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 이은 2부는 주로 독자 여러분들의 질문을 통해 진행됩니다.
앞에꺼 안보신 분들을 위한 1부 가기 링크.
영화라는 우정.
알라딘- QnA의 첫 질문은... 고민상담입니다(웃음). 아무리 진지하고 깊은 내용을 담은 영화라도, 거기에 담긴 사유보다는 우선적으로 영화 자체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느껴진다는...
정성일- 허허허
알라딘- 네, 자신이 인문학도여서 그런걸까라고 자문을 하셨어요(웃음). 질문은 이렇습니다. 감각으로 사유에 도달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감각에서 출발한 사유는 어떤 특징을 가지는가 하는 겁니다.
정성일- 우선 지젝 식으로, '당신의 죄의식을 즐기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웃음)
감각이 사유에 도달할 수 있는가? 세잔은 가능하다고 했어요. 더 가까워진다, '보여진다'는 거죠. 재미있는 점이 있어요. 감각과 의미라는 두 단어는 국어에서는 별도이지만, 불어에서는 같은 단어(sens)예요. 같은 단어 속에 감각과 의미가 공존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그 두 요소가 이미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을 수 있어요. 우리는 그게 불가능하죠.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나온 걸까...
영화는 1895년에 파리에서 탄생했어요. 근대화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죠. 당시의 미술이나 음악 등에서 그 기류를 느낄 수 있어요. 특히 인상파 미술을 생각해볼 수 있죠. 영화는 '세상의 공기를 감각으로 캐치하려던 시대'에 태어난 예술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발명된 동기는 예술이 아니었어요. 영화는 그저 기술일 뿐이었죠. 실제로 초기에는 유사 써커스이기도 했고요. 벨이 전화기를 발명한 것과 아무런 미적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19세기의 저 수많은 과학적 발명 중에 유일하게 영화만이 예술이 되었어요. 그렇다면 영화는 어떻게 예술이 되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주1
좀 더 직접적으로 답하면, 영화를 완성된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왜 이것이 예술인가라고 질문하세요. 그러면 감각이 의미를 부여합니다. 묻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의미는 발생하지 않고, 영화는 '그제서야 예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겁니다.
알라딘- 영화에 있어 감각적 요소는 본질적으로 간과할 수 없는 거군요. 질문하신 분께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셔도 되겠네요.
정성일- (웃음) 저는 한국 사회에서 영화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 중에 철학자나 사회학자 같은 분들, 영화가 사유의 대상이게끔 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저는 그런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합니다. 영화에 대한 좋은 얘기들이 많아요. 들뢰즈나 랑시에르, 푸코, 지젝... 프레드릭 제임슨도 그렇죠. 커다란 도움을 받고 있어요. 사실 방금 언급한 사람들이 너무 대가죠(웃음).
저는 책을 탐욕스럽게 읽는 편이에요. 열심히 끌어다 읽어요. 특히 한글로 쓰여진 영화 관련 글은 거의 다 읽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중에 끌리거나 매력 있는 글은 거의 못 봤어요. 자기 전문 분야의 책들을 참 잘 쓰는 분들도 영화 얘기만 하면 이상하게 유치해져요. 그런 걸 읽다보면 가끔은 제가 이 사람에 대해 그간 오해했었나 싶어서 그 사람 전공 분야 책을 다시 봐요. 그런데 그건 정말 잘 썼어요. 이상하지(웃음).
아무래도 영화를 통해서 자기 분야 얘기를 하려고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사회나 역사나 철학을 설명하려고 영화를 갖다 쓰는거죠. 영화 자체를 이해하지 않고 영화를 매개로만 사용하면 좋은 내용이 나올 수가 없죠. 앞서 말한 들뢰즈의 경우에도 사람들은 영화를 매개로 한, 혹은 영화를 빙자한(웃음) 철학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건 분명한 '영화 책'이에요. 철학을 말하기 위해 영화를 끌어들인 게 아니라, 철학을 이용해서 영화를 말하는 것이죠.
이 사회의 지식인들이 영화를 중요한 예술이라고 말할 거라면, 그에 합당하게, 보다 진지하게 대해 달라는 바람이 있습니다.
알라딘- 앞서 언급하신 들뢰즈 외에 좋은 사례는 뭐가 있을까요.
정성일- 우리나라에는 동경대 총장으로 더 유명한 불문학자 하스미 시게히코의 영화 비평들이죠. 그의 비평은 절대적이에요. 일본에서 영화 평론을 하는 그 누구도 그 바깥으로 벗어나지 못했어요. 물론 그 영향력이 지나친 감은 있지만... 그의 오즈 야스지로 비평을 보면 단순한 감독론의 비평 범주를 넘어서 있어요. 그 글은 영화 자체의 가능성과 일본 영화계 전체의 속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다시 생각하고 반성하도록 하는 힘이 있어요. 결국 일본 영화의 새 세대가 나오게끔 하는 원동력이 되었죠.
알라딘- 트위터에 글을 쓰실 때 <시>와 <하녀>, <인셉션>과 <엉클 분미>처럼 두 개의 영화를 비교하는 형식을 자주 이용하시는데요. 특별히 그런 방법을 선호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정성일- 그게 가장 효과적이라서요(웃음). 트위터는 140자 안에 결판을 내야 하는 거니까 바로 얘기를 해야 돼요. 그때 하나의 영화만 말하면 기준점을 잡기가 힘든데, 다른 영화가 상대 기준점이 되는거죠.
저는 생각이란 곧 접속사라고 생각합니다. A와 B를 연결할 수 있고, A와 C를 연결할 수도 있어요. 그 연결하는 방법이 곧 그 사람의 애티튜드가 됩니다. 좀 따분하게, 건조하게 얘기하자면 플라톤이 말하던 변증법적 사고의 기초죠.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에요.
사실 이 얘기는 왜 그럴까 하고 방금 생각해본 거예요.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랬어요(웃음).
알라딘- 영화 <해안선>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번에 나온 책에 이 영화의 리뷰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리뷰 후반부에 보면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자막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질문을 주신 분 역시 그 자막을 기억하고 계신다는데요, 그런데 DVD판 <해안선>에 그 자막이 빠져있다고 합니다. 만약 그게 감독의 의도라면...
정성일- 어? 아니, 아니예요. 그건 절대 감독의 의도가 아닙니다. 확실해요. 몇 달 전에 김기덕 감독과 만나서 얘기를 했었는데 그때 그 자막 얘기도 나왔어요. 감독이 그 자막은 너무 중요하다고 직접 말했어요. 아마 DVD판에서 그 자막이 삭제된 건 감독도 모르고 있을 것 같아요. DVD 제작과정에서 재편집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감독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을 때도 있어요.
물론 판본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아요. <춘향뎐>이나 <취화선> 같은 경우에도 국내 개봉판과 깐느 개봉판이 다르죠. 특히 음악에는 수많은 판본이 존재하죠. 브루크너나 모짜르트 등만 봐도 악보가 여러 판본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같은 경우에는 보다 명확하게 예술가의 의도를 재현한다거나, 보다 나은 미적 성과를 목표한다거나 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요. <해안선>의 삭제 편집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 명백한 훼손입니다.
알라딘- 만약에 그 편집이 감독의 의도에 의해서였다면 어떨까요? 달라진 판본에 따라 비평도 수정되어야 할까요?
정성일- 디렉터즈 컷 같은 여러 수정본들이 있죠.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주로 극장 배급용 영화들이 2시간 이내로 편집되어야 하는 압박감 때문이에요. 연출가는 고심하게 되죠. 특히 헐리우드의 경우에는 편집권이 감독이 아니라 배급자에게 있어요. 그때 보통의 경우 감독은 자기 영화가 편집되는 데 거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해요. 그래서 DVD로 출시할 때 감독판을 내는 거죠. 이 경우에 감독이 자기 의도를 복원하는 건 잘못이 아닙니다. 다른 예로는 홍상수 감독 같은 경우인데요. 홍상수 감독은 무조건 처음 내놓는 게 곧 최종본이에요. 불가피한 이유로 편집을 약간 더 손보는 경우는 있었는데, 그 경우도 그러고 나면 그게 최종본이죠. 여기에 정답은 없어요. 감독별 스타일 문제고 그건 다 선의에서 이루어지는 거니까.
이렇게 만들어진 수정판본들은 앞선 판본과 다른 영화가 되죠. 저는 앞선 판본의 비평은 개별적인 해석으로써 존중해요. 그러므로 새 판본에 대한 비평은 새로 쓰여져야 합니다. 새로 쓰지 않고 기존의 비평을 새 버전에 맞춰 수정하는 행위는 쓰레기 같은 짓이에요. 새로 편집된 영화는 그 기본 전제부터가 다른 영화이고, 그건 곧 새로 쓰여진 영화라는 말입니다. 매 판본마다 다른 비평이 필요해요. 감독의 '진본'이란 없어요. 두 개의 판본이 있다면 A와 B라는 두 개의 영화가 있을 뿐입니다. 그게 어떤 판본이냐와는 별개의 문제죠. 감독의 의도이든, 작고한 감독의 복원판을 찍어내는 장사든...
알라딘- DVD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부가영상같은 서플먼트는 잘 보시나요?
정성일- 아뇨. 거의 본편만 봅니다.
알라딘- 아, 약간 의외네요. 영화에 대한 보조 자료들이 들어있어서 잘 챙겨보실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감독 코멘터리 같은 것들요.
정성일- 그 코멘터리들을 보면 대개 잡담하고 있잖아요. 오히려 본 영화의 느낌을 망치는 것 같아서 싫어요. 서플먼트는 신중하게 골라서 봅니다. 개중에는 그 영화의 이해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피핑 톰>의 서플먼트가 그랬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프랑스 출시판에 수록된 것도 좋았어요. 끌레어 드니가 코멘터리를 담당하고 있는데, 홍상수에 대한 아주 색다른 이해를 보여줘요. 반면에 마틴 스콜세지가 홍상수 영화에 코멘터리를 단 것도 있는데... 그건 뭐 스콜세지라는 이름 말고는 볼 게 없던데요(웃음).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어요. 잘못하면 영화 자체의 감상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특히 한국의 대다수 코멘터리들을 보면 스태프들의 잡담으로 이뤄져 있어요. 사람들은 소중한, 중요한 얘길 듣고싶어 해요. 저는 쓸데없는 코멘터리를 경멸합니다.
알라딘- 영화를 직접 만들 때와 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의 차이를 물어오신 분도 계십니다.
정성일- 영화에 대해 쓸 때는 영화를 마음 속에 두죠. 어떤 객관적인 개체가 아니라 내 마음 속의 영화를 생각합니다. 영화를 찍을 때는 그 모든 순간들을 포함해서 제가 진짜 평론가가 된 것 같았어요. 쇼트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과정들, 거절하고 받고 기다림을 결정하는 매 순간들이 비평적 태도와 연관되어 있었어요.
알라딘- 원론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과 말하는 것이 겹쳐가는 거군요.
정성일- 네. 영화를 비평할 때도, 찍을 때도 똑같은 시네아스트죠. '비평가였고 감독도 된' 게 아니예요. 뭔가 아주 다른 일을 한 게 아닙니다.
알라딘- 네 마지막 질문입니다. 쓰시는 글이 너무 어렵지 않은가 하는... 말하고 보니 질문이 아니네요(웃음). 다르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정성일의 글을 읽고 싶다, 그런데 너무 어렵다. 난이도를 조절해줄 생각은 없는지? 혹시 본인의 글이 어렵다는 사실을 몰라서는 아닌지(웃음)...
정성일- 이렇게 대답을 하죠. 저는 읽는 이를 설득할 생각이 없습니다. 제게 글이란 내 자신의 생각이 진전되는 과정을 따라가는 기록일 뿐이에요. 영화를 통해 어떤 사고를 갈데까지 가도록 하는거죠. 제 글은 '내 질문에 내가 답을 하는 과정'입니다. 나와 영화가 대면하는 게 아니예요. 영화를 본 나와 글을 쓰는 내가 대면하는 거죠.
종종 저는 문장 대신에 단어들을 나열할 때가 있어요. 글을 쓰다 보면 어떤 생각이 나고 그걸 쫓아가느라 그래요. 그런데 글을 다듬으려는 과정에서 그 생각 혹은 느낌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어요. 제겐 처음에 떠올랐던 생각을 붙잡는 게 더 중요합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질문만 있는 경우도 있어요.
(잠시 침묵) 질문은 종결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순간 영화가 끝나요.
(잠시 침묵) 내 두뇌 안에서 어떤 영화를 종결하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을 끝내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영화가 제게는 가장 위대한 영화예요.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고, 고민하고 생각하게 하고, 더 나아가게 하는 영화입니다. 제가 관심있는 건 그 나아감이에요.
독자 여러분들께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에게서 대답 혹은 해답을 구하지 마십시오. 마치 이야기를 나누듯이,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글의 리듬을 통해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리듬을 통해 질문하고 긍정하고 부정하는 것이 제가 쓰는 글입니다. 저는 제가 영화를 생각하는 과정이 그 영화가 가진 리듬에 포개졌으면 합니다. 제 어떤 글을 읽었는데 그 영화의 리듬을 느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제게는 최상의 찬사가 될 겁니다.
*주2
알라딘- 오늘 좋은 말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번외 질문들
알라딘- 이번 책을 사랑해주신 독자분들께 딱 한 권의 책만 추천해 주신다면?
정성일- 아까 말씀드렸던 하스미 시게히코의 <감독 오즈 야스지로>로 하죠. 영화에 관한 위대한 책이에요. 오즈 감독을 통해 영화란 무엇인가를 맹렬히 파고듭니다.
알라딘- 요즘 개봉작 중에 추천하고프신 영화는 뭐가 있나요?
정성일-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 그리고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엉클 분미>죠. 한번 봐봐요.
알라딘-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