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와 눈동자
아버지라는 인간은 살아생전에 가족 속을 많이 썩이는 인간이긴 했다. 그래도 완전 개차반까지는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한 번씩 깽판을 쳐대도 며칠 지나면 웃으면서 아버지를 볼 수 있게 되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어디서 화가 나서 술을 쳐드시고 들어와서는 어김없이 살림살이를 내던지고 있었다. 엄마는 물건들이 개박살날 때마다 울며 비명을 지르고,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동생은 작은 방에 피신,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된 아들은 아버지 하지 마세요, 아버지 하지 마세요를 외치며 술에 쩐 몸뚱이를 붙들고 매달렸다. 놔라, 가장을 개떡같이 아는 이놈의 집구석, 내가 다 박살을 내놓고 말지, 아버지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반복하며 손에 잡히는 대로 집기를 던졌다. 그때 엄마가 소리쳤다. 경찰에 신고해라. 그건 엄마가 평생 처음 해본 말이었다. 당시 우리 옆집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벌어졌는데, 마침 그 전날도 그랬고, 그래서 그날 아침 옆집 아주머니와 엄마의 대화 속에 경찰, 신고, 이런 단어들이 들어있었던 것이라고 나중에 엄마는 설명했다. 하여튼 엄마의 입에서 평생 처음 나온 말이었으니, 아버지도 평생 처음 들은 말이었을 것이다. 뭐라고! 아버지의 손이 높이 쳐들리더니 그대로 엄마의 뺨을 후려쳤다. 엄마는 집기처럼 날아갔다.
우리는 모두 놀랐다. 살림살이 개박살 이벤트야 많을 땐 한 주에 한 번 꼴로도 벌어지는 일이었지만, 엄마 몸에 손을 댄 것은 그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놀라 울음도 멈춘 채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더 놀란 것은 아버지 당신이었다. 손을 내리친 자세 그대로 굳어 한참을 서 있었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아들이었다. 에이, 씨발 진짜 더는 이렇게는 안 되겠다. 아들은 동생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 야구방망이를 꺼내들었다. 오빠야, 하지 마라, 동생이 벌벌 떨며 외치는 소리를 귓등으로 들으며 다시 안방으로 쳐들어갔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버지와 어머니는 같은 자세로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냥 그렇게 멈춰있을 뿐, 실제로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 더 해봐. 등 뒤에서 아들이 외쳤다. 아들은 이상하리만큼 용기가 났다.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떨고 있는 것은 아버지였다. 돌아서기 전부터 떨고 있었고, 돌아서 아들의 손에 쥐인 방망이를 보았다고 더 크게 떤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아들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쳐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일주일 쯤 뒤, 아버지는 조용히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이후 모든 게 끝났다. 엄마의 몸에 손을 대는 일도, 살림살이를 집어던지는 일도 없었다. 평소처럼 화가 잔뜩 나서 술에 취해 들어와서는 기어를 잔뜩 올리다가도, 어느 순간 알아서 브레이크를 밟는 모습이 보였다.
어릴 때는 방망이가 그 폭력의 오랜 역사를 끊어낸 거라고 생각했었다. 살며 고쳐 생각하게 되었다. 나 역시 타인의 마음에 상처가 될 말이나 행동을 할 때가 많았고, 그러는 중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오로지 상처 주는 데만 집중하곤 했다. 그러다 어떤 눈물, 마음의 비명, 너무도 약하여 자신의 고통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따로 없는 지렁이들의 마지막 꿈틀거림 같은 것들을 마주하는 순간마다, 그날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지금 내 손을 흔드는 이 떨림이, 그날 엄마의 뺨을 후려친 손을 덮친 바로 그 떨림이었다. 항거불능의 죄책감.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넘은 지 한참 되어 등 뒤 멀리에 그려져 있는 가는 선. 내가 내 생각 이상의 쓰레기였고, 그걸 눈치 채기 위해서 타인의 눈물이 필요하고, 그렇다는 것은 앞으로도 내가 쓰레기로 살아갈 확률도 높으며, 상대방의 인내와 배려의 크기에 따라서는 영영 내 몸에서 나는 쓰레기 냄새를 맡지도 못하고 혼자 썩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 그런 것들 위에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 발밑이 꺼지는 것처럼 아득해지곤 한다. 그리고 그날을 다시 생각한다. 두려운 것은 아들의 방망이가 아니라 엄마의 눈빛이다. 두 번째 만나면 어둡고 깊은 심연으로 떨어져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아픔의 결정 같은 것이다. 두 번은 돌아오지 못할 길, 그런 두려움이 많은 국면에서 나를 그나마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다.
그제야 나는 거울은 언제나 거기 그대로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울 속에 늙은 얼굴이 있다고 해서 그 거울이 그를 늙게 만들었다고는 볼 수 없다. 이 세계는 그 거울과 같다. 세계는 늘 그대로 거기 있다. 나빠지는 게 있다면 그 세계에 비친 나의 모습일 것이다.
_ 김연수, 『시절일기』
길고 어두운 길을 따라 길고 어두운 밤을 지나 길고 어두운 마음에 도착하면. 너의 낯빛을 맑게 물들이는 오랜 단념이 있었다. 창문을 조금만 열어줄 수 있습니까. 불빛을 조금만 낮춰줄 수 있습니까. 주어 없는 문장 문장마다 너의 그림자가 베여 있었다.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슬프게 기뻤다.
_ 이제니, 〈너는 오래도록 길고 어두웠다〉 부분
진실에 다친 마음이라고 해서 빨리 아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실에 다친 마음은 거짓에 다친 마음과 달리 돌아가 의탁할 곳이 없다. 진실에 등을 돌려야 하니까.
_ 김정선,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 읽은 ---
+ 사진을 읽어 드립니다 / 김경훈 : 177 ~ 347
+ 시절일기 / 김연수 : 152 ~ 333
+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 주경철 : 222 ~ 339
+ 기분이 없는 기분 / 구정인 : ~ 203
--- 읽는 ---
= 만화로 보는 맨큐의 경제학 / 그레고리 맨큐 : ~ 77
= 인포메이션 / 제임스 글릭 : ~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