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음의 쓸모있음 - 에세이 동양사상 - 도가
심백강 지음 / 청년사 / 2000년 11월
절판


환경의 변화에 순응하여 의연히 대처하는 것이 유가의 군자라고 한다면, 환경의 변화에 초연하여 자유 자재로운 것이 도인의 경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지인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이 아니겠는가!-24쪽

자유란 무엇인가.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고 어떠한 경우에도 구속받지 않는 것이다. 그 자유는 신이 주는 것도 통치자가 주는 것도 아니다. 참된 의미의 자유는 곧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중략) 경제적인 자유, 정치적인 자유 등도 물론 중요하지만, 진정한 자유란 실로 마음이 자유로운 것이다. -31~32쪽

맹자는 사람 보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이 간직한 것 중에 눈동자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 눈동자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마음속이 바르면 눈동자가 명료하고 마음속이 바르지 못하면 눈동자가 혼탁하다. 사람을 관찰할 때 그 말을 들어보고 나서 또 눈동자를 관찰한다면 사람이 어찌 숨길 수가 있겠는가?"-46쪽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자네의 이야기는 실제에 있어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네."
"쓸모없는 것을 알아야지 비로소 쓸모있는 것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네. 가령 저 땅이 아무리 넓고 커도 사람이 쓰는 것은 걸을 때 발을 딛는 좁은 공간일 뿐이네. 그렇다고 발 디딘 곳만 남겨두고 그 나머지 땅을 모두 파내어 황천(黃泉)까지 이르게 한다면, 사람들이 밟고 서 있는 그 땅이 쓸모있을 수 있겠는가?"
"그 땅은 쓸모가 없을 것이네."
"그러니 쓸모없음의 쓸모있음 또한 분명한 것이 아니겠는가."-48쪽

"알맞으면 복이 되고 너무 많으면 해가 된다. 세상에 그렇지 않은 것이 없지만 재물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 <장자> 도척편
"많은 사람들은 곤궁함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나 나는 여러 차례 과거에 낙방하여 곤궁함 속에서 편안함을 얻게 되었다. 내 이 곤궁함을 어찌 세상 사람의 부귀영화와 바꿀 수 있으랴." - 조식 <남명집> 발跋-63쪽

장자는 시대와 사회에 순응하되 언제나 자신이 이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자신의 개성과 인격을 상실하지 않고 도덕을 이상향으로 삼아 당당하게 살아나가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70쪽

눈은 보기 위한 것이고 귀는 듣기 위한 것이지만, 나무잎사귀 하나가 눈을 가리면 태산도 보지 못하고, 콩 두 알이 귀를 막으면 우렛소리도 듣지 못한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언제나 마음의 눈을 뜨고 마음의 귀를 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78쪽

유가에서는 '소유의 절제와 조절(養心莫善於寡慾)'을 말하고, 도가에서는 '버리고 버리어 버릴 것이 없는 데 이르기(捐之又捐 以至於无僞)'를 요구하며, 불교에서는 '무소유(無所有)'를 주장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양사상은 인간이 소유의 노예가 되는 것을 경계하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86쪽

아름다운 얼굴이 추천장이라면 아름다운 마음은 신용장과 같다.-90 쪽

"꾀꼬리 우는 소리는 아름답다 하고 개구리 우는 소리는 시끄럽다고 하는 것이 보통 인정이다. 아름답게 핀 꽃은 귀여워하고 잡초가 우거진 것은 보기 싫다고 뽑아버리는 것이 인정이다. 그러나 어느 것이 아름답고 어느 것이 밉다는 것은 다 사람 감정이 정한 것이지 대자연의 큰 눈으로 본다면 꾀꼬리 울음소리나 개구리 울음소리나 각기 생명의 노래일 뿐이고, 아름다운 꽃이나 잡초나 다 같이 생명 있는 것의 모습일 뿐이다." - <채근담>-100쪽

"굼벵이는 더럽지만 변해서 매미가 되어 가을바람에 이슬을 마시고, 썩은 풀은 빛이 없지만 변화해서 반딧불이가 되어 여름밤에 빛을 낸다. 깨끗함은 항상 더러운 데서 나오고, 밝음은 항상 어두움에서 생겨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채근담>-134쪽

선(善) 가운데서도 최선은 언제나 물과 같다. 물은 모든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높고 깨끗한 곳에 있으려 하지 않고, 항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고 더러운 곳에 스며든다. 이러한 물의 성질은 도에 아주 가깝다.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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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05-08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분들의 밑줄긋기가 신기해서 따라해봤다.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지만, 저장된 걸 보니 기분은 좋다. 한번 읽은 이후로 간간이 펴보는 책인데, 여전히 도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moonnight 2005-05-09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 생각해보게 하는 글귀들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하루(春) 2005-05-09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02551

오늘 알라딘이 또 제 서재에서 장난을 치는군요.

잘 읽으셨다니, 좋은 일 하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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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정신병원에 싸이코 드라마를 보러 다닌 적이 있다. 싸이코 드라마는 매주 1차례 열렸는데, 대상자는 매회 2명 정도였고, 방청객은 입원환자들, 나 같은 일반인, 스태프들이었다. 스태프들이 보기에 내 정신세계가 건강해 보였는지 나는 한번도 대상자가 된 적이 없었는데, 싸이코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전문 연기수업을 받은 사람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놀라울 지경이었다.

무대엔 의자가 놓여있다. 무대는 연극무대와 같다. 대상자에게만 밝은 빛을 비춰준다. 그 속에서 대상자는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그 누군가와 자기 입장을 오가며 정신을 집중한다. 그리고 마음속에 감춰뒀던 상처가 된-입원한 사람이라면, 그 원인이 된-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보인다. 그 중 정말 놀라운 한 사내가 있었는데, 그는 그 병원에 입원한 사람도 아니었다. 어찌 보면, 잠재환자-누구나 정신병자가 될 수 있다고 볼 때-라고 할 수 있는 학생일 뿐이었는데, 그의 흠 잡을 데 없는 감정이입에 혀를 내둘렀었다.

내가 본 싸이코 드라마는 언제나 타인과의 싸움이었다. 중간중간 의사가 던지는 질문을 통해 대상자는 상황에 몰입하게 되고, 격렬한 싸움의 끝에 가슴속의 응어리를 풀어내고, 저 앞에서 밝은 빛이 자기를 환영해 주고 있는 것 같은 벅찬 감정을 맛보게 된다. 싸이코 드라마는 치유의 과정인 것이다.

그럼, 이제 책 얘기를 해보자. 이 책의 독자라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나'와 '적'이란 단어를 이용해 리뷰 제목을 지었는데, 이는 제롬이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또 하나의 제롬인 텍스토르와의 싸이코 드라마를 보여준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타고 가야 할 비행기는 오지 않고 자신의 연극을 보아 줄 관객들은 넘친다. 관객 없는 연극은 앙꼬 없는 찐빵과 같으니까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간간이 몇 번에 걸쳐 나오는 반전상황에서 내 예측이 맞아 떨어져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긴 했지만, 하나의 반전상황에서 또 다른 것으로 옮아가는 과정은 기가 막히다. 속독하는 사람이라면 3시간쯤이면 다 읽을 수 있을 만큼 흡인력이 있고, 게다가 얇기까지 한 이 책을 무려 5일에 걸쳐 야금야금 읽었다. 이런 책은 앉은자리에서 끝내야 제 맛인데... 마지막에 '옮긴이의 말'을 읽으며 더욱 큰 공감을 했다. 옮긴이의 말이 이 책의 가장 잘 된 리뷰가 아닐까 싶다. 아멜리 노통브 만큼이나 시원했다.

그래,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잘 다스리고 볼 일이다. 이것이 내가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다소 우습겠지만, 받아들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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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05-05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마무리.. 마무리를 보강해야겠다.

로드무비 2005-05-05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마무리 보강 안해도 되겠는데요?
싸이코 드라마 저도 관심은 가졌었죠.^^

플레져 2005-05-05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전을 생각하면 아직도 시큰거려요...ㅎ

하루(春) 2005-05-05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__)
플레져님, 맞아요. 추리소설처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능력 정말 장난 아니에요.

날개 2005-05-05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읽어본 책인데, 상당히 궁금하군요..

하루(春) 2005-05-06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노통브를 작년 여름에 알았거든요. 이 책이 3번째인데, 전 아직 좋아요. 앞으로도 계속 보려구요. 그런데, 질렸다(이 책이 원인이 된 건 아니지만)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미네르바 2005-05-07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5년 전에 <반박>('오후 네시'로 다시 나왔다고 하네요)이란 소설로 처음 아멜리 노통을 알게 되었어요. <반박>을 읽으면서 정말 이 여자에게 홀딱 반했지요. 그 후 두 권의 소설을 더 읽었는데, 아직 이 책은 읽지 못했어요. 어서 이 책부터 또 읽어봐야겠는 걸요? 전 싸이코 드라마는 대학교 때 사회사업과 애들이 하는 것은 봤어도 그 후에는 못 봤어요. 그런데, 그것을 보면서 치유되는 과정이 놀랍더라구요. 늦은 댓글이 되었네요. 그래도 잘 읽었어요.

하루(春) 2005-05-08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에 오셨었군요. 그 소설이 원래 '반박'이었군요. 제 글에 대한 반박이란 걸로 잘못 봤어요. ^^;; 전 이제 그걸 읽어 보려구요. 노통브의 소설은 약간 김수현의 글 같은 느낌이 들어요. 튀는 글이지만, 일단 재밌고 뭔가 독자들에게 주려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아서 아직은 계속 읽고 싶더군요.
 
일렉트릭 유니버스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18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부모님과 한 가전회사 대리점에 CDP를 사러 갔다. 디자인이 정말 마음에 안 들고, 가격만 비싼 것처럼 보이는데도 그 회사 제품을 유난히 선호하시는 아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고 포장하는 동안 MP3P를 구경하고 있었다. 괜찮아 보이는 모델이 두가지 있었는데, 가격차이가 꽤 커서 왜 그런가 물어봤더니 싼 건 건전지를 계속 갈아줘야 하고 비싼 건 충전해서 쓸 수 있는 반영구적인 것이었다. 그걸 보시던 아빠가 "필요하면 골라라. 사줄게." 하시길래, 나는 사춘기 소녀처럼 괜히 홱 돌아서며 "이거 관심없는데... 난 애플에서 나온 거 살래." 했다.

앨런 튜링은 컴퓨터를 만들고 싶어했고, 성적 소수자였다. 성적 소수자라는 것 때문에 여성호르몬 제제를 강제로 복용하다가 결국 청산가리와 사과를 먹고 생을 마감했다. 애플컴퓨터의 로고가 튜링을 기리는 의미라는 것은 꽤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튜링의 삶은 참 비참하기 그지없다. 가장 마음이 아팠고, 더불어 튜링의 이야기를 알게 되어 기뻤다.

이 책은 태초에 지구 뿐 아니라, 전 우주에 만연하고 있는 전기적 신호를 구체화하는데 기여한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순전히 알라딘 편집장이 번역했다는 말에 솔깃해 고른 책인데 공학이라니...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안 해서 이름만 겨우 알고 있던 모스, 벨, 패러데이, 헤르츠, 와트 등 수많은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학과 전기의 발전과정을 보여준다. 반갑지 않은 얘기지만, 이 위대한 힘이 악용된 사례도 있다. 왓슨 와트의 레이더를 이용해 함부르크의 주거지역을 초토화한 아서 해리스.. 그대를 제2의 히틀러라 불러주리라.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신경세포 이야기다. 이온을 매개로 신경세포 간에 시냅스가 형성되고 생명체- 특히, 인간-는 외부의 자극을 수용, 그에 반응한다.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신경세포의 구조도 하나 실려있지 않은 불친절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

마지막으로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 같은 문구가 마음에 들어 하나 실어본다.

술은 추위와 테트로도톡신의 중간쯤에 해당한다. 알코올도 신경의 지방질 세포막을 굳게 만들지만 즉시 사망에 이를 정도까지는 아니다. 추위 때문에 손이 곱는 것과 비슷한데, 신체의 말단만이 아니라 사고와 기억을 담당하는 뇌 깊은 곳의 신경세포들에게 가서 세포막을 손상시킨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 268페이지 

전기가 어디까지 진화해서(물론, 과학자들에 의한 것이지만)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줄까? 유비쿼터스라는 신개념이 우리 곁에 바짝 다가온 지금, 그 원동력이 된 전기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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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4-22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쓰셨네요.
나도 한번 읽어볼까?(어느 세월에!)
아무튼 추천 쏘아요.^^

하루(春) 2005-04-22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괜찮아요. 책. 님의 리뷰 읽고 싶어요.

chaire 2005-04-22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땡스투 할게요. 언젠가는 꼭 살테니... :) 그리고, 요 옆에 도넛, 크리스피 크림 맞답니다...

하루(春) 2005-04-23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이 책 30명한테 공짜로 뿌려진 책이라 리뷰가 많은데... 잘 쓴 리뷰가 많던데... 으음.. 다음엔 더 잘 쓰도록 노력해 보죠. ^^

비로그인 2005-04-23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저도 읽었답니다...;;; 이제 이 책에 관한 다른 분들의 리뷰를 맘 놓고 볼 수 있게 됐지요..;;;

클리오 2005-04-23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뇌 깊은 곳의 신경세포를 손상... --;; (리뷰는 안보고.. ^^)

하루(春) 2005-04-23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 그럼 님도 리뷰를... 부탁드려요. ^^
클리오님, 저 말이 어찌나 와닿던지... 진하게 해놨으니 그 말이 눈에 확 들어오는 건 당연해요. ㅎㅎ~
 
향랑, 산유화로 지다 - 향랑 사건으로 본 17세기 서민층 가족사
정창권 지음 / 풀빛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저자의 전작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가 만족스러워서 주저없이 선택한 책이다. 매우 가볍고, 내용은 재미있어 집중만 하면 금방 다 읽고 만족스런 미소를 지을 수 있다.

16세기엔 여성들도 집에서나마 아버지께 글을 배웠고, 집안에서의 영향력도 남성과 거의 동등한 위치에 있었다. 결혼 후 시댁으로 가지 않고 친정에 머무는 것이 관행이었다. 재산상속도 형제자매간에 차별없이 받았다. 또한, 부모님의 제사를 아들 딸 구분없이 돌아가며 지내는 '윤행'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17세기 중반 이후 주자학이 사회 전반을 주도하게 되면서 가부장제가 만연하게 됐고, 그로 인해 재가 금지, 부계 적장자 상속, 남존여비, 외출 제한, 호된 시집살이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여성들- 심지어 지금까지도 볼 수 있는 -의 한스런 삶이 펼쳐진다.

향랑이 살던 시대는 가부장제가 만연하기 직전이었기에 "끼인 세대"였지만, 끼인 세대의 삶은 끼어 있어서 더 한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자기 주장을 하고 싶지만 들어주는 이 없고 자기 몸 하나 누일 방 한칸 있으면 혼자라도 원이 없겠는데 그마저 허락되지 않는 세상에서 향랑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을 누가 알리...

'부부는 삼강의 근본이요 인륜의 근원이니, 남편이 아내를 대하는 데 있어서 칠거의 악을 범하지 않으면 종신토록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조선왕조실록).'라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것은 결국 여자들을 옥죄는 악행이 되고 만다. 시도가 좋았다 할지라도 부작용이 더 큰 걸 알았다면, 폐지를 고려해야 옳은 건데 어째서 세상이 이리 돌아가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 있을까?

향랑의 사후 시아버지와 계모, 남편을 처형한 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향랑을 비롯한 그 시대의 소수계층을 그린 책을 보는 것은 반갑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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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4-17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가 오죽이나 잘났척하고 까탈스럽게 굴었으면 이혼을 당했을까..하던
친정집의 새어머니가 향랑에게 퍼붇던 가시돋친 말이 지금도 승질을 돋굽니다.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나서 산다는 일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근본적인 의식의 전환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음을 읽을 수 있던 아픈 책이었습니다.

하루(春) 2005-04-17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 읽었는데, 멋지더군요. 모두들 조용히 추천을 한 리뷰를 보면 저도 모르게 숙연해져요. ^^; 여우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moonnight 2005-04-18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어지게 만드시는군요. 두 분다. +_+;

하루(春) 2005-04-18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메인에 작가파일 -> 알라딘이 만난 작가에 정창권님 인터뷰 내용 있거든요. 그거 읽어보시고, 괜찮다 싶으면 보세요. 좋은 책이라 생각하긴 하지만요. ^^

클리오 2005-04-19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소설적인 느낌이 진하기는 하지만, 여성의 삶이 원래부터 그러했다기보다 17세기 이후 성리학이 정착되면서 더욱 종속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의미가 크더군요. 요즘 재미있는 역사책들은 거의 역사학자가 쓰지 않았다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역사학계의 비극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루(春) 2005-04-19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여지껏 정창권님이 역사학자인 줄 알았어요. ^^;;

클리오 2005-04-19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랬는데요. 역사학자들은 그렇게 재밌게 글 못쓰더라구요.. T.T (인터뷰에도 국문학자라고 나왔던 것 같던데...)
 
가상역사 21세기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휴~ 힘들다. 공짜로 책을 얻는 대신 리뷰를 한 편 올리라는 주문은 가혹한 것이다. 두꺼운 SF를 읽고 리뷰를 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책이 튼튼하기 그지 없어서 책장을 넘긴 채로 기다려주지 않아 더 힘들었다.

'대혼란(The great chaos)'이라는 챕터가 있긴 하지만,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 자체가 '대혼란'이 아닐까? 어차피 가상이니까 인정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지금의 상황을 볼 때 충분히 예측 가능한 - 물론, 일정수준 이상의 지식을 갖춰야 하겠지만 - 미래 보고서라..

적어도 환경 문제로 우리가 사는 이 작은 별이 존립을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자연파괴로 인한 재앙이 가장 무서운 일 아닌가.

이런 무시무시한 미래를 보면서 소망했던 게 3가지 있다. 1)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가 노벨상의 쾌거를 이뤄내길 2) 암정복은 우리나라에서 해내길 3) 우주엘리베이터가 빨리 생겼으면 좋겠다.

스필버그의 영화 <A.I.>의 상황만큼이나 끔찍해 보였지만, 이것 하나만은 생각할 수 있었다. 우리가 진심으로 바라는 지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 '책과 함께'의 담당자께 드리는 글 : 리뷰 쓰느라 힘들긴 했지만, 사실 이상으로 사실감 넘치는 과학책을 읽게 되어 기쁩니다. 리뷰를 올려야 하는 기한이 15일까지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 게으른 탓에 이제 올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만들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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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05-04-18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SF 영화를 봐도 디스토피아쪽으로 그려놓은 걸 보면 미래에 대한 예측이 어두운 쪽인 거 같고, 왠지 그게 사실일 것 같아 무서워져요. ㅠㅠ

하루(春) 2005-04-18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이 아니길 바라고 있습니다. 간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