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과 인술과 인생

 

 

1

 

토요일에는 인성검사라는 것을 받으러 아침부터 서울에 갈 듯. 내가 아는 바, 내 인성이 또 보통은 넘지. 어린 날, 나야말로 13일의 금요일에 태어난 남자라고 뻥을 쳤을 때, 친구들은 털끝만치의 의심도 없이 그 말을 믿곤 했다. 그제야 오랜 궁금증이 풀렸다는 듯, ~ 그래서~ 하는 그 반응들…….

 


<< 인성파탄 증거물 1 >> 


syo : 강의 안 듣냐.

syo : 이틀 열심히 듣는 척 하더니

syo : 왜 멈춤이지?

: 이제 들어야지

: 라고 생각했는데 10시라니

: 밥먹고 조금 누워있었는데

syo : 그러니까 내년에도 밥먹고 조금 누워 있겠지

syo : 그 후년에도 밥먹고 조금 누워 있겠지

syo : 그런 식으로 조금 누워서 세월 보내다가

syo : 영영 누워있겠지.

syo : 마치 누울라고 태어난 사람처럼

 

 

<< 인성파탄 증거물 2 >>

 

박곰 : 더운데 잘하고 있나 범벅 ㅇㅅㅇ 요즘 습도 쩔더라

syo : 그럭저럭

syo : 형은

박곰 : 난 더위에 져서 ㅇ_ㅇ 흐느적거리고 있지

박곰 : 비가 안온다

박곰 : 나쁜

syo : 그럼 도서관같은데 나가서 해라

syo : 집에만 있지 말고

박곰 : _ㅇ 그럴려고 이제 집은 안되겠다

박곰 : 습도 80퍼 넘던데

박곰 : 가만 있어도 찐득거려 으어어

syo : 냄새날 것 같다

박곰 : 복지회관에 지하독서실 아직 있나보던데 거기 가보고 아님

박곰 : 두류나 남부 도서관 가야겟ㅌ

박곰 : 냄새는 왜

박곰 : 씻거든

syo : 몰라

syo : 당신 그냥 그런 이미지

 

 


 

세상은 참 묘하다주는 것 없이 미운 놈이 친절하고마음 맞는 친구가 나쁜 놈이라니 사람을 완전히 바보로 만들고 있다시골이라서 도쿄와는 모든 게 반대인 모양이다뒤숭숭한 곳이다조만간 불이 얼고 돌이 두부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쓰메 소세키도련님

 

겉으로만 점잖은 척 단장하고 속마음은 시기와 거짓으로 꽉 차 있는 사람은 좋아하려고 해도 한 푼의 가치가 없고 미워하려고 해도 몽둥이로 때릴 만한 가치조차 없다단지 그가 거짓으로 꾸미느라 수고로움을 다하는 꼴이 가련할 뿐이다만약 그가 잘못을 뉘우친다면 한 번쯤 가르쳐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덕무선귤당농소

 

 

 

2

 

귀가 가려워서 시원할 때까지 후벼 팠는데 어쩐지 면봉이 축축했다. 다음날 도서관에 가는 길에 먼저 이비인후과를 들렸다. 처음 가본 병원이었다. 건물에 들어서는데, 계단으로 반 층 올라가니 있는 화장실이 정말 말도 안 되게 낡았다. 세면대가 없고 손 씻는 호스와 양동이, 바가지가 있었어. 싸했다. 2층으로 올라갔더니 바로 앞에 미용실 유리문이 있었는데, 싸한 게, 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무슨 페이퍼컴퍼니 오피스처럼 음산한 것이다. 바닥의 온갖 집기들이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자기들만의 댄스파티를 즐기다가 syo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는 못 움직이는 물건인 척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그런 양상이었다. 나 병원 들어가면 쟤들 막 문란하게 놀 것 같아, 바닥에서 뒹굴고. 싸했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싸했다. 텅 비어 있는 접수대 옆에 도저히 시선을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사진이 한 점 있었는데, 그 안에는 가운을 갖춰 입고 서먹서먹한 표정을 한 남자 세 명이 저마다의 자세로 들어 있었다. 맨 뒤에 서 있는 남자는 syo보다 열 살은 많아 보였고, 가운데 높은 의자에 앉은 사람은 할아버지, 맨 앞의 낮은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할할아버지쯤 되어보였는데, 사진 앞쪽에는 삼대가 이비인후과 의사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싸했다. 제발, 진료실에 있는 사람이 3세이기를. 제발, 할할아버지만은 안 돼들어가 보니 아들도 할할아버지도 아닌, 할아버지셨다. 무슨 기분이어야 하지? 하는 사이에 할아버지는 척척 움직여 의자에 syo를 앉히고는 어떻게 왔는지(당연히 반말로) 묻는다. , 귀에서 진물이 나오는 것 같아서요……. 어디 물에 들어갔어?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닌데요. 습진 같은 거야. 귀에 물 안 들어가게 해. 다른 병원에 가면 해리포터 지팡이 같이 생긴 놈을 귓속에 넣어서 삐빅- 사진도 찍어서 보여주고 그러던데 여긴 그런 기계 자체가 없었다. 오직 선생님만 있었다. 선생님이 기계는 아닐 거 아냐선생님은 면봉에 약을 발라 순전히 감으로 syo의 귓속에 찔러 넣으셨는데, 당연히 아팠다. 기계 아니네. 사람 솜씨네. 물론 해리포터 지팡이 병원에서도 아프긴 했는데, 왜 여기서의 아픔은 어딘가 싸한 아픔이란 말인가……. , 저기 앉아. . 그거 귀에 대. . 버튼 눌러. . 그래. . 이러고 약을 받아왔다.

 

그게 어제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부터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오른쪽 귀의 청력이 떨어진 상태다. 여러분, 싸할 때는 피해야 합니다. 미깡 선생님께서는 하면 좋습니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싸함은 싸이언스

 


 


3

 

해야 할 것들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읽고 쓰는 일에 집어넣는 시간이 차츰 줄어든다. syo라는 놈은 일하면서도 열심히 읽고 쓸 수 있을 그런 범상치 않은 놈일 줄 알았지만, 이거, 아무래도 범상한 놈으로 밝혀질 분위기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한 달에 스무 권, 읽으며 살 수 있을까? 미친 척 읽으면 백 권도 읽던 인생이, 아등바등 잠 줄여가며 읽어야 스무 권을 겨우 채울까 말까 하는 삶을 잘 버틸 수 있을까?

 

, 안 그럼 또 어쩔 거야. 다들 그러고 산다.

 

 


한번 책에 빠지면 다른 세계에책 속에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이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그 순간 나는 내 꿈속의 더 아름다운 세계로 떠나 진실 한복판에 가닿게 된다날이면 날마다하루에도 열 번씩 나 자신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소외된 이방인이 되어 묵묵히 집으로 돌아온다그날 찾아낸 수많은 책들내 가방 속에 든 책들 생각에 골몰해 길을 걷는다전차와 자동차와 보행자 들을 피해가면서녹색 등이 켜지면 기계적으로 길을 건넌다행인이나 가로등과 부딪치는 일도 없이 걸어간다몸에서 맥주와 오물 냄새가 나도 내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건가방에 책들이 들었기 때문이다저녁이면 내가 아직 모르는 나 자신에 대해 일깨워줄 책들시끌벅적한 거리를 걸으면서도 빨간불에 길을 건너는 법이 없다.

보후밀 흐라발너무 시끄러운 고독


독서는 인류가 피할 수 없는 것을 지연시키는 방법이다독서는 우리가 하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방식이다이 장대하고 가능할 성싶지 않은 독서 계획이 우리 앞에 줄지어 있는 한우리는 숨을 거들 수 없다나는 아직 빌레트를 다 읽지 못했으니 죽음의 천사에게 나중에 다시 오라 전하라거기에는 우리 모두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는 희망이 있다나 믿노니이것이 책이 인류에게 주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모든 생은최고의 생조차도끝은 슬프다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죽는다우리가 듣고 싶은 목소리는 영원히 멈춰버린다책은 끝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드러낸다제인은 로체스터와 결혼할 것이다엘리자는 사악한 노예주 사이먼을 저지할 것이다장발장은 자베르를 이겨낼 것이다핍은 에스텔라의 짝이 될 것이다악한 이는 나가떨어지고 정의로운 이는 번창하리라우리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책들이 있는 한아직은 배를 돌려 안전한 항구를 찾을 기회가 있다포크너의 말마따나그저 살아남는 정도가 아니라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아직도우리 모두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조 퀴넌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 읽은 ---

+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 문태준 : 180 ~ 303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 218 ~ 341

+ 슬픈 열대를 읽다 / 양자오 : 180 ~ 337

 

 

--- 읽는 ---

=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앤드루 포터 : 88 ~ 180

=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 / 이재열 : ~ 100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미국사 / 래리 고닉 : ~ 218

= 중국 근대사 / 이영옥 : 53 ~ 110

= 왕좌의 게임의 과학 / 헬렌 킨 : ~ 114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5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8-01 0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01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0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지를 너무 자주 파면 귓속이 안 좋아질 수 있어요. 제 친구가 예전에 귀지를 자주 팠었는데, 귓속이 너무 아팠고 피가 났대요. 이비인후과에 진찰받으러 갔는데 귀지를 너무 많이 파서 귓속에 염증이 생겼대요. 요즘은 이비인후과에 가면 내시경으로 이용해서 귀지를 파준다고 하던데, 귀지가 너무 많이 나올까봐 부끄러워서 못 가겠어요... ㅎㅎㅎ

syo 2019-08-01 11:14   좋아요 0 | URL
귀지는 애증의 존재입니다..... 파면 팠다고 뭐라하고 안 파면 안 팠다고 뭐라하시는 선생님들이여.....

다락방 2019-08-01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읽고 리뷰 써줘요. 어땠는지. 그 단편이요.

syo 2019-08-01 14:32   좋아요 0 | URL
그럴까요, 그럼? 좋았는데ㅎㅎㅎ

다락방 2019-08-01 14:40   좋아요 0 | URL
나도 좋아하는 단편이에요 :)

stella.K 2019-08-01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 파기와 코딱지 파기가 의외로 카타르시스가 굉장하죠..
남 보기엔 좀 거시기하긴 하지만.ㅋㅋㅋ
귀 파기도 한 두어 달 있다 파면 좋은데 별로 나올 것도 없는데
귀가 가려워서 파게 되더라구요.
사실 귀지는 안 파는 게 좋다고 하더군요. 다 귀를 이롭게 하는 거라서.
그런데 안 팔 수가 없어요. 아무래도 누군가 제 욕을 많이 하는가 봐요.ㅋ

전 좀 나이든 의사가 좋더라구요.
요즘 정형외과 다니고 있는데 처음 갔을 때 의사가 의외로 젊어서
놀랐어요. 그것도 무려 그 병원 원장이더라구요. 동네병원이긴 하지만.
게다가 요즘 이 병원을 배경으로 에세이 같은 소설을 쓰고 있죠.
‘나의 좌골신경통 치료기‘란 제목으로.ㅋㅋㅋㅋㅋ

syo 2019-08-04 23:44   좋아요 0 | URL
‘나의 좌골신경통 치료기‘라니 ㅋㅋㅋㅋㅋ
어쩐지 궁금하면서도 동시에 전혀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 같다.

제 귀는 여자친구가 파는 걸 좋아합니다.
본인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손 안 대고 귀 파는 격입니다.

stella.K 2019-08-05 14:57   좋아요 1 | URL
ㅎㅎㅎ 원래 그런 게 매력적인 거예요.
지루한 프랑스 영화 같은. 이걸 봐줘? 말아? 하는.ㅋㅋ

북다이제스터 2019-08-01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성검사의 핵심은 판단하지 않고 초지일관 하는 게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ㅎㅎ
시험 잘 보세요. ^^

syo 2019-08-04 23:42   좋아요 0 | URL
잘 보고 못 보고 하는 시험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다님 덕분에 잘 보고 왔습니다ㅎㅎㅎㅎ 감사합니다.
 


어제의 촉촉한 사랑 오늘의 마른 오징어

 

 

며칠째 엄마가 아프다. 감기 들면 대차게 앓는 우리 엄마 덕분에 감기가 구토는 물론 근육 경련이나 심지어 악몽까지 포괄하는 그야말로 증세의 메트로폴리탄이라는 사실을 매번 느낀다. 차도는 있다. 엄마는 이제 먹다가 토하러 뛰어가지도 않고 뽀시락 뽀시락 잘도 움직인다. 지금은 병원 가려고 고양이세수를 하고 있다. 잠깐 기다리는 동안 이 문단을 쓴다. 기왕 가는 거 이번에는 수액까지 맞히고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이다.

 

계속 붙어서 간병한 것도 아니지만, 확실히 엄마가 아프면 간병 말고도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이 생긴다. 이 가정의 살림살이가 n빵 되지 않고 몰빵 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집안일도 일이지만, 그것보다 다른 가족들까지 기운이 빠지고 집안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우울해지는 것이 문제다. syo만 해도 그렇다. 찾아올 듯 말듯 모퉁이에 숨어 고개만 빼꼼 내밀고 기회만 엿보던 슬럼프는 맞춤한 시기를 만나 몸통을 드러냈다. 냉방병은 방법을 찾아내 억누르고 있지만 완전히 퇴치한 것은 또 아니라서, 가끔 머리가 띵하다. 문득 우리 집에 종이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 확 다 불 싸질러버리면 어떨지를 생각하고, 이 마당에 또 욕구불만 사이클의 하이피크가 도래하여(얜 심심하면 도래한다, 도래이 같은 놈) 만사가 불만이다. 대구 날씨는 연일 대구스럽고, 어느 지역에 떨어졌다는 빗물 폭탄 소식은 어느 타국의 진짜 폭탄 소식만큼이나 멀기만 하다. 심지어 이러다 못 먹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산 복숭아는 보통 이하의 맛이고…….

 

늘 예쁘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웠던 활자의 손길이 이젠 치근덕거리는 걸로만 느껴진다. , 각방 쓰고 싶다.

 

 

 

--- 읽은 ---

+ 도서관 여행하는 법 / 임윤희 : 77 ~ 160

+ 이거 보통이 아니네 / 김보통, 강선임 : ~ 255

+ 만화로 보는 맨큐의 경제학 1 / 그레고리 맨큐 : 77 ~ 293

 

 

--- 읽는 ---

= 근대 유럽의 역사 / 김진호 : ~ 64

=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 문태준 : ~ 180

=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앤드루 포터 : ~ 88

= 슬픈 열대를 읽다 / 양자오 : ~ 180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 98 ~ 218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5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9-07-29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모든 신경질의 결정타는..... 복숭아, 보통 이하의 복숭아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슬픈 열대를 읽다, 양자오가 쓴 거 사러 갑니다. 사지 말아야 하면 얼른 댓글 달아주세요~~~ from 댓글재촉러

syo 2019-07-29 12:41   좋아요 0 | URL
이 책 나쁘지 않습니다. <슬픈 열대>를 읽으신 후든, 전이든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전 이 책 읽기 전에 <슬픈 열대> 먼저 읽었으면 어쩔뻔 했나 싶어요. 다 날려 먹었을 것 같아.

단발머리 2019-07-29 12:50   좋아요 0 | URL
사러 갑니다. 전 이거만 읽고 슬픈 열대 안 읽을 수도~~~~ 하하하하하하.

syo 2019-07-29 12:51   좋아요 0 | URL
이거 읽으면 슬픈 열대 읽고 싶어질 것 같은데? 하하하하하

다락방 2019-07-29 12:51   좋아요 0 | URL
난 아무것도 안 살 겁니다. 안사요. 안산다구욧! 으르렁-

오늘 아침에도 맛있는 말랑이 복숭아 먹고 와서 미안..

syo 2019-07-29 12:52   좋아요 0 | URL
말랑이 복숭아는 부럽지 않아서 괜찮.... 누차 말하지만 복숭아는 땐땐이🍑

단발머리 2019-07-29 12:54   좋아요 0 | URL
아니요, 전 양자오꺼만 읽는 걸로.
양자오 슬픈 열대랑 말랑이 복숭아, 요렇게 두 개 주세요~~~~~

syo 2019-07-29 14:52   좋아요 0 | URL
슬픈 열대말랑이 한 그릇이요!

목나무 2019-07-2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여름감기 정말 좀 심하네요. 전 일주일넘게 목소리가 안돌아오고 있어요.
어머니 무조건 푹 쉬시게 하셔야해요.
아프면 환자든 가족이든 처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ㅜㅜ

syo 2019-07-29 14:53   좋아요 1 | URL
수액 맞고 돌아왔더니 힘이 나나봐요.
입 터지셨어ㅎㅎㅎㅎ 다행이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07-29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이 한 명 아프면 진짜 다같이 아프죠. 어머님 쾌유를 빕니다. syo도 덩달아 아프지 않길 빕니다. 주말에 먹은 내 올해 첫복숭아는 정말 달았는데 괜히 미안해지네.

syo 2019-07-29 14:54   좋아요 1 | URL
엄마가 수액 맞고 회복되어 참기름에 북어를 볶고 있습니다. 팔놀림이 힘차고 노동요 대신 큰 이모 흉을 보는 걸 보니, 완전 평소의 엄마. 완치가 눈앞이네요.

반유행열반인 2019-07-29 14:58   좋아요 0 | URL
무리하시지 않게 진정시켜드리셔요. 흉보는 데는 맞아맞아 해주시면서ㅋㅋ 댓글들 보니 복숭아돌이한테 복숭아 이미지 강탈당한 사람 넘치네요. 얼른 맛있는 복숭아 드시고 수많은 기대에 부흥?하는 복숭아 찬가 보여주세요. 천천히ㅎㅎ

syo 2019-07-29 15:16   좋아요 1 | URL
방금 하나 먹어봤는데 와.... 와....
복숭아 발바닥 맛이네요.

2019-07-29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9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랙겟타 2019-07-29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습하고 더운 날씨에 방 안에 있는 책마저도 ˝이 무덥게 하는 원인들!!˝이라고 느껴질때가 있는데요..
그래서 시원한 도서관에서 책 읽고 있답니ㄷ..(응?) (๑◔‿◔๑)

그리고...맛없는 복숭아를 만났을 때의 기분이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네요. (`ロ´)

syo 2019-07-29 14:56   좋아요 1 | URL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는데 표정으로 표현하셨어ㅋㅋㅋㅋㅋㅋ 저 귀여운 애들은 대체 어떻게 만드신거예요? 어디 학원 다니세요? 너무 좋아 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19-07-29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머님의 쾌유를~~

올 해 복숭아 먹으면서 님을 생각했네요!
맛난 복숭아 많이 드시길요^^

syo 2019-07-29 14:58   좋아요 0 | URL
과연 알라딘의 복숭돌이 syo군요.
뭐 하나라도 기억 될 걸 남겼다니 뿌듯하다^-^

카알벨루치 2019-07-29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효자야 효자~👏👏👏

syo 2019-07-31 23:06   좋아요 1 | URL
50시간도 더 지나서 댓글을 달았네요..... 죄송.....
그런데 별로 할 말이 없다 ㅋㅋㅋㅋ 효자 아니라서.....
 



시절일기

김연수 지음 / 레제 / 2019

 

syo는 운동에 대해서 잘 모르며 걔랑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고 싶은 애정도 없지만, 이런 대화는 어쩐지 익숙하다. , 이놈의 뱃살 정말 죽이고 싶어요. 윗몸일으키기를 하루에 몇 개씩 하면 될까요? 회원님, 뛰세요. 근력은 근력이고 유산소는 유산소. 물론 근육량과 기초대사량의 관계라든가, 아무래도 근육이 있으면 옷 위로 봤을 때 훨씬 탄탄하고 덜 뚱쳐 보인다든가 하는 점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근력운동과 살빼기가 완전히 서로 쌩까고 지내는 사이까지는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역시 배 집어넣을 때는 유산소. 그런데 유산소의 특성은 어느 부위만 집중적으로 빠지는 게 아니라는 것. 온몸이 골고루 빠진다. 고로 배만 집어넣고 싶은 사람은 다른 것들도 같이 집어넣어야 한다. 살 빼는 입장에서 유산소가 이런 고집스런 평등사상을 지녔다는 게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글을(비매품, 증정품이지만) 만지는 사람으로서 가장 부럽고 탐나는 능력은 끝내주는 위트도, 화려한 기교도 아니다. 그저 매일 꾸준히 쓰는 힘이다. 매일 써보겠노라 한동안 끙끙대본 사람은 이 일에 이중의 함정이 깔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일단 매일 뭔가를 짜내는 것 자체가 어렵다. 하지만 그와 비교도 안 되게 더 어려운 것은 매일의 글을 고르게 써내는 일이다. 짜내려고 들면 포도 씨에서도 기름이 나오고, 여드름을 짜도 손끝에 개기름은 살짝 묻는 법이므로, 짜내는 일이라면 필부필부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포도씨유 한 방울, 개기름 1마이크로그램으로 어젯밤 그 광란의 캠프파이어를 재현하는 것은 범인凡人의 일이 아니다. 내공이 필요하다. 하늘의 뜻도 조금은 필요하다. 하늘의 뜻조차 내 편으로 만드는 내공이면 더할 나위가 없다.

 

쓴다는 마음으로 깝친 것도 어언 3년에 다가간다. 짧다면 짧은 이 기간 동안 얻은 글쓰기에 관한 짧은 지혜가 있다. 글 솜씨는 서로 독립적인 두 가지 형태로 성장한다.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 더욱 아름다워진다. 그리고 내가 기어이 쓰고야 마는 가장 후진 문장이 덜 후져진다. 한두 번 쓰고 말 사람에게는 첫 번째 솜씨가, 오래 쓸 사람에게는 두 번째 솜씨가 중요하다. 발로 쓰는 문장의 고도, 글발고도를 높이는 일.

 

어떻게든 매일 뭔가를 쓴다고 밝히는 대작가들의 명단을 나열하는 것은 똥멍청이 인증 받는 고상하면서도 참신한 방식이다. “전 그냥 내킬 때 휙 써버립니다. 그랬더니 퓰리쳐를 받았어요.” 이런 말을 하는 작가의 이름을 쓴 다음, ‘이를 제외한 모든 작가라고 덧붙이는 방식으로 하면 10분 안에 끝날 작업이기 때문이다. syo는 이 방법이 밑바닥을 끄집어 올리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 아닌가 싶다. 매일 글을 쓰는 김연수의 글발고도가 높다. 그도 사람인지라 사건 사고, 감정 상태에 따라 기복이 없진 않으나 미니멈의 고도는 부러울 만큼이다. 김연수의 발은 syo의 손보다 높은데 있다. , 언젠 안그랬을까마는.

 

 



사진을 읽어 드립니다

김경훈 지음 / 시공아트 / 2019

 

syo에겐 3대 지병이 있었다. 무좀, 복부비만, 그리고 수전증. 지금은 2대 지병이 되었다. 무좀은 일주일 약 먹고 3주 쉬고를 열두 달 했더니 싹 완치되었다. 이렇게 쉬울 것을, 8살 때부터 20년을 넘도록 발바닥 피부 조직이나 흩뿌리며 살았다니. 피부과느님의 막강한 은총. 그 병원은 명동성당 맞은편 YWCA회관 건물에 있는데이 더러운 걸 왜 쓰고 있지?

 

복부비만은 여전히 든든하게 내 핏을 망치고 있다. 미저리 같은 놈,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다. 수전증도 마찬가지다. 국민학교 때던가 초등학교 때던가, 국 먹다가 최초로 발견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손으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사진 안녕, 의사 안녕, 한의사 안녕, 군인 안녕, 경찰 안녕, 안녕 안녕 수전증 때문에 안녕도 참 많았다. 이 손만 아니었으면 막 막, 허준 되고 슈바이처 되고 막 그러는 건데? (수능성적 인서울 공대 턱걸이)

 

그래서 사진은 일찌감치 이해하길 포기한 예술이었다. 미웠기 때문이다. 사감을 빼더라도 솔직히 저게 왜 예술인지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카파의 저 유명한 사진을 보면서 위험한 데 가서 이런 걸 찍었다는 용기랄지, 반전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 사진의 사회적 효용이랄지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선뜻 인정할 수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syo의 짧은 생각에, 이것이 예술이라면 우리는 저마다의 방법을 동원하여 이것을 읽어야하는데, 피사체를 너무 직시하는 사진 매체의 특성 때문에 다양한 의미가 녹아들어 해석을 기다리는 공간이 충분하게 확보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장미로 사랑을 은유한 문학보다는 물론이고, 장미를 그린 그림보다도 장미를 찍은 사진은 그 뒤에 숨어 있는 추상이나 감정을 지시하는데 품이 많이 들고, 감상자도 그 이면을 읽어내기가 훨씬 어렵다. 사진 찍힌 장미가 사실 그 자체만큼이나 정교하여 감상자에게 물성으로 강력하게 육박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syo에게 사진 읽는 법은 그림 읽는 법보다 훨씬 더 어렵고 정신력 소모가 큰 기술이었다. 사진을 읽어 준다는 꼬임에 금방 넘어간 이유가 이렇다.

 

이 책을 다 읽고, 결국 사진이라는 매체를 협소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프레임 안의 것을 똑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프레임 밖에 더 신경을 써야한다는 것도 배웠다. 좋은 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이러했다(요건 스포라서 생략). 이 책을 읽고 이런 이런 것을 느꼈다. 참 좋았다.’의 중고등학교식 독후감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글을 남기게 되는, 그런 책이기도 했다.

 

 



기분이 없는 기분

구정인 지음 / 창비 / 2019

 

아버지의 병세 악화 소식을 듣고 10일이었나, 긴 휴가를 나갔다. 휴가 기간 내내 병원에 있지도 않았다. 그냥 며칠 들락날락거렸고, 또 마지막 이틀은 마치 그런 일이 없는 것처럼 휴가 기간 맞는 아이들과 신나게 놀다가 복귀했다. 그러고 한 주쯤 지났으려나, 나로호를 쏘아 올린 날인가 그 다음 날인가에 부대로 아버지의 비보가 전해졌다. 이럴 때 주는 휴가를 받아서 급히 장례를 치렀고, 뒷일을 마무리하고 여기저기 감사 인사를 전하고 하느라 말년 휴가를 당겨 붙였다. 그 모든 과정에서 나는 몇 번이나 울었는가를 생각해보면, 명확하다. 딱 한 번 울었다. 나처럼 잘 우는 사람이. 아버지가 가루가 되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공간에서 잠깐이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 묘지 근처 표식도 없는 나무에, 백부의 결정대로 함부로 뿌려졌다. 그따위 것을 수목장이라고 했다. 나는 화가 났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백부는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내 이름으로 들어온 돈이 너무 많아서 안 되겠다며, 챙겨갔던 부조금을 돌려줬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돌아 나오면서 나는 큰집과 연을 끊어냈다.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모든 과정이 내게는 슬픔이나 연민이 아니라 분노의 시간이었다. 부인에겐 평생의 욕지거리, 아들에겐 결혼이라는 제도의 비합리적이고 가학적인 면을 뼈저리게 가르쳐준 교과서, 딸에겐 철들고는 함께 한 기억조차 하나 없는 남 같은 사람, 그게 내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죽음을 코앞에 달고 병원에 입원할 때까지 외면하고 무시하던 형제들은 아버지가 침대에 눕자 그제야 찾아와 눈물로 강을 만들었다. 나는 그 강의 수심이 어이없어 도리어 울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당신들이 이 남자를 이렇게 사랑했습니까. 당신들의 사랑은 이 남자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왜 그리도 무력했습니까. 상복을 입고, 처음 보는 아버지의 지인들로부터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허탈하고 화가 났다. 이렇게 수많은 이들이 하나같이 좋은 사람이었다 증언하는 당신은 왜 당신의 가족에게만큼은 그냥 당신이었나, 당신을 감추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는 노력은 왜 가정 밖에서만 이루어지나, 묻고 또 물었다. 영정 사진 속 아버지는 웃고만 있었다. 마치 좋은 사람처럼.

 

형사로부터 아버지의 고독사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혜진과 아버지의 관계는 나와 우리 아버지의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애증이라는 말은 그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평면적이고, 모든 애증은 저마다의 굴곡을 가지고 있으므로 나의 애증과 너의 애증이 겹쳐지지는 않겠으나, 그럼에도 애증을 지닌 이들은 서로의 기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혜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절차가 끝난 이후, 끝도 없는 우울에 빠져드는 혜진을 보며, 나는 내가 아버지의 죽음 과정에서 챙기지 못하고 그냥 통과해온 어떤 감정이 있었던 건 아닌지 기억을 뒤적여보게 되었다.

 

나는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우울은 한 방울도 없었다. 아버지 쪽 핏줄과 연을 끊고 지내면서는 그나마 있는 분노도 사라졌다. 용서하지도 않았지만 뭐 용서할 게 남았는가 싶다. 내 아버지는 먼지처럼 사라졌고,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기억하기 위해 특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제 아버지는 어머니의 인생을 망친 주범으로 가끔 밥상 위에서 곱씹히거나, 지랄 맞은 성격의 대명사로 동원되기도 한다.

 

나는 과연 애도를 한 것일까, 안 한 것일까? 죽은 이에게 쌓여 있던 감정을 먼지로 만들어 날려 버리는 일이 수월했다면, 이것은 애도를 하지 않은 것일까, 애도를 너무나 잘 해낸 것일까? 내 일상은 이리도 평탄한데, 혜진의 삶은 왜 저렇게 망가진 것일까. 혹시 우리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내게 애도하는 법조차 가르치지 않고 그냥 훌훌 떠나버린 것일까?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

 

역사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대중역사서를 쓰는 이에게 말솜씨(혹은 글솜씨)가 필요하다는 것은 명확하다. 역사가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1558920, 카를 5세는 점심을 먹었다. 1558921, 카를 5세는 죽었다.“ 같은 뻣뻣한 진실들이 그 자체로 보배처럼 번쩍번쩍 빛나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다르다. 꾸미고 재간을 부려 읽는 이의 흥미를 돋우는 역사 책이 좋은 책이다. ”1558920일 카를 5세가 점심을 먹었지롱! , 근데 다음 날 갑자기 죽었지롱!“ ……죄송합니다.

 

syo는 죄송하지만 이 책은 하나도 죄송하지 않다. 주경철 선생님이 농담에 능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책이 원체 재미가 없으니까 상대 우위가 있다. 무관심자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데는 왜들 이렇게 관심이 없는지. 주경철 선생님이야 두껍고 근엄한 역사책도 잘 쓰시는 분이니 권위를 의심할 바는 당연히 못 되고.

 

이 책이 다루는 시기는 온갖 몇 세 몇 세()들이 지들끼리 결혼했다 이혼했다 지지고 볶으면서 유럽 역사에 기웃거리는 아마추어 독서가들의 골치를 아프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분탕치는 시기다. 그러다보니 거시적으로 죽죽 설명해나가는 역사책을 보면 도리어 헷갈리고 참다못해 백지를 펴서 프리드리히 3세가 막시밀리안 1세를 낳고, 막시밀리안 1세가 펠리페 1세를 낳고, 펠리페 1세가 카를 5세를 낳았더라- 하고 창세기를 작성하며 읽어야 하는 일이 생긴다. 이럴 때는 우선 인간별로 각개격파한 다음 전체상을 그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서 이 책이 방법이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황선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

 

뜻밖에 둘이 살아본 적이 많다. syo, 전문 동거남. 그리고 그게 다 하숙이고 자취고 고시원 생활이고 그러다보니 좁은 공간에서 살을 부벼가며 이룩한 생활들이다. syo, 부비부비 전문 동거남. 심지어 남녀를 가리지도 않았다(압도적으로 남자가 많았지만). syo, 바이섹슈얼 부비부비 전문 동거남서너 개쯤 더 할 수 있지만 점점 수렁에 빠지는 것 같으니 이쯤에서 그만 둘까. syo, 낄끼빠빠 바이섹슈얼 부비부…….

 

같이 안 살던 사람이 같이 살기로 결정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공간이 겹쳐진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불편함이 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하고 내가 같이 살아도 물고 뜯고 싸울 판인데, 남이라니! 그러므로 이런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그 모든 불쾌와 불편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메리트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책과 내 경험을 비교해보니, +남이 챙길 수 있는 거라 해봐야 경제적인 요소를 빼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여의 경우 다방면의 이점이 생기는 것 같다. 특히 멘탈적인 부분에서.

 

"인생이란 멀리서 보며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렇게 바꾸어도 말이 될 것 같다. "사람은 멀리서 보면 멋있기 쉽고, 가까이에서 보면 우습기 쉽다." 충분한 거리를 둘 수 없기 때문에 서로 한심하고 웃기는 순간도 목격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동거인은 여전히 멋있는 사람이다. 눈속임이 불가능할 만큼 가까이에서 삶에 대한 근면함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내가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이나 생활을 대하는 태도 역시 낱낱이 동거인에게 목격될 거라는 자각은, 너무 방만하게만 살지 않도록 나를 다잡아준다. 그 증거로 오늘 글 한 편은 쓸 거라고 큰소리를 치다가 미루고 미룬 밤에 거실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편 건 동거인에게 너무 한심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긴장의 발로였다. 내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테이블 건너편 자리에서는 동거인이 역시나 잠옷을 입은 채 연재하는 수필을 위한 삽화를 그리느라 애쓰고 있다. 비염이 심해져서 콧물을 막기 위해, 한쪽 콧구멍에 티슈를 길게 말아 꽂은 채로 말이다. 오늘도 내 동거인은 아주 우습고 또 존경스러운, 딱 그만큼의 거리에 있다. (235-236)


요런 대목을 보면 놀랍다. 경험 범위안에서, +남의 경우 대체로 서로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 경상도 마초 새끼들은 그런 거 신경 쓰는 놈처럼 보일까봐 도리어 맘대로 막 하고 다녔는데, 우리가 서로를 위해 해 준 배려라고는, 방문을 열기 전에 노크하는 것뿐이었다. 혹시 바지 내리고 뭔가에 열중하고 있을까봐……. 왜 우리는 저렇게 서로를 발전시키는 아름다운 관계가 되지 못하고 그저 서로의 욕정만 존중하는 동거생활을 하고 말았던 것일까.

 

아마도 몇 달 안에 새로운 동거생활이 펼쳐질 듯하다. 이제껏 모든 동거 중 가장 경제적 여건이 잘 갖춰진 생활이. 이 책을 꼼꼼하게 읽었으니 앞으로는 서로의 하반신 그 이상을 배려할 줄 아는 슬기로운 동거생활을 꾸며 나가야겠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

 

이렇게 찬사로 가득한 책도 드물어서 입을 떼기가 더욱 조심스럽다. 반면, 나 하나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해서 이 책의 예비독자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같아서 안심이 되기도 한다. 물론 좋은 책이었다. 너무 좋은 책이었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지혜의 꾸러미같은 주인공 한탸가 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동안에만 행복하다는 점이다. 뭔가를 알아채는 순간 그것들은 전부 한탸를 떠났다. 그리고 마침내 한탸는 세상을 알아챘으니 이제 그가 세상을 떠나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만이 행복하다. 그래서 인간은 고독하다. 행복하려고 고독하다. 그러나 고독 속에서도 들리는 소리가 있다. 사랑을 알려주고, 사람을 알려주고, 세상을 알려주겠노라, 그걸로 너의 행복을 앗아가겠노라며 쉬지 않고 내 고독을 두드리는 너무 시끄러운 소리가 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그래서 한없이 위태로운 인간. 내가 이 역설적인 제목을 읽어낸 방식은 그렇다.

 

 



하면 좋습니까?

미깡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

 

그냥 결혼이라면 무작정 싫을 때가 있었다. 이놈의 제도 나부랭이가 빵틀처럼 사랑을 덮쳐서 귀퉁이들을 다 쳐내고 일정한 모양으로 변형시킨다는 인식이었다. 아나키즘에 환장해 있을 때는 더욱 그랬다. 그러나 아나키스트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고드윈조차 결혼하여(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쉘리)을 낳았다는 사실. 허망한데?

 

허망하긴 하지만 결혼이 사랑에 가하는 압박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변화가 없다. 그럼에도 결혼에 대해서는 좀 온건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는데, 하면 하고 말면 말고라고나 할까.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면 하고 아니면 만다에 더 가깝긴 하다. 굉장히 무책임한 태도긴 한데, 또 굉장히 선명한 저항정신이기도 하다. 어쨌든 내가 원하는 것은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다. 두루뭉수리하다. 철없다.

 

없는 철을 만들어주기 위해 이 책이 나섰다. 5년째 만났고 동거도 하고 있는 커플. 어느 날 곱창을 먹다가 대뜸 결혼을 청한 남친 덕분에, 앞으로 300페이지 동안 그들의 연애사는 이전에 없었던 국면에 접어든다. 아무래도 주인공은 여성이고, 조언자들도 여성이다 보니 남자 입장에서는 공감보다는 학습이라 부르기에 걸맞은 태도로 책을 읽게 된다. 이건 안 되고, 이것도 안 되고, 이건 오 쉣, 완전 안 되고……. 그들이 결국 결혼하는지(사실 지금 결혼에 골인하는지라고 썼다고 화들짝 놀라서 지웠다. 결혼은 골인, 비혼은 노골? 클리셰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이야기들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오는 길 전체에 알알이 박혀있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건질 것은 남친의 이 대사겠다. 사랑하는 데 써야 할 힘을 다른 일에 소모하지 말고, 행복할 게 분명한 일들에 집중하자.“

 

그리고 뭐 이를테면이라는 말이 이어지더니 갑자기 방의 불은 어두워지고 카메라 렌즈는 뜻밖에 흐릿한 촛불이나 둥근 달을 비추는데……. 얼레리꼴레리, 누구누구는 좋겠네~ 좋겠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6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나무 2019-07-25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비부비 전문 동거남 syo님의 곧 다시 시작될 동거 이야기 기대해봐도 될까요.
마음같아서는 동거이야기 연재해달라고 조르고 싶다는~~ ㅎㅎㅎ
제 주위 기혼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면 좋다고 하더이다. 옆에서 지켜봐도 그리 좋아보이지 않던데.....-.-
먼훗날의 고독사를 생각하면 아주 쬐금 결혼이나 동거에 대한 마음이 동하는 나이가 되긴 했으나...
암튼 syo님은 새로운 동거 이야기 자주 읽을 수 있길 바랄 뿐이에요! ^^

syo 2019-07-25 17:06   좋아요 1 | URL
새로운 동거 이야기를 쓰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겠습니다만,
슬프게도(제가) 이번 역시 남+남 동거라, 밋밋한 동거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힘과 힘, 고기와 고기가 맞부딪히는 그지같은 동거생활.....

반유행열반인 2019-07-25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시간 공들여 쓴 글 이십 여분 만에 잘 읽었습니다. 여자 둘이는 살아본 적 있는데 그렇게 친했다고 생각한 언니와 확 멀어져버렸습니다. 제가 견디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왜 그리 못되게 굴었나 미안한 마음이지만 그걸 전할 방법도 없습니다. 이런 후회할 일 없이 사는 게...사랑하는데 온전히 힘쓰고 행복해지는 길이겠쥬. 행복을 기원합니다.

syo 2019-07-25 17:06   좋아요 1 | URL
행복을 위해서는 제가 동거하고 싶은 사람과 동거를 해야 되는건데, 그게 되지 않아서 또다시 진정한 행복은 한없이 유예될 예정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07-25 17:31   좋아요 0 | URL
저는 남 남을 뒤늦게 보고 헛생각(헛소리)만 잔뜩 했습니다. 뭐 그런데 그게 몇 년 후라도 유효할 듯합니다. 누구랑 살든 구박은 한 마디씩 덜하며 예쁜 사랑하세요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07-25 17: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절일기>에 감동받고 <기분이 없는 기분>에 뭉클해서... 그래서.... 좀 진지해지려고 했더니만.
syo, 전문 동거남. 슬기로운 동거생활.
어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07-25 17:08   좋아요 0 | URL
이 페이퍼를 한 자리에서 내리 쓰면서, 무슨 조울증 걸린 인간 마냥......
제가 해온 모든 동거가 다 제가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형식의 동거는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아서, 과연 슬기가 유지될 지 모르겠습니다.
몇 번 살아본 놈인데, 영 마뜩치 않습니다 ㅋㅋㅋㅋ

다락방 2019-07-26 0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절일기 나도 읽어볼까요..

하면 좋습니까?도 봐야겠다. 이건 도서관에 검색찬스!

그리고 이 페이퍼 좋아요, 쇼님.

syo 2019-07-26 12:33   좋아요 0 | URL
7개 던져서 2개 낚았으니 이 정도면 성공적이다ㅎㅎㅎ

막시민 2019-07-27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헬스 pt 20회 추천드립니다~ ㅎㅎ

공쟝쟝 2019-08-03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거이야기는 저도 기대됩니다. 남자둘이 살고 있습니다!!

syo 2019-08-04 23:41   좋아요 1 | URL
정확히 언제부터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기정사실이라, 쓸 거리가 생기겠네요. 아무래도 두 사람이 사는 것이니까요. ㅎㅎㅎ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 404 Not Found

 

 

1

 

독서실에만 가면 머리가 빠개질 것만 같다. 냉방병이라니. 살다 살다 이런 사치스러운 병에 걸릴 줄은. 더운 여름, 새참으로 고봉밥 한 그릇이면 세상 근심 다 잊고 하하하하 소처럼 밭을 갈던 뼈대 없는 상놈집안 우리 조상님들 뵙기가 부끄럽다. 제 몸에 흐르는 상놈의 피를 순수하게 지켜내지 못한 나약해빠진 선비st 돌연변이 후손을 용서하옵소서…….

 

에어컨이 빵빵해서 처음에는 좋았다. 남극마냥 추운 것도 아니었고. 지방사람(fat man)일수록 냉기에 강한 법이므로 나는, 하다못해 오래 축적한 내 배만큼은 냉방에 지지 않으리라 믿어왔는데, 배한테 배신감. 이럴거면 내가 널 달고 다니는 이유가 없잖아. 꺼져 버려, 제발……. 긴 팔, 긴 바지, 담요, 수면 양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했지만 한없이 머리가 아프다. 답이 없다. 혹시 지구온난화로 점점 주거지를 잃어간다는 북극곰의 저주는 아닐까? 황제펭귄들이 세종기지에서 훔쳐온 지푸라기로 syo인형을 만들어서 머리에 꽝꽝 못질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얘들아 그러지 마요……. 미안해, 인간이 많이 나빴지?

 

머리가 아파서 그런가, 글자는 눈에 안 들어오고, 계속 잔다. 마냥 잔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잔다. 자고 일어나도 어쩐지 피곤하다. 또 잘 수 있을 것 같다. 독서실에서 나오면 냉장 보관된 돼지고기 같이 축 늘어져서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그러고는 이제 더위와 싸워야 한다. 세상에 온통 적이다. 미치겠네.

 

 

 

2

 


한국 SF계를 책임질 새로운 별이라는 평을 주워듣고 김초엽을 샀는데, 어찌하다보니 테드 창과 병행독서 중. 아무리 기대주라지만, 이건 너무 가혹한 짓인가……. 읽은 데까지는 떡발그러나 아직 표제작과 수상작은 읽어보기 전이므로, 기대감을 버리긴 이르다!

 

그러나 테드 창 역시 아직 표제작 등판 전이다…….

 

 

 

3

 

몸이 힘드니까, 다 때려치우고 어디론가 떠나고만 싶은 마음이다. 근데 뭐 하고 있는 게 있어야 때려치우지. 고작 책 좀 읽고, 문제집 몇 권 푸는 게 다거늘, 그것도 못 버틸 거면 때려 쳐, 인마! ! 그럴까요, 그럼!

 

이러고 있습니다.

 

 


4

 

감기약 같은 거라도 먹어야 하나…….

 

 

 

--- 읽은 --- 

+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김하나, 황선우 : 158 ~ 279

+ 너무 시끄러운 고독 / 보후밀 흐라발 : 49 ~ 142

+ 하면 좋습니까? / 미깡 : ~ 323

 

 

--- 읽는 ---

= 도서관 여행하는 법 / 임윤희 : ~ 77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 ~ 98

= 당신 인생의 이야기 / 테드 창 : ~ 55

= 중국 근대사 / 이영옥 : ~ 53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19-07-24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지마syo. 목도리. 비니. 바람막이 잠바. 핫팩. (이건 좀 오바인가. 삼겹살 굽고 싶은 내 마음인가...)

syo 2019-07-24 21:51   좋아요 1 | URL
빛의 속도로 등판하셨네요. 빛의 속도로 갈 수 있군요.

반유행열반인 2019-07-24 21:53   좋아요 1 | URL
으아니요 그게 아니고 제 리뷰 달고 확인 누르니 syo 글이 떠서 뭐지 내가 먼저 등록 눌렀다 메롱 했네요

북다이제스터 2019-07-24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방병 조심하세요. ~~~^^

syo 2019-07-24 22:04   좋아요 1 | URL
늦었어요.... 먼저 가세요, 전 이미 틀렸어요.

북다이제스터 2019-07-24 22:05   좋아요 0 | URL
???

syo 2019-07-24 22:06   좋아요 1 | URL
걸렸거든요 전 이미... 북다님은 부디 살아남으시길...

Forgettable. 2019-07-24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방 사람.... ㅋㅋㅋㅋ 이런 유머에 터지다니 ㅠㅠ

syo 2019-07-24 22:42   좋아요 0 | URL
저조차도 별로 선호하지 않는 방식인데, 역시 그물은 넓게 던져야 하는 거군요..... 자꾸 배운다. 감사합니다.

다락방 2019-07-25 07:40   좋아요 0 | URL
뽀 실망이야.....

블랙겟타 2019-07-24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히 제가 공부하는 곳은 빵빵한 정도는 아니라 괜찮긴 합니다만. ㅠ 아이고 syo님 건강 유의하시옵소서 (˃̣̣̣̣̣̣︿˂̣̣̣̣̣̣ )
이번 글에서 신기하게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이 많이 보이네요. (˘⌣˘*)

syo 2019-07-25 13:4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블렉겟타님은 어디서 무슨 공부를 하고 계실까요. 나도 거기서 하고 싶다..... 이건 안 가자니 더워서 못 하겠고 가자니 추워서 못 하겠으니....

수이 2019-07-25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방병 넘 힘들어요. 아프지 마요 syo님. 근데 다 때려치우고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 저는 수시로 들던데 ㅎㅎ 따뜻한 거 많이 마셔요. 독서실에서 공부 계속 해야하는 거면 보온병에 뜨끈한 물,차,커피 한가득_

syo 2019-07-25 13:44   좋아요 0 | URL
오늘은 날이 좀 궂어서 그냥 선풍기 켜고 집에 앉아있습니다. 뜨끈한 액체가 도움이 되나 보죠?? 다음 번에는 커피 한 도라무 챙겨가야겠네요. 감사합니다!!

cyrus 2019-07-25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에어컨 바람 조심하고 있어요. 에어컨 바람이 뼈를 약하게 만든다고 하네요. 에어컨 바람을 통풍 발병의 원인 중 하나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syo 2019-07-25 13:45   좋아요 0 | URL
역시 사이러스님의 모든 아픔은 거기로 귀결되는군요..... 고작 머리만 아파도 이렇게 힘든데 ㅜㅜ

stella.K 2019-07-25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점 세상에 상놈의 피, 양반의 피가 어딨습니까?
그래도 스요님의 독특한 유머는 알아 드리리다.ㅋㅋㅋ

그래서 저 김초엽의 소설은 별로라는 건가요?
찬사하느라 튄 침이 제 얼굴에 맞을 정돈데...

syo 2019-07-25 15:51   좋아요 1 | URL
그 피는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것입니다.
내 피는 빼박 상놈의 피, 우리 집은 뼈대 없어..... 이런 마음이요.

몇 작품 더 읽고 마음이 바뀌는 중이에요. 별로 아닙니다. 좋아요.
찬사하느라 얼굴에 맞은 그 침을 인정합니다.
 


방망이와 눈동자

 

아버지라는 인간은 살아생전에 가족 속을 많이 썩이는 인간이긴 했다. 그래도 완전 개차반까지는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한 번씩 깽판을 쳐대도 며칠 지나면 웃으면서 아버지를 볼 수 있게 되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어디서 화가 나서 술을 쳐드시고 들어와서는 어김없이 살림살이를 내던지고 있었다. 엄마는 물건들이 개박살날 때마다 울며 비명을 지르고,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동생은 작은 방에 피신,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된 아들은 아버지 하지 마세요, 아버지 하지 마세요를 외치며 술에 쩐 몸뚱이를 붙들고 매달렸다. 놔라, 가장을 개떡같이 아는 이놈의 집구석, 내가 다 박살을 내놓고 말지, 아버지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반복하며 손에 잡히는 대로 집기를 던졌다. 그때 엄마가 소리쳤다. 경찰에 신고해라. 그건 엄마가 평생 처음 해본 말이었다. 당시 우리 옆집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벌어졌는데, 마침 그 전날도 그랬고, 그래서 그날 아침 옆집 아주머니와 엄마의 대화 속에 경찰, 신고, 이런 단어들이 들어있었던 것이라고 나중에 엄마는 설명했다. 하여튼 엄마의 입에서 평생 처음 나온 말이었으니, 아버지도 평생 처음 들은 말이었을 것이다. 뭐라고! 아버지의 손이 높이 쳐들리더니 그대로 엄마의 뺨을 후려쳤다. 엄마는 집기처럼 날아갔다.

 

우리는 모두 놀랐다. 살림살이 개박살 이벤트야 많을 땐 한 주에 한 번 꼴로도 벌어지는 일이었지만, 엄마 몸에 손을 댄 것은 그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놀라 울음도 멈춘 채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더 놀란 것은 아버지 당신이었다. 손을 내리친 자세 그대로 굳어 한참을 서 있었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아들이었다. 에이, 씨발 진짜 더는 이렇게는 안 되겠다. 아들은 동생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 야구방망이를 꺼내들었다. 오빠야, 하지 마라, 동생이 벌벌 떨며 외치는 소리를 귓등으로 들으며 다시 안방으로 쳐들어갔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버지와 어머니는 같은 자세로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냥 그렇게 멈춰있을 뿐, 실제로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 더 해봐. 등 뒤에서 아들이 외쳤다. 아들은 이상하리만큼 용기가 났다.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떨고 있는 것은 아버지였다. 돌아서기 전부터 떨고 있었고, 돌아서 아들의 손에 쥐인 방망이를 보았다고 더 크게 떤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아들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쳐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일주일 쯤 뒤, 아버지는 조용히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이후 모든 게 끝났다. 엄마의 몸에 손을 대는 일도, 살림살이를 집어던지는 일도 없었다. 평소처럼 화가 잔뜩 나서 술에 취해 들어와서는 기어를 잔뜩 올리다가도, 어느 순간 알아서 브레이크를 밟는 모습이 보였다.

 

어릴 때는 방망이가 그 폭력의 오랜 역사를 끊어낸 거라고 생각했었다. 살며 고쳐 생각하게 되었다. 나 역시 타인의 마음에 상처가 될 말이나 행동을 할 때가 많았고, 그러는 중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오로지 상처 주는 데만 집중하곤 했다. 그러다 어떤 눈물, 마음의 비명, 너무도 약하여 자신의 고통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따로 없는 지렁이들의 마지막 꿈틀거림 같은 것들을 마주하는 순간마다, 그날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지금 내 손을 흔드는 이 떨림이, 그날 엄마의 뺨을 후려친 손을 덮친 바로 그 떨림이었다. 항거불능의 죄책감.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넘은 지 한참 되어 등 뒤 멀리에 그려져 있는 가는 선. 내가 내 생각 이상의 쓰레기였고, 그걸 눈치 채기 위해서 타인의 눈물이 필요하고, 그렇다는 것은 앞으로도 내가 쓰레기로 살아갈 확률도 높으며, 상대방의 인내와 배려의 크기에 따라서는 영영 내 몸에서 나는 쓰레기 냄새를 맡지도 못하고 혼자 썩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 그런 것들 위에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 발밑이 꺼지는 것처럼 아득해지곤 한다. 그리고 그날을 다시 생각한다. 두려운 것은 아들의 방망이가 아니라 엄마의 눈빛이다. 두 번째 만나면 어둡고 깊은 심연으로 떨어져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아픔의 결정 같은 것이다. 두 번은 돌아오지 못할 길, 그런 두려움이 많은 국면에서 나를 그나마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다.


 

 

그제야 나는 거울은 언제나 거기 그대로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거울 속에 늙은 얼굴이 있다고 해서 그 거울이 그를 늙게 만들었다고는 볼 수 없다이 세계는 그 거울과 같다세계는 늘 그대로 거기 있다나빠지는 게 있다면 그 세계에 비친 나의 모습일 것이다.

김연수시절일기

 

길고 어두운 길을 따라 길고 어두운 밤을 지나 길고 어두운 마음에 도착하면너의 낯빛을 맑게 물들이는 오랜 단념이 있었다창문을 조금만 열어줄 수 있습니까불빛을 조금만 낮춰줄 수 있습니까주어 없는 문장 문장마다 너의 그림자가 베여 있었다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슬프게 기뻤다.

이제니너는 오래도록 길고 어두웠다〉 부분

 

진실에 다친 마음이라고 해서 빨리 아무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진실에 다친 마음은 거짓에 다친 마음과 달리 돌아가 의탁할 곳이 없다진실에 등을 돌려야 하니까.

김정선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 읽은 ---

+ 사진을 읽어 드립니다 / 김경훈 : 177 ~ 347

+ 시절일기 / 김연수 : 152 ~ 333

+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 주경철 : 222 ~ 339

+ 기분이 없는 기분 / 구정인 : ~ 203



--- 읽는 ---

= 만화로 보는 맨큐의 경제학 / 그레고리 맨큐 : ~ 77

= 인포메이션 / 제임스 글릭 : ~ 49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6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리즘메이커 2019-07-23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글속에는 제가 담겨있군요. 좋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syo 2019-07-23 10:07   좋아요 0 | URL
저마다 아팠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극복하거나 극복중인 저마다의 기억들이겠으나,
카테고리로 보면 꽤 다수가 공유하는 기억인 것도 같습니다.

비극이네요.

독서괭 2019-07-23 0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찰신고보다 훨씬 효과적인 브레이크가 되었지만, 온가족 마음에 남았을 상처가 안타깝네요.. 그래도 한번 넘은 선은 두번 넘기도 쉬운 법인데, 그러지 않으셨다니 참 다행입니다.
가장이라는 말 싫어하는데, 의무가 아니라 권리로 휘둘러질 때가 많아서요.

syo 2019-07-23 10:09   좋아요 1 | URL
그래도 한번 선을 넘을 때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것 자체도 용서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상처 안 주고도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걸 재빨리 눈치채는 사람이요.

2019-07-23 0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3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3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4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4 0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4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