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무진 <해인>



글: 노정태 (자유기고가)



아기장수 설화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세상을 구원할 혹은 송두리째 뒤집어엎을 특별한 아기가 태어나려 하는데, 그것을 알아챈 기득권이 아기와 산모를 해치려 한다는 이야기 말이다. 지역과 판본에 따라서는 역적으로 몰릴까 두려워한 부모가 아기를 직접 죽여버리기도 한다. 후련하게 뒤집히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담긴 민중 설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아기장수 설화 중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버전이라면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터미네이터> 1편일 것이다. 이게 무슨 치사량의 ‘국뽕’이 혈관에 주입된 자의 망언인가 싶겠지만, 잘 생각해보자. 곧 핵전쟁이 터지고 세상은 기계에 의해 지배된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인간을 규합하여 싸우는 아기장수가 바로 존 코너다. 존 코너를 낳을 사람은 사라 코너이며, 아기장수를 보호하기 위해 미래의 존 코너는 자신의 아버지 카일 리스를 과거로 급파한다. 터미네이터는 말하자면 아기장수를 죽이려 드는 못된 포졸인 셈이다.

알고 보면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한국인이라거나 한국 설화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기장수 설화의 이야기 구조가 그만큼 보편적이고 그 자체만으로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책날개에 따르면 “한국적인 소재에 근원을 둔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는데 특히 깊은 사료적 고증에 의거한 스토리를 펼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는 1974년생 소설가 차무진의 신작 『해인』 역시 그 계열에 속하는 작품이니 말이다.

 

아기장수 존 코너를 낳을 어머니 사라 코너를 『해인』의 작중 세계관에서는 성모라고 부른다. 본디 성모의 역할은 태어날 때 부여받고 죽으면서 끝나는 것이지만, 고려 말 어떤 사건으로 인해 ‘숙지’라는 이름의 여인은 아기장수를 낳을 때까지 계속 같은 영혼을 지닌 채 환생해야 할 운명에 처한다. 한편 카일 리스의 역할을 하는 이들이 박마다.

박마는 의상 법사가 한반도에 가져온 영험한 신물인 해인(海印)을 확보하여, 성모의 입천장이나 발바닥 등 눈에 띄지 않는 부위에 해인의 흔적을 새긴다. 그러나 카일 리스와 달리 박마는 성모를 직접 임신시키지 않는다. 박마는 성모를 찾으면 평생 지키겠다는 서약을 하고 해인을 인식시킨 후 곱게 시집보낸다. 성모의 몸에 잉태되는 것은 육체적 아비의 자식이 아니다. 해인의 힘으로 아기장수가 잉태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여러 명의 박마가 존재하며 그들은 엄격한 규칙에 따라 행동한다. 그중 가장 지엄한 원칙은 아기장수가 죽으면 그를 섬기는 박마 역시 따라서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죽지 않는 박마가 있다. 문자 그대로 불사의 몸이 되어버린 박마. 『해인』의 주인공 백한이 그렇다. 그리고 그에게는 반드시 막아내야 할 숙적 정만인이 있다. 정만인 역시 불사의 몸이며 해인을 악용하여 아기장수가 태어나야 할 육체를 자신이 차지함으로써 고통스러운 영생불멸의 삶을 끝내고자 하는 악당이다. 정만인은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성모를 먼저 찾아내어 자신이 임신시키려 든다. 이미 성모가 아기장수를 회임했다면 성모를 죽여서 다시 태어나게 한다. 백한이 존 코너의 아버지가 되지 못하는 카일 리스라면, 정만인은 ‘터보레이터’(<터미네이터>의 패러디물인 <터보레이터>는 미래의 지도자를 누가 먼저 임신시키는가를 두고 두 명의 터보레이터가 경쟁하는 내용이다)인 셈이다.

 

불사의 두 인물을 두고 저자 차무진은 놀라울 정도로 능숙한 글쓰기를 보여준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최대한 활용해 두 불사인의 대결을 엮어내는 것이다. 그들의 악연은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의 부대에서 시작해, 임진왜란을 거쳐 동학농민운동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현대까지 이어진다. 특히 이순신의 캐릭터를 세계관 속에 집어넣고 인격을 부여한 솜씨가 놀랍다. 이미 실권을 잃은 뒷방 늙은이가 되었지만 권력욕과 두뇌만은 살아 있는 흥선대원군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저자가 충실히 공부하고 준비한 내용을 바탕으로 ‘팩션’이 엮여나가는 쾌감이 대단하다.그러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제대로 된 대중소설을 만났다’는 긍정적 소감을 가리는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애초부터 출산의 도구로 사용되는 여성의 육체에 대한 훼손과 폭력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는 게 일차적인 문제다. 그것을 장르적 특성으로 받아들이고, 논쟁의 여지가 있겠으나 숙지가 환생을 거듭할수록 주체적인 인물로 거듭난다는 것에 점수를 준다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책의 말미에 이르러 작가가‘떡밥’을 회수하기 위해 독자의 몰입을 결정적으로 방해하는 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결정적인 반전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자세히 서술할 순 없다). 다시 <터미네이터>로 돌아가보자. 아기장수 존 코너를 점지한 인물은 다름아닌 존 코너 자신이었다.

미래가 과거를 만들어낸 이 고전적인 시간 여행의 역설을 마주한 제임스 캐머런은 ‘설정의 늪’에 빠지지 않았다. 대신 사라 코너의 입을 빌어 얼렁뚱땅 넘어가버렸다. 그렇게 장르적 쾌감에 집중했던 1편 그리고 2편과 달리, ‘설정의 완벽함’을 의식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이후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용광로에 빠지고 말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해인』에 대해 드는 아쉬움도 그와 유사하다. 결말을 알고 페이지를 다시 넘겨보면 몇몇 대목이 새롭게 읽힌다. 하지만 한 사람의 독자로서 나는 그보다는 군더더기 없이 휘몰아치는 독서 경험을 더욱 원했던 것 같다. 물론 선택은 저자와 다른 독자의 몫일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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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홍한별 (번역가)





1906년 6월 25일 밤, 매디슨스퀘어가든은 도금 시대 축적된 부가 뉴욕 맨해튼에 쌓아올린 초호화 건물 중에서도 장려함과 호사스러움의 극치를 뽐내던 곳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쾌락을 누리러 매디슨스퀘어가든의 옥상 정원으로 모여든 화려한 멋쟁이들 사이에 세 사람이 있었다.


신화 속에서 걸어 나온 듯한 신비한 미녀, 최초의 ‘잇’ 걸, 전무후무한 슈퍼모델, 만인의 선망과 욕망의 대상이었던 에벌린 네즈빗. 

피츠버그 석탄철도왕의 상속자 해리 소. 

당대 최고의 건축가이자 뉴욕 상류사회의 꼭짓점에 존재했던 스탠퍼드 화이트.

그리고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미국을 아찔한 흥분과 충격으로 뒤흔들어놓은 이 살인 사건에는 사람들을 매혹하는 이야기의 모든 요소가 들어 있다. 섹스와 죽음. 신데렐라와 백만장자. 미녀와 야수. 그 자체로 완벽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허구적으로 가공하는 게 사실 의미가 없었다. E.L. 닥터로는 그러나 이 이야기를 이용하는 유일한 방법을 알았고 탁월하게 성공했다. 그는 ‘세기의 사건’을 축소화법을 사용해서 담담하게 전했다. 여기에 해리 후디니, 옘마 골드만, J.P. 모건 등 실제 인물들과 허구적으로 창조한 백인, 이민자, 흑인 세 가족의 이야기를 한데 엮으면서 뜨겁고 냉혹한 시대를 그려냈고, 그렇게 완성한 작품 『래그타임』(1975년)은 닥터로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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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 누쿠이 도쿠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통(혹은 고전) 추리소설은 장르적 지표라 할 수 있는 공식을 중시한다. 먼저 수수께끼 같은 범죄가 발생하고, 작품 속에서 제시되는 단서들을 통해 의문을 풀고 범인의 정체를 밝혀나간다. 이런 특성 때문에 고전적인 추리소설, 즉 수수께끼 풀이 형식의 추리소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비슷한 유형의 반복을 취한다. 작가가 문제를 던지고 독자가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머리싸움은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암묵적 규칙도 존재한다. 명문화된 규정집이 없을 뿐 스포츠 경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지만 추리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독자일지라도, 작가가 마음먹고 만들어놓은 함정을 피해 가기는 힘들다. 이야기는 등장인물의 실제 이미지가 아닌 거짓 이미지에 근거하여 전개되기 마련이며, 작가는 누가 진짜 중요한 인물인지, 또 무엇이 중요한 사실인지를 조바심 날 정도로 조금씩 밝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쿠이 도쿠로의 『프리즘』은 형식 자체가 반전이자 독특한 형식을 지닌 작품이다. 


‘어느 초등학교의 젊은 교사가 아파트에서 살해된다. 방에 있던 골동품 시계에 머리를 맞은 것이 사인(死因)이며, 부검 결과 수면제가 검출된다. 죽기 전 누군가 보낸 초콜릿을 먹었는데 그 속에는 수면제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과연 누가 죽인 것일까…?’ 


이상은 누쿠이 도쿠로의 『프리즘』 도입부 요약이다. 1장 ‘허식의 가면’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 소년인 ‘나’가 동급생들과 함께 담임 선생의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나서며, 열띤 의견 교환 끝에 그럴듯한 결론에 도달한다. 여기까지는 여느 정통 추리소설의 형태와 별로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2장 ‘가면의 이면’에서는 화자인 ‘나’가 피해자의 동료 교사로 바뀌고, 이어진 3장 ‘이면의 감정’과 4장 ‘감정의 허식’에서는 다시 피해자의 전(前) 애인과 학부형으로 바뀌면서 일반적인 작품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각 장마다 바뀌어 등장하는 ‘나’는 각각의 입장에서 사건을 조사하여 진상에 접근(했다고 생각)하지만, 독자로서는 ‘과연 그것이 진실일까?’ 하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작가는 최종적으로, 시행착오를 거쳐 완전무결하고 오류 없는 사건의 진상을 보여주는 대신 독자에게 판단을 넘겨준다.


흰색의 빛을 통과시키면 무지갯빛 띠를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이 소설의 제목은 중의적이다. 하나의 살인 사건이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것이 첫 번째 의미이다. 각 장은 독자적인 굴절 각도를 지닌 프리즘으로, 등장인물의 입장을 빌려 무려 열 가지의 가설이 제시된다. 두 번째 의미는 피해자 미쓰코에게서 비롯된다. “나는 그런 미쓰코가 마치 눈이 어지럽게 만드는 만화경이나 다양한 색깔의 빛이 난무하는 프리즘처럼 느껴졌다”는 작중 표현처럼, 미쓰코는 여러 모습으로 등장한다. 어린 제자들에게는 언제나 자신들 편에 섰던 다정한 선생님이었지만 동료 교사 입장에서는 질투심을 느낄 정도로 순진한 사람, 한때 애인이었던 남자에게는 사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타인의 기분을 이해할 줄 모르는 형편없는 상대, 불륜 관계였던 중년 남성에게는 만날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여성이다. 미쓰코의 여러 모습은 상대하는 사람의 프리즘에 따라 다른 색으로 비추어진 결과일 뿐이며 그녀는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극단적으로 어린아이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작품의 맥락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누쿠이 도쿠로는 이 소설을 에드거 앨런 포의 「마리 로제 수수께끼」의 뒤를 이을 작품으로 구상했다고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포의 순수한 상상력으로 창조되어 명쾌한 결말을 맺는 「모르그 거리의 살인」과 「도둑맞은 편지」와는 달리, 19세기 뉴욕에서 실재했던 메리 로저스의 변사 사건을 바탕으로 한 「마리 로제 수수께끼」에서는 분명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채 마무리된다. 여기서 포는  “아주 사소한 차이가 사건의 두 경로를 완전히 바꾸어 큰 차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마치 변명처럼 느껴지는 문장을 남겼다. 누쿠이 도쿠로는 이러한 결말에 영감을 얻어, 사건의 진상에 대해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배제하고 독자에게 결정권을 넘기는 이야기를 썼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문학의 정치』(유재홍 옮김, 인간사랑 펴냄)에서 “허구의 진실임 직함은 설화의 기만적인 진리에 대립”되며, “탐정소설은 문학혁명에서 표상적인 진실임 직함의 탄생과 정화만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합리성의 영토”라고 했다. 논리의 문학이라고 일컫는 추리소설은 최대한 진실임 직한 가설을 따라가게 되며, 독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작가의 결론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학 작품의 해석에서는 텍스트보다 독자가 더욱 중요하다. 때로는 독자야말로 텍스트가 무엇인가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므로, 어떤 의미에서 작가만큼 텍스트를 창조해낸다. 어쩌면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이 독자의 눈을 거치며 작가의 통제를 벗어날 수도 있고, 작가가 제시한 열 가지 가설 이외의 새로운 가설을 충분히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프리즘』의 결말에 대해서는 독자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임에 틀림없지만, 흔히 보기 힘들었던 시도는 신선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박광규 (추리소설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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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무한육면각체

장용민 지음




리뷰어: 이다혜(북칼럼니스트)



천재가 예술 작품 속에 비밀코드를 심어놓았다……. 댄 브라운의 2003년 작 『다빈치 코드』(안종설 옮김, 문학수첩 펴냄)가 팩션 붐을 일으키기 전, 한국에도 팩션의 바람이 불었다. 그 주인공은 1997년에 출간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의 장용민이었다. (1993년에 발표된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세계사 펴냄)도 빼놓을 순 없으리라.) 2013년 작 『궁극의 아이』과 2014년 작 『불로의 인형』(모두 엘릭시르 펴냄)의 장용민이 처음 발표한 이 장편소설이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비밀’이 제목에서 빠진 셈인데, 그러고 보면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말 자체가 이미 퍼즐과 같고 비밀 그 자체로 보이니 당연한 결정일지도 모르겠다. ‘장용민 월드’라고 불러도 좋을, 한국적인 상황과 역사에 매력적인 재해석과 추리를 더해 만들어낸 작품들의 원형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건축무한육면각체』가 풀고자 하는 암호는 이상의 시다. 국어시간에 배웠던, 뜻은 몰라도 외워 놀기 좋았던 음률을 지닌 이상의 시에 큰 비밀이 숨어 있다는 설정은, 이상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김재희의 2012년 작 『경성 탐정 이상』(시공사 펴냄)이 경성 시절의 이상을 소설가 구보 박태원과 콤비를 이루는 탐정으로 등장시켰다면,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이상이 남긴 암호를 현대(2006년)의 우리들이 풀어간다는 구성을 취했다. 책의 목차부터 기발하다. 사람은 사람의 객관을 버리라-직선은 원을 살해하였는가-사람은 숫자를 버리라-우리들은 이것에 관하여 무관심하다-영원한 망각은 망각을 모두 구한다-사각의 이름을 발표하다…. 당연하게도 프롤로그는 설명도 없이,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전문인용이다. 소설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가상의 해설판이기도 한 것이다. 장용민은 이상의 삶을 그의 작품과 병치시키고, 현재 시점에서 그의 시를 해석하는 두 인물을 집어넣었다.


첫 번째 미스터리. 후일 이상이라고 불리게 되는 김해경은 본디 천재적인 건축가였다. 그는 서울대 공대의 전신인 경성 공고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 조선총독부 산하 건축과 기사로 취직한 그는 1929년에 설계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바로 그 해, 그의 건축물이 조선건축학회의 기관지 《조선과 건축》에서 1등과 3등으로 뽑혔다. 그리고 1930년부터 1931년 사이의 기간, 그는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1932년이 되어 그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은, 이상이라는 이름으로였다.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하면서. 대체 그 1년여의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두 번째 미스터리. 서울역 구 역사의 대합실 중앙, 붉은 대리석과 검은색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문양이 등장한다. 세 개의 육면각체가 서로 직각으로 맞물리며 중앙으로 이어진 문양 한가운데는 천황을 상징하는 열여섯 개의 잎을 가진 국화 문양이 자리 잡았다. 이것을 삼종신기라고 한다. 일본 천황은 왕위에 오를 때 선대 천황으로부터 세 가지 보물을 물려받는데, 이 또한 삼종신기라 부른다. 삼종신기가 단군신화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잠시 등장하고,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 중 단 세 곳에만 삼종신기가 새겨져 있음을 지적한다. 그 세 건물은 철거된 중앙청, 서울시청, 그리고 서울역이다. 왜 이 세 건물에만 삼종신기를 그려 넣었을까? 그리고 서울역 바닥에 이 문양을 넣도록 지시한 인물이 이토 히로부미라는 것은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단서들을 조합해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인물은 소설가 지망생이자 졸업 논문에 시달리던 지우, 그리고 그에게 이상에 관한 소설을 써보지 않겠냐고 제의한 수수께끼의 인물 은표다. 소설이 시작되면, 지우는 사라진 은표가 “전부 사실이었어”라는 음성 메시지와 함께 그간 모은 자료를 자신에게 넘겼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지우는 은표가 뭘 하는 사람인지조차 잘 모르고 있다.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지우와 은표의 시점을,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구성이며, 책을 읽어갈수록 책 속 설명을 검색창에 계속 넣으며 찾아보게 만드는 마성의 소설이기도 하다. 이 책을 처음 접했던 때의 보물찾기하는 기분이 되살아나는 재독이었는데, 그새 검색이 용이해지니 책의 내용을 확인해가며 새삼 놀라는 재미가 있다. 추리 내용을 설명할 때의 매끈하고 속도감 있는 문장과 달리, 지우나 은표의 심경을 묘사하는 대목들은 비유나 형용사가 다소 치덕거린다는 약점도 있다.


P.S. 소설은 1996년 한국영화진흥공사 주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신은경, 이민우, 김태우 등이 주연한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 1999년 개봉했다. 굳이 영화를 먼저 보고 싶은 독자를 말리고 싶은 기분이며, 소설을 읽은 뒤 보고 싶다는 독자도 말리고 싶은 기분이지만,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니까 당신의 선택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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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잃어버린 머리

by 안토니오 타부키


리뷰어: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




실제 사건의 요약. 1996년 5월, 포르투갈 리스본 교외 사카벵 지역에서 머리 없는 시체가 발견됐다. 신원은 스물다섯 살 청년 카를루스 호자로 밝혀졌고, 좀 떨어진 곳에 묻힌 머리에는 총상이 있었으며 몸에도 고문당한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들이 남아 있었다. 피해자는 사카벵 국가방위대 경찰서에서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은, 부검에 ‘실패’해서 피해자가 고문을 받았는지 확언할 수 없으며 사망 원인 또한 총상인지 머리 절단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고 발표했다. 


다음은 안토니오 타부키의 1997년 소설 『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잃어버린 머리』(이후 ‘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요약이다. 공원에서 머리 없는 시체가 발견되고, 얼마 후 피해자의 머리가 강에서 발견된다. 기자 일보다는 죄르지 루카치와 포르투갈 소설의 네오리얼리즘을 연구하고 싶어 하는 피르미누는 큰 열의 없이 이 사건을 취재하러 포르투로 내려간다. 피해자의 정체는 스물여덞 살 청년 다마세누 몬테이루였다. 익명의 제보자는 몬테이루를 고문하고 죽인 뒤 유기한 범인이 국가방위대의 티타니우 실바 경위라고 알려준다. 피르미누는 배우 찰스 로튼을 닮은 변호사 페르난두와 함께 이 사건을 조사한다.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다마세누 몬테이루』는 전통적인 미스터리 구조와는 꽤 다르게 진행된다. 이 사건에는 확실한 목격자가 있었기 때문에, 머리 없는 시체의 신원도 범인의 정체도 초반부터 밝혀진다. 문제는 이 목격자의 증언이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도록 막는 힘의 정체, 소설 속 용어를 빌리자면 ‘밀리건 카드 게임’의 메커니즘이 무엇이냐다. “[밀리건] 게임을 하는 사람은 다른 게임 참가자와 협력을 주장하지만 사실은 상대의 선택 폭을 제한하기 위해 함정을 만들 궁리를 하면서 카드를 차례로 늘어놓는다는 거요.”  


이 게임에서 계속 문제시되는 핵심은 근본규범이다. 근본규범은 본래 오스트리아의 법학자 한스 켈젠이 제시한 개념으로, “법의 타당성의 근거로서 가설적으로 설정된 궁극적인 최고의 규범”, 이를테면 우리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인간 행위의 근본이 되는, 법 위의 법이 되는 초월적이며 형이상학적 규범이다. 이것은 포르투갈이라는 국가에서(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군사기관 국가방위대를 통해 “진짜 멋지게 구체화”된다. 국가방위대원이 마약을 밀수한 뒤 대규모 나이트클럽에서 비싸게 밀매하고 그 비밀이 보잘것없는 청년에게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서슴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도, “높은 애국심, 진정한 가치 보호, 범죄와의 전쟁, 국가에 대한 완벽한 신뢰”라는 ‘원칙’을 내세운다. 그는 모든 것이 오해이고 사소한 실수들이 중첩되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을 뿐이라고, ‘국가’에 대한 충심으로 빚어진 당황스러운 해프닝이라고 호소한다. 『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변호사 페르난두는 새삼스럽게 격분하거나 절망하지 않은 채, 무덤덤한 어조로 말한다. 





“난 고문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 왠지 알겠소? 고문은 개인의 책임이요.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고들 하지만 용납할 수는 없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상관의 명령이라는 초라한 변명 뒤에 몸을 숨기고 합법적으로 발뺌하며 자신을 지키지요. 이해하겠소? 근본규범 뒤에 숨는 거요.”





페르난두는 “우리는 환상을 갖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파괴 충동을 누를 수 없기 때문이 고문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인간은 사악하다’이기 때문에 체념해야 한다”는 독일의 정신분석가 알렉산더 미체를리히의 말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한때 고문에 관한 글쓰기를 꿈꾸었지만, 미체를리히의 문장 앞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고 꿈을 포기했다. 대신 “고문당하는 사람들을 변호하기 위해 법원에 가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아직 자신이 정확히 뭘 잘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써야 하고 따라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젊은 기자 피르미누에게, 문학이 역사의 중요한 증거이며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페르난두는 법원에서, 피르미누는 원고지 위에서 밀리건 게임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책략을 거듭 모색해야 한다.


다마세누 몬테이루가 잠시 동안 잃었던 머리는 타락한 공권력에 의해 부정당하고 사탕발림의 ‘근본규범’ 미로 속에서 영영 길을 잃게 되었다. 미스터리는 진작 풀렸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격자는 계속 나올 수 있다. 나오게 되며, 나와야만 한다.


 


“이 모든 것이, 당신에게는 달리 보일 수도 있는데, 거미줄, 그러니까 은밀하게 연결되고 비현실적으로 결합되고 이해할 수 없는 우연의 일치들로 이루어진 체계를 만들어내는 거요. 당신이 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면 적어도 이 우연의 일치를 공부하는 법을 배워야겠지요. (……) 그 시대를 철저히 탐구할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당시 포르투갈 신문에 실린 일기예보를 알아야 할 거요. 일기예보를 이용해서 정치 경찰의 검열을 묘사해낼 수 있었던 우리 작가의 놀라운 소설에서 배울 수 있듯이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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