얘기에요. 하늘의 뜻을 드러낸 작품은 모든 화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가치이긴 하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당대 속에서 실현 불가능한 겁니다. 신의 뜻을 어떻게 알겠어요?
누구나 잘 그린 그림은 능품으로 칩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 잘 그렸다고 동의하는 겁니다. 신품은 인간으로서 그걸 가려낼 수는 없지만 이디얼Ideal적인 측면, 궁극의 가치가 이런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거죠.
그 중간에 묘품이라는 게 있어요. 이게 정말 묘한 거예요. 묘하다는 말은 묘하기 때문에 묘한 거예요. 저는 그 묘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하면, 남들은 그 작품을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한테는 어떤 연유에선가 마음 속 어딘가에 딱 걸리게 되는 그게 묘품이에요. 모든 사람이 잘 그렸다고 이야기하는 능품과는 다른 겁니다. 나에게로 와서 활짝 피어나는 꽃과 같은 것이죠. 다른 사람한테는 그것이 풀에 불과할지라도 나에게는 꽃으로 보이는 작품이에요. 몽환이라는 말도 그런 묘한 정서적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점에서는 나도 몽환적인 점이 있을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품은 묘품이에요.
이: 서양에서도 그런 게 있어요. 알베르트라는 수학자가 인체의 아름다움을 600개의 비율로 나눴어요. 정말 완벽한 미녀의 기준을 제시했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미녀를 사랑하기란 어렵죠. 대부분의 사람은 눈과 코의 비율이 완벽하지 않지만 그게 누군가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잖아요. 비율이 틀어진 상태, 코가 짧고 인중이 길고 이런 것들이, 그 사람만의 삐뚤어진 부분이 나한테는 너무 매력적인 거잖아요.
알라딘: 마치 서양미술에서 풍크툼을 설명하는 부분 같습니다. 중국에서도 옛날에 이런 말이 있었다니 처음 들었는데 재미있네요.
손: 묘품을 그려내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이것이야말로 명품이 되고, 신품이 될 것이다 하는 확신에 차 있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것으로 됐다, 더 이상 덧칠할 필요가 없다는 시점에서 작품이 탄생하지 않습니까? 아무 보장도 없지만 어느 순간에는 끝을 냈을 겁니다. 필유곡절입니다. 그 작품을 할 수 밖에 없는 곡절과 연유가 자기자신을 납득시키는 것이죠. 그런 것이 묘품입니다. 그런 몽환이 어느 한 사람을 평생을 매달리게 하는 요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손 선생님의 몽환과 제 몽환은 다를 거예요. 화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스트들은 아닌 것 같아요. 뭔가 필터링을 하고 있어요. 저는 항상 그림을 이중적으로 봐요. 가장 행복한 순간에 어두운 면을 같이 보기도 하고, 가장 어두운 순간에 행복한 면을 보기도 하고. 그림이 항상 그림자를 달고 다니는 식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알라딘: 그것이 선생님 자신의 캐릭터와도 연관이 있나요?
이: 그냥 제 캐릭터는 단순한 형이에요. (웃음)
알라딘: 손철주 선생님도 책을 읽다보면 본인의 이야기를 안하시죠.
손: 제 얘기를 안한다고요? 제가 이주헌씨와 대담을 했는데요. 이주헌씨가 말하길, 자기는 자기 글에 자기를 집어넣을 수가 없는데, 손선배는 자기 글에 완전히 집어넣는다고 합디다.
이: 손 선생님이 글에 자신을 집어넣는 방식은 옛 선인들의 말에 중첩시키는 방식이에요. 누구누구가 이르기를, 이렇게 인용을 했지만 그게 다 선생님 말씀이에요.
손: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잖아요.
알라딘: 물론 그 글투나, 다루고 있는 문구들을 보면 아, 이런 얘기인 것 같다는 느낌이 오죠. 기계적으로 비평을 하는 게 아니라 컨텍스트를 다루면서, 말하자면 빌려서 이야기를 한다고 할까요.
이: 인용을 위한 인용이 아니라, 선생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로 하시는 거죠. 음흉스러운 사람이죠. (웃음)
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나는 복화술에 관심이 많아요. 글을 쓰는 행위가 ‘팩트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이지 않습니까. 글은 내가 쓰지만, 내가 인용하거나 거론하고 있는 소재를 통해서 내 이야기를 듣게끔 하는 이른바 복화술적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요. 어디 밖에다가는 처음 하게 되는 말인 것 같은데...
내가 내 말로 떠들면 연설처럼 될 수 있어요. 궁극적으로 내 말인데 내 말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를 해야 그것이 객관성을 띄는 것 같기도 하고 즉자적이 아니라 대사적으로 독자들이 여기도록 하는 거죠. 그건 기법적 측면에 관한 것일텐데 저는 제 글이 ‘나’가 많이 들어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알라딘: 다루고 있는 주 소재가 그림이기 때문에 그림에 빗대서 말을 하는 것이군요.
이: 모든 인용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서 끌어오는 거예요. 인용은 결코 객관적이지 않죠. 학술서에서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어떤 입장으로 끌고 나가려면 계속 그쪽 인용문만 끌어오거든요. 그럼 엄청난 서포트를 받게 되죠.
손: 글쓰기를 잘하려면 견강부회를 잘 해야 된다니까 (웃음). 그런데 박음질이 드러나면 하수가 되는 거죠. 그 박음질, 이음매가 드러나고 하면 안되는 거죠. 재단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재봉이 어렵다는 거죠.
이: 통하는 게 있네요. 아까 패치워크라고 했던 것.
다, 그림이다?
알라딘: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꼭지가 일종의 짧은 동양화론, 서양화론인데요. 두 분이 다른 스타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손 선생님은 거죽 안에 있는 성정, 기운을 말씀하셨고, 이 선생님은 외면을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환영을 창조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죠. 그 마지막 꼭지에 대해서 조금씩 더 얘기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이 세계는, 혹은 삶은 무엇인가에 대해서인데요. 사실 저는 이 책의 마무리는 이 세계 자체에 대한 이야기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분량상 짧아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조금더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손: 형상의 바깥에서 기이함을 얻는다. 사의간필이라는 기법적 측면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외형을 그리되 그 외형이 그리 될 수밖에 없었던 뜻을 드러내는 것이 동양화에서 사의 기법이라는 거예요. 외형이 아니라 뜻을 그리는 거죠. 그럼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느냐, 상외기득이다. 형상 바깥에서 얻는 것이 무엇이냐...
그건 아마 소식과 같은 걸 거예요. 소식을 전하고자 하는 거예요. 그 내용은 초자연적인 것일 수도 있고, 삶의 비의일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인생에서도 그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을 통해 저것을 말하기. (잠시 침묵) 글을 쓰는 자도 '인생은 고해다' 하면 사실 다 끝나는 거예요. 더 쓸 말이 어딨겠어요. 그런데 얼마나 많은 문학인들이 인생이 고해라는 걸 수많은 작품으로 거듭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이것을 들어 저것을 말하기인데, 그걸 삶에 대입하면,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는 일종의 불교의 연기론 같은 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살아보니까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생겼구나 싶습니다. 내가 마음 속으로 미워하는 사람이 못 되기를 나혼자서 기원했기 때문에 그 다음날 그 친구가 가다가 발목이 부러지는 거예요. 황당한 얘기처럼 보입니까? 이건 몽환이 아니고 제가 살아 온 경험이에요.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한다? 말이 안되죠. 근데 칭찬이 반복되면 고래가 춤추는 거 맞아요.
조선시대 귀빈들 사이에서 사람 저주하면서 찌르는 인형 있지 않습니까, 그거 효과가 있습니다. 세상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무슨 얘기하다가 인생론까지 와버렸지?
알라딘: 질문이 그것입니다. (웃음)
손: 동양화에 기본정신을 더 이야기하면서 인생과 관련된 자기 이야기를 해달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이 아니라(웃음). 그것이 생기는 이유는 이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라딘: 눈에 안보이는 일종의 인과법칙이군요.
이: 그런 게 동양적 사고에서 중요한 것 같아요. 서양적 사고는, 예를 들어 별이 떨어지는 걸 봤는데 동양에서는 별이 떨어졌으니 이쪽에서 영웅이 태어나겠구나 하고, 서양에서는 그 별을 파악해서 천문학이 발달하고요. 서양에서는 있는 그 자체로 정복하려고 애쓰고 동양에서는 어떤 사후 징조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미술에서도 나타납니다. 서양에서는 플라톤시대에서부터 모방론이 나오고 똑같은 것이 가지는 의미에 주목해요. 똑같은 것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닮은꼴은 속성도 비슷하다는 거죠. 그래서 서양에서는 분류학이 발달합니다. 닮은꼴이 의미를 가진다는 뜻이에요. 결국 환영은 끊임없이 추구되어 오면서 서양미술의 근간을 이루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계속 환영과 현실에 대해서 쭉 이야기 하게 됐어요.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인상과 인상이 가지는 내적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셨고요.
그런데 김훈 선생님이 서문에서 그 둘을 모아주셨어요. 하나는 솔거의 그림을 똑같이 그린 것. 하나는 신비로움이 빠져버린 그림. 앞뒤가 딱 맞물리는 결과가 나왔어요. 신기해요. (웃음)
BONUS
알라딘: 이제 간단한 질문이 남았습니다. 근래에 본 책, 영화, 그림 등에서 인상 깊게 본 작품이 있으신지.
손: <그날들> 윌리 로니스. 그 책을 낸 출판사의 대표는 그런 책을 좋아하나봐. <한번은,(빔 벤더스)> 그것도 그런 느낌이 있어요.
이: 사진이 가진 속성 같아요. 한 순간.
손: 윌리 로니스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글이 주제를 한 번에 포커싱을 해서 응축해나가는 힘이 없어요. 파편화된 문장들이죠. 그래서 인생과 더 닮아있어요. 글도 너무 잘 설계된 글은 가짜 같아요. 못 쓰는 글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알아주세요.
내가 만일 그 사진만 봤다면 그 사진에 담겨져 있는 그날들의, 그 순간에 딱 한번 벌어진 일에 대해서 온전히 내가 간취할 수 있을까? 아닌 것 같아요. 로니스의 그 못 쓴 글을 읽을 때, 그 사진이 정말 생에서 딱 한 번 벌어진, 위대할 수 있고 경이로울 수 있는 일이 되는구나...
저도 그렇게 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하느냐, 로니스처럼 글을 못 써야 될 것 같아. (웃음) 저도 내가 선택한 그림을 독자에게 확 안겨주고 싶은 허영심이 있어요.
알라딘: 그 책의 특징을 확실히 파악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이: 저는 최근에 <흑산>을 읽었어요. (웃음)
알라딘: 이 질문을 인터뷰에서 빼야겠는데요. (웃음. <그날들>은 <다, 그림이다>가 나온 이봄 출판사의 책이고, <흑산>은 손철주 선생님이 주간이신 학고재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손: 이거는 꼭 넣어야 해. 앞에 건 빼더라도 이주은 교수가 <흑산>을 추천했다, 손철주가 <그날들>을 추천했다. (웃음)
이: 소설가라면 인간의 고통, 슬픔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주인공에 대한 묘사보다는 인간에 대해서 다루고 있어요. 소설가는 인간을 잘 이해하는 사람인데, 한번쯤 권할 만한 책인 것 같아요. 휴머니즘 차원에서요.
손: 생애의 주인공이라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 소설에서는.
알라딘: 여기까지입니다. 오늘 매우 즐거운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