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

마리 유키코




한국에서 일본 소설의 인기를 설명하는 방식 중 하나는 한국과 일본 사회의 ‘시간 차 유사성’이다. 역사에서 비롯한 감정적 거부감을 누를 수 있다면, 일본은 먼저 당도한 미래 사회로서의 예상도 같은 역할을 한다는 가설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일어난 사회 현상이 몇 년의 간격을 두고 한국에도 찾아오고, 독자들은 과거에 쓰인 현재의 이야기를 읽는 경험을 통해 담화 공동체로서 한국과 일본을 인식한다. 2012년 출간된 『여자 친구』는 2003년부터 2006년에 걸쳐 일어난 사건과 조사 과정을 다루는데, 저출산 및 무리한 부동산 구입으로 인한 가계 빚 증가 등 2015년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제에 가깝게 예측한다. 


이처럼 한국의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현실 속에서 펼쳐지는 『여자 친구』는 여자들 사이의 가장 내밀한 속마음을 파헤친다. 자가 주택 구입으로 상징되는 경제적 안정이 삶의 성공을 지시하는 세계에서, 여성 개인 혹은 여성 종족 대부분은 독립된 경제 주체로서 아직도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해 늘 아슬아슬한 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사회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경쟁은 약자로서의 불안감을 부채질한 결과이기도 하다. 소설은 사회 속에서 여성으로서 생존하는 과업이 얼마나 버거운지를 묘사하는 동시에, 이로 야기된 불안이 연대해야 할 친구를 가장 증오하는 적으로 바꾸는 과정 역시 포착하겠다는 의도하에 전개된다.  


도쿄 근교의 초고층맨션 리틀타워에서 비슷한 연령, 독신, 직장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이 시체로 발견된다. 2층의 주민인 41세의 회사원 요시자키 마키코는 성기가 도려내어지고 자궁이 사라진 참혹한 모습이었고, 같은 건물 20층에 사는 38세의 다미야 요코는 목이 베여 죽었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택배 기사가 용의자로 체포되지만 이 결과에 의심을 품은 프리라이터 나라모토 노에는 유리한 단서를 손에 쥔 가운데 진상을 추적한다. 


1997년 실제 일어난 ‘도쿄 OL 살인 사건’의 취재 논픽션에서 착상했다고 알려진 이 소설은 형식면에서도 르포를 차용하고 있다. 작가는 미야베 미유키나 덴도 아라타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기사 형식을 이용하면서, 피해자 두 사람의 진짜 모습은 다른 사람의 증언을 통해 구축하고, 또 다른 주인공인 노에의 입장은 1인칭 서술 속에 집어넣어 감춘다. 노에의 글쓰기가 감정적인 탓인지 일본의 월간지라는 특성 탓인지 삽입 장르의 문체가 약간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소설의 서사를 풍성하게 부풀리는 효과는 있다.


노에가 찾아내고 싶었던 진실은 일상이라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떨어진 여자들이 도달하는 바닥에 대한 것이었다. 기사에 나오는 충격적 행동을 저지른 여자들도 원래는 “하얗고 청결한, 가느다란 밧줄 위를 균형을 잡으며 조심조심 걷는 일상”(285쪽)을 살고 있었다. 그러다  밧줄 아래서 얼룩이 튀면, 그에 신경쓰다가 점점 오물에 깊게 빠져들고 나중에는 스스로 뛰어내린다. 모두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내 행복의 크기를 남의 것과 비교하면 남은 행복을 비교적 수월하게 얻어낸 듯 보이고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 내 삶에 대한 원망이 커진다. 부당한 운명이라는 인식은 자신과 남을 동시에 해치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한다. 


『여자 친구』는 결핍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서로를 위로하려 했지만, 잘못된 위로로 남은 물론이고 자신도 구할 수 없었던 비극을 그린 소설이다. 비상식적이라서 인위적이고 잔혹한 동기와 행동은 노에의 르포처럼 과도한 의욕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메시지 자체는 읽는 이의 마음에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깨끗하고 편안한 집, 그리고 내 옆에 같이 있어줄 사람, 그 정도가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의 모습이지만 “그 정도”라고 가볍게 말하기엔 세상은 모두에게 너그럽지만은 않다. 좋아하는 빨간 구두를 신고 한 발 내디디기엔 너무도 가늘고 위태로운 밧줄,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고 『여자 친구』는 경고하는 것 같다.



-박현주 (번역가, 에세이스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일로이 2016-04-01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품 좋더군요.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 골든 애플과 여자 친구까지 마리 유키코의 세 작품을 읽었는데 다 괜찮았습니다. 정말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되는 작가입니다. 감히 얼마전 작고한 나쓰키 시즈코의 빈자리를 마리 유키코가 채워주지 않을까 예측해 봅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16-04-29 16:04   좋아요 0 | URL
마리 유키코는 이전 세대의 이쪽 계열 작가들보다 더 가볍고 거리낌이 없다고 할까요.. 저는 한때의 요시다 슈이치를 생각했었습니다. 문체나 무게는 다르지만 그 약간 삐뚤어진 각도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