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선정에 나름의 작은 원칙은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했던 책들로만 채우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무척 좋았는데 비교적 덜 알려진 아까운 책들을 위주로 골랐습니다. 2011년 발간된 소설들이 대상입니다.
조이스 캐롤 오츠, <블론드> / 마릴린 먼로에 대한 전기 소설이 아닙니다. 먼로를 주인공으로 이용한 소설입니다. 포스트모던 계열의 실험을 꾸준히 수행했던 오츠는 이 소설에서도 어지럽게 분열하는 시점과 사막처럼 건조한 문장을 선보이며, 그 지옥의 한가운데를 순교자처럼 걸어가는 여자는 갖가지 현명함을 모두 거부한 백치 성자입니다. 그녀의 도그마는 오직 사랑입니다. 사랑은 너무 단순하고 좋은 것이니까요. 신 없이 도그마만을 가진 고독한 성자 마릴린 먼로와 그를 둘러싼 사막 혹은 지옥 모두가 빛을 발하는, 불길하고 절망적이고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앤드루 포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데뷔작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잘 다듬어진 단편집입니다. 읽기 쉽고 정서적으로 반응이 강하게 오는, 해설하고 설명하는 대신에 사건과 묘사에 충실한 '드라마'들입니다. 소위 본격 문학이 보통 사람들의 인생에서 너무 멀어진 게 아닌가, 대체 무슨 소리들을 하고 있나 싶으신 분들은 이 책을 통해 소설의 세계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죄다 상실과 슬픔에 관한 이야기지만, 단정하고 부드러운 문체가 인생의 씁쓸함마저 초콜릿의 어떤 맛처럼 느껴지게 하거든요. 담백하고 향이 나는 쓴맛이 풍성합니다.
이윤 리, <골드 보이, 에메랄드 걸> / 앞서 소개드린 앤드루 포터와 좋은 대조를 이루는 단편집입니다. 등장인물들이 막다른 벽에 부딪히거나 불가피한 상실과 맞딱드린다는 점은 닮았으나, 이 책에서 고난은 영원한 현재입니다. 아물어가는 상처가 아니라 불치의 질환 같죠. 고통의 순간은 더디고, 증상은 눈에 띄지 않은 채 몸속 깊은 곳에서 일어납니다. 고통은 조용하고 성실합니다. 그리고 이윤 리는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내상을 입는 순간을 정확히 포착합니다. 작가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보실 분은 클릭하세요.
에이미 벤더, <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판타지죠. 그러나 에이미 벤더는 조금 특별합니다. 평범한 중산층의 일상(과 권태)에 대한 묘사가 무척 풍부하고 다채롭기 때문이죠. 여기서 판타지 장치는 사람들이 자기 안에 숨겨놓은 슬픔을 끄집어내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현실 밖으로 떠나는 게 아니라 더 안으로 파고들기 위한 판타지죠. 스폰지 케이크처럼 풍부한 감정 묘사로 사람들의 마음이 사그라져가는 모습을 그려내는 이 역설적인 '특별한 슬픔'은 다른 데서는 만나기 어렵습니다.
필립 K. 딕, <화성의 타임슬립> / 화제가 된 책은 왠만하면 고르지 않으려 했으나, PKD 선집만큼은... 즐겁고 신나는 SF 대모험 같은 것만 바라지 않으면 됩니다. 시간의 왜곡으로 인한 인과관계의 붕괴, 가상공간이나 환상으로 인한 현실 감각의 왜곡이 안겨주는 찝찝한 즐거움에 주목하시면 좋습니다. 21세기를 향해 쓰여진 카프카의 숨겨진 작품집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PKD의 장편소설의 매력은 단편과는 다르게 고전 문학의 그것과 닮아 있죠. 추후 출간될 책들을 보실 때도 유념해 두시면 좋습니다. 그들 모두가 요제프 K의 후손들이니까요.
W. G. 제발트, <토성의 고리> / 만약 소설이란 게 글을 통해 세계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이라면, 올해 나온 소설 중에 <토성의 고리>를 따라올 수 있는 작품은 없을 겁니다. 이 소설 속에서 세계는 화자가 보는 풍경으로, 대화로, 등장 인물로, 그리고 그 '경험'들에서 촉발된 역사 속의 에피소드들로, 그 에피소드는 다시 화자가 경험한 다른 어떤 순간으로 계속 순환합니다. 고정된 주제(테마)로써의 세계는 없고, 세계는 그 순환하는 움직임 자체입니다. "세계를 말하지 않고 세계가 되기." 언어로는 원래 달성 불가능한 저 목표에 바싹 다가선 작품입니다. 걸작입니다.
아이슬란드 전승, <냘의 사가> / 유럽 중세 전승 문학에 대한 국내의 관심도를 생각해 보면 이 책이 발간된 건 행운입니다. 보통 '니얄 사가'라고 알려진 이 아이슬란드 이야기 속에서는 욕망과 금기, 그리고 서로 다른 종류의 정의가 서로 힘을 겨룹니다. 근대 비극의 초석이며 수많은 북유럽 예술 작품에 영감을 주었음은 당연지사. 근데 그것만으론 재미가 없죠. 반지의 제왕 찜쪄먹는 액션씬, 하드보일드 소설을 방불케 하는 각종(시크, 바보, 열혈 등) 마초들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더왕 전설이 달콤하고 진한 영웅담이라면, 냘의 사가는 하드보일드의 조상님입니다.
콘라드 죄르지, <방문객> / 이상한 고발 소설. 사회 밑바닥의 절망적인 삶들을 아무 희망도 없이 증언하는 화자는 얼핏 심드렁하거나 냉정해 보이지만, 그 시선이야말로 하루하루의 생활에 저당잡힌 대부분의 인간을 대변합니다. 화자는 살아남기 위해서 하류인생들과 거리를 유지합니다. 그들과 공명하는 순간 위험해진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다만, 끝없는 독백 가운데 때로 시처럼 흐드러지는 문장들 자체가 고발입니다. 자신이 시인인지도 모르는 노동자-음유시인이 20세기 문명 사회에 대한 비가를 부릅니다. 밀란 쿤데라가 빛(!?)이라면, 콘라드 죄르지는 그 맞은편 어둠 속에서 지금도 노래하고 있습니다.
기예르모 로살레스, <표류자들의 집> / 이번에는 미국 밑바닥입니다. <방문객>과 비교하면 그 배경도 글도 덥고 뜨겁습니다. 강렬하고 불쾌하고 나른하고 자기자신을 연민하게 만듭니다. 유머도 있는데 일부러 웃기진 않고, 다만 누군가가 무너지는 과정의 어떤 순간이 반짝 코믹할 뿐입니다. 이 쓴맛나는 유머들 덕에 작품 전체의 리얼리티가 훨씬 좋아집니다. 익사자는 공기를 내뿜으며 몸부림치니까요. 절망의 바닥에서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 내뿜는 쿨함, 물에 잠겨드는 폐가 내뿜는 공기방울처럼 반짝거리는 웃음. 얼마나 슬프고 좋은가요?
옥타비아 버틀러, <야생종> / 4000년을 살아온 남자가 300년을 살아온 여자를 만납니다. 남자는 다른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여자는 다른 누군가를 살려냄으로써 생명을 유지해 왔습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이 일궈놓은 곳으로 가자고 말합니다. 다음 세대의 인류가 준비중인 곳으로... 이 이야기는 수많은 메타포를 품고 있습니다. 남성성과 여성성, 백인과 흑인, '정상'이라는 파시즘적인 개념, 진화에 관한 고찰, 죽음과 인간성의 관계... 옥타비아 버틀러를 페미니즘 SF작가로 분류하고 구획을 나누는 건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 SF는 구별짓기를 거부하는, 가능성으로 가득찬 풍요로운 이야기니까요.
...해서 열 권입니다. 밝고 활기찬 리스트는 아니네요. 제가 그런 사람이어서는 아닐 겁니다.
이 열 권에 들어가지 않은 좋은 책들도 아주 많습니다. 더 유명해서, 더 잘 나가서, 완결이 안돼서, 하필 비슷한 내용의 완전 최고작이랑 붙게 돼서 등의 이유가 있습니다. 떠나간 친구들을 되뇌이듯이 왠지 미안한 마음으로 불러 봅니다. 조르주 심농, 마거릿 밀러, 로버트 매캐먼, 로렌 올리버, 엠마뉘엘 카레르, 버너 빈지, 렌조 미키히코, 타데우슈 브롭스키, 니콜 크라우스, 루이즈 페니,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유메노 큐사쿠, 조세핀 하트, 미하엘 조셴코, 나쓰메 소세키, 시마다 소지, 찰스 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알랭 로브그리예, 츠쯔졘, 요네자와 호노부, 리앙, 앨런 브래들리, 르 클레지오, 타나 프렌치...
남은 한 해 동안에도 좋은 책 많이 나오고 많이들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만드는 분들과 읽는 분들 모두에게 행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