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커상 수상 이후 5년,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한강 작가의 온라인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독자의 오랜 기다림에 응답하는 작가의 소회를 알라딘 독자에게 소개합니다. | 정리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소설을 쓰게 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첫 두 페이지는 2014년 6월 말 즈음에 쓰게 되었어요.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악몽을 계속 꾸었는데,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직접적인 폭력에 대한 꿈을 많이 꾸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아, 이건 광주에 대한 꿈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좀더 상징적인 꿈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때 이런 꿈을 꾸었어요. 눈 내리는 벌판을 제가 걷고 있었고, 저 벌판의 끝에서부터 제 뒤쪽에 있는 능선, 산봉우리 끝까지 검은 통나무 수천수만 그루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그 나무들 뒤에 봉분들이 있었고요. 아 여기가 무덤이구나, 이렇게 큰 묘지가 여기에 있는 걸 모르고 있었구나, 생각하면서 나무들 사이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운동화에 물이 밟혀서 돌아보았더니 바다가 밀려들어오고 있었어요. 밀물이구나, 왜 이런 곳에다가 무덤을 썼을까? 너무 이상했어요. 봉분 아래에 있는 뼈들이 다 쓸려가버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쓸려가버린 뼈들은 어쩔 수 없더라도, 더 위쪽에 밀물이 닿기 전에 뼈들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도구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어떻게 할 줄 모르는 채로 나무들 사이를 달리다가 깨어났습니다. 잊어버리기 전에 그 꿈을 기록했어요. 이 꿈이 언젠가 소설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요.
1996년 제주에서 삼 개월 정도 지낸 적이 있는데, 하루는 방을 내어주신 할머니가 짐을 들고 갈 데가 있다고 도와달라고 하셨어요. 고장난 TV며 우체국에 부칠 짐을 들고서 골목을 걷고 있는데, 그때 할머니가 멈춰 서서 말씀하셨어요. 이 담이 4•3 때 사람들이 총 맞아서 죽었던 곳이라고. 눈부시게 청명한 오전이었는데, 그 일들이 무서울 정도로 생생하게 실감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어요.
그 순간의 기억과 꿈의 장면이 만나면서 이 소설을 쓰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책을 내고 보니 하나의 물성을 가진 책으로서 이 이야기가 제 손에 쥐어졌다는 게 굉장히 감사하고 뭉클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어떤 소설이라고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이 어떤 소설이냐고 누군가 물어볼 때마다 고민이 되었어요. 어떤 때는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대답했고, 어떤 때는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소설이라고, 또 어떤 때는 제주 4•3을 그린 소설이라고 했어요. 모두 진심으로 한 이야기였지만, 그중에서 하나를 고르자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는 말을 고르고 싶어요.
모든 소설은 쓸 때 그 소설이 요구하는 어떤 마음의 상태가 있는데, 이 소설이 언제나 저에게 요구한 것은 지극한 사랑의 상태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소설을 쓰면서 그 상태를 잊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사랑이라는 것이 두 개의 삶을 살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랑은 나의 삶만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동시에 살게 하는 것이라고요. 특히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나는 여기 있지만 동시에 그곳에 있게 되는 것이고, 그러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그 마음이 초자연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마음이 그러한 간절한 상태라고 생각했고요.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 불가능하지만 애써보았던 소설입니다.
80년 광주를 다룬 소설을 쓴, 『작별하지 않는다』 속 경하와 작가의 삶이 포개어집니다.
경하의 모습이 다 제 얘기는 아니지만, 『소년이 온다』를 쓸 때에도, 쓰고 나서도 악몽을 계속 꾼 것은 사실이에요. 어떤 소설이든 쓰는 과정이 쓰는 사람을 변형시키거든요. 저도 변형되었고, 그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어요. 『소년이 온다』를 쓰고 나서의 삶은 그전의 삶과는 다른 것이 되었고. 그 악몽이나 제가 가지게 된 고민과 질문들은 제가 평생 지니고 가야 하는 것이 되었죠. 그런데 이 소설을 쓰면서는 이상하게도 저 자신이 많이 회복되었어요.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악몽과 죽음이 제 안으로 깊이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면,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면서는 저 자신이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는 경험을 했어요.
이 소설을 쓰는 것은 물론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고통으로부터 저를 구해주는 경험이 되기도 했습니다. 계속해서 지극한 사랑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에, 이 소설을 쓰던 시간을 생각하면 그렇게 고통스러웠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아, 내가 간절했지’ ‘이 소설이 나를 구해줬지’ 하는 마음이 더 듭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을 『소년이 온다』 이후로 하게 되었고, 이 소설을 쓰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작가께서 소개하신 '지극한 사랑'은 무엇이고, 지금 이런 이야기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이 소설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8년이었어요. 소설의 배경이 된 시간도 그때인데요,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코로나 팬데믹 시국이 시작되었고, 후반부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 써가게 되었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우리의 삶이 이렇게 고립된 것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홀로 있어야 하고, 함께 있어도 마스크를 쓰고 악수를 하지 못하고 포옹을 하지 못하는 시절을 통과하고 있죠.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더더욱 연결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이 고독과 고립으로 인해 오히려 간절하게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나 합니다. 우리의 방에, 우리 자신의 삶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그 밖으로 뻗어나가서 서로에게 닿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그런 마음을 모두가 간절히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이즈음 하고 있어요. 그런 마음이 이 소설을 쓰는 데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오래 기다려주신 소설입니다. 소설을 출간하며 느끼는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사이사이 「작별」 같은 글도 썼지만, 일 년 넘게 소설을 쓰지 못한 공백기도 있었어요. 그러다 이 소설을 시작하게 되었죠. 이 소설은 여러 가지로 자료가 많이 필요했어요. 팬데믹 초기엔 이동도 어렵고 도서관도 문을 닫아서 출간된 단행본을 구해서 읽으며 소설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느꼈던 것이 있는데요, 소설 뒤에 제가 참고한 작품을 많이 적었지만 대부분 2000년대, 2010년대에 출간된 책들이에요. 4•3이라는 70년 전 일을 계속해서 기록하고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계속 존재해온 것이죠. 저도 그런 자료들을 읽은 것이고요. 이렇게 이 사건에 대한 마음이 이어져오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제가 참고한 영상, 영화, 책, 증언을 해주셨던 분들,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제주 방언부터 세세한 것까지 도움을 많이 청했는데, 자기 일처럼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신 분들을 기억합니다. 그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