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서 꽤나 많이 웃었다.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 잠시 사족을 좀 써야 겠다. 미국에 오면서 가져온 한국 DVD가 많긴 하지만, 극장에서 내 돈 주고 보면서 계속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영화를 보는 기쁨이란 건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진지하게 환자가 침대에서 카스테라 이야기를 하는데 신부란 작자가 "당근이죠." 하는 대목에선 정말 시작하자마자 사람을 이렇게 웃기다니... 하며 혼자 기뻐했다.
난 아직 모르겠다. 왜 우리나라에서 개봉했을 당시 사람들의 평이 극으로 나뉜 건지 말이다.이 영화에 대한 내 평은 보시다시피 별 다섯개다. 하하. 영화를 이렇게 재미있게 만드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닌데 그리 박한 점수를 준 사람들과 얘기를 해보고 싶다. "대체 왜 그랬어요?"
개인적으로 갈증이란 의미의 영어제목 'Thirst'가 더 마음에 든다. 내가 이 영화를 즐기게 된 순서는 영화음악 -> 책 '박쥐' -> Thérèse Raquin -> 영화 '박쥐'인데, '박쥐'는 단편적인 의미만 포함하고 있는 것 같아서 별로다. 영화를 보면 박쥐, 즉 뱀파이어의 일반적인 행태보다는 여러가지를 갈구하며, 인간에 대한 좀 더 복잡한 생각을 갖고 있는 뱀파이어인 상현 신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박쥐'란 제목으로 개봉했으니 그나마 관심을 받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안 그래도 평이 극으로 갈렸는데 거기다 제목까지 '갈증'이었으면, 그건 안 봐도 뻔할 뻔자였을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듯하다. 태주의 발에 신겨 있던 상현의 신발이 떨어지고, 붉은 바다가 일렁이는 그 장면. 운명을 알고도 어찌할 수 없는 그러나 그 틀 안에서 뭔가 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쓸쓸한 인생사를 박찬욱은 그렇게 마무리했다. 이 영화는 올해 최고의 영화 목록에 넣어야 겠다.