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 연재- 다섯 개의 작은 미스터리

 

 오늘부터 5일간, 한 편의 작품이 단 4페이지로 완결되는 독특한 화제작 <4페이지 미스터리>의 수록작들을 하루에 하나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본래 출퇴근 시간에 깔끔하게 읽을 수 있는 신문 연재작이었다고 하죠. 분위기도 각양각색이고 트릭들도 다양해서 막간에 짧게 읽기에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즐겁게 읽어 주시기 바라며, 아울러 포레와 알라딘이 진행 중인 4페이지 미스터리 공모전에도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보시다시피 단 한 방으로도 족하니까요. 소개드리는 작품들이 좋은 참고가 되리라 믿습니다. 

 

  

 

록 온 lock on

 

 “아이 참, 왜 안 나온 거야? 계속 전화했단 말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미안해,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어. 무슨 일 있었어?”

 나는 긴장된 목덜미를 주물렀다.

 “어쩐지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 따라오고 있어.”

 “수상한 사람이라니, 전에 전화로 말했던 사람?”

 약 한 달 전, 낯선 남자가 아파트 우편함을 뒤지고 있었다며 그녀는 아주 난리법석이었다. 결국 실질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아닐 거라고 생각해, 아마도.” 오늘은 아파트가 아니라 본가로 돌아가는 중이니까 같은 남자일 리가 없다고 그녀는 추측했다. 요즘 그녀는 본가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게다가 말이야, 아파트에 있던 사람은 더러운 아저씨였는데, 오늘은 그보다 젊어.”

 “어떤 사람인데?”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하얀 티셔츠, 빨간 반바지를 입고 머리띠를 두르고 있어.”

 “……그냥 심야에 조깅하는 사람 아냐?”

 “아냐, 달리지 않는단 말이야.” 본가로 향하는 그녀 뒤에서 20미터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고 한다. “역에서부터 계속 따라오고 있어. 이상하지?”

 역부터 그녀의 본가까지는 외길이지만 이 시각에는 문을 연 가게도 없고 행인도 급격히 줄어든다. 그녀의 공포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뛰어서 도망치면 어때?”

 “집까지? 못 해. 아직 상당히 남았고, 나 지금 샌들 신었어.”

 그래도 그녀 나름대로 서두르고 있는 것 같다. 빠른 템포의 발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집에 전화해서 나와달라고 해.”

 “그것도 못 해. 지금 아무도 없어.”

 “그러면 경찰을 부르든가.”

 “……아, 그거,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그럼 지금부터 데리러 와. 경찰차라면 금방이잖아.”

 경찰차?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뭐야, 왜 그래?”

 그녀가 목소리를 낮춰 재빨리 대답했다. “모르겠어? 형사 남자친구에게 전화한다는 설정이야. 그냥 적당히 맞춰줘.”

 그러고는 다시 목소리가 커졌다. “일반 승용차를 타고 있다고? 뭐야, 경찰차 한번 타보고 싶었는데. 아, 하지만 경광등은 있지? 차 지붕 위에 올려놓는 거 말이야. 그걸 켜고 와. 괜찮아. 화 안 낼 거야. 사건이라고 말하면 되잖아. 살인마에게 습격당한 미모의 여사원을 구하기 위해서 현장으로 달려가는 거라고…… 뭐? 좋잖아, 미인 여사원이라면. 이럴 때는 미인이라고 말하는 법이야. 상식이잖아.”

 그녀의 연기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이러니까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잠복? 응, 전혀 상관없어. 같이 해, 같이 하자고. 그거지? 차 안에서 뽀뽀하는 척하면서 망보는 거. 안 돼, 일이니까 진지하게 해야지. 형사잖아? 여기서 공적을 올리면 경부보로 승진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응, 그래, 돌아간 뒤에 느긋하게. 내일은 비번이니까 자고 갈 수 있지?”

 듣는 중에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저기 말이야, 연기를 방해해서 미안한데.”

 “뭔데?”

 “뒤에 있는 남자, 뭐 하고 있어? 슬쩍 봐봐. 슬슬 내뺐을지도 몰라.”

 밤의 목소리는 잘 들린다. 게다가 큰 소리로 떠들었으니 분명 남자에게도 들렸을 것이다.

 “아, 잠깐. 누가 오는 것 같아. 오빠일지도…… 아니네. 모르는 사람이었어.”

 뒤를 돌아보기 위해 연기한 뒤에 그녀는 목소리를 낮춰 웃었다.

 “대성공이야. 역 쪽으로 달아나버렸어. 해냈다.”

 나도 안심했다. 남자는 정말로 조깅하던 중에 잠시 쉬기 위해 천천히 걷고 있던 것뿐이었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녀에게서 떨어져주어서 다행이다.

 “이참에 얼른 돌아가.”

 “물론이지. 아, 하지만 만약 그 남자가 또 오면 전화해도 돼?”

 “물론……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제부터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나야 돼. 휴대전화 같은 걸 꺼두지 않으면 화내니까.”

 “그렇구나, 알았어.” 그녀의 목소리는 밝았다. “그러면 이대로 전화하는 척하면서 돌아갈게. 오늘 고마워, 리사.”

 그녀는 리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도청기의 이어폰을 빼고 귀를 가볍게 주물렀다. 잠을 잘못 잤을 때처럼 목이 아프다. 이 빈 집의 담벼락 그늘에서 그녀를 기다리면서 움츠리고 있던 탓일까. 하지만 고생에 대한 보답은 받았다. 그녀를 회사에서부터 미행해 본가를 알아내고, 잠복을 개시한 지 나흘째. 오늘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다.

 그녀의 기지로 수수께끼의 조깅남은 사라졌다. 그녀의 가족이 집을 비운 사실도 알았다.

 그녀의 친구인 리사가 전화로 방해해 올 걱정도 없다.

 마치 하느님이 나를 위해 준비해준 것 같다.

 이제 곧 그녀가 이 집 앞에 나타날 것이다.

 최고의 밤이 시작되리라.

 오늘 밤 그녀도 ‘더러운 아저씨’라는 편견을 버리게 되겠지.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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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MD 바갈라딘 2011-09-05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섯 편의 선정 기준이 없는데 원호가 꼽은 베스트5인가요??? 그렇다면 초기대!!! 아니라도 기대!!!

외국소설/예술MD 2011-09-05 17:38   좋아요 0 | URL
일단 출판사에서 준 다섯 편을 갖고 있습니다만, 두 편 정도는 제가 꼽은 걸로 올릴까 싶네요. ㅎㅎ

aida 2011-09-05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미스터리 문외한이 보기에도 재밌는 발상의 작품에 재밌는 공모전이에요!(혹시 문외한이어서 그런가;)
무섭지만; 기대돼요.ㅎ

외국소설/예술MD 2011-09-07 23:21   좋아요 0 | URL
재미있으셨나요? 한번 도전해 보시죠 ^^

cc 2011-09-14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외국소설/예술MD 2011-10-05 15:31   좋아요 0 | URL
아...

달사르 2011-10-13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아침에 읽고 깜짝 놀랐어요. 밤에 읽으면 무섭겠는데요. 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